박찬주 대장과 그 부인의 슈퍼울트라 갑질을 접한 문통이 '군대만이 아닌 모든 부처의 갑질에 대해 살펴보고 바로잡으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ㅡ사유재산을 최대한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최대한 확대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 목표인 사회민주주의와 달리ㅡ을 당연시여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면, 갑질은 그런 본질이 다양한 현실적 요인과 어우러져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입니다. 





예수도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공자도 "네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황금률을 말했던 것도 갑질이라는 반인권적 행태가 얼마나 뿌리깊은 악습인지 말해줍니다. 헌법에 '어떤 사회적 특수계급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 것도 '모든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부와 직위, 신분, 환경, 능력, 권한 등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인류의 집단적 성찰에서 나온 것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입니다.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추첨으로 선출직과 행정직을 선출했던 것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평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추첨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상대적인 우위를 악용하는 갑질은 '인간이 짐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을 넘어, 악질적인 데이트폭력처럼 '짐승 중에 최악'임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갑질은, 특정 집단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경향이 강한 적폐와는 달리 어떤 곳, 어떤 상황, 어떤 관계에서든 일어나기 때문에 청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특히 이명박근혜 9년처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장려하는 정글화된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갑질의 일상화가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상대를, 친구를, 선후배를, 가족을 누르거나 꺽지 않으면 니가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강요되고 주입되는 세상에서 갑질의 만연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과 선의의 경쟁과 협동을 통해 이익을 나누고 공유하는 상생과 공존의 세상과는 정반대에 위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질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며, 계급 차별의 핵심이며, 인권 유린의 본질이며, 인격 파탄의 체현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지만, 갑질은 더 가졌다는 이유로, 더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강하다는 이유로 상대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며 범죄입니다. 인권과 시민권이 강화되는 추세에 역행하는 각종 갑질은 공정한 국가와 사회의 건설이라는 촛불혁명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박찬주 대장과 그 부인의 슈퍼울트라 갑질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수록, 부와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타락에 타락을 거듭하는 헬조선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일 폭로에 폭로가 거듭되고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들을 접할 때마다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찬주 부부의 갑질은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해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질들과 본질에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갑질이 쌓이면 적폐가 되고, 그것이 극단에 이르면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극 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극들이 일어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과 면담한 것도, 적폐청산을 100대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위치시킨 것도 적폐가 된 갑질들이 수백 수천 명의 국민 목숨을 앗아가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문통이 박찬주 부부의 슈퍼울트라 갑질을 보고받은 후에 '모든 부처의 갑질을 살펴보고 바로잡으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고위관료는 물론 말단의 공무원까지 만연돼 있는 권위적 행태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갑질은 일상이 된 것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상당히 줄어들었던 이런 권위적 행태는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적폐에 준하는 갑질들로 되살아났습니다. 세금으로 먹고사는 그들의 갑질이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에 이르러서는 나라마저 좀먹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국가만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며, OECD가입국 중에서 공무원 비율이 매우 낮고, 위험수위를 넘은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해 공무원 증원이 절실함에도 이에 대한 반발이 심심치 않게 표출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통이, 정부의 권력기관 중 유일하게 과거사에 반성하지 않았던 검찰이 처음으로 대국민사과에 나선 날에, 정부 각 부처의 갑질을 근절시키는 작업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직종입니다. 그것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고 월급을 받으며 신분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줄이고 없애는 작업은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모두의 과제이지만, 정부 각 부처에 만연해 있는 공무원들과 군인의 갑질을 줄이고 없애는 작업은 대통령과 정부가 책임지고 없애야 할 과제입니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문통이 할 일이 늘어나는 형국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촛불혁명의 대통령이니 그것도 운명인가 봅니다. 



정부 각 부처의 갑질 근절은 노무현의 꿈이었고, 실천이었으며 언제나 노무현이라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문통이 이루어야 할 시대정신이며, 안희정과 박원순, 이재명, 조국, 김경수, 임종석, 정청래, 표창원, 강경화, 손혜원 등으로 이어져야 할 국정철학이자 민주개혁세력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시민의 상당수는 촛불혁명으로 깨어났지만, 아직 구태에 젖어있는 자들이 정부이 각 부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민주개혁세력의 장기집권의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해서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8.09 08:28 신고

    임명직에 대해 5배수,10배수로 후보군을 정해 놓고 추첨하는것도
    좋은 방법이 될수 있겠네요 ㅎㅎ

    • 늙은도령 2017.08.09 14:53 신고

      아고라에서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잘 운영되었지요.
      물론 그때에는 아고라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 정치에만 올인할 수 있는 백인남성으로 한정됐지만...
      시민들의 공부가 늘어나면 지금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수천 개의 문건들ㅡ국민에게 공개돼야 마땅하지만 조중동을 필두로 한 기레기들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삼성장학금을 받은 의원들과 수없이 많은 사이비 지식인들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ㅡ이 나온 이후 이재용과 최지성이 초조해진 것 같습니다. 최순실과 관련된 일들은 전략기획실에 맡겼기 때문에 자신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재용의 변론을 믿을 국민ㅡ재판부는 어떻게든 믿으려고 애를 쓸 수도 있다ㅡ도 별로 없겠지만, 이학수에 이은 전략기회실장으로 삼성전자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최지성도 똥줄이 타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재용이 삼성전자그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는 최지성은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이지만,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돼 있었던 최순실 관련 일들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재용이 삼성전자그룹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0.00000001%도 모른다는 것과 최지성 전략기획실장이 그룹 경영의 전반을 맡았다는 것, 그룹사 사장들 대부분이 최지성 전략기획실 라인으로 도배됐다는 것 등도 사실이지만,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관계된 일까지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합니다. 



삼성전자그룹 내부에서는 이건희가 갑작스럽게 쓰러진 이후에, 최지성이 이끄는 전략기획실에 의해 이재용 중심으로 그룹이 재편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한 이부진과 홍라희 때문에 급행열차를 탄 것ㅡ국민연금의 도움을 받은 것ㅡ이 문제였다는 얘기도 나오고,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신장섭 교수처럼 최악의 기업사냥꾼 엘리엇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ㅡ월가에서는 상식처럼 떠도는 얘기ㅡ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재용이 전략기획실의 일처리를 몰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재용이 조윤선처럼 집행유예로 풀려나려면 박근혜와 최순실을 분리해 모든 잘못을 최순실에게 뒤집어씌우는 방법밖에 남은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400억원을 지원하고 말세탁 등에 응했다는 것은 최지성을 비롯해 전략기획실 전체가 바보천치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정원보다 뛰어나다는 삼성의 정보망이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소리가 나온 것은 삼성전자그룹을 총괄하는 전략기획실ㅡ거의 모든 악의 기원ㅡ의 치밀함 때문인데, 이재용과 최지성 등의 변론이 사실이라면 천하의 전략기획실이 초딩보다 못하다는 집단이라는 것이어서 이를 믿을 국민ㅡ여전히 재판부는 믿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할 수 있지만ㅡ은 없을 것입니다. 전략기획실이 국정원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청와대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재용과 최지성의 무모함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만, 그것 이외에는 어떤 변명도 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며, 사정기관과 정보기관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재벌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천하의 삼성마저 바보멍청이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무지몽매한 박근혜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최악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덕분에 최순실과 김기춘, 우병우 등이 제멋대로 날뛸 수 있었고, 삼성도 그러했겠지만, 그들 모두와 난공불락의 요쇄 같았던 삼성전자그룹의 오너와 전략기획실마저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만드는 역설을 창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팔아먹고 사는 대상으로 전락한 예수는 "너희 가운데 가장 높고자 하는 자는 모두의 종이 될 것이다"라고 했지만, 오로지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높고자 했던 자들의 탐욕이 구역질나는 추문만 끝없이 양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북한과의 상생과 공존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때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세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어떤 지옥을 만들어냈는지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또는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추상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전복적 붕괴와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대와 정치적 수단에 의해 경제발전의 과실을 정의롭게 분배할 수 있을 때 도달할 수 있지만, 그래서 북한은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적 세습독재에 불과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치적 수단까지 동원해 경제발전의 과실을 독점할 수 있을 때 최후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만 밝혀둡니다. 



샌더스의 멘토였던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도 이런 연장선 상에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은 미국적 성찰입니다. 수없이 많은 실책들이 쌓여도 절대 망할 수 없었던 미국이 불량국가로 전락한 것도 미국적 사회주의(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거대금융과 투기자본, 슈퍼리치와 초국적기업의 알레르기 반응 때문입니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대한민국이 이명박근혜 9년 동안에 헬조선을 전락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8.03 08:08 신고

    사밥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겠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이 그 날입니다

    • 늙은도령 2017.08.03 11:17 신고

      뇌물죄만 성립되면 최소 10년 이상인데...
      문제는 그럴 경우 삼성의 경영권이 이부진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2. 참교육 2017.08.03 15:39 신고

    코미디 공화국입니다.
    쇼 하는 김에 이재용까지 무죄 선언 한번 선고해 보시면 볼만할텐데...

    • 늙은도령 2017.08.03 16:18 신고

      삼성에 다니는 직원들의 마음도 착잡할 것입니다.
      적은 지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오너와 최고경영자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3. 임준호 2017.08.04 11:15

    삼성의 경영권이 이부진에게 갈 경우 최악이라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지 조금 풀어주시면 감사합니다. 선생님^^^

    • 늙은도령 2017.08.04 19:01 신고

      이부진은 직접 모든 것을 챙기는 형이라 삼성이 지금보다 더욱 사악해질 수 있습니다.
      임직원들이 더욱 시달리다 보면 그 스트레스가 그룹사와 협력업체, 납품업체 등으로 전가됩니다.
      이재용처럼 일일이 간섭하지 않은 것이 삼성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만 그룹 차원의 전략기획실은 영원히 페쇄시켜야 하며 개별 회사 차원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4. 임준호 2017.08.04 20:13

    아! 그런 의미가.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

    • 늙은도령 2017.08.04 23:14 신고

      더 깊은 얘기를 못해드려 죄송한데요^^
      워낙 민감한 문제라....


먼저 답부터 말하면, 'No'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잠시동안의 사회주의가 등장)만이 자유의 왕국(과학적 공산주의, 무계급사회, 개인의 발전이 모든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세상,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가는 사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복지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아편이라고 했던 종교(국가의 영속에 기여)처럼, 국가가 혁명의 주역인 노동자에게 복지를 많이 제공할수록 폭력혁명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질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익만 대변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상부구조로 법률과 문화, 교육, 도덕 등이 포함된다)마저 폭력혁명을 위한 선동의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마르크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만이 인류 해방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모든 것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일종으로 자본가와의 타협(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한 부르주아 사회주의)을 뜻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은 역사 발전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에게는 계급들이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이익을 재분배하는 계급타협, 즉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써의 존엄한 삶을 제공하는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악마(부르주아)와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했고, 부르주아 지배(노동착취에 따른 자본축적, 로자 룩셈부르크그의 《자본의 축적》을 참조)의 영속을 의미했으며, 역사의 법칙에 어긋난 잠시동안의 도피에 불과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전의 과실(잉여 가치)을 자본가가 독점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마지막에 이르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노동착취와 자본축적이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이때에 이르면 자본축적을 위한 소수 자본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계급에서 충원될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추상의 핵심에는 기술 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기술 발전이 없었으면 잉여가치를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넘겨주는 자본주의가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추상도 기술 발전에 대한 탁월한 이해(지금에서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어림짐작, 마르크스가 푸리에, 푸르동, 오언을 비판한 것과 똑같은 논리로 마르크스를 비판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작금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이끌고 있는 4차 산업혁명입니다.         





마르크스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나노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이 핵심)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을 최고로 이끌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종류의 노동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처럼, 노동의 종말이 도래합니다. 고용주가 아닌 임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임금소득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특이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초인공지능(=강한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 신에 근접한 지능)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의 뇌를 거의 대부분 재현해낼 '약한 인공지능'(알파고는 낮은 단계의 약한 인공지능에 속한다)과 인간의 손동작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만나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릅니다. 늙고 아프고 불평하는 인간의 불완전 노동을 로봇의 완전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은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인공지능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거의 모든 부가 독점됩니다. 부의 불평등이 거의 무한대에 이르며, 우주로 진출하는 것을 빼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축적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르크스의 추상이 맞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한 '액체자본주의'(액체근대)로 빠지지 않고, 숫적으로 최대치에 이른 가난하고 소외됐지만 공산당과 전위에 의해 교화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의 주장처럼 임금소득이 제로에 처하게 될 99.9999%의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기본소득이 제공되는 타협점(새로운 복지국가 또는 칼 폴라니와 미셀 푸코의 정치경제관에 가까운 사회의 복원)에 이르지 않고, 모든 노동착취와 자본독점을 끝장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르크스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가 마르크스 비판에 나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제대침체 때문에 마르크스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예언을 무색케 만든 북유럽 모델도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겨우겨우 명백을 유지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부의 불평등을 극대화할 4차 산업혁명까지 목전에 도래했으니 마르크스로부터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토마 피케티로 이어져온 마르크스 비판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더하면 새로운 복지국가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경제가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온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각성과 성찰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기술 발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도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적 세율 인상을 전제로 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계속될 글에서 이에 대해 다루겠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한다!)로 소득의 분배를 이룩할 문재인 정부에 이어 부의 재분배에 성공해야 할 다음 정부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년의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견인할 민주당의 압승은 필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재명의 경기지사(또는 서울시장) 출마는 안희정의 중앙정치 복귀와 함께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념을 말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의 실현(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다음, 그 다음의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이명박근헤 9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깨어난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에도 꼴통이 있는 것처럼 진보좌파에도 꼴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의 좌절이 보수우파의 맹공보다는 진보좌파의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노동조합에도 보수우파가 있으며,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기득권에 편입된 사례로 많습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신좌파의 68혁명이 양쪽을 모두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허니빳다 2017.06.25 02:42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북유럽의 형태를 따라갈것 처럼 보입니다. 차이점은 북유럽처럼 우리보단 오래 성숙된 시민의식에 의해서는 아닌것 같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좋던 싫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팩트를 어쩔 수 없이 접하면서 자연적으로 이전의 조작된 정보에 잘 안 속게 되다 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소위 "수구꼴통"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겠고요. 다만 말씀하신 수구좌파들이 문제인데 얘네들이 주류로 못갈지언정 일정 부분 점유율은 유지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게 항상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하는거 아니니까요.

    맑스야 비참하게 갔지만 그 이후 시대에 그 달콤함이 큰 반향을 일으켰듯이 지금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맑스같은 헛소리에 여전히 달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쩔 수가 없을것 같고요. 다만 저 "수구꼴통" 세력이 아직도 매우 견조한데 저 세력이 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수구좌파들이 그 일정 비율을 유지하는 것을 이용해 훼방을 놓아서 다시 "수구꼴통"들이 집권하는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막아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구좌파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수구좌파는 기독교와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종자들로 보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는 무교나 불교나 타종교는 접근 안합니다. 오로지 기독교에 접근해서 신자들을 빼갑니다. 지들 입장에서는 무교나 불교신자를 빼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을 택한거겠지요. 방법론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종교나 정치에서는 이런 편법은 대의명분에 정당성이 없어지므로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구좌파들이 저런짓을 합니다. 리버럴이 압도적으로 수구꼴통을 제압했을 때야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한 동안은 "수구꼴통" 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양한 루트로 견제할겁니다. 알아서 죽어가는 "수구꼴통"보다 내부에서 스멀스멀 살아나면서 좀먹으려 하는 수구좌파를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6.25 18:33 신고

      수구꼴통은 제거돼야 할 대상입니다.
      수구좌파도 이제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촛불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진보좌파들도 거듭나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좋은 점만 가져와야지 그의 주장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면 답이 없습니다.

  2. 세나 2017.06.25 19:07

    기존복지를 삭제 및 대체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핀란드 방식은 진정한 기본소득제가 아닙니다. 재벌해체하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본소득제 도입한 베네수엘라 방식이 진짜 기본소득제죠.. 한국도 베네수엘라 방식의 기반소득제를 도입해서 아시아의 베네수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선호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jtbc의 썰전보다 MBN의 판도라가 재미있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tvn의 '알쓸신잡'을 보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에 들어 연예인병(또는 왕자병) 증세를 아주 조금 보여주었던 유시민 작가가 지난주 방송에서 강경화 후보자를 비판한 방식과 단어 선정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한 오늘의 썰전보다 수구꼴통에 가까웠던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의 판도라가 객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선험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종합적인 판단력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시민의 썰전과 최근에 들어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정청래의 판도라가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썰전의 시청소감은 글로 옮기면서도 판도라에 대해서는 단 한 편의 글로 쓰지 않았습니다. 유시민의 지혜와 경험이 돋보이는 썰전은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프로그램이어서 글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을 제외하면 판도라의 내용들은 글의 재료로 활용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었습니다. 차명진이 말한 '액체민주주의'는 지난 1월 1일에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ㅡ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무너져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곳으로도 스며들 수 있는 액체의 특성을 띠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생명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의미ㅡ란 개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엘리트주의적 성격이 강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참여가 늘어난 직접민주주의(기술 발전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지방분권 개헌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로 가는 중간단계의 참여민주주의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참여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미국의 68혁명(유럽과 미국의 68혁명은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을 빼면 많은 면에서 다르다)을 주도했던 신좌파 대학생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으로 당시에는 이론적 성취가 미약했기 때문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그 이후의 후속연구와 경험들로 인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와 박근혜 탄핵찬성 촛불집회를 관통했던 '시민주권 행동주의'로 발전했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차명진으로써는 진보적 표현인 '시민주권 행동주의'를 사용하기 싫어서 보수적 표현인 '액체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숙 교수가 노사모가 최초의 신좌파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몰랐지만 정치학적으로 보면 신좌파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적 시각이 많이 반영된 조기숙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신좌파의 참여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신좌파는 보수적인 구좌파와 시장친화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우파를 모두 다 비판했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68혁명의 에로스효과ㅡ'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에로스)에 대한 자각, 혹은 이 자각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다발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과, 《파워엘리트》의 저자인 C.라이트밀즈와 함께 신좌파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마르쿠제의 《반혁명과 반역》을 참조할 것ㅡ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신좌파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한 최초의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짧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며,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을 뽑았다 해도 지속적인 지지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지켜주지 못한 이때의 죄책감과 뒤늦은 성찰이 미국산 쇠고기수입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박근혜 탄핵 찬성 촛불집회로 폭발할 수 있었습니다. 



차명진이 오늘의 판도라에서 '액체민주주의'를 말한 것에 비해, 유시민은 오늘의 썰전에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탄핵하려면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의원들을 반트럼프와 친트럼프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였다면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촛불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을 친박과 반박으로 나눈 것도 촛불집회의 영향력이었다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유시민의 주장보다는 저의 주장이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 최고로 앞선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4개월에 걸친 비폭력 촛불집회로 박근혜의 구속을 이끌어냈고 어떤 혁명도 이루지 못한 정권교체라는 신기원까지 이루었기 때문이기에, 유시민 작가가 촛불집회를 제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최소한 저에 한해서는, '액체민주주의'와 기술 발전의 결과인 정당 해체(또는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전환)를 다룬 오늘의 판도라가 오늘의 썰전보다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로써 판도라를 하차하게 된 차명진이 시청자들, 즉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액체민주주의'를 들고나왔을 수도 있지만, 보수 성향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촛불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발현된 '시민주권 행동주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신좌파의 68혁명과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촛불집회에 대한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저에게는 썰전보다 판도라가 좋았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7.06.16 05:56

    문재인만세! 대한민국만세!
    적폐의 큰뿌리들이 불살라지고, 유능한인재들이 그자리를 매꿨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6.16 14:00 신고

      능력있는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청산과 개혁을 위해서는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6.16 08:50 신고

    판도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한번 봐야겠습니다 ㅋ

    • 늙은도령 2017.06.16 14:02 신고

      썰전보다는 많이 떨어지지만 최근에 들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3. merryjanet 2017.06.16 13:05

    안그래도 가끔씩..안 볼 수는 없고, "썰전"이 지겨울 때가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동시간에 하는 "판도라"로 채널이 돌아가고 했었지요.
    어제도 마찬가지로, 중간 쯤에 돌렸더니만,
    정청래 의원은 없고, 박주민 의원이 대신하고 있어서 그만 끝까지 "판도라"를 봤습니다.
    도령님 염려처럼, 어쩌자고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 저렇게 올인하다시피 자주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알뜰신잡"이던가.. 하는 예능 나영석 PD의 프로는 잠깐 스치듯 봤는데 완전 실망이었구요.

    잠깐의 외도로 믿겠습니다.
    유시민 작가님,
    당신의 능력과 지식을 그렇게 가벼이 낭비하지 마십시요.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요망했던 그 모습을 마음에 심고
    어용시민으로 문재인 정권을 목숨처럼 지지하겠다는 결심을 한 국민들을 상기하시고
    어서 제자리로 돌아오시길 빌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6.16 14:03 신고

      유시민이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효용가치는 정치에 있는데 그게 쉽지만은 아는가 봅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룬 다음에 방송에 전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능력과 자질, 경험이 너무 아쉽기만 하네요.

  4. 참교육 2017.06.16 18:20 신고

    도령님은 부지런도 하십니다
    언제 글쓰시고 또 이런 판도라같은...관심이 많으시네요

    • 늙은도령 2017.06.16 22:35 신고

      저는 멀티플레이를 오랫동안 연습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TV도 보고, 글을 쓰며 팟캐스트를 듣기도 합니다.
      깨어있는 시간이 남들보다 적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에서 15년 넘게 연습한 결과입니다^^

  5. 한비자 2017.06.17 02:38

    먹고사느라 정치나 책읽기에 멀리어진 저 같은 소시민조차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개개인의 희망과 노력이 발하기 위해서 찾아낸 답이 맑은 정치에 있다는 결론이지 않나 합니다.

    제 주변은 나름의 기득권이라 볼수 있으나, 대다수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제 아이에게도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포기가 쉽습니다.
    저도 이럴때 누군가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으나, 권력도 진공을 허용하지 않다듯이 들어찬 공기는
    깨끗하던 오염되었건 어떤 힘에 의해 빠져야 다른 공기가 들어찰 수 있습니다.
    일정 부류가 모이게되면, 너무 더 잘난놈은 시기하기 마련입니다. 그에게 정치가 어려운 이유이며, 원한다한들 되는것도 아니라봅니다.
    태공망처럼 원없이 낚시하게 놔둡시다.

    나은 구관들이 있을 수 있으나, 나름의 경험과 깊은 고뇌를 통해 현재 인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삐끗하는것도 인간사의 당연한 일상이니 흐르는 한강물에 잡것들이 돌멩이 좀 던진다고 일희일비 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사악한 개누리당 핏줄들이 설치는 꼬라지를 보면, 분노가 치밀지만, 누가 있었으면 하나 때와 인연이 되면 운명처럼
    다시 제자리를 찾아 오실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놔둡시다. 그분이나 그분이나나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결론만 보면 친일잔당들이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화는 생각한 적 단한번 없으니, 풀이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밖엔 없는듯 합니다.

    더 성공한 정부를 원하는 바램이야 모두 동일합니다. 과정상 문제가 안생긴다면, 인간세상이 아닙니다.
    후보검증을 더 명확히 하여, debugging 을 해야 더 흠결없는 정부가 될것입니다. 집중할 수 있도록 국민이 지켜주고 지원해주면 됩니다.
    저는 큰 흐름에서 이미 수구꼴통들은 사망했다고 봅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해야 겠지만 말입니다.
    다소간 실망한 일이 생기더라도, 수정보완 중이니 그저 믿고 지켜줍시다. 실수가 생긴다면 Cool 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이재명 시장은 자신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상대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가혹한 자기방어기제의 폭력성이 강합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며, 통과되더라도 헌재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에 박근혜 탄핵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분노한 시민의 움직임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재빠르게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정통의 회장이었던 것도 마찬가지)도 능란합니다. 자신의 범죄경력을 불의한 자와의 투쟁에서 얻은 훈장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목적을 위한 수단에는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중에서 세 번째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입니다. 노동자와 환경에 대한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고, 각종 폐해를 막을 어떤 규제도 없었던 산업혁명 초기의 런던ㅡ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ㅡ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추상해낸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프롤레타리아(남성노동자)의 폭력혁명을 통해 결과의 평등(절대적 물질주의)에 이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목적론적 확증편향 때문에 수단과 과정에서의 폭력성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배제(플라톤, 니체, 히틀러, 스탈린의 유사점)하는 도덕과 정의에 반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위 99%의 부를 상위 1%에 이전하는 역계급혁명적 성격이 강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마르크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너무나 당연한 현상),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의 선호와 지향을 무시하는 절대적 물질주의, 보편적 도덕과 공정한 정의에 반하는 폭력성,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정치의 역할을 배제한 변증법적 유물론(진보에 끝이 있다는 결정론적 역사주의), 진화론과 만유인력에 경도된 과학적 오류 등으로 인해 주류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장으로 접근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네그리와 하트(푸코의 성찰에서 비롯된)는 노동자의 폭을 전업주부 같은 재생산을 담당하는 분들(무임금노동으로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노동이라고 했다)을 포함해 비정규직과 파트타임 등까지 확대한 비물질노동자로, 정치의 역할을 배제한 것에서 대해서는 자유자재로 네트워크적 이합집산을 하는 다중이란 개념을 들고나왔고, 코헨 등은 수단의 폭력성을 완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도덕과 정의와의 화해를 추구했지만, 68혁명의 등장과 함께 신좌파(유럽의 신좌파와 미국의 신좌파는 조금 다르다. 조기숙 교수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신좌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 이중개념자, 합리적 보수에 이르기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거나 이념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신좌만로 통칭했다)와 구별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물질주의보다는 탈물질주의적 가치(특히 정의와 도덕, 공정과 평화를 실현하는 규범과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열려있어 자아 실현과 자기 표현, 사회적 평등과 인권, 양성평등, 소수자권리, 재미와 축제로서의 집회, 환경과 생태(동물권 포함)라는 삶의 질을 위해 경제성장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는 신좌파와 구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좌파는 구좌파와 우파를 모두 다 비판했고, 삶 전반에서의 총체적 혁명을 중시했지만 진보적 성향은 분명히했습니다.

 




노동문제에서는 노조보다 급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좌파는 극우와 마찬가지로 구좌파의 수단적 폭력성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삶과 사회적 관계 전반에서 공정한 정의와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자'로서의 신좌파는, 합법적 폭력(공권력)을 독점하고 언론마저 장악한 독재정부에 맞서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폭력성과 강력한 위계서열이 필요했던 민주화운동 세대와는 달리 비폭력적인 저항으로서의 시민불복종과 자발적 참여를 선호합니다. 민주주의 이해가 대단히 높고, 정보접근력과 처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이런 창조적 진화가 가능했습니다. 



불의와 부정의에 분노하는 이들이 진보민주진영의 다수가 되면서 광장과 거리에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해졌고, 4개월 동안 연인원 16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지만 어떤 폭력도 일어나지 않은 촛불집회가 가능했습니다. 인류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같은무혈혁명이자 명예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성공을 거둔 적이 없었기에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신좌파의 다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이며, 정치학적으로 보면 노사모가 최초였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기숙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에는 자신이 신좌파에 속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는데, 퇴임시 지지율이 30%대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선호도에서 박정희를 멀찌감치 제치고 50%에 근접하는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신좌파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민주적이었으며, 진보적이었으며, 동시에 자유주의적이었던 노무현의 인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의 폭력성에 반대하는 신좌파의 눈으로 보면 극우적인 일베나 극좌적인 손가혁이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단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좌파로서는 목적의 절대성을 내세워 도덕과 정의를 거추장스럽고 위선적인 것으로 여기는 일베와 손가혁의 폭력적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손가혁에 둘러쌓인 이재명이 박사모에 둘러쌓인 박근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존중과 배려가 없는 이런 행태는 확장성에서 치명적이며,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수단으로서의 헌법정신을 훼손시킵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 정경유착을 선호하는 작고 강한 정부,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재벌, 권위주의적 문화, 기득권에 유리한 자유시장 등으로 구성된 신자유주의를 폭력으로 지키거나 무너뜨리려는 일베와 손가혁의 방법은 민주주의와 헌법, 정의와 도덕에 반한다고 믿는 것이 신좌파의 공통점입니다. 갑질만이 아니라 을질에도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좌파의 목표는,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목표는 이념의 분포상에서 좌우의 양극단을 최대한 줄이고, 민주주의와 헌법에 근거한 시민주권을 최대화하는데 있습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기본이며, 그럴 때만이 실질적 민주주의도 실현된다고 믿습니다. 신좌파,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선진민주복지국가는 모두의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노무현의 꿈이었던 사람사는 세상이 바로 그러하며, 촛불집회의 시대정신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늙은 도령님께 2017.03.14 21:43

    늙은 도령님의 통찰력 있는 글들을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쓰신 글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Marx의 저 인용문은 사실 조작된 것이라 팩트체크가 필요하실 거라고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14 22:48 신고

      마르크스는 몇 단계의 전환이 있었는데 그런 내용 중 일부에서 중간을 생략해 오해하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졌습니다.
      마르크스의 폭력혁명은 너무 노동자에 집중하느라 사회경제적 약자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팩트 체크는 해볼게요.

  2. 둘리토비 2017.03.14 22:09 신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야권의 이해관계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신좌파 그리고 손가혁, 이 둘이 조화를 이룰 기회는 전혀 없겠습니까?

    "핀란드역으로"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요,
    프랑스혁명, 마르크스,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주의의 투쟁사를 읽으면서
    바로 지금의 신좌파와 손가혁의 대립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느 한편으로 결론도 없이 코뮤니즘이랑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결말인데,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정말 좋은 것에 대한 연대와 조화, 이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지금 우물쭈물하다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더디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늙은도령 2017.03.14 22:53 신고

      제일 큰 문제는 손가혁의 폭력성이 이재명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재명은 선동가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에 대해 정확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재명 주변이 시끄러운 것은 그가 정의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때는 철저하게 강자의 방법을 씁니다.
      손가혁은 그것을 감지한 집단입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통합니다.
      신좌파는 구좌파보다 급진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조 또한 기득권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으로 틀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렌트와 바우만 등이 그것을 가장 잘 파고들었고, 네그리 등은 그것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코웬처럼 마르크스 혁명을 주도하다 그 한계를 깨달아 신좌파로 전환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헌데 손가혁은 구좌파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불만에 가득한 자들입니다.
      일베와 비슷하다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3. 2017.03.15 00:06

    공감이전혀 되질 않네요

  4. 늙은머슴 2017.03.15 00:16

    인과관계가 부족한 자기주장만 늘어놓은 현학적인 글이네요. 논리적으로 주장하려면 근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근거가 막연한 추측에 의해 쓰여진 글은 조금만 읽어도 알수있습니다. 뉴라이트와 같은 맥락의 주장은 독자들의 외면을 불러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2 신고

      그건 당신의 생각이고요.
      맨 처음에 분명하게 근거를 밝혔는데요.
      당신처럼 진실과 팩트를 보지 않으려는 자들만 이재명과 손가혁의 문제를 외면하지요.

  5. 늙은머슴 2017.03.15 00:21

    일베와 손가혁이 같다는 주장은 막연한 추측이죠. 정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일베회원으로 많은 활동을 한 다수의 회원들이 손가혁에 있고 그 명단 정도는 있어야 사람들이 사실로 인지할수 있을겁니다. 그런 근거가 없다면 말장난에 불과한겁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3 신고

      손가혁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글과 등급, 혁명방식, 문재인을 쫓아다니며 공격하는 것 등 증거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데요.

  6. 이런. 2017.03.15 00:41

    무엇을 근거로 이런 읽히지도 않는 장황한 글을 쓰는건가요?
    주장에는 선명성과 팩트가 기본입니다.
    본인주장만이 담긴 글은 공감도 힘들고 읽히지도 않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4 신고

      손가혁들이 떼거리로 몰려와도 나한테는 안 통해요.
      일베나 손가혁은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것은 그들의 수단이 똑같은 데서 나오고 그것이 지지율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흐려보일 뿐이지요.
      이재명 비판을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친 것에 감사해야 할 걸요.
      어차피 후보자토론을 통해 많은 것들이 밝혀지겠지만...

  7. 耽讀 2017.03.15 07:22 신고

    극과 극은 통할 수 있지요.
    민주주의 반댓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죠.
    갈수록 그들에게 드는 느낌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15:51 신고

      네, 그러합니다.
      이재명의 지지자들이 심상정과 겹치는 부분도 저는 불만입니다.
      이재명 때문에 진보정당의 표가 날아가니까요.
      이재명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정의당 표마저 가져가면 더민주 판이 됩니다.
      저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이지 더민주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8. 최권해 2017.03.15 09:23

    진영논리를 전제로 두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위계서열과 수단적 가치를 추종하는 행태와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손가혁이 뭐라도 되는줄 아시는 모양인데, 서로 어떤 유대관계도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붙은 이름일뿐이죠. 집단주의에 무척 익숙하다못해 집착하고 있는 그 태도로 평화 공존을 논하는 것 부터가 대단히 재미있네요.

    누가 어떤 발언을 하든지 그것은 개인입니다. 세작이 숨어들어 분열과 이간질을 의도적으로 일삼았을 수도 있고, 구태정치에 염증을 느낀 일부 사람들은 상황을 살피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주로 보다가 달변가 스타일의 정치인을 만나면 열성 과격 지지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이죠. 아주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이 표출되는 현상일 뿐입니다.

    이걸 신좌파vs손가혁 이라는 프레임으로 만들어버리는, 자신들을 마치 '애국보수'로 자칭하고 진보 보수 떠들며 진영논리로 부도덕 행위를 덮는, 대단히 '일베스러운' 재미있는 행위도 뭐 개인의 생각의 표출이라 여기고 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탄핵이 무리다 했던 이 시장의 발언은 국정농단 의혹이 스타트를 끊은 그 시점이었고, (10월 20일 경)증인들의 증언이 밖으로 드러나자마자 그 즉시 탄핵을 외쳤답니다.(10월 29일)

    그렇다면 같은 시점에 탄핵이 국정 운영과 민생경제에 타격이 될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한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문제삼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탄핵은 일절 언급도 하지 못하다가 민의와 시류에 그저 편승하기만 바쁜 아무개들을 먼저 문제삼고 내부에서 냉철하게 비판하는 쪽이 순리에 맞을 것 같습니다.

    손가혁 아무리 몰려와도 끄떡없다고요?
    저는 손가혁은 아니지만, 그쪽같은 궤변론자가 아무리 몰려와도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웃고 말 테니까요.

    • 늙은도령 2017.03.15 16:00 신고

      먼저 이 글은 손가혁과 일베의 공통점을 설명하려는 것이고요.
      그들의 전부가 아니라 폭력성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진영을 나눈 것은 당연하지요.
      그것이 정치철학의 기본이고 정당의 기본이니까요.
      대통령이 되면 국민 전체를 상대해야 하지만 지금은 당내 경선입니다.
      구좌파와 신좌파의 차이를 설명한 것은 이재명이 스스로 구좌파로 자신을 한정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드린 것이고요.
      이재명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빙 돌려 말해준 것이고요.
      손가혁이 변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방식을 쓰는 한, 세작이 있다면 그들을 골라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이재명이 손가혁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는 한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비판도 최소화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재명을 비판하고자 하면 수십 편의 글을 써도 모자랄 만큼 축적된 상태이나 이재명을 한창 지지하던 시절의 제 판단의 잘못 때문에 참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우상호는 수없이 비판했고, 문재인이 잘못했을 때도 비판했고, 손혜원과 표창원도 마찬가지고요.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입고, 특히 미래세대가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손가혁은 자정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한 이재명을 특정 공간에 잡아두는 것일 뿐입니다.

  9. 지누맘 2017.03.15 09:48

    남인순이 문캠에 합류한게 치명적인건가요 말이많던데 훅갈수도 있다고요ㅠ

    • 늙은도령 2017.03.15 16:07 신고

      그 부분은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성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차별에 놓인 인류의 역사를 관통할 때, 저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성의 차별과 희생을 당연시여겨온 유교의 영향이 너무 크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어느 나라보다 심해 급진적 페미니즘에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차별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여성분들 중에서 과격할 정도의 투쟁을 보이는 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 아니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여성이 평등해지는 날까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늘어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대기업과 정부 부처 등에 가보면 여성이 늘었다고 하나, 차장이나 부장에만 이르러도 여성은 엄청나게 적습니다.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임신, 출산, 육아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역차별이 수십 년은 이어져야 양성평등이 이루어집니다.
      이밖에도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설명할 것은 무척이나 많지만, 대선 기간 동안 몇 편의 글은 올릴 생각입니다.
      여성의 표가 대선을 가를 것이기 때문이고, 여성의 권리와 자유, 선택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입니다.

  10. 지나가는 이 2017.03.15 12:18

    항상 응원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

    • 늙은도령 2017.03.15 16:09 신고

      감사합니다.
      모든 독자분들이 소중한데, 가끔은 또라이들도 들어오는지라^^

      좋은 토론의 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1. 2017.03.16 04:31

    최근 민주당토론횟수에 대해 어깃장을 놓으며 뜬금없이(?)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고 있는 이재명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역시 뜬금없이(?) 박사모가 되어 동생의 적이 되어버린 그의 형이 떠오릅니다.
    원하는 것이 뜻대로 얻어지지 않으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여 달려드는 것. 이것은 정치적 계산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은 이재명뿐만이 아닌 듯합니다. 여럿 있네요(박지...이라든지...안철...라든지...김종...이라든지...)
    도령님 말씀대로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그가 어떤 괴물로 진화할지 두렵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과 분노가 보입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 또한 참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그렇게 보입니다. 지지했었는데...참 안타깝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가장 망가뜨리는 것이니까요.
    윗 댓글 중 손가혁이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 하셨는데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것들 중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도덕이나 질서같은 것을 헤친다면요? 손가혁이 그대로 명맥을 잇는다면 20년쯤 후 그들이 제2의 박사모가 될 것같다는 걱정 또한 그저 궤변일까요?

    • 늙은도령 2017.03.16 15:22 신고

      님이 잘 보셨습니다.
      이재명은 조울증환자 같은 면이 강합니다.
      실제 정치인 중에 조울증환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 선배와 동료 중에 정치인을 상대로 상담과 치료를 하는 정신정신과 의사들이 몇 명 있는데 환자 관려 내용은 말해주지 않지만 정치인들 중에 조울증환자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는 얘기는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이재명의 행태를 보면 그런 면이 보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피해가 될 것 같으면 사회경제적 약자에게도 공격을 퍼붇습니다.
      두려움과 분노가 조울증적 현상으로 나타나면 이재명의 행태와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재명은 성품과 인격에서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손가혁은 세상을 그저 박살내고 싶을 뿐입니다.
      삼성을 미워한다고 해서 해체하는 식이라면 답이 없는데, 그냥 싫은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변할 줄 아는데, 드골도 얼마가지 못해 쫓겨났습니다.
      국민적 동의가 없다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득권의 반발과 법적, 언론적 장치들이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이상은 폭력입니다.
      손가혁은 세상을 증오하는 식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극좌와 극우, 어디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손가혁 중에서 구좌파인 분들은 심상정을 지지하는 것이 맞는데, 왜 이재명을 지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상정은 이재명의 최대 피해자입니다.
      손가혁 중에서 제대로 된 생각이 있다면 이재명이 탈락했을 경우 심상정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럴지 잘 모르겠네요.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은 통진당의 극렬당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12. 슬프네요. 2017.03.16 13:57

    진보적 자유주의, 새로운 질서는 몇번의 정권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 일이고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이분들 모두 이 과정을 이어나가야 할 사람들인데...
    소중한 자산이 하나 망가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본인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폭주하는 그분이 어서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망가짐과 분열마저도 일베를 비롯한 수구지향 세력이 지향하는 바인것만 같아
    속이 쓰리네요.

    • 늙은도령 2017.03.16 15:25 신고

      이재명은 너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성품과 인격적인 면에서 한참을 수양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답이 없지요.
      그것부터 확실하게 해놓으면 그러면 믿어보겠는데.....

    • 오잉??? 2017.03.17 12:16

      글이 길지만, 요지는 이재명손가혁과 일베의 폭력성은 같은 점이다라는걸 정치이론을 끌어다가 쓰셨네요. /동의하지만 더나아가야죠./ 저는 분명히 다른게 볼점을 한가지 예로써 지적하죠./ 대한임시정부당시 무장투쟁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 사회에 희생당한 분노로 뭉친 집단(저포함) 들을 분노에만 사로잡힌채 활동하게하는건 문제지만, 그들은 분명한 우리편입니다.. 적의 굴레씌우면 낙인찍힌데로 행동할 겁니다. / 우리편으로 활동할 조화될 방법을 제시해야되요.../ 그 예는 안중근의사죠. 무장투쟁의 대표이지만, 심지어 일본순사들을 비롯한 주변모두에게 존경받은 분입니다./ 손가혁은 안중근을 모델로 삼으면, 정말 훌륭한 세력이 될겁니다. / 지금은 늦었고, 그럴눈도 다 멀어버렸겠지만.../ 이재명은 참....동네 구청의 마케팅 팀장정도가 딱 좋겠네요..(자기방어성에따른 폭력성) 정말 그누구보다 정확한 분석이네요.

  13. 이원 2017.03.20 19:39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지각색입니다
    손가혁 멤버도 있겠지요만 그냥 따로인 개인들이 훨씬 많겠지요
    그 많은 개인들이 님의 범주에 들어가나요 ?
    일베가 극우이고 손가혁이 극좌다라는 말 참 쉽게 하십니다
    책 좀 읽었다고 님의 시각에 그냥 막 끼워넣습니까 ?
    이재명의 몇 개의 실수 또는 잘못이 이재명을 규정하는 겁니까 ?
    그런 식으로 싸잡아서 얘기한다면 도대체 문재인과 안희정을 우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
    규정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정도는 아실 분이 너무 하군요
    공부 더 하시고 반성도 하시고 그러세요

    당신같은 지식인은 그래야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20 23:17 신고

      이재명의 몇 개의 실수요?
      음주운전, 논문표절, 검사 사칭 같은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성숙도가 낮아서 그렇지 선진민주국가 같았으면 정치권에서 백 퍼센트 퇴출됐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인정하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이재명을 지지했지만 그의 범죄와 언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려는 구좌파적 행태로 대변됩니다.

      이재명의 지지자 중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서 그들의 지지에 대해 존중하지만 손가혁으로 대표되는 이재명 지지자의 행태는 비열합니다.
      그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은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네요.

      서로 다르면 다른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이고요.
      성숙도 각자의 몫이고...

  14. 네리천사 2017.03.21 04:57

    논문표절은 대학에서 아니라고 공식입장 냈고, 검사 사칭한 거는 전화를 잘못 받은거라고 말했죠. 음주운전은 맞고요. 잘못했다고 사과도 했죠.
    그리고 정치성숙도가 높은 나라였으면 애초에 초등학교 때 공장에 들어갈 불쌍한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말도 안되는 국정농단사태도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정치 성숙도가 높은 나라의 기준이 뭔가요? 일명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유럽국가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따로 분리해서 봅니다. 집에서 깽판을 치는 사람이라도 정치인으로써의.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국가가 잘 운영 되는 거죠. 게다가 오바마도 마약사범이었죠. 범죄자라고 낙인찍고서 아 저사람은 과거에 저랬으니 앞으로도 안된다는 마인드야 말로 후진국적인 마인드 입니다.
    그리고 무슨 잣대로 이재명이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말합니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시민과의 대화를 위해 시장실을 개방합니까?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만듭니까?문재인 대세론 하는데 왜 이렇게 문재인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많을까요? 그건 자꾸 동문서답하는 불통과 뚜렷하지 않은 정책 때문입니다. 일부 논란이 대한 지적을 했는데 자꾸 다른 소리를 하니 이재명 후보가 답답할만도 하지 않나요? 일부 극단적인 지지세력의 잘못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그가 보여주는 선명성과 정책 방향의 뚜렷함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없는 겁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과연 저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란 불안함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거죠.

    우리나라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하나로 보는 정치문화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재인이 노무현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리고 박근혜도 그래서 뽑힌거죠. 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낙인찍어버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한 번 실패한다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린다면, 삶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평생 남 눈치만 보다가 살아가는 겁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고 대의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틀 안에서 누가 가장 합리적인 수행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 관점에 맞춰서 우리는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제가 볼 땐 이번 대선 결과가 우리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아주 중요한 대선일 겁니다. 누가 되든 제발 국정운영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뿐이죠.

    • 늙은도령 2018.05.14 23:56 신고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재명은 그 기준에서 한참은 떨어집니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체제이자 행동양식이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법치주의로 정합니다.
      이재명은 그것을 넘지 못하는 후보인데, 이 나라가 하도 개판이어서 받아준 것 뿐입니다.
      성남시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경기동부연합의 근거지였으니까요.

  15. 제조산하 2018.08.14 17:13

    댓글에서 보여주시는 구절구절들이 참 와 닿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글은 영국에서 '복지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를 위한 글이다. 너무나 자상하고 능력있고 현명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조카가,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조카가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부딪쳐야 하는 차별들에 노출되며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공부 중인 조카까지,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차별들이 그들의 삶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치철학으로서의 정의론에 심취해 있는 총각 삼촌의 의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의 종류는 너무나 많아 십여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은 필자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평생을 소아마비로 살고 있는 필자의 경험은 수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각종 차별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평등주의적 전제를 공유하는 현대 정치이론은 여성이 가족에 유폐되고, 가정 내에서 '법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남편에게 종속'돼 있다는 '자연적 근거'를 수용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과 대응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여성을 남성처럼 자기결정권과 정의감이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보면서 취업과 승진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법률 및 제도를 도입하는데 동의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차별ㅡ이득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임의적이고 불합리며 부정의하게 성별을 적용하는 것ㅡ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수행해야 할 일과 성별 사이에는 아무런 합리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여성 고용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피부색 불문(color-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인종차별법의 모델이 '성별 불문(sex-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성차별법인데, 그것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면에서만 성공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 이유는 기존의 사회가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완전히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지만, 성별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는 성 중립적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제도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지 않는 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소방관, 경찰과 군대 같은 직종에 취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장과 체중 제한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칙은 공식적으로는 성 중립적이지만, 남성이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더 신장이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 직종에서 여성의 지원을 걸러내는 작용을 하게 된다. 전형적으로 이러한 규칙의 적용은 그와 같은 직종에서 상용되는 기구들을 사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신장과 힘이 요구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직종에서 타당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도구들이 왜 키가 165cm가 아니라 175cm인 사람들에게 맞게 만들어졌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그러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도구들을 남성들이 사용할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은 그 도구들을 평균적 남성의 신장과 신체에 맞도록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동일한 도구들을 보다 작고 체중이 덜 나가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은 명백히 가능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낡은 편견 혹은 쇼비니즘이 아니다. 이러한 신장과 체중 제한을 사용하는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뿐이다. 그는 단지 그러한 직종의 자격제한을 만족하는 사람들을 원할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직업들의 제한 조건이 애초에 남성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데 있고, 그러한 결정에는 남성이 그 직업에 적합하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심각한 예는 대부분의 직장이 '성 중립적'이지만 취학 이전 아동을 돌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에 대한 적임자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육아를 기대하고 있다고 할 때, 그러한 직장에서 여성과 경쟁하는 남성은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 지원자가 차별받기 때문이 아니다.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거나 사실은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많은 여성이 육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업을 얻을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지원자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 중립성은 충족되지만, 그 직업이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부인이 있는 남성들고 채워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정의되기 때문에 성적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 중심 접근방식은 누가 직업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성별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별을 고려하는 바로 그날이 그 직종의 종사자가 육아의 책임을 갖지 않기를 기대하는 구조를 갖는 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윌 킴리카의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에서 인용).





이처럼 두 가지 예만 들어도,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와 직종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구축돼왔는지 알 수 있다. 남성노동자에 맞춘 자본주의도 그런 전제하에 출발했고, 그것이 극단화한 신자유주의 세상은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된 여성에게는 최악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여성의 가임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여성으로서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 한들 유리천장과 결혼 기피, 만혼, 저출산의 악순환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가 직립보행으로 귀결되면서 여성의 자궁과 궁도가 좁아졌고, 그에 따라 출산의 고통이 극대화됐기 때문에 여성의 불리함이 얼마나 근원적이며 오래됐는지 말해주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더하면, 여성차별이 얼마나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은 아직은 구현되지 않았고, 영원히 구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성차별의 근원을 정확히 꿰뚫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선진복지국가인 독일에서 체험했고, 복지국가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와 웹툰작가나 동화 일러스트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귀국했을 때 여성에 대한 근원적인 차별이 줄어든 세상이기를 바란다. 조카들이 귀국했을 때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활약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기대되고 있는, 아니 제도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두 번째 교대' 또는 '이중 노동'의 차별이 전업주부의 무임금노동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비정규직과 파트파임으로 내모는 불평등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3.14 20:30 신고

    평등사회는 꿈입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잔본주의에는 성을 상품화해야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외모지상주의 ... 얼마나 자본이 눈독 들이는 상품입니가?

    • 늙은도령 2017.03.15 00:41 신고

      그것 뿐이겠습니까?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도 나오지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여성이 당하는 차별의 근원성은 모든 정치이론에서 천대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라나는 최악의 흡혈귀입니다.
      규제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나오고 보편적복지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정말로 교육의 질과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철학적으로 교육이 어떻게 규정됐는지는 며칠 내로 글로 올리겠습니다.

  2. merryjanet 2017.03.15 10:29

    페미니스트란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없애고자하는 사람들인데요.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기지만 남자의 위치를 끌어내려서 만드는 하향평등은 명백히 반대한다는 점을 확실히 합니다.
    예를들면 남녀의 임금 차별 철폐가 중요한 안건의 하나인데, 쉽게 말해 여성의 임금을 남성의 그것과 동급으로 올리자는
    목표이지만...
    최근 세계화 흐름으로 남자들의 임금이 내려와서 임금차이가 줄어든것을 평등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는거죠.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정규직의 수를 쉽게 자를수 있게 법을 고치겠다고 한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지요?
    그런식으로 평등의 물타기를 하는 무리가 고의로 편가르기를 이용하는것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당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먼저 올바른 평등의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15:49 신고

      상향평준화는 당연한 얘기라서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요.
      비정규직법은 그것을 법제화함으로서 공식화하고,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됐으나 국회에서 누더기로 변했습니다.
      노통이 비정규직을 위해 추진한 일이 국회를 거치면서 개판이 됐죠.
      그러나 이명박근혜9년의 경험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듯이, 비정규직을 법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그들의 문제가 사회의제화되는 것도 매우 늦었을 것입니다.
      재벌개혁의 문제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법제화를 통화 공론화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비정규직은 피할 수 없는 시대흐름이었습니다.
      국회가 노통의 초안을 그대로 통과시켰거나, 그 다음의 정권이 법의 취지를 살렸으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법과 제도는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개판이면 아사리판이됩니다.
      이명박근혜 9년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대선 후보들은 국민 통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정부의 수장으로써 일정 기간 동안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 전체의 복리를 향상시켜야 하는 책무를 지기 때문에 국민 통합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와 세상은 진화한다는 대전제 하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정의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핵심 교리로 자리잡고, 국민의 안전과 풍요, 자유를 제공한다는 국민국가의 이상이 더해지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를 통해 인류의 풍요를 실현한다는 전 지구적 단일시장 개념이 일반화됨에 따라 국민 통합과 인류 풍요라는 말이 통치의 절대명제처럼 통용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지적사기이자 희망고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마르크스가 밝혔듯이 자본주의란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이데올로기(4차 산업혁명의 신자유주의가 최후의 단계로 기술전체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며, 칼 폴라니가 증명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자유시장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시스템이고, 국민국가는 국민 통합을 내세워 지배엘리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인정하는 사회체제이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화는 슈퍼클래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풍요를 내세운 상징조작입니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자유시장, 국민국가, 과학기술'은 물질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실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소수의 천국과 다수의 지옥으로 세상을 이분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과학적 공산주의를, 푸리에와 생시몽과 오원 등은 생산수단의 공유를 요구하는 사회주의(공동체주의)라는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극단까지 밀고나간 특이점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지구에서 더 이상의 자본 축적이 불가능하다면 우주라는 무한대의 시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류가 극소수의 천국과 절대다수의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만이 이런 불평등의 심화와 위험의 보편화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도 통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선호의 차이와 견해의 다름, 이익의 갈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세 축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천부인권과 헌법적 정의(박애로 대표되는 평화, 공정, 공존, 상생, 공평, 관용, 공동체의 이상, 사회적 권리, 남녀평등, 환경, 생태, 소수자 권리 등)를 구현하는 체제로 이해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합의에 이른 체제가 정답이 없어 끊임없는 참여와 타협, 존중이 요구되는 민주주의라면ㅡ특히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라면 더욱 더ㅡ전체주의적 냄새로 넘실되는 국민 통합을 얘기하기보다는 현존하는 갈등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확실하게 내재화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인정하는 개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것이 전체주의와 일인(일당)독재를 지향하는 사회현실적 조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극우에서 극좌까지 넓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모의 탄핵반대집회(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 이어 트럼프의 극우적 광기에 의해 남북긴장상태가 고조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국기까지 들고나온 것이다)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요구와 주장이 세력화(극우정당화)를 통해 민주주의와 헌법(법의 지배)이란 행위규범과 사회형태의 영역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인정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을 가해야 하지만, 이들과의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민주주의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김진태와 조원진, 윤상현, 김문수, 김평우, 변희재 등이 박사모의 탄핵반대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폭력적 선동을 일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었듯이, 이들의 목표는 박근혜의 탄핵을 반대하는 박사모와 샤이 박근혜 및 박정희 숭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조직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짐승보다 못하며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국민의 20~30%에 이르는 이들을 정치세력화할 수 있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원내 제2당도 가능합니다. 박사모가 '새누리당'의 사용권을 확보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ㅡ다시 말해 박근혜의 탄핵이 인용될 경우 민주화 이후에 사라졌던 극우정당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들의 강령이 유신헌법과 유사하지 않는 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정당화에 성공한다면 이를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이 짧은 글에 더 이상의 설명을 담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아무튼 박사모의 폭력적 행태가 극우정당화를 목표로 한 것이라면 국민 통합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와 우리가 지배적 체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저는 개인적 차이와 선호를 위축시키고, 인간이란 존재에도 맞지 않으며, 국가주의적 애국심(대표적인 것이 누구한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국익타령과 무기경쟁만 촉발시키는 안보상업주의, 퇴행적인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 등)만 강요하는 국민 통합이란 환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상류층과 초국적기업, 거대자본 등은 국가라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임에도 국민 통합이란 허상을 강조(안희정의 대연정)하다 보면 충돌하는 이해의 갈등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갈등이 극대화되면 폭력으로만 관리가 가능하며, 이럴 경우 민주주의와 헌법은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이 이명박근혜 부역세력에 대한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협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안희정은 모든 정당과의 대연정이 선이라는 전제하에 모든 것을 전개하기에 존 롤스의 공리주의적 오류(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덕적 판단, 즉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 안희정이 선의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에 빠져있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시장 우파를 연상시키는 근본주의적이면서도 체제 순응적인 발언만 쏟아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충돌하는 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가 정의(보통 시대정신으로 나타나며, 보수적 정의와 진보적 정의가 다르며, 정의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은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를 실현하는 과정(다음 기회에는 뒤집을 수 있는 다수결로 정해진다)인 것도 차이와 다름을 무한대로 인정하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전제인 책임의 강제(보통 헌법에 담겨있으며 법앞의 평등을 대전제로 하는 법의 지배로 구현된다)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차이와 다름, 갈등을 인정하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인 것도 평등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정치철학적 정의론에서는 확고하게 정립된 이런 특성 때문에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명제도 상당 부분 진실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넘어 탈물질적인 것까지 포함해, 어제까지 소수가 누리던 것을 오늘은 다수가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말했던 노무현의 성찰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는 박사모와 샤이 박근혜, 박정희 숭배자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극우정당화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처럼 그들의 세력화를 최소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강령이나 당헌이 유신체제로의 회귀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라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숨어있는 위험은 관리하기도 막기도 힘들지만 드러난 위험은 관리와 예방이 가능하기에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박근혜당이 나오는 것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적폐청산이 선행되지 않는 국민 통합이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탈했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도와 부와 권력을 차지한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다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로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극우의 숫자를 최소화할 수 있으면, 정의와 시대정신의 실현이 가능해집니다. 2017년의 정의와 시대정신은 촛불집회로 표출된 압도적인 정권교체와 철저한 적폐청산입니다, 박사모의 정치세력화를 막지 못하는 섵부른 국민 통합이 아니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3.05 00:04 신고

    보수가 아닌 극우입니다. 박사모의 정체성은 말입니다.
    반드시 몰아내야 할 이 시대 악의 축이지요~

    샤이 보수, 샤이 박근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있다고 손치더라도 저들은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망조와 그 피폐함이 드러날 대로 드러났는데,
    겉으로는 과격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한 저들이 더욱 늘어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05 00:20 신고

      님이 60대 이상으로 박정희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샤이 박근혜와 박정희 숭배자가 여전히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소위 성공했다는 60~70대가 대단히 많은데 그들은 모두 박정희 숭배자이며 샤이 박근혜입니다.
      그들은 가짜뉴스를 믿고 싶은 사람들이며, 박정희당이 만들어지면 그들에게 투표할 사람들입니다.
      극우정당에 가까운 박정희당의 탄생은 가능하며,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불평등과 세대간 차이가 심해지는 만큼 현실정도 높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숨어있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경계하고 관리하기 쉽다는 것고 고려해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3.06 09:15 신고

    지역 갈등을 넘어 이젠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세대 갈등은 한 집안,가족을 분열시킬수도 있는 위험한 갈등입니다

    빨리 탄핵이 인용되고 제 자리를 잡아야 됩니다
    불법을 찾아 근절사켜야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06 15:31 신고

      세대갈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 때문에 새대갈등이 다른 나라보다 큽니다.
      하지만 부모가 50대인 경우부터는 그런 현상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요즘 언론에서는 아베노믹스 효과로 소비가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고 열심히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제 산업성이 발표한 소매업 판매액 통계, 다시 말해 일본에서 얼마만큼 물건이 팔렸느냐를 나타낸 수치를 살펴보면 2013년 1~8월의 누계가 전년 동기에 비해 0.1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소비재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연료 가격이 명백히 인상되었는 데도 말이지요. 어디에서 뽑아왔는지 알 수 없는 '성장률'을 내세워서 "일본 경제가 호전됐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실상과는 거리가 먼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에 가져왔는데, 이 책을 보면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려면 인구의 절대수가 유지되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아베 내각도 마이너스 금리를 바탕으로 무제한 양적완화를 펼쳐 임금과 최소임금을 올리고, 노조가입을 독려해 산업복지를 늘렸지만, 급격하게 줄어드는 인구수 때문에 총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현대의 경제는 '빚도 자산'이라는 악마의 경제학에 의해 돌아갔는데 인구의 절대수가 늘어났을 때는, 즉 총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났을 때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빚의 폭발(한계기업과 한계가계가 폰지금융의 단계, 즉 이자도 낼 수 없고 추가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폭발)을 규모의 경제로 최대한 줄이거나 지연시킬 수 있었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기에 생산을 늘릴 수 있었고, 기술발전과 대규모 생산에 따른 원가절감으로 '어제의 사치품을 오늘의 필수품'으로 만들어 매출(이익이 아니다!)을 늘릴 수 있었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함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어도 인구의 절대수가 늘어나는 한 소비도 함께 늘었기 때문에 생산을 줄일 필요는 없었고, 뜨문뜨문 재투자도 이루어졌다.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화폐의 이동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의 발달로 신규시장도 창출할 수 있었다. 롱테일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가우스 곡선의 필요없는 부분에 속했던 틈새시장들이 기술 발전에 따라 주력시장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헌데 인구의 절대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경제의 순환이 불가능해졌다. 빚의 경제학은 총수요가 늘어난다는 전제 하에서만 돌아갈 수 있는데 인구의 절대수가 감소하자, 특히 소비가 가장 많은 15~45세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경제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소비마저 줄자 생산에 투입될 노동자의 수도 급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가계소득의 급감(=가계부채 급증)과 지역경제의 붕괴 및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도쿄는 그런 젊은이들을 수용할 능력이 있을까요? 그 답은 '아니오'입니다. 지금도 젊은이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쓰고 버리는' 곳이 도쿄라는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 일자리를 원하는 지방 사람들이 대거 유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곳에 젊은이들이 모여들면 저출산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집값은 비싸고, 자원이나 원조는 부족합니다. 도쿄 등의 대도시는 지방에 비해 자녀를 키우기가 훨씬 어려운 환경이거든요(같은 책에서 인용). 






이렇게 지방에서 자녀를 키워야 할 사람들이 빠져나감에 따라 지방은 소멸의 과정에 접어들었고, 그것이 전국으로 퍼져 국가 전체의 인구를 감소시키는 '인구의 블랙홀 현상'이 발생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소비가 줄고, 그에 따라 생산도 줄었고, 대규모 감원(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지방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운영할 수 없었고, 대도시는 넘쳐나는 노동자로 인해 집값과 물가 등이 상승하고 저임금을 남발할 수 있었다. 



도쿄 같은 대도시는 계속해서 유입되는 젊은이들로 해서 규모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주민들의 소득을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교육과 육아 등에서 어려움이 가중함에 따라 출산율이 0.5명으로 떨어졌다. 지방을 소멸시키며 젊은이들(특히 2030세대처럼 가임여성들이 많이 유입됐다)을 흡수하는 것으로 규모의 경제는 유지했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도쿄 같은 대도시들의 경제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방은 지방대로, 대도시는 대도시대로 인구구성이 최악을 향해 치달았다. 소멸되는 지방이 늘어날수록 대도시(도쿄, 쿄토, 오사카)로 경제가 집중됐고, 이에 따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기반이 붕괴되는 산업들이 늘어났고, 이렇게 지방의 경제력이 축소되자 대도시의 경제력도 축소되는 악순환에 접어들었다. 이것이 주류경제학은 설명하지 못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실체적 진실이다. 



인구가 일단 줄어들고 노령화되기 시작하면 그 후유증은 최소 40~60년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이 때문인데, 이명박근혜 정부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수립한 '비전2030'을 완전히 폐기한 채 일부만 차용하는 바람에 일본에서는 20년이 걸린 경제후퇴가 한국에서는 8년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X도 모르는 진보언론들마저 쌍심지를 켜고 비판한 '비전2030'의 1/3만 실행했어도 국가 부도라는 절망의 단계까지 이르진 않았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최악이다. 젊은여성과 전업주부들의 희생(이반 일리치의 '그림자노동', 네그리의 '비물질노동'으로 자본주의가 돌아가도록 만든 비임금노동)을 극대화시킨 이명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통치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는 회생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사을 공부하면 진보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키면 보수정부가 망가뜨리는 일들이 반복됐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최악이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이다.  





가임기의 여성들이 애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에서 벗어나려면 여성들이 애를 낳아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어떤 경제학을 들고와도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란 없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 저출산·고령화는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은 부도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빚의 폭발, 즉 경제의 몰락을 지연시키는 데만 혈안이 된 상태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때는 매일같이 경제가 파탄났다고 아우성을 치던 조중동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청와대의 압력에 경제 현실에 대해 보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대한민국은 겨우겨우 부도를 미루고 있을 뿐이다. 종합부동산세를 없앰으로써 재벌들이 400조가 넘는 땅투기를 통해 수백조의 이익을 남겼고, 법인세(실효세율은 더 낮다)를 낮춤으로써 내부유보금을 700조나 넘게 보유할 수 있었으며, 부자의 소득세를 낮춰 부의 집중을 가속화시켰고, 종부세의 반을 지방정부로 이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지방정부의 재정이 고갈됐다.



OECD가입국 중에서 대한민국의 각종 수치가 최악인 것도 이명박정부 9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지방경제을 붕괴시키고 소멸시키는 저출산·고령화에 이런 것들이 더해졌으니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비판하지만 X도 모르는 자들이 꼴갑을 떠는 것임은 공부의 양이 늘어날수록, 현장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확실해진다. 



대한민국이 경제규모의 축소에 대처하며 선진국으로 진입해 모든 국민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성숙경제로 들어서려면 '비전2030'의 실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특히 여성들이 행복하게 애를 낳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사람사는 세상'은 '사람이 먼저'라는 인식이 확고할 때 가능하며, 그것만이 이명박근혜의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첫 번째 걸음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9.21 08:49 신고

    통계의 결과치는 여러가지 상황,주위 여건등을 고려해 분석해야만 하는데
    우리는 단순히 그 값만 놓고 믿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정자들은 이런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것 같습니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것이 요즘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긴 대가리가 1인 가구니...

    • 늙은도령 2016.09.21 15:39 신고

      저출산고령화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끝장납니다.

  2. 맹그로브 2016.09.21 09:49

    잘 읽었습니다. 인구의 감소가 경제규모의 축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차체의 세수는 점점 줄어 들고, 농촌 역시 귀농이나 귀촌인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인구도 절멸단계까지 가겠군요. 정부는 이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로 메꿀 생각 같던데 걱정입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국민을 단순히 일개미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눈만 뜨면 들에나가 일만 하시는 농촌의 문화도 바뀌어야 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규모의 축소는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디폴트로 들어간다면 또 IMF로 가겠군요. 물가는 상승하고, 빈부의 격차는 또 커질 것 같습니다. 이 한빙기를 무사히 넘기려면 양식있는 정책과 복지 뿐인데.... 내년 대선이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민당이 이따위로 나가면..... 국민은 한빙기를 버티지 못합니다.

    • 늙은도령 2016.09.21 15:41 신고

      더민주의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려면 김종인, 김진표, 박영선 같은 보수 성향의 의원들이 물러나야 하는데 이들의 힘이 세기 때문에 초재선이 너무 약합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점이 있을 것입니다.

  3. 어류겐 2016.09.27 02:05

    문제는 아직까지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구호가 먹힌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이 싼 똥을 치우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래" 또는 ,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니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이미 잡아놓았고, 먹혀들었습니다. 최경환이 똥을 많이 싸놓았지만, 어차피 거품이 터지는 것은 다음 대통령 임기일 것이고, 욕도 다음 대통령이 먹게 될 것이니 최경환은 알 바 아니죠. 그 때 되면 소리소문 없이 잠수 타겠죠.

    • 늙은도령 2016.09.27 02:56 신고

      그런 사람들은 30%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30%이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종편의 형편없는 시청률과 적자에서 보듯이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선호도가 박정희의 두 배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부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많은 분들은 이미 깨어있고, 젊은층들은 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이종걸의 원내대표 복귀를 받아들인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당무에 복귀하는 첫 일성으로 삼성을 도와야 한다느니, 박근혜와 안철수의 이익이 공유되는 기업활력제고법 등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새누리당2중대에 역할을 다시 들고나왔다. 정말로 후안무치하고 무책임하기가 끝을 모를 정도다. 삼성은 4류라는 평가도 과분한 정부나 야당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내부유보금을 조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던 각종 면세혜택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종걸은 가격경쟁력 면에서 삼성전자가 샤오미를 따라갈 수 없기에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살다살다 이런 단세포적이고 평면적인 발상은 처음 본다. 이종걸의 발언은 MB정부의 모 검찰총장이 받아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삼성장학금이나 구걸(종걸이나 구걸이나)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이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공장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 있다는 면에서, 그 덕분에 근근히 살아가는 협력업체들이 많다는 면에서 칭찬을 해줄 수 있지, 그들이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호의 도움도 줄 이유가 없다.  



오직 소비자인 국민들이 국가경제가 극도의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면에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악독한 기업으로 등극한 애플의 제품이나, 신흥강자로 떠오른 샤오미의 제품을 사기보다 국내기업의 제품을 사주는 것은 가능하다. 유일제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신자유주의 우파가 주도한 이번의 경제위기는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여서 (소비를 줄일 수 없을 경우) 가능하면 국내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종걸의 당무 복귀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박영선의 잔류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문재인 대표가 사퇴한 이후의 더불어민주당을 예전의 새누리당2중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일이다. JTBC 썰전에서 '이재용 리더십'을 칭찬(메르시대란 때의 대국민사과에 대해)했던 이철희까지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한 상태라 나쁜 의미의 '삼성공화국'이 구축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종걸은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혁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인재영입에 대박을 터뜨리고,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10만 명에 이르는 온라인입당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주구장창 문재인 대표의 사퇴만 외쳤던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살아나는데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종걸이 뻔뻔하게 당무에 복귀하며 내놓은 일성이 삼성을 도와주자거나, 박근혜와 안철수로 대표되는 상위 1%의 배만 불려줄 기업활력제고법을 빨리 통과시켜줘야 한다니, 천벌을 받아도 모자라다 한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도 온갖 불평등을 줄이는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 시대의 좌파적 관점에서 보면 최소한에 불과하다. 그가 죽었다 깨도 우파일 수밖에 없는 박근혜와 안철수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경제민주화가 상위 1%의 재산이 하위 99%의 자산보다 많아진 사상 초유의 불평등 사회와 세습자본주의 체제를 바로잡는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경제민주화는 박근혜와 안철수가 반대할 이유란 없다.  



다시 말해 김종인 위원장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하위 99%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해온 반동적 계급혁명인 신자유주의적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치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전제 하에 선거연합을 이루는 것이 시대의 명령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좌충우돌과 오락가락,지리멸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총선 이후에도 살아남으려면 새누리당과의 선거연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좌파적 가치의 실현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총선에서의 승리란 불가능하다. 



김종인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가 하위 99%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종걸의 당무복귀 일성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김종인 주위로 이종걸과 박영선 같은 자들이 모여들어 최소한의 경제민주화만 총선 공약으로 내놓는다면, 단 한 표에 불과하지만 필자의 지지는 더불어민주당을 떠날 것이다. 지켜볼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게. 비판할 것이다, 시대의 명령에서 한 발이라도 멀어지면 냉혹할 정도로 가차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6.01.20 21:0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20 21:28 신고

      문재인의 대표 사퇴가 더 길게 더 큰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줄 글을 당장은 올릴 수 없습니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가 좀 지나면 더불어민주당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오픈해도 될 것 같으면 글로 올리겠습니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세는 이종걸이 어쩔 수 없고, 박영선이 합류해서 김종인과 손잡는다고 해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대세에서 벗어나려 하면 정확하게 짚어 대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하다 보면 문재인의 사퇴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술맛을 알아? 2016.01.21 01:03

    김종인의 상투를 부여잡으면서 위험한 도박을 피하고 명분을 쌓은 박영선이나, 실리를 챙기면서도 한길이의 수족노릇에 충실하는 이종걸이도 끝내는 대세와 정의라는 질서에 스러져갈 잔머리 쓰레기라는걸 이번 총선에서 보여줬으면 좋겠읍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그리 녹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봅니다. 또한 문대표의 절치부심이 결코 허약한 결과를 낳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보태서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21 01:12 신고

      문재인 대표가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이 이상 홀로 가면 쓰러집니다.
      때로는 내려놓은 것이 얻는 것입니다.
      총선까지 다양한 후보들이 부각되고, 다양한 정책과 공약들이 개발돼야 하는데, 문 대표가 물러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딴지가 걸릴 것입니다.
      한 발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열 걸음 이상 앞으로 가야하는 시기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요.

  3. 공수래공수거 2016.01.21 09:04 신고

    어느 최고 위원은 지금 문제 되는 서비스발전법등을 통과시켜줘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고하고 있습니다
    애당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참
    빨리 정리를 하는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22 18:30 신고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한 후에 해야 할 법들을 정반대로 하려고 합니다.

  4. 하늘이 2016.01.22 07:38

    이번에 목숨걸고라도 바꿔야합니다ᆞ
    그렇지 않으면 99%의 국민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너무 끔찍스러워 질것입니다ᆞ

 

 

 

기본소득제를 최소화하고 최소화한 청년배당제를 두고 집권세력과 기득권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체 청년배당제가 무엇이기에 집권세력은 물론 정론직필을 지향한다는 JTBC를 비롯해 종편과 지상파3사까지 나서 집단적으로 서울시를 비판하는 것일까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저임금·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에게 쥐꼬리 만한 지원 좀 해주자는데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이명박이 자원외교를 통해 40조 이상을 날리고(다른 것까지 합치면 200조에 이른다), 박근혜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는 KF-X사업에 혈세 18조5천억을 쏟아붙는 것을 결정한 것에는 일정 수준의 비판만 하면서, 경제사회적 약자인 청춘들에게 겨우 백억 정도의 금액을 배정한 것에 이렇게도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없었다면 이재명과 박원순을 향한 공격이 노무현 죽이기에 버금갈 만큼 퍼부어졌을 것입니다.  

 


 

 

 


이들이 청년배당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봐야 합니다. 헌데 이 책을 통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전파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며, 19세기의 미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을 지닌 그의 주장이 2015년의 한국에서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조지의 주장을 최대한 쉽고 압축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기본소득제의 세원을 토지가치의 상승분에서 찾습니다. 토지사유화가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으로, 모든 토지는 지구 진화의 결과물이라며 공동소유를 주장하는 어리석음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지대법칙(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이자)의 불로소득적 성격에 집중했습니다.

 

 

토지는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의 원천(재생산에 투자되지 않으면 부가 되며, 재생산을 위해 투자되면 자본이 된다. 둘 다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다)으로 스스로는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가치를 올리지 못합니다. 토지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몰려들고 부의 증식을 위해 자본이 투입돼야, 즉 생산활동이 이루어져야 토지가치(현재는 지대로 소유자에게 돌아간다)는 상승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토지라고 해도 그대로 방치해두면 자연상태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몰려들어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면 생산물이 나오고, 이는 토지가치에 반영됩니다. 땅값이 오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반도 전체에 한 사람만 있다면, 한반도 전체의 토지가격은 제로에 해당합니다. 거기서는 토지가 스스로 제공하는 것 이외의 어떤 부가가치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토지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토지가격도 생성될 수 없습니다. 도시의 땅값이 시골의 땅값보다 비싼 이유도 사람이 몰려들고 자본이 투입돼 토지의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즉, 토치가치의 상승은 토지소유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그러나 그 토지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돼야 일어납니다. 물론 토지소유자가 노동을 동원해 생산물을 만들어내면 토지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럴 때도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토지가치의 상승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토지소유자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야 할 불로소득이라는 것입니다. 

 


 

 

 


투기소득처럼, 모든 경제학에서 불로소득(상속과 증여도 마찬가지다)은 정당한 수입이 아닙니다. 불로소득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철학과도 배치되며, 전액을 세금으로 거둬들여도 경제정의에 반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본소득제의 정당성이 나옵니다.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이루어지고, 이것 때문에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미래가치를 현재에 반영해 토지소유자가 독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가치를 상승시키는 노동과 자본에 상승분이 배정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토지는 이미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토지가치의 상승분으로 마련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기 때문에 경제정의에 반하지도 않습니다. 기본소득에 반대해 토지소유자가 재산(부)을 늘리고 싶다면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며, 어떻게 획득했던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인과의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반면에 미래에 토지가치가 올라갈 것만 고려해 토지를 놀리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느 누구도 부를 늘리기 위해 토지를 소유하는데 혈안이 될 수 없고, 토지 사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제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직 극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만 피해를 입을 뿐이지만, 그들의 부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어긴 결과로 이미 충분할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에 약간의 불이익을 받아도 됩니다. 신과 자연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편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제의 최소한의 최소한인 청년배당은 포퓰리즘도 아니고 선심성 정책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함이며, 타인의 노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불로소득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투임된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부의 증가분이 배분돼야 하며, 노동의 결과물인 자본의 투입에도 그 대가가 지불돼야 합니다.   

 

 




기본소득제의 탄생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그 논리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충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 헨리 조지와 그의 후예들이 아예 주류경제학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21세기에도, 그 이후에도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면에서 변함없이 좋은 정책이지만, 주류와 기득권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헨리 조지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던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와 보편적 차등복지, 생태복지 등이 더해지면 세상은 가장 민주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자유주의와 좌우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과 특권층이 없는 세상은 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중위소득이 기준) 이상 이루어져, 개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11.07 12:27 신고

    자기들이 하지 못한것을 시도 하니 배가 어지간히 아픈 모양입니다

  2. 바람 언덕 2015.11.07 13:13 신고

    성남시에 이어 서울시도...
    극한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이 불씨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어떻게 키우고 퍼트려갈지는 여전히 숙제입니다만,
    적어도 이재명과 박원순이 그 불씨를 붙였네요...
    꺼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겠습니다...

  3. Chris (크리스) 2015.11.08 03:23 신고

    있는 놈들이 더해...어느 어르신이 한탄하듯이 하신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그 최소한도 그렇게나 싫은걸까요?

  4. 불루이글 2015.11.12 15:43 신고

    친재벌 정권의 패악도 밉지만 이들에 편성해 서민들 을 까대는 집단과 인간들이 더 원망스럽네요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5. 민주청년 2015.11.18 13:21 신고

    청년배당 굿! 이재명 시장 응원합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인식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전제(대표적인 것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 추상성, 모든 노동이 균질하다는 전제하에 사후적 평등의 근거가 되는 노동가치설, 계급투쟁의 기원이 된 다윈적 역사인식, 유토피아적 세계의 도래가 가능하다는 뉴턴식 우주관 등. 당시에는 뉴턴 이후의 과학은 없다고 할 정도로 뉴턴의 역학은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었다)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찰을 이루고도, 그가 예언했던 절대 다수가 누려야 할 ‘자유의 왕국’이 극소수의 ‘신자유주의 왕국’으로 변질되는데 일조했다.





아니 일조가 아니라 절대적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 어떤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여파는 근대유럽을 착취와 억압이 넘치는 무법지대로 만들었는데, 마르크스가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찾아냄에 따라 그의 성찰은 종교적 영역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가 작은 시장만 보고 자기조정 시장을 추상했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마르크스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영국의 자본주의에 경도돼 역사의 발전과정이 노동자의 유토피아로 이른다는 결정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자본주의의 경험이 일천했으며, 그 당시까지의 과학적 한계에 갇혀 있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적 역사인식과 뉴턴식 우주관에 경도되는 바람에 역사의 발전과정이 거듭되는 계급투쟁에 의한, 최종적으로는 무계급사회에 이른다고 봤다(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은 자본주의가 극에 이르면 자유의 왕국에 이른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성과들은 미래는 무엇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맞물려 자본주의적 착취가 종말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지배엘리트(특히 전통의 금융‧산업권력)에 의한 반동의 역사이자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처럼, 신자유주의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더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덜 가진 자들의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식 복지국가나 국가개입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내세워 적자생존의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뒤집어 ‘자유의 왕국’과 정반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위기를 조장하고 ‘쇼크요법(IMF 구제금융)’을 강제하는 것도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1, 2차세계대전 이후 평등과 공존, 상생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발전국가 모델의 핵심이었던 평생고용 체제 때문에 상위 1%의 부와 권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상으로 반동의 계급혁명을 감행해 부와 권력을 회수한 것이 신자유주의 40년이고,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마르크스가 하늘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노릇이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신보수주의 세력(뉴라이트)들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자유방임 시장경제(어떤 규제도 없었고, 노조도 없었으며, 국가의 개입은 원천차단됐던)를 전면에 내세운 채,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평생고용 체제를 파괴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를 위해 경찰력과 감시권력을 극대화한 권위주의적 정부를 선호했고, 정경유착과 회전문 인사로 집권을 이어가야 했다(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인 사회주의에 비해, 신자유주의가 개인적이며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극복하는 과정인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도 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던 불평등은 자유를 제한하고 침식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늘어나고 정의와 도덕, 윤리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도 필연의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고 했지만, (바우만의 주장이 옳다면) 견고한 자본주의는 녹았지만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내부로부터 무너진 자본주의는 더욱 유연하면서도 무엇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는 상위 1%의 ‘액체의 형태’로 변형돼 세상의 모든 부분을 신자유주의화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석학들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통치의 방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막강해졌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려는 다양한 저항운동의 일치를 이룰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하위 90%에게 ‘유동하는 공포’를 양산하는 체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비어있는 9%는 체제의 간수로 별도의 군을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9.09 09:19 신고

    변수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마치 마르크스나 애덤스미스가 잘못내린 결론처럼.... 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국 자멸의 길을 걸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39 신고

      앞으로 10년 안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기반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파국을 면치 못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물부족 등의 공격이 2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성장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소비를 줄이고 지금보다 매우 많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2. 耽讀 2015.09.09 12:38 신고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지요.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46 신고

      그래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가치가 없고 쉽게 사라집니다.
      우리는 실천하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9.10 07:59 신고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01:04 신고

      네, 저도 제가 공부한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4. 천상명월 2015.09.10 16:36 신고

    언제나 현실과 타협하는 저는...정말 어려운 용어에 .. 작게만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청공(靑空) 2015.09.11 07:39 신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주시는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쓰신 글에 감탄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그 형태와 목적이 유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이론체계라기보다는 그 실상이 자본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이유를 기술발달과 환경적 요인와 같은 구체적 근거에 의해 설명하기보다 자유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가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선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다수의 시민의 해방을 드셨는데요.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인간은 문제에 직면해서 그걸 보아야만 바뀌고, 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결국 인류문명은 그 끝을 보게 되겠죠. 아니면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거나요..

    이러한 신자유주의와 인류의 문제를 위한 해독제(Antidote)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독일식의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범주에 속하지만..)가 답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답은 독일만을 위한 답이지, 현재 봉착한 문제를 위해 고안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답이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깊게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는 바가 적고, 또 그에 대해서 밝지 못하네요. 얼른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9.11 16:29 신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십니다.
      신자유주의는 권위적인 정부가 권위적인 재벌과 함께 시장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새워 부를 독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공의 자산을 민영화시키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지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사회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현대에 맞게 수정한 것이 나와있더라고요.
      그것을 민주주의와 엮으면 충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너무 상황이 심각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해야 하고요.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제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기를 바랍니다.

  6. 백순주 2015.09.12 10:53 신고

    약속 지켜드리려고 열어는 보았으나 도령님과 대화를 나눌 능력은 멀었나 봅니다. 열심히 읽은 것이 아까워 댓글에 손은 댔습니다.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저는 벌써 주말은 글을 쉬려고 합니다. 매일 발행이 힘겨워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32 신고

      네, 그렇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게 매일 글을 올리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풀어놓으면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됩니다.
      길게 보셔야 합니다.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푸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 90%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거꾸로 된 재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과정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는 이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던 푸코가, 해체작업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지적 권위자로 자리 매김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어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푸코는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권력의 구조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권력을 대면할 수 있었고,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침묵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푸코의 침묵은 방향의 급전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삶에 대해ㅡ그것이 뭐라고 불리건 간에ㅡ인류의 해방에 대해, 진정한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자 (프랑스 특유의 지적이고 언어적인 유희를 벗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공백이란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갇혀 있고, 이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지적공동체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나머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성의 역사》시리즈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맞서려면 각각의 개인이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배려와 자아 성찰 및 해방이다. 모든 개인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에 이르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푸코의 삶정치).





푸코의 성찰처럼, 각각의 개인이 칸트(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탐구한 뒤, 역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공존의 세상을 위한 방법까지 사유와 실천의 영역을 넓혔다)와 니체(대략적으로 말하면 칸트 류의 성찰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자가 초인이며, 그는 그 자체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며 정의로운 세상의 창조자다)가 혼합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면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과 승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은 한 진정한 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하위 90%가 소비를 줄이면 상위 1%도 무너지듯이. 마르크스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도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자유인과 투쟁할 수 있는 권력과 승자란 존재할 수 없으니, 푸코는 체제를 뒤집는 혁명(맹자가 오래 전에 천명했던)보다 어떤 체제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렇게 폭력이 없는 혁명을 이루려했다. 그가 루소나 마르크스보다 칸트와 니체에서 희망을 본 것도 이 때문이다(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다음에 칸트와 니체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칸트에서는 인사상을, 니체에서 예사상을 볼 수 있다. 묵자는 홉스를 닮았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근대적 인류, 즉 시민(추상화된 개념적 존재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되는 존재로써)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며, 국가란 이것을 충족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인데, 이것이 말의 성찬을 넘어 근대 이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재산이 보장될 때 자유주의의 실현이 가능한데(그렇다고 무한대의 재산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로크까지는 가지 마시라), 마르크스가 온갖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로는 무한대의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적독점 때문에, 폴라니가 여러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초래하고 있는 종말 때문에, 자유주의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나마 근대적 시민의 탄생과 함께 했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었던 시절에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의 교집합과 너무나 닮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적 성향을 지닌)에서만 시민적 덕목인 자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양쪽의 버전이 있으며, 시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하위 90%의 부와 공공의 영역으로 나두었던 국가의 부를 상위 1%라는 지배엘리트(이들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계급적 특성을 띤다)에 이전하는 반동의 과정(상위 1%가 주도한 역계급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맞서기 위한 푸코의 성찰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추상적 관념에 머물렀던 시민의 재구성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논의만 무성했지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했던 시장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교합, 생태학적 고려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의 병존을 되살려낼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5.09.08 07:40

    비밀댓글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9.08 08:13 신고

    저에게는 난해하긴하지만
    정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29 신고

      너무 쉽게 풀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

  3. 참교육 2015.09.08 11:18 신고

    각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참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사실으 현대인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잊고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깨어난다는 것은 사실 혁명보다 어렵지 않을까요? 너무 비관적인가요? 제가?

    • 늙은도령 2015.09.08 19:31 신고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소화해서 적절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가 먼저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면 성찰하고 진실돼야 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해야 하거든요.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4. 백순주 2015.09.08 12:55 신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시작하신다니 감축드립니다. 건강조심하시면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100번까지는 못 읽어도 다녀가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38 신고

      최대한 쉽게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길이 마냥 길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압축적인 글로 시작했습니다.

  5. 앨리스 2015.09.08 19:26

    '지적공동체' 라는 것을 아직 저는 잘 모르지만 도령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열열한 애독자가 될 것입니다ㅎㅎ^^
    제 짧은 소견과 경험으로는 무엇이든 완성된 후에 하려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아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더 성숙되고 성찰되어지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 공부로 평등과 상생의 진리에 도달하고 그 실천으로 매일 글을 쓰시는 도령님은
    정말 대단한 현자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 또 도령님의 글을 읽으며사회를 알아가고 있는데요^^;;
    사랑이든 봉사든 그냥 되어지는 것은 없고 자꾸 연습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소개하시는 많은 책속의 이론가들의 사회인식과 이론은 결국 그 사람의 의식수준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 누가 높은 의식으로 이 세상을 구할것인가......

    • 늙은도령 2015.09.08 19:40 신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는 타인의 배려도 퍼져가고 자기 사랑은 타인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강해지고 충실해지면 세상 어떤 권력도 우리를 건들지 못합니다.
      각자가 진정한 시민이 될 때 세상은 변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요.

  6. 고나 2015.09.08 20:00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정독해 보겠습니다 ~

  7. base 2015.09.08 21:18

    수고하십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생각나네요. 요즘 주변을 보니 더욱 더 위축되고 암울해 보이는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로 애국하시고 준비하시는 일이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람니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 늙은도령 2015.09.09 01:56 신고

      네, 건강 때문에 글과 병행할 생각을 햇습니다.
      혹시라도 오프라인 모임이 원할하지 못하면 이렇게라도 풀어가야 하니까요.

  8. 덕산 2015.09.10 19:03

    요즘 글만 읽고 갔는데.. 오늘은 찬찬히 정독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공감은 항상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늙은도령님

  9. 청공(靑空) 2015.09.11 07:16 신고

    오늘의 유머에서 늙은도령님의 글을 알게 되어 이렇게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근 십년의 세월동안 공부가 업이었고, 지금은 공부하기 위해서 해외로 나와있건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늙은도령님의 글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내 눈도 이렇게 깊어지고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공분야만큼이나 식견이 탁월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바른 뜻과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변화를 포착하지는 못하겠지만... 늦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기술의 발달을 통한 발전과 위기 극복에는 한계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없고...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을 파괴시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해방, 인류의 해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여러가지 접근과 실천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근대 이후 가장 정체되어 있는 부분이 어쩌면...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체제를 위해 구조화된 교육이 아닌 진정한 지성과 자유의 전달이 가능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성과의 가시성, 그에 따른 예산 확보 및 필요성 설득의 어려움,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러한 교육에 적합한 교육자와 교육체계의 구성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 문제의식은 제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이지만, 한 번 말씀하시는 시대의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적어보았습니다.

    올려주시는 글 열심히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서 함께해주시길 기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48 신고

      교육의 중요성은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합니다.
      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교육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며 구축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뿐이지요.
      성장보다는 인간 중심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철학 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교육이 체제를 유지하는 하부구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교육으로 바뀌면 어떨까 합니다.
      지구온난화, 발전과 개발의 폐해, 인간성의 상실, 소비지상주의의 문제 등을 가르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공존과 상생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을 살려주고 다양함의 가치를 알려줘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선택과 공동체 구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래의 주역에게 열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생명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은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서 저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다룰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때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 하늘이 2015.09.11 18:03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주인된 자리에 있을려고 노력합니다 ᆞ도령님이 하시고자하는 지적공동체 응원합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2 15:4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출발이라도 꾸준히 키워갈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하면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미 연준이 금리인상에 나서기 전에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럽경제와 경착륙 조짐이 갈수록 커지는 중국경제, 잠깐 좋았다가 다시 경기둔화로 돌아선 일본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1995~1998년까지 계속됐던 개발도상국과 신흥산업국들의 경제가 파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9월 중에 강행하면 한국과 중국, 대만,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스엘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외국자본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전 세계의 실물경제는 완전히 붕괴되기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대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내년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엘리뇨 현상의 피해(특히 농축산업)까지 더하면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유가도 너무 길어지고 있어 성장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미국도 살아나고 있는 경제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 저유가 때문에 세일가스를 추출하는 대형회사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제적인 금융시장과 감시‧영상‧연예산업과 결합한 군산복합체의 폭력시장만이 호황을 누릴 수 있는데, 이들의 호황도 다른 분야의 산업들이 극도로 침체되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연준의 고민이 깊어지겠지만, 대규모양적완화를 통해 지금까지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고 강달러 전략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미국경제가 또다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가 《신자유주의-간략한 역사》에서 지난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였다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연준이 그런 연장선상에서 결정(볼커, 그린스펀, 버냉키가 그랬듯이)을 내리면 세계경제는 대공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무제한 양적완화의 양을 줄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엄청난 액수의 돈을 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4분기 경제상장률이 3%대에 이르고, 고용지표가 완전고용에 이른다면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를 조정하기도 힘들다. 폴 볼커가 미국 중하위층의 삶을 박살내는 대가로 겨우 잡을 수 있었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경제가 대비책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대략 4~6개월이라 정도라는 뜻이다. 이 안에 어떤 형태로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조건 부채를 줄여야 한다. 환율변동에 따른 시장개입도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가계부채는 치명적이어서 대규모 탕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중산층이 완전히 붕괴되고 하층민은 빈곤층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현재 모든 국가의 실물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아니 냉혹하게 말하면 제로에 가깝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화석연료를 줄여하는 현실에서 석유를 대체할 수 있으며, 세계경제를 되살려낼 수 있는 획기적인 먹거리가 나오지도 않았다. 빚은 이미 지구 전체를 외계인에게 팔아도 원금도 못갚을 만큼 거대하다. 탈출의 유일한 방법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법인세 인상과 누진적 부자증세(피케티의 주장), 금융거래세의 의미 있는 인상(토빈세의 확대)뿐이다.



조세도피처에 있는 자금과 함께 지하경제와 그림자경제(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전체 GDP의 10%에 수준이 적절하다고 한다) 대한 압수, 과세, 몰수도 필요하다. 성장을 포기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공존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공유경제도 활용하면 좋을 것이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답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무차별적인 성장을 포기하고, 지금보다 소비를 줄이고, 좀더 느리게 살아야 하며, 상후하박의 임금체계를 수술하고,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를 실현하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차원에서 줄이고, 성장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사회적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40년만 노력하면 인류에게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최상의 것은 피케티가 주장한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빚에 의존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샌더스가 되고,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늘린 진보정당으로 전환한다면 혹시라도 가능할지 모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처럼 성급한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바람에 주류의 의제에서 사라진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민주주의와 동반하게 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수십 배는 좋아질 수 있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적대적이지만, 사회주의는 우호적이다. 심지어는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는 동반할 수 있고, 일정 수준의 사유재산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위 1%에 맞서 대등한 토론을 벌일 수 있다면, 하위 99%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시도했던 시장사회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이 성공과 탐욕, 독식을 위한 경쟁을 줄이고, 도덕‧윤리‧공존‧상생‧박애‧관용의 정신을 살리면 세상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양대 거두였던 레이건과 대처가 70~80%대의 소득세율을 20~30%대로 내리는 바람에 극단의 불평등이 일상화됐고, 세계적 차원의 대공황을 불러왔듯이, 그들이 강행했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인류는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단히 짧은 시일 안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9.07 08:06 신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경제이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5.09.07 08:33 신고

    엉뚱한 다른 방법으로 이 위기를 풀어 나갈려고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ㅡ.ㅡ;;

    • 늙은도령 2015.09.07 19:46 신고

      신자유주의는 무조건 하위의 돈을 상위로 이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가만 나두었던 공적인 재산(정부 예산, 업무, 공기업)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3. 참교육 2015.09.07 14:54 신고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페북으로 공유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07 19:48 신고

      답은 이미 나와있는데 상위 1%의 힘이 너무 셉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가능한데...

      많은 분들이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변화가 가능합니다.

  4. 돼지+ 2015.09.08 18:34 신고

    저희는 알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할까요. 비하하기그래서 더이상 말은 못하겠네요

    • 늙은도령 2015.09.08 19:25 신고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반전의 기회가 가능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모두 다 공멸하기 때문에 가진 자들도 변할 것입니다.
      다만 정치지도자들을 잘 뽑아야 합니다.
      이들이 하지 않으려 하면 답이 없어서요.

  5. 머무는바람 2015.09.08 19:51 신고

    우리 대통령께서는 한국에 돈이 없으니
    외국 자본을 노리겠죠
    국민들은 생각 안하시고

    • 늙은도령 2015.09.08 19:57 신고

      헌데 북한과 중국으로의 방향 전환은 잘한 것입니다.
      그 밖의 것들은 개판이지만.
      박근혜 비판에 조금 더 정교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류엘리트의 80% 이상이 미국에서 공부한 시장자유주의 우파(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등)여서 미국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 초반부에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민주당에서는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트럼프는 매카시를 연상시키는 극우적 성향이고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니 보수적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양당의 대선후보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극우에서 극좌, 전체주의에서 아나키즘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까지 다양했다)가 무너진 1989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독주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이런 이념적 다양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시장근본주의적 전체주의 성향이 만개한 미국(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 1, 2》에서 명료하게 밝혔다)에서도 사회주의의 전통은 끈끈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생시몽, 푸리에, 블랑키, 오언과 비견될 수 있는 헨리 조지, 유진 뎁스, 헬렌 켈러 등이 인민당 전성시대(9개주를 석권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참조할 것)를 열기도 했습니다.





미국 건국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 엘리트의 양당과 연방정부가 인민당의 확장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 열풍을 말살시켰고, 루즈벨트가 사망한 이후 매카시 광풍으로 미국의 사회주의가 극도로 위축됐지만, 전 세계 사회주의자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진보와 빈곤》의 성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 등으로 이어진 미국의 사회주의는 기본소득(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과는 다르다)을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는데, 샌더스도 일정 부분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는 금융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건강보험체제에 집중하지만,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인정한 케인즈주의보다는 훨씬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자라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국가민족주의(수구적 제국주의의 냄새가 난다)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아나키즘적 극우주의(정부를 없애고 자유방임을 극대화하는)를 연상시킵니다. 미국 우파의 한 축으로 연방정부를 없애는 것이 목표인 사회적 복음주의자들(미국 우파를 다룬 《러 라이트 네이션》을 참조하라)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런 미국의 역사와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모두 다 무시한다 해도, 트럼프와 샌더스가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대선은 2008년 금융붕괴의 주범들이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최대수혜자로 바뀐 것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붕괴의 주범들은 미국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더욱 부유해졌고, 중하위층은 더욱 빈곤해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 월가 발 금융붕괴를 다룬 책들은 거의 대부분 주류의 입장에서 서술했고, 그 때문에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한 역할에 불과해서, 상위 1%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경유착(거대 양당, 연방정부, 월가, 군산복합체, 언론, 아이비리그, 허리우드, IT재벌 등의 주류엘리트가 미국의 이익을 독식하는 회전문식 정경유착)의 전모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유일제국 미국을 풍비박산낸 금융붕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마저 주류의 이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자,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 비주류들 사이에서는 극도의 불만과 분노가 쌓여만 갔습니다.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상위 1%의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과 분노를 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미국 역사를 철저하게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1, 2》를 보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며, 충분히 가능한 것에 속합니다. 그들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한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가 트럼프와 샌더스에게로 갈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트럼프의 돌풍은 현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의 일환이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로 분출된 중하위 99%의 사회민주주의적 요구에 대한 수구 백인들의 반작용이지만,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클린턴, 오마바, 힐러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적인 진보엘리트에 대한 반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트럼프의 돌풍이 오래 가면 샌더스의 돌풍도 오래 갈 것은 분명합니다.



1929년의 대공황이 우파 전체주의(이탈리아의 파스시트, 독일의 나치, 일본의 군국주의)와 좌파 전체주의(소련의 스탈린)를 탄생시켰듯이, 2008년 금융붕괴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총선과 대선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요? 미국보다 신자유주의적 정경유착이 더욱 강한 나라가 한국이다 보니···   



P.S.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이 있습니다. 글에서 인용한 책들 이외에도 토마스 페인의 《상식》, 미국 국부들의 《연방주의자 논설》, 찰스 비어드의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 존 듀이의 《공공성과 그 문제들》,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노엄 촘스키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17 08:49 신고

    민주당에서 샌더스의 돌풍이 어디갈찌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클린턴의 대세론을 꺾을지..

    • 늙은도령 2015.08.17 15:08 신고

      보수화된 클린턴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기를 바라야지요.
      그래야 우리도 바람이 붑니다.

  2. 참교육 2015.08.17 12:29 신고

    시장자유주의 우파를 이렇게 정의해 두셨네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너무 멋진 정리네요.
    페북으로 퍼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1 신고

      한국이나 외국이나 재벌들이 성공하고, 정경유착이 넘쳐나는 이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 이래서 당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요.

  3. 耽讀 2015.08.17 13:27 신고

    2017년 우리나라 대선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일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들도 당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란 변수가 있지만 색깔론을 들고나오면 오히려 받아쳐야 합니다.
    색깔론은 방어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공격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4 신고

      북한은 좌파 전체주의이고, 사회주의와는 다릅니다.
      사회주의에는 시장사회주의가 있어서 경쟁적 시장과 기업의 노동자 관리, 민주주의적 이익 배분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입니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위라고도 합니다.

  4. 표르바 2015.08.17 19:17 신고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신은죽었다 2016.01.30 12:35

    저는 EBS 사진에 이렇게 답하고 싶군요.
    "땅을 소유하고 이익을 얻는건 눈에 쉽게 보이고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공동체에 이루어지는 이익 봉사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땅을 소유하건, 땅을 임대하건. 그 땅의 가치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결정하고 그 땅에의해 생산된 것은 최종소비재의 것으로 직접 충족되거나 변형되어 시장에 거래로 봉사를한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시장거래 조차도 등가교환,잉여착취의 개념으로 악 이기에 EBS 내용이 전혀 문제 없다고 보실수는 있겠군요. 왜냐면 토지소유를 통한 어떠한 생산물이라도 근본적으로 착취라고 볼테니까요.
    시장경제, 보이지 않는손 이런것들은 칸트같은 이성비판,경험주의,전통 철학에서 나오는겁니다.
    무슨 수구 전체주의 이런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소유를 통해 공동체에 이익 봉사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잘보이냐 안보이냐의 차이입니다.
    토지를 예로든건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경험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입니다.
    상상이 안가고 토지를 어떻게 이용하고 이용되는지 과정을 모르며 눈에 확 보이는것도 아니고
    그 중간과정은 뇌의 한계로 정리하지 못하고 시작점과 끝만 기억하는겁니다
    토지를 소유했다 내 머리로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돈벌어먹고 잘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 놀고먹고 착취하는 계급이다. 끝.

    그런데 정말 궁금한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트나 전통시장가서 물건살때 투쟁하나요?
    등가교환이라는 생각을하면 엄청나게 허무하고 나중엔 무의미한 거래에 화가날텐데.
    왜냐면 등가교환을 했는데 만족과 쾌락을 얻는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일하러 갈때도 착취당한다고 엄청 스트레스 받을텐데.

    • 늙은도령 2016.01.30 15:02 신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보시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좋고.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착취의 체제인지 아실 테니까요.

      땅값은 주인이 올리지 않습니다.
      그 땅을 개척하고, 그 주변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과학기술이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거나 하면 저절로 올라갑니다.
      무노동무임금이 자본주의의 원칙이라면 땅값 상승은 100% 불로소득이지요.
      이것이 EBS가 인용한 <진보와 빈곤>의 핵심 주제입니다.
      기본소득제의 개념도 여기에 연원하고요.

      이런 식으로 님의 댓글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1권에서 다루었던 등가교환이라는 것도 2권으로 넘어오면 시장교환과 노동착취로 넓어집니다.
      아무튼 마르크스적 한계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까지 더해야 조금이나마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요.

      자본주의는 생긴 지 20~3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비판의 대상이었고, 각종 규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존속도 될 수 없었던 체제입니다.
      노동착취의 종류는 <자본론> 2~3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등가교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비판은 제2권에 나오는데 당신은 그 사실도 모르고 댓글을 달았으니 책도 읽지 않은 것이지요.

      칸트에서 나온 것이 마르크스라 하는데, 칸트는 그런 것에 관심없었습니다.
      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숭고에 대하여> <영구평화론> 등등의 책들에 자본주의와 엮일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치를 사유한 사람이고, 만인의 행복을 찾았던 철학자이자, 예술의 힘을 믿었던 미학자였습니다.
      그는 관념론자이지 경험론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에 영향을 준 사람은 뉴턴과 다윈, 헤겔 등이었지 칸트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두세 번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칸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청년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도 읽지 않았겠지만 제발 뭘 아는 척 하려면 기본적인 지식부터 갖추셔야죠.
      검색하면 나오는 쪼가리, 사이비 지식 말고요.

      댓글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법입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욕보일 정도의 학자도 아니고요.
      인류 역사상 전체 지식인과 홀로 맞서 승리한 유일한 학자가 마르크스입니다.



우리에게 광복절은 남북이 분단된 날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이후 모든 식민지국가는 독립을 이루었지만, 오직 한반도만이 남북으로 분단됐다. 일제 36년간 끊임없이 항일투쟁이 이어졌고, 국민이 인정하는 임시정부가 있음에도 우리와 독일만이 반으로 갈라졌다.





우리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함은 친일청산을 넘어 국제역학의 희생양이 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어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제가 연합군에게 무조건항복을 한지 7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해방도, 진정한 광복도, 떳떳한 독립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분단된 남북이 다시 하나가 되는 통일의 날까지 우리의 광복은 반쪽자리다. 통일은 그래서 당위이고 의무이며 책임이고 미래이다. 문제는 평화롭고 풍요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의 국가가 통일의 목적이기에, 그에 이르는 과정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통일은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는 지난한 과정이고, 70년 동안이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이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남북한이 평화롭게 통일하더라도 최소 30~40년이 흐른 뒤에나 가능한 것이지 통일됐다고 반드시 대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독일이 지불한 통일비용이 3,000조원에 이른다. 통일이 이루어진 당시의 동독이 소비에트 진영에서 가장 잘 살았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이런 비용이 들었고, 지금도 통일비용의 지출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국민 전체로 볼 때 통일에 긍정적이지만, 서독과 동독을 나누어서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불만이 표출된다.



올해 1월1일에 작고한 울리히 벡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에도 나오지만, 현재 독일에서는 오씨(Ossi)’와 ‘베씨(Wessi)’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오씨’는 서독 출신이 동독 출신을 ‘가난하고 게으른 동독놈’이라고 비하하는 표현이고, ‘베씨’는 동독 출신이 서독 출신을 ‘탐욕스럽고 거만한 서독놈’이라고 비난하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무려 3,000조에 이르는 통일비용을 지불하고도 사회주의에 익숙한 동독 출신과 자본주의에 익숙한 서독 출신이 두 개의 민족으로 갈라져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독일의 현실이다. 동독 출신의 메르켈이 4선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도 정치‧경제‧문화적 이질성이 존재한다.





하물며 통일 당시의 서독과 독일보다 더 큰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지닌 남북한이 아무런 준비없이 통일된다면 그것은 대박이 아닌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때가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는 독일 학자들의 주장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또한 북한 내부에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북한 땅에 대한 우선권이 전적으로 한국에만 있다는 것은 세계 어느 협정에서도 다뤄진 적이 없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당사자에 한국정부는 들어가 있지도 않다. 실효적 지배를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일본이 끝없이 우기면 분쟁지역이 될 수 있는 것이 독도이듯이, 온갖 천연자원으로 넘쳐나는 북한 전체야 말할 것도 없다.  



독일 통일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서독의 체제를 동독에 일괄적으로 적용한 것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서독 출신과 동독 출신 사이에 갈등과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로 들고 있다. 이것 때문에 독일 전문가들이 남북한의 차이를 줄이는데 햇볕정책을 최고로 친다. 





박근혜가 주장만 할 뿐, 도무지 실천하지 않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햇볕정책이 중단없이 진행됐다면 통일에 이르는 최고의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쯤에서 남북관계를 파탄낸 이명박을 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박근혜가 통 큰 결단을 한다면 통일로 가는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통일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될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로 대박이 되게 만들려면 무조건 남북한의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중에서 경제‧문화적 차이를 줄이는 것은 박정희 정부의 7.4공동선언, 김대중 정부의 6.15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공동선언 등에 공히 나와 있다.



미국 정부와 맥아더의 판단 착오 때문에 남북한이 갈라지고, 이승만의 초대 대통령에 오르면서 친일 청산이 사라지고 반공만 남았지만, 통일이 무슨 '아브라카다브라'처럼 대박이란 주문만 외운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아무도 모르게 도둑처럼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통일은 노력하고 준비한 만큼만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지난하고 고통스런 과정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8.16 08:55 신고

    통일을 하면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겠습니까?
    그 밖에도 군수마피아들. 미국과 일본이 분단 상태를 원하는데...

    • 늙은도령 2015.08.16 18:53 신고

      경제적 통일부터 해나가면 통일로 갈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그런 길로 가는 첫 번째 수순인데, 그럴 경우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햇볕정책을 수구들이 그렇게 막는 것입니다.

  2. 소피스트 지니 2015.08.16 21:15 신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지만, 통일을 위한 어떤 전략도 없는 정부입니다.
    외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어떤 수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 늙은도령 2015.08.17 00:41 신고

      그냥 구호에 불과합니다.
      정치적으로 표를 얻기 위한 구호입니다.

  3. Konn 2015.08.16 21:22 신고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혀봐도 현재 남한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건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죠.
    http://konn.tistory.com/375

    • 늙은도령 2015.08.17 00:42 신고

      사실 기업들은 경제적 통일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이명박 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지만....

  4. 공수래공수거 2015.08.17 08:45 신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으면
    통일이 되는걸로 이정부는 혹세무민하고 있습니다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데....

    • 늙은도령 2015.08.17 15:07 신고

      네, 헬조선 당사자들이 가장 피해를 봅니다.
      그들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통일할 수 있음에도....



야당 혁신위에서 나온 개혁안 중 모처럼 마음에 드는 것이 나왔다.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는 것이 바로 그 개혁안인데, 이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사표를 줄여 국민의 선택을 최대한 반영하고, 각 직종과 분야, 계층, 세대 등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늘어나 민주주의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선거제도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지역적 승자독식을 만드는 최악의 선거제도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살리고 독식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다원주의적 평등이 밑받침되지 못하면 어떤 자유도, 관용도, 박애도, 평화도, 정의도, 공존도, 상생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 신뢰도와 국회의원의 특권을 비판하는데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야당 혁신위의 안은 출발이 될 수 있다. 먼저 비례대표 정수가 늘어나더라도 국회예산을 늘리지 않고 특권을 줄으면 된다. 비례대표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특권도 따라서 줄기 마련이다.



국회가 특권과 비효율, 막장의 대명사가 된 것은 대표성도, 전문성도, 민주성도 떨어지는 특정 직군의 엘리트(검사와 국정원 출신)나 지역적 토호(일종의 지역 귀족)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자들이 의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노동 분야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은수미 의원처럼 비례대표가 늘어나면 현 국회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다.





새정연이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강조하면 정치의 기능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홍보‧마케팅 기능을 강화해 당의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다양한 비례대표가 있을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지금은 최악의 인물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사전에 다양하고 세분화된 이해들이 당 내부에서 분출하고 조율돼야 한다.



다양한 비례대표들은 과도할 정도로 많은 보좌관, 비서관의 수를 줄일 수도 있으며 당 내 의원 간의 소통을 늘릴 수 있다. 물론 보좌관과 비서관의 수를 줄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다앙한 이해를 대표하는 비례대표의 영향력이 커지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자원봉사자의 수도 늘 수 있다.



비례대표는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풀뿌리 민주주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위대한 정치‧사회학자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을 보면, 방대한 자료를 연구한 끝에 풀뿌리 공동체들이 사라지면서 민주주의가 엘리트와 토호 위주의 과두정치나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조사한 책들은 많지 않지만, 그런 책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의 민주주의가 풀뿌리 차원에서 벗어나 극소수의 자본과 권력만 대변하면서 최악의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정치 혐오나 무관심은 자본과 바람난 정치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와 자발적 복종이 갈수록 강화되는 각 세대의 특성에 따른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의 타락과 몰락은 정치인만의 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작용했고, 특히 국제적인 자유무역과 직장에 따른 잦은 이사도 영향을 미쳤으며, 거의 모든 사람을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소외시키는 텔레비전과 최근에 들어 양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인터넷도 정치의 타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편의 글에서 너무나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정당권역별 비례대표의 정수를 늘리는 것이 다양한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인원으로 충원된다면 국민의 절대다수를 대변하지 못하는 현재의 정치는 상당 부분 고칠 수 있다. 국회는 지독할 정도로 권위주의적 남성들로 가득해 최악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언론사인 KBS를 비롯해ㅡ이들은 빈부의 차와 상관없이 똑같은 시청료를 내는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정부와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에 최악이다ㅡ기레기들이 혁신위의 안을 비판하겠지만, 국회를 거대 이익집단과 특정지역만 대변하는 엘리티들로부터 국민에게 되돌리려면 노동자, 청년, 여성 등의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현재의 정치가 개판이라고 비난하고 욕만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국의 선거제도와 국회는 철저히 소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들이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언론들이 하나같이 기레기들이라는 면도 크지만, 국민의 감시가 형편없고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를 지지했건 국민도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장점을 도입하자는 혁신위의 이번 안은 지역독점에 기반한 국회의원의 행태와 현실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득권화된 거대양당 구조를 깨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실질적인 다당제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끝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국회의원의 출신이 계급, 계층, 나이, 직종, 인종, 성별, 장애 등으로 세분화될 때 하나의 가치만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전체주의는 불가능해진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에 가보면 국회위원이 지역과 재산, 학벌 등에 근거한 엘리트로만 구성된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는 참여와 합의에 참여하는 대표성이 다양할수록 더욱 힘을 받고, 사회경제적 평등은 강화되고, 정치적 자유는 최대화된다. 



지금처럼 정치혐오와 정치무관심에 기반해 모든 것을 판단하면 정치인들은 국민 전체를 대표할 이유가 없다(기레기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를 이끌어가는데 국민의 표나 여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미 체제는 극소수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 기술발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은 민주주의 다양성을 살리던지, 아니면 평생을 자발적 복종에 익숙해지던지 둘 중에 하나밖에 남은 것이 없다. 혁명을 일이킬 수 없다면, 국회의원의 구성을 바꾸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투표율이 형편없고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10% 내외이며, 정치 결사체와 사회가 무너졌는데 국민을 두려워할 정치인이란 없다. 



어차피 기득권에 속하면 최소의 경쟁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데 그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야당 혁신위의 안은 그런 기득권을 내려놓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의원 교체율이 아무리 높아도 정치가 국민 속으로 내려오지는 않는다. 형편없는 국회의원을 기준으로 구회를 보면 어차피 이런 상태로 계속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천혜의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온갖 불평등과 범죄로 넘쳐나고, 전 세계로부터 욕을 먹고, 최악의 정치를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기득권화된 거대양당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출신 대학에 따라 연봉이 결정될 만큼 차별이 일반화된 최악의 국가이고, 대한민국이 그 뒤를 거의 다 따라잡았다. 기득권화된 거대양당이 자본과 언론과 손잡고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성남시의 청년 배당에 대한 기대와 우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에쏘 2015.07.28 00:12

    많은 사람들이 밥값 못 하는 국회의원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수가 줄어들수록 특권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기적으로 저 개혁안을 들고 나온 것이 오히려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전에 심상정 국회의원이 저 얘기를 꺼냈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게돼서 제1야당에서 당론이 모아지는 것은 좋지만
    지금까지 수면으로 떠오른 문제들도 하나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일을 너무 벌리는 것은 아닐지..

    • 2015.07.28 00:27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8 01:04 신고

      야당이 선거쟁점을 주도해야 합니다.
      국정원 사찰논란은 몇 개월 용이지만 선거구 재획정과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여야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선거구 재획정과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부각될 수밖에 없는 이슈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정면돌파를 해야 합니다.
      흩어진 진보정당들도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는 어차피 진영논리로 치를 수밖에 없는데, 야당이 주도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혁신위의 제안은 대단히 불리해 보이지만, 이것이 하루라도 빨리 공론화되면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제가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라 생각보다 매우 힘드네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이외에 체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인데 생각보다 더디고 힘드네요.
      세월호 유족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도 조금 미뤘습니다.
      제가 공부한 지식을 총동원해 세월호 참사를 책으로 펴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유족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부터 해놓고 조금 선선해지면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산본에서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글로 올릴 게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스트레스가 매우 크네요.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7.28 08:09 신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정책이 국회의원 정족수를 늘리는걸로
    본질이 제도 언론등에 의해 심히 곡해되고 오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
    언론이 뽑아내는 제목을 믿게 됩니다

    도령님..더운날 건강 유의하세요..

    • 늙은도령 2015.07.28 14:49 신고

      네, 더위가 문제입니다.
      생각보다 더 더워서 참으로 힘드네요.

      저는 혁신위가 뚝심있게 밀고 나갔으면 합니다.
      이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양한 국민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야 하고, 특히 여성, 청년, 장애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의원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3. 지금 2015.07.29 08:20

    지역비례는 지랄 그들만의 돈잔치

  4. 나라걱정 2015.07.29 09:35

    세금 쫌만 올리면 온나라가 난리를 치면서 ....
    줄일건 줄입시다.지금 우리나라에서 줄일건 국회의원 수와 월급뿐.그 돈으로 경찰공무원이나 소방공무원을 더 양성합시다.

  5. 2015.07.29 10:56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9 16:01 신고

      그거야 정치를 영원히 엘리트 위주로 가자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비례대표가 늘어나야 정치는 엘리트 위주에서 바뀝니다.
      정치를 이처럼 형편없이 만드는 자들이 국민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국민은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정치가 나빠지는 것에는 국민의 책임도 엄청나게 큽니다.
      정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기레기들이 보도하는 대로 정치만 욕하니 정치인들이 열심히 할 이유가 없지요.
      악순환을 계속하려면 지금처럼 가면 되고, 그것을 끊고 선순환으로 가려면 현재의 선거제도를 민주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6. 아이스킹 2015.07.30 10:21

    비례대표 비율을 늘리는 것이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측하기 힙들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목매는 현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국회의원을 늘리는 제안이 일반 국민들에게 혁신 보다는 짜증을 불러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문재인 대표와 혁신위가 좋은 정책을 발표하는 것과 중요하게 얼마나 자신들의 의견을 현실화 시키느냐 일 겁니다. 야당이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길 기대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31 02:13 신고

      네, 야당이 강해져야 하는데 이명박근혜 정부 7년6개월 동안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너무 무력해졌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정치는 신사협정과 같으면 좋겠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권력과 욕망이라는 개념을 인정해야 정치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단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국정경험의 문제인지, 개인적 성품의 문제인지, 두 가지가 모여서 그런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치를 신사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심지어 도전하는 입장에서는....

  7. 엔도히로돈 2016.01.25 07:10

    비례 대표 정수를 늘리면 이건 무조건 의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읍니다. 이미 한국 국회 의원수가 인구 수에 비해 많은 것은 제가 설명 안해도 아실거고 국민들도 대다수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지역구 의원을 줄이는 것은 정작 국희가 가진 지역의 대표성을 희석 시킵니다. 이건 소수 정당의 대표성 희석보다 더 큰 문제임. 자꾸 독일의 정당 명부식 가지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OECD국가 중에 비례대표 하는 나라. 한국, 뉴질랜드, 헝가리, 독일, 멕시코, 일본밖에 없어요. 전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의 정당 방식이 이상한것인데 그것이 무슨 전세계 정치의 대세인것처럼 혹세무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문제가 양당 체계에서 왔다고요? 어이가 없는 주장이네요. 그럼 양당 체제가 아닌 나라들은 전혀 정치 문제가 없나요? 비례대표 하는 나라가 정치가 더 발전했어요? 일본이 미국, 영국보다 민주주의 가 더 발전했나요? 미국도 제 3당이 있습니다. 자유당 (Libertarian Party), 녹색당 (Green Party), 헌법당 (Constitution Party)등.. 이 당들은 7만 5천명 이상이 각 정당에 등록 유권자 등록했습니다. 좀 제대로 알고 쓰길... 저런 당은 한국의 심상정처럼 생때를 쓰지도 않습니다. 좋은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연히 국회에 정정 당당히 입성할 것입니다. 조경태 의원의 주장대로 비례대표 폐지를 통한 국회의원 정수 축소가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입니다.

    당신이 찬성을 하는것은 당신 자유니까 뭐라 할수 없지만 당신이 주장하는 이유는 사실과 다른게 많아서 글 썼습니다.



기술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많은 석학들이 다루었던 것이지만,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을 가장 잘 파악해낸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와 니콜라스의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유리감옥》, 바우만의 《액체근대》, 라이언의 《감시사회의 유혹》 등을 중심으로 다루어보는 것이 더욱 오늘날의 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가벼운 경제’의 시대에서는 세상의 변화를 모두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이르러서야 날아오른다’는 헤겔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문화에 대한 기술-경제적 발전의 영향력은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에서 보여준 것처럼, 신화(지배권력의 정통성을 창출함과 동시에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초월적 정당성으로 미화되기 일쑤다)와 계몽의 변증법(인류가 파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돼야 멈출 영원한 진보가 핵심이다)이 뒤엉켜 있는 고대의 신화적인 서사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는데, 그런 서사의 끝에 이른 현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서사는 의미만 다룰 뿐,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문화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완벽한 성찰을 보여준 미셀 푸코가 《감옥의 역사》에서 보여준 구조주의적 인식들을 차용해 벤야민의 역사인식 개념을 활용하려고 한다. 



비록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역사개념이 ‘비변증법적’이라고 비판했지만, 보편적 도구인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정보사회에서 《미디어의 이해》의 저자, 마셀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것이 진리라면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적용한 방식이 현 시대를 이해하는 데는 보다 적절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진보의 모든 성과와 폐해들이 모두 녹아내려 높은 온도의 액체처럼 유동하는 상태가 현대성을 대표하는 상황에서는 ‘지금시간’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끌어내 거기에 포함된 모든 내용(역사라는 시공간이 압축되어 있는 씨앗)을 다루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면 속도가 공간을 극한까지 압축하면서 지배 권력의 원천이 유지되는 세상에서, 그 파시즘적 속도에 맞춰 시대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뒤집힌 세상이 다시 한 번 뒤집히고 있으며, 그 다음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유동적인 상황에서 오직 비대칭적 종말만이 확실하게 예약되어 있을 뿐이다.



역사주의가 보편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른 종류의 역사보다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뚜렷이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더해지는 방식이다. 그것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구성의 원칙에 근거를 둔다. 사유에는 생각들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들의 정지도 포함된다. 사유는, 그것이 긴장으로 가득 찬 상황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상황에 충격을 가하게 되고, 또 이를 통해 그 상황은 하나의 단자로 결정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적 대상에 다가가되, 그가 그 대상을 단자로 맞닥뜨리는 곳에서만 다가간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시, 달리 말해 억압받은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의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균질하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 과정을 폭파하며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대를 끄집어내기 위해 그 기회를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한 시대에서 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낸다. 이러한 방법론에서 얻어지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악된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메시아적 시간 모델로서 전 인류의 역사를 엄청난 축소판으로 요약하고 있는 지금시간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이루는 앞의 모습과 엄밀하게 일치한다.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관료주의적 정신과 기술공학적 사고는 주어진 현실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데만 목표가 있기 때문에 지금시간의 이미지에서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역사의 시간들을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현재를 이해하는 원천(그것은 미래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의 결과란 지금시간에서는 단순한 예측일 뿐이어서 미래의 영역에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언제나 미래의 풍요를 위해 지금시간으로서의 자신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지배세력의 도구가 된다)으로 작용하는 벤야민의 접근방식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관료, 즉 공무원들과 기술공학적 사고에 익숙한 전문가는 오직 미래의 결과만 보고 현재를 파악한다. 그들은 오직 과거의 결과로서의 현재를 기반으로 해서 모든 사유를 출발시키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계몽적 변증법이 명하는 데로 무한한 진보를 위해 현재의 문제를 푸는 데만 열중한다. 이런 가치중립적이고, 효율성과 경제적 편익만 따지는 사고방식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인류를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파국으로 내몰곤 한다(물론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극히 드물고 그것 역시 자본의 수중에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진보의 흐름이 영원하다고 보기 때문에 폭주하는 기차를 멈춰 세운 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목적지로 가는 다음 역까지만 중요하고,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비용-편익 분석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데만 집중한다. 계몽적 변증법이 고착화시킨 결과의 낙관론이 이들의 인식과 행태를 결정하며, 그 밖의 것들은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폄하한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이들이 내세우는 최후의 변명이자 전매특허이고, 따라서 기술공학적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 부작용은 진보의 길에서 나오는 부수적 피해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런 기술공학적 사고가 지배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손을 잡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J. M.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신자유주의의 선조들에 책임을 묻는 근거로 사용한 “사회가 부유하면 할수록 실제생산과 잠재생산과의 사이의 간격은 클 것”이며, “따라서 경제체계의 결점은 더욱 명백하고 또 포악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부작용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부 중 한 명으로 회자됐던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자유주의는 대내적으로 경제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역할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방임을 지지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국을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했다”며,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자유롭지 못한 정치제도의 조합도 분명 가능하다”고 말한 것에서 유추하는 것도 정치경제적 시각에 한정되기 때문에, 초위험사회가 도래한 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경제적 발전을 국민국가와 자본과 함께 주도해 온 기술공학적 사고가 시장 만능의 산업사회의 지배적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 순간은 칼 폴라니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에서 가장 잘 포착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인간은 그러한 이론이 요구하는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시장의 원리가 인간이 물질적 재화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기는 했지만, 인간이 단지 ‘경제적’ 동기 때문에 노동하는 것은 아니다...인간은 여전히 놀랄 만큼 ‘복합적인’ 동기들에 근거해 행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복합적인’ 동기는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의무를 포함할 수 있고 또 노동 자체를 은근히 즐기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동기들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가정된 동기들이며, 심리학이 아니라 영업적 사회의 이데올로기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여러 관점들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기초하고 있다. 일단 사회가 그 성원들의 일정한 행동 양식을 예측하게 되고 지배적인 사회 제도들을 통해 그 행동 양식을 대충 강제해내기에 이르면,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들은 그 행동 양식의 이념형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명예와 자부심, 공민으로서의 책무와 윤리적 의무, 심지어 자기 존중과 도덕마저도 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고, 의미심장하게도 ‘이상적’이라는 함축적인 단어로 요약되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어지게 되었으니, 하나는 굶주림과 이익에 가까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명예와 권력에 가까운 것이다. 전자는 ‘물질적’인 것이며 후자는 ‘이상적’인 것이다. 전자는 ‘경제적’인 것이며 후자는 ‘이상적’인 것이다. 전자는 ‘합리적’인 것이며 후자는 ‘비합리적’인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이 두 쌍의 말 묶음을 확실히 정리했으며, 인간 성격의 경제적 측면에 합리성이라는 신비로운 후광을 씌우기에 이르렀다. 모두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도록 되었고, 혹시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기를 거부한다면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불루이글 2015.07.21 09:05 신고

    오!
    정말 도령님의 지식의 부요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솔찍히 말씀 드리자면 부끄럽게도 저는 너무 심오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령님이 쓰신 글이니 좋은 글이 틀림이 없다고 확신 합니다.

    저는 같이 공감 할 자질이 없지만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줄로 믿으며 대신 공감 버튼 눌러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51 신고

      이 글은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인데 퇴고를 못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것들 때문에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합니다.
      써 놓은 양이 너무 방대해 고민입니다.

  2. 백순주 2015.09.04 10:17 신고

    공감을 눌러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열어보고 한 줄 읽고는 후회했습니다.
    대학 1학년 전공수업시간이 떠오릅니다. 적성도 관심도 없는 커트라인에 맞춰 지원한 대학수업이란 게 온통 외계어 뿐이었으니까요. 교수님은 알고 수업을 하고 계신지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위편삼절이라고 했던가요? 100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고 했나요?

    죄송합니다. 말이 많네요.

  3. 아오타케 2016.05.17 23:12

    외국인 학자 이름 나열이 뭐가 그리 중요하며, 그들의 학설이 세상을 대표합니까?
    식당 건물이 멋있고, 인테리어가 멋있다고 음식맛이 좋습니까?
    물 엎질렀다고 탓하지만 말고, 물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려면 어쩌면 좋은지 그 방법을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알려 줍시다.
    그것이 현대 지식인들의 지향점이어야 하는데, 엎질렀다고 주먹질만 해대고 있으니...
    어느 보약이든... 부작용은 있는 법입니다. 당신이 서 있으면 발밑에 밟힌 초목 벌레가 있을 테고, 서 있는 그늘밑에는
    활동 중지된 미생물이 주먹질 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 사는 것 쉽습니다. 어린아이들 같이 천진난만.. 어린아이들 같이 상식대로만 살면 되는 겁니다.

  4. 시골잔차 2016.07.11 20:34

    저의 무식함이 처절히 탄로 났습니다.

    무슨 말인지 넘 어렵네요 ㅎㅎ

    담에 또 정독해야겠습니다.

    딱딱한 음식이 이에 이롭듯이 , 어려운 글이 뇌를 단련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뇌를 각성시켜주셔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ㅎㅎ

    • 늙은도령 2016.07.11 23:13 신고

      이 글은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에게 한방 먹이려고 쓴 연재글입니다.
      원래는 출판을 목표로 했던 것이고, 퇴고를 거치지 않은 압축본입니다.
      지식인들의 지적사기를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어렵게 썼지만, 인공지능을 공부한 뒤 이 작업이 별로 유용하지 못함을 알게 됐습니다.
      시간이 되면 쉽게 풀어낼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쓸 때를 대비해 굵지한 것만 다루었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주어질지 걱정이지만.....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


                                              ㅡ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치른 후 하루라도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것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잘살아 보세’라는 집단적 열망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독재라고 해도 문제를 삼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성장을 위해 인간의 천부인권과 헌법상의 기본권이 침해당해도 받아들였습니다.





유럽은 자본주의의 초창기에 그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와 사회민주주의를 강화시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낙수효과라는 새빨간 거짓말만 믿고 수출 위주의 성장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주주의도 제한되고 낮은 수준이었지만 언제나 성장이 먼저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뒤로, 뒤로 그렇게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습니다.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 결실은 수십 년이 지나야 나타나는 복지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렀고, 재난관리조직과 방역체계처럼 10년에 한 번 정도 작동할까 말까 하는 것들은 축소되거나 재정 투입이 최소화됐습니다.



압축성장의 상징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지만 성찰과 반성의 시간은 짧았고, 다시 성장을 위해 빨리 빨리 달려 나갔습니다. 이런 일들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지자 어떤 참사가 일어나도 빨리 기억에서 털어내는 것이 습관화됐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집단적 단기기억상실증이 만연하고, 나쁜 경험을 회피하려는 집단유전자까지 생성됐습니다.





특히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성장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참사의 원인을 찾는 작업이 허술하게 진행됐고,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개조란 귀찮고 성가신 일로 치부되기 일쑤였습니다. 한국인의 집단의식 속에는 경제와 성장에 반하는 것들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향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 장기간에 걸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인명을 경시하게 되는 성장과 성공지상주의는 이런 성향을 더욱 강화했고, 불쾌한 생각을 떨쳐버리는 방법의 하나로 극단적인 소비를 체질화시켰습니다. 아이돌가수와 드라마 위주의 한류의 성공에도 상당 부분 이런 성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좋은 것은 원초적이고 욕망과 소비를 자극하기 때문에 시장 지향적이고 소비적이며, 그래서 성장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작년 4월16일부터 오늘까지 세월호 참사의 전 과정을 복기해보면 대통령부터 언론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경제와 소비 위축’을 제일 많이 얘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악의 메르스 대란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도 이것에 관해서는 달라진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처럼 메르스 대란의 교훈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삼성서울병원에 원격진료를 허가해준 것처럼 의료영리화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새마을운동을 기적으로 여기고 있지만 경제학적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한 가족이 집을 개축하고 상수도를 개선하고 각종 전자제품을 구입하고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듭니다. 기업들도 수요가 없기 때문에 소규모 생산밖에 하지 못하므로 가격을 낮출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모든 농촌에서 동시에, 대규모로 추진하면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고 개별 가구들의 부담은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공사의 상당 부분을 직접 하는 경우에는 투자되는 비용은 더욱 줄어듭니다. 박정희 정부의 지원금이 적었음에도 농촌 개조가 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고, 그렇게 농촌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장기적인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논리에 따라 수요가 늘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집니다. ‘어제의 사치품(TV, 세탁기, 냉장고, 컴퓨터, 전화기, 휴대폰, PC, 옷 등의 소비재)이 오늘의 필수품’이 되는 것도 수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신 의료서비스나 대학등록금, 사교육비, 집값 등이 올라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됐고 상대적 박탈감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났으며, 그만큼 사회는 불안정해졌습니다.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도 이런 식으로 따지면 비슷한 시기의 경쟁국(대만, 일본)이나 유럽의 선진국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훨씬 못했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릅니다. 실제 수많은 비교정치경제학 연구들이 유신시대의 압축성장이 경쟁국과 선진국에 올라선 나라들과 비교할 때 허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근거는 “대다수의 선진국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1970년 초반까지 완전고용과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기를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이 줄어들고 종합적인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도입되면서 소득분포상 최하위에 위치한 이들이 얻는 경제적 수익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존 퀴긴의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에서 인용).



복지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이 시대의 경제성장을 국가의 곳곳에 투자했고, 국민 모두에게 나누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대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유럽과 일본과 달리 한국은 삼성과 현대기아차, LG와 SK, 롯데와 포스코, 두산과 대한항공 같은 재벌과 대기업만이 성장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은 고사하고 대만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경제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모든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지리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보수정부와 재계, 언론의 집요하고 끈질긴 세뇌작업이 국민의 판단기능을 정지시켰고, ‘빨리 빨리’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자기기만과 현실회피에 익숙해졌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에 비해 잃은 것들의 가치는 계산이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멸종된 생명체와 환경 오염과 파괴, 전염병의 창궐,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물부족 사태, 지구의 사막화, 상시적 테러와의 전쟁이 창출해낸 폭력시장의 확대까지 계산에 넣으면 인류는 성장의 역설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7년6개월 동안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줄푸세로 이런 경향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사회는 무너졌고 가족은 해체됐으며,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마저 잃어버린 탐욕의 제국으로 추락했습니다. 극단적 효율성과 물질적 풍요만 쫓는 성장제일주의와 성공지상주의, 소비만능주의가 메르스 대란의 두 번째 근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론♥ 2015.06.20 07:27 신고

    시간 지나고 메르스사태가 잔잔해지면 죽는 사람만 억울 하죠

  2. 공수래공수거 2015.06.20 08:22 신고

    제발 다음 선거는 현명하게 잘 뽑았다는 평가가 내려지길
    기대할뿐입니다
    잃어바린 10년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0 16:07 신고

      기억이 오래가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 민신용 정책들을 통해 표를 쓸어갈 테니 과연 제대로 투표를 할지 자신 없네요.
      언제나 그랬으니, 또 투표포기자들도 늘 것 같고....

  3. 耽讀 2015.06.20 09:03 신고

    수구기득권세력은 시민을 통치하기 위하여 우민화 정책을 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언론입니다. 이명박근혜정권 언론은 비판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공중파는 시사프로그램 고사, 종편은 하루 종일정권 찬양과 야당비판입니다.
    무엇보다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은 연예인을 출연시켜 토크(실은 농담시간)를 합니다. 요즘은 요리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가질 수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20 16:10 신고

      원래 TV라는 매체가 상류지향적이고 자유시장 친화적이라 기술 자체에 자본주의의 정수들이 녹아있습니다.
      게다가 TV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할 제1수칙입니다.
      국민이 멍청해지는 것이 TV 때문인데, 최근에는 인터넷도 스마트폰과 만나면서 비슷한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생각하고 실천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4. 참교육 2015.06.20 12:40

    가난에서 벗어 나려다 대미 종속, 그리고 끝없는 양극화 사회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사이비 학자들이 우글거리고 유신이 후예들이 대접받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질적인 병 정말 고치기 어려운 남치병에 걸렸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20 16:15 신고

      네, 정말 개판이 됐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이비 학자들이 넘쳐나는 것도 국민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처럼 촌철살인을 하는 사람들은 말투나 표정을 가지고 매장시키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강준만은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친노와 유시민, 노무현, 문재인, 정청래, 통진당, 이정희 등을 싸가지 없게 비판하며 안철수를 띠우는 역겨운 짓도 합니다.
      진보 학자라는 자가 보수의 눈으로 진보를 비판하니 이런 사이비가 어디 있습니까?
      한국은 사이비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망치고 있습니다.

  5. 소피스트 지니 2015.06.20 17:40 신고

    진정 성장을 원한다면 분배를 통한 지속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일텐데 이 정부는 경제 성장이 일부에게만 부가 집중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6.20 19:46 신고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는 것 같아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한 번이라도 서민들의 세상을 만들어보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가 최후를 맞는 것은 아닌지...
      결국 지구온난화에서 살아남는 자도 상류층에서 많이 나올 것입니다.
      답답합니다, 정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거대한 전환의 국면에 직면해있습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높아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이명박근혜 정부 7년4개월 동안 산산이 부서지면서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경상남도에서는 제대로 된 토론도 거치지 않고 의무급식이 중단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하루라도 빨리 경제선진국에 들자는 집단적 욕망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과 기본적인 권리마저 뒤로 미뤄지기 일쑤였습니다. 서구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무서울 속도로 국가를 점령했는데, 이와 병행돼야 할 민주주의는 제한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저부담‧저복지 국가가 된 것도 경제성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자는 집단적 욕망의 결과였습니다. 파이가 커지면 나눠먹을 것이 많아진다는 낙수효과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국제시장>의 ‘덕수’가 <미생>의 ‘장그래’로 이어졌을 뿐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습니다.



이제 부의 불평등은 공존이 불가능해질 만큼 커졌습니다. 부는 세습되기 시작했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중간이 끊겼고, 교육은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성장의 역설 때문에 한 학교(학급) 내에서도 사는 동네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 만연됐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밥 한 끼라도 차별없이 먹이자는 욕구가 분출했고, 6.2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의무급식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최소한 의무교육에 포함되는 초‧중학생들에게는 국가가 점심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처음으로 도입됐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건 민주주의의 뜻 깊은 승리였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줄여 공존과 공생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었습니다. 최소한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통의 시공간인 학교에서만큼은 차별없는 점심을 먹음으로써 무한경쟁의 폐해에서 작은 안식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것마저 용납할 수 없었던 ‘폭탄’ 홍준표가 의무급식 중단을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이 졸렬하고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이었지만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이니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용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거를 자행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최고의 심급은 대법원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의무교육 대상자에게 의무급식을 하자는 것은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홍준표는 이것마저 깨버렸습니다. 자신이 도지사에 당선된 것으로 지난 지방선거의 사회적 합의가 변했다고 주장합니다.



정말로 홍준표가 도지사에 뽑힌 것으로서 경상남도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는 변한 것일까요? ‘폭탄’의 주장처럼 종북좌파의 선동으로 의무급식이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일까요? 지금 경상남도의 상당수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는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국민이 손으로 뽑는데 방점이 있는 체제가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뽑은 지도자가 문제가 많다면 그를 끌어내리는데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는 나쁜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주민소환제(탄핵은 의회만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국민의 권리를 명시해두었습니다.





그 동안 몇 번의 주민소환제가 진행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경상남도의 주민들이 진행하고 있는 주민소환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회적 합의를 선출직 지자체장이 깰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라 그 의미가 대단히 막중합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라고 해도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이번의 주민소환입니다.



경상남도 주민들이 추진하고 있는 주민소환은 이 땅의 민주적 권력이 헌법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국민에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민소환의 성사 여부에 따라 그 파장이 전국으로 퍼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제왕적 지자체장에게 사회적 합의의 구속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주는 것이 이번의 주민소환입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시대적 소명이 있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이번의 주민소환으로 민주주의가 무한 퇴행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주민소환에 실패할 경우 의무급식을 넘어 복지담론의 무한 후퇴까지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주민소환에 성공할 경우 그 정치적 영향력은 대선에 못지않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보수의 성지라는 경상남도에서 우파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지자체장을 소환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에서 혁명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어떤 지도자도 주민의 뜻에 거스르는 일은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경상남도 주민들의 주민소환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일단 주심소환을 시작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아이를 볼모로 하는 차별적 정치에 분노하는 경상남도 부모들의 주민소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는,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해 반칙과 특권을 남발할 수 있는 배경이 된 최소의 민주주의를 그 본래의 의미대로 절대다수의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21세기의 무혈혁명이 경상남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열광적인 응원을 보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의무급식 중단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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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보 2015.04.10 13:26

    왜 공산주의도 아닌데 공짜 배급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공짜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상황이 불가항력적이지 않으면 공짜는 없어야한다. 아이들이 휴대폰 비용은 내면서도 점심값을 낼 형편이 못되는지도 의아스럽고, 결론적으로 공짜밥을 안준디고 모데를 한다면 나라가 망쪼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국가공무원들이 노조를 만든다면 이것은 언제든지 담합하여 국민들 위에 설수있는데 이런 공무원들이나 주민이 소환해서 혼을 내줘야하는거 아닌지, 홍지사가 시대적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지 원론적으로 틀린말은 아니다. 경남주민들도 뭐든지 단체로 떠들면 해결된다는 도덕적헤이에 빠져있다. 동서남북을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 늙은도령 2015.04.10 16:04 신고

      공짜로 하는 것 수두룩합니다.
      어느 나라도 공짜없이 돌아가는 곳은 없습니다.
      선물도, 부모님 용돈도, 형제 도운 것도 다 공짜인데 이는 자본주의로 따지면 공산주의적 행태입니다.
      복지와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없어요.
      최초의 국민복지를 한 사람도 보수 정치인의 롤 모델인 비스마르크입니다.
      세계역사를 정확히 알고, 복지의 역사도 정확히 알기를 바랍니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백 퍼선트 의무급식하고 있고, 미국의 주들도, 캐나다도 의무급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3. 행복 2015.04.10 13:46

    경남도민입니다.화이팅입니다.꼭 소환하러갑니다!!!

  4. 일보 2015.04.10 13:47

    홍지사가 종북 운운한 것은 좀 성급한 면이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알다시피 중국에 있는 사이버테러 전담부대가 있다. 남한에 고정간첩이 5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평소에 하는 일이 무었인지 국민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민심을 교란하고 이간질하여 국론을 분열 조장하려한다. 이것이 북한의 대남전술전략이다. 물론 일부 얼빠진 정치인들이 이것을 교묘히 북풍으로 이용한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실체는 존재하고 상당히 위험적이다. 북한이 긴세월동안 활동한 덕에? 남한에는 이상한 기류까지 흐르고 있다. 아예 정부를 대놓고 믿지 않으려 하는 풍조이다. 단연코 말하는데 북한은 절대로 믿을수 없는 집단이다. 어느날 갑자기 복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공짜밥을 주는 것이 화두가 되었고 반대를 하면 오히려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가 되는 것도 자유민주국가에서 상당히 위험한 부분이다. 왜 공짜밥을 먹어야하고 먹어려하는지 생각 해 봐야한다. 사람의 본능에는 좌파,우파 성향이 동시에 존재한다. 좌파은 공산주의 학습에 의해서도 자연 발생적으로도 될수가 있다.

    결국엔 좌파 공산주의 사상은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시대에 맞지않는 이데올려기로 이땅에서 종말을 고 했다. 검증이 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짜배급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좌파의식인것이다. 이런 기류가 팽배 해 지면 사회는 좌파가 득세하고 결국엔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좌파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 이들은 이미 검증된 사상을 다시 시작 해 보려는 것이다. 과연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지를 깊이 고민 해 봐야한다.

    • 늙은도령 2015.04.10 17:15 신고

      정치학 공부부터 다시 하십시오.
      당신의 댓글 곳곳에 거짓과 허위사실이 들어있으니 그 증거들을 대십시오.
      대단히 위험한 댓글입니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5만명 운운은 김진태의 말을 옮긴 것으로 아는데 이는 국정원 등이 공식적으로 부인한 것으로 알고 있고 김진태도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확인해보고 다시 답글을 달기 바랍니다.

  5. 뻘갱이 2015.04.10 13:47

    종북좌파의 술수에 놀아나는 인물들이 참으로 많구나.

  6. 성회장 2015.04.10 14:03

    뇌물받아 먹을 돈은 있어도 무상급식할 돈은 없다

    • 늙은도령 2015.04.10 16:09 신고

      그렇지요?
      그런 돈만 거둬들여도 의무급식 저녁도 할 수 있는데.

  7. 빨치산 2015.04.10 14:13

    꽁짜 좋아하는놈들 땜에 나라망해

    • 늙은도령 2015.04.10 16:11 신고

      너 때문에 나라가 망해.

    • 박멀 새누리당 2015.04.12 08:22

      공짜는 MB정권과 새누리당이 진심으로 촣아했지 이 기생충들이 해먹은 돈이 얼마인지나 알고 지꺼리냐?

  8. 공짜싫어 2015.04.10 15:20

    "못참겠다, 주민투표하자"
    저 구호의 글씨체는 북한에서 많이 쓰는 것과 비슷한것같아요.
    공짜 좋아하지 마십다. 북한은 전부 공짜라고 하더군요.
    밥도 옷도 노임도 모두 공짜..
    종이나 노예도 모두 공짜죠.
    여긴 대한민국 자유의 나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10 15:53 신고

      스웨덴과 핀란드도 백퍼선트 의무급식한다.
      그들도 종북이냐?
      미국의 주들도 의무급식 늘리고 있다.
      그들도 종북이냐?
      캐나다도 의무급식으로 가고 있다.
      그들도 종북이냐?
      제대로 알고 댓글 달아라.
      허위사실은 캡처 고발할 생각이니.

    • 처유여현 2015.04.10 16:10

      세금 일년에 몇십만원 늘어나는 것도 convulsion하는 인간들이 공짜는 엄청 바래요. 그렇게 복지 복지 입만 나불대지 말고 서구처럼 세금 팍팍 내던지.....

    • 늙은도령 2015.04.10 16:11 신고

      바로 그거야, 세금 많이 거두면 돼.

  9. 7 2015.04.10 16:54

    꼭성공해서 홍준표 안보고 삽시다!

    • 늙은도령 2015.04.10 17:02 신고

      네, 그러기를 바랍니다.

    • 제우스 2015.04.11 11:18

      네 저도 공갑합니다 국회의원 4선 인데 국민들 경상도민이 사람으로 보이겠어요 시궁창속에 쓰레기로 보이죠

  10. BGG뚜벅이 2015.04.10 20:45 신고

    무상급식은 공짜급식보다는 보육의 부담을 부모에만 몰빵하는 것을 사회 전체가 부담을 나누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저는...

    • 늙은도령 2015.04.10 21:15 신고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이지요.
      가족에게 교육과 보육의 부담을 떠넘긴 것은 모든 책임이 개인과 가족에게 있다는 논리로 연결되니까요.

  11. 류중근 2015.04.11 07:56 신고

    '의무급식'이란 말이 제 가슴 파릇하게 떨게 하네요.
    반갑고 고맙고 즐겁고 뿌듯합니다.

    또 무혈혁명(?)을 감지했군요.
    '아베 일파'로 속칭하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보면서 배알이 뒤틀릴 때마다 그런 상상 했었거든요.
    '미치겠네! 도대체 후지 산은 언제 무너질 거야! 지진은 또 언제 들고 일어나 아베 나부랭이 쓸어갈 거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일본 안으로부터의 혁명!
    일본 밑으로부터의 혁명!

    그것을 꿈꾸었는데 그대 전하는 말씀 어찌 이리 제 응어리와도 상통할까요?

    이것 말로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치 기쁩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아차! 제가 제 글에 써먹으려고 이 페이지 일부를 그림으로 떠 갑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방문하셔서 살짝 터치해 주십시오.
    즉시 삭제할게요.

    • 늙은도령 2015.04.11 16:31 신고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용하십시오.
      복지란 정치적 결단의 문제지 결코 재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세제도만 제대로 정비하면 복지가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주민소환은 민주주의 진정한 저력입니다.

  12. 이바노프 2015.04.11 10:15 신고

    제생각이지만... 무상급식을 할돈이 어디 하늘에서 떠러지나요?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하는거죠.. 매달 무상급식으로 나가는돈만해도 한푼두푼만이 아니라 엄청난 금액으로 인해 자꾸 포기하는겁니다...
    세금을 내지안을려는 국민 에다가 국가에게는 바라는건 많고.....
    국가에게 바라는것이 많으면 세금을 더내야하는것이 아닐까요?
    이런 쓸때없는 것으로 인해 세금폭탄같을걸 맞는겁니다...
    국가의 빚은 늘어나고 말이죠..;;

    • maqtup 2015.04.11 12:12

      와 정말 이런 사람도 있었네요.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그럼 독일보다 높은 1년 정부예산은 어떻게 설명할거죠? 그런데도 복지는 10분의1도 안씁니다. 왜죠? 독일은 국민이 국가한테 바라는게 우리보다 적어서 그런건가요? 무상급식 들어가는 돈이 얼마데 더 세금을 내야한다는건가요? 외국과 비교해서 뭐라하실거 같은데 그럼 성남시와 비교해보시죠. 왜 성남시장은 무상급식에 산후조리원비까지 대주고 있는지를 한번 찾아보세요. 제 생각엔 님같은 생각이 안일한 생각인거 같네요. 정부편에서 국민은 그냥 굽신굽신 해야한다는 마인드. 답답하네요

    • 늙은도령 2015.04.11 16:34 신고

      바로 그겁니다.
      세금을 많이 내면 됩니다.
      유럽 수준의 세금만 거두면 됩니다.
      그들은 주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복지를 시작했어요.
      우리보다 훨씬 가난할 때였습니다.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500조를 넘었어요.
      한국의 해외도피처 금액이 900조에요.
      이명박이 날린 비용이 100조에요.
      방산비리, 기타 비리에 들어간 비용만 수십 조에요.
      이중에 하나만 제대로 정부가 했으면 의무급식 몇 십년 동안 할 돈이에요.

    • 이바노프 2015.04.12 00:34 신고

      그럼 한국보다 몇십배나되는 미국의 세금은 어쩔꺼죠????? 독일 말고 다른나라를보세요....;;

    • 늙은도령 2015.04.12 00:55 신고

      왜 실패한 나라 미국의 예를 따라야 하죠.
      우리는 지금보다 잘 살 수 있는데 미국처럼 온갖 불평등과 차별이 만연한 나라를 따라가야 합니까?
      미국의 주들을 연구한 책들을 보면 평등한 주일수록 행복도도 높고 범죄도 적었고 육체와 정신의 건강도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뉴욕처럼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주들은 불평등과 범죄, 행복도가 가장 떨어졌고 범죄율도 가장 높았습니다.
      비교를 할 때 왜 나쁜 것과 합니까?
      그러면 영원히 나빠지는 것만 추구할 것입니까?

  13. 행인1 2015.04.11 19:36

    제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걸 알아라. 초딩도 아니고 뭔 공짜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소리나하고...
    경제학원론 방금 첫장 본 경제학 새내기도 이딴 개소리는 안하겠네..
    세금 더 걷어서 복지하자고하면 세금 왜 더 내게 하냐고 서민층만 옥죈다 뭐다 그러고
    조세저항으로 세금 많이 못걷으니까 복지에 한계가 있는게 당연한데 왜 안해주냐고 징징...
    그러다 마지막엔 항상 나라에 도둑이 많아서 복지가 안된다... 이딴소리로 귀결...ㅋㅋㅋ
    이런게 너같은 애들이 말하는 자칭 '논리' ㅋㅋㅋ
    그냥 간단히 묻는건데 실제로 소득상위 10 프로가 전체 세금의 몇프로나 내는지 알고있니?
    이쯤되면 이제 이명박 22조 낭비 어쩌구하면서 또 '그돈이면 몇십년동안 무상급식 할수있는데...' 이런소리 나오겠지? ㅋㅋㅋ
    나라 예산이 어떤식으로 나눠지는지도 모르고 이딴소리해대는 애들이 좌파랜다...개망신이여...ㅋㅋㅋ

    • 늙은도령 2015.04.11 20:14 신고

      잘 모르면 그냥 입 닥치고 살아라.
      그럼 중간이라도 가니까.

    • 차경달 2015.04.11 20:26

      야 설득 할려면 지뎨루 해라 서론 본론 결론 없이 니 맘데루 씨부니지 말고 바보야!

    • 차경달 2015.04.11 20:26

      야 설득 할려면 지뎨루 해라 서론 본론 결론 없이 니 맘데루 씨부니지 말고 바보야!

    • 때려잡자미친개 2015.04.12 07:21

      너같은 덜떨어진 소리하는 인간은 어디 취직도 못한것이 분명하다 그냥 방에처박혀서 잠이나 자라

    • 신뢰와민주주의 2015.04.12 09:53

      경남도 1년 예산 7조 중 공공급식지출이 고작 643억입니다. 돈없는게 아니라 아이들 밥 주기 싫은거죠. 그 돈 어떻게 쓰나 봤더니, 가난증명서 열 몇장 제출하면 애들 보지도 않는 동영상강의 청강권이나 주더군요.

  14. 때려잡자미친개 2015.04.12 07:11

    서민 때려잡는 미친개는 교도소에서 인생을 마감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 밥그릇 뺐어가고 지놈은 비행기 1등석 골프접대 기업에 뇌물까지 이런 김정은 같은 놈

    • 늙은도령 2015.04.12 07:14 신고

      성완종 리스트가 아닌 주민소환제로 도지사에서 끌어내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습니다.
      부배와 비리로 물러나면 주민의 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5. 주는부자 2015.04.12 07:26

    저따구가 경남 말아먹고 나라 비벼잡수기 전에 막아야 됩니다.

    • 늙은도령 2015.04.12 07:37 신고

      네, 반드시 주민소환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경남도민의 위대함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멀리서 응원합니다.

  16. 후후 2015.04.12 08:20

    너무 글 잘쓰셨네요..속이 다 후련합니다

  17. 신뢰와민주주의 2015.04.12 09:37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공동구매를 위한 것이다. 함께 세금을 걷어서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저렴하면서도 고품질로 이용하고자 함이다. 교육 의료 주거 노동보험...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분야들이 그렇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낸 만큼 돌려받는다'는 시민과 국가의 상호신뢰죠. 그런의미에서 무상급식이니 무상복지니 라는 말부터 없애야 합니다. 우리세금 우리가 누리는데 왜 무상인지. 그리고 빈부가리지 않고 세금감면혜택은 줄여야 합니다. 세금은 어차피 부자일수록 누진적이죠. 당장 몇푼 감세가 좋아보이지만, 그리되면 과도하게 많이벌고잇는 극상류층들의 납세의무를 제대로 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 신뢰와민주주의 2015.04.12 09:48

      복지시대의 정치인, 제대로 고르려면 두 가지 기준을 채워야 합니다. 첫째는 감세를 외치지 말 것. 조세저항을 뚫겠다는 용기가 있어야 시민들이 집사고 애키우다가 노후엔 폐지줍는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국가재정에 대한 공부입니다. 한국 재정은 공부하기 쉽습니다. 총GDP는 1천조, 정부재정규모는 300조 정도라고 이해하면 얼추 맞거든요. 여기에서 복지에 투자되는 비용은 고작해야 30조. 반면 재벌및대기업 감세는 지난 7년 여 동안 100조, 매년 땅파고 도로깔고 투기건물세우는 토건지출이 60조. 와닿지도 않는 창조경제 육성에는 이번 정부 임기 동안 무려 100조 투자 예정... 300조 중 60조는 복지에 써야 우리가 낸 세금, 우리가 기여한 경제적성과를 돌려받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90조. 100조까지 교육주거보육 근로복지에 넣는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증세와 복지지출강화. 이 두가지를 약속하는 정치를 기대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12 16:49 신고

      네, 맞습니다.
      보편적 누진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하게 되면 모든 국민이 면세점 이상이 됩니다.
      그러면 국가의 재정은 늘어나고 경제는 선순환에 들어섭니다.
      북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이 이런 방식을 통해 부유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할 것은 그런 성공한 나라의 경험입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지식과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18. 김성주 2015.04.12 15:40

    공짜 밥 반대입니다
    무상급식 반대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12 16:49 신고

      허허..

    • 의무급식 2015.04.12 22:37

      공짜밥? 의무교육에 의무식사 제공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당신 논리라면,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대중교통 공짜표가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무 논리없이 정치적인 문제로 끌고 가지마라. 당신같은 논리 펴는 쓰레기 같은 사고를 가진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19. lifephobia 2015.04.12 22:55 신고

    꼭 성공했으면 합니다.

  20. 늙은꼰대 2015.04.12 23:45

    앜ㅋㅋㅋ 이런글은제목만보고도누르지말았어야했어...거창한 단어 비장한 말투 문어체 사용... 알맹이없이 폼만 잡아놓고
    당신글에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해달라니... 그냥지나치면되는글임에도댓글을이리길게쓰는건... "일일히 반박해드릴테니"라는 당신의 허세에 도발되어 글을 남깁니다
    내시간과감정을허비한게 내세금낭비하는것만큼이나 아깝네요
    무슨말을해도 내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당신과 똘마니들이
    진정한토론? 민주주의? 를 오히려 오염시키고있는것은 아닐지 고민해보세요

    ....교육이 계급영속의 수단이되는 현실을 타파하라고 전교조 지지했더니
    돌아온건 당신의 반민주적 표리부동한 모습처럼
    자기
    내로맨스를 누가 감히 불륜이라고하는가!?ㅋㅋㅋㅋㅋ 지나한 테제... 다른이를 비판하는쾌락에빠지게되면
    마치 나는 절대선인것처럼 착각하게됩니다
    오바좀더하면
    전쟁같던그시절에 친일 친군부 세력이 스스로를 기만하는것과 뭐가다른가요?

    당신은 바라는거없이 아래를 보듬어주는 살아있는 지성이라는점에서 다른가요?

    아니요. 자기기만속에서 나와다른이를 억압하려는 폭력적인 논리는
    정의 코스프레로는가려지지않습니다

    50보100보

    아 짱나게... 내가왜이런꼰대에게 시간을허버한거야...

  21. 늙은꼰대 2015.04.12 23:45

    앜ㅋㅋㅋ 이런글은제목만보고도누르지말았어야했어...거창한 단어 비장한 말투 문어체 사용... 알맹이없이 폼만 잡아놓고
    당신글에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해달라니... 그냥지나치면되는글임에도댓글을이리길게쓰는건... "일일히 반박해드릴테니"라는 당신의 허세에 도발되어 글을 남깁니다
    내시간과감정을허비한게 내세금낭비하는것만큼이나 아깝네요
    무슨말을해도 내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당신과 똘마니들이
    진정한토론? 민주주의? 를 오히려 오염시키고있는것은 아닐지 고민해보세요

    ....교육이 계급영속의 수단이되는 현실을 타파하라고 전교조 지지했더니
    돌아온건 당신의 반민주적 표리부동한 모습처럼
    자기
    내로맨스를 누가 감히 불륜이라고하는가!?ㅋㅋㅋㅋㅋ 지나한 테제... 다른이를 비판하는쾌락에빠지게되면
    마치 나는 절대선인것처럼 착각하게됩니다
    오바좀더하면
    전쟁같던그시절에 친일 친군부 세력이 스스로를 기만하는것과 뭐가다른가요?

    당신은 바라는거없이 아래를 보듬어주는 살아있는 지성이라는점에서 다른가요?

    아니요. 자기기만속에서 나와다른이를 억압하려는 폭력적인 논리는
    정의 코스프레로는가려지지않습니다

    50보100보

    아 짱나게... 내가왜이런꼰대에게 시간을허버한거야...



궁색해진 ‘폭탄’ 홍준표가 무상급식(이하 의무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했습니다. 이런 논리 제로의 똥 같은 발언이 나올 수 있는 것은 홍준표의 무(無)논리를 증명할 뿐, 종북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폭탄’의 말이 사실이라면 100% 의무급식을 하는 스웨덴과 핀란드도 종북세력이 집권한 국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31조, 교육기본법 제8조, 초중등교육법 제12조는 “초·중등 교육은 의무교육이고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상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법에서 정한 수업료‧학교운영비를 넘어 급식비‧교재비‧기숙사 제공까지 넓어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입니다. 



스웨덴과 핀란드 외에도 20개 이상의 국가가 국공립의 경우 의무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국공립은 의무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의무급식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의무급식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드는 의무보육을 늘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의무급식을 포함해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에 관한 문제이지, 종북 운운하는 이념적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폭탄’이 의무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상=사회주의’라는 고정관념보다 유별나게 사립학교가 많은 대학민국의 특징이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의 경우 중학교의 24.85%, 인문계고등학교의 51.5%, 실업계 고등학교의 41.8%가 사립학교입니다. 스웨덴과 핀란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사립학교의 경우 의무급식을 저소득층에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의무급식을 반대하는 측은 이런 나라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점심 제공이 필요없는 반일제 교육을 시행하는 국가들도 많고, 네덜란드는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먹고 오고,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등 개인적 차이 등 때문에 의무급식(정확히는 학교급식)을 반대하던 캐나다도 아이들의 균형잡힌 건강과 학교급식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해 의무급식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을 예로 들며 의무급식 반대를 논하는 것은 사실 왜곡입니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사립학교의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받지 않고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사립학교를 보내겠다는 부모들에게는 의무급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자신의 자식에게 돈지랄 하겠다는 부모의 선택까지 제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립학교를 강제적으로 국공립으로 전환시킬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의무급식 갈등을 종지부 찍으려면 법률을 개정해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무교육의 내용을 결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논리의 ‘폭탄’처럼 자신이 꼴리는 대로 하고 보는 보수 꼴통의 망나니짓을 막으려면 법률로 강제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서로 보완적이기도 하지만, 서로 적대적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자들일수록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삽니다. 선거로 뽑은 자들을 끌어내리는 주민소환제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폭탄'의 망나니짓을 막으려면 법률로 강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고, 자유에 대한 이해가 형편없는 나라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큰 것을 이루고, 사회경제적인 평등이 높아질수록 자유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가르치려면 국가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헌법과 법률로 강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폭탄’ 같은 꼴통들은 사회적 합의마저 무시하기 일쑤니, 선거를 잘해 법률을 개정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헌법까지 바꿀 수 있고, 국민의 뜻에 반하는 통치를 하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국회의원 수(2/3)를 확보할 수 있다면 최상이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03 08:28 신고

    진보개혁세력들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자신들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가 안 됩니다.
    수구기득권은 자신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됩니다.
    집권 후에는 자신들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립니다. 자신들 배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말했습니다. 선거는 담론투쟁이 아니라 권력투쟁이라고.

    • 늙은도령 2015.04.03 17:17 신고

      저는 문재인 대표가 내부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외연확대에만 매달리다 보면 집토끼들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함량미달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진보가 분열하는 것은 내부결속력이 약해서인데, 자신이 옳다는 것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싸울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 못합니다.

  2. 참교육 2015.04.03 09:33

    경남 도지사는 주민소화해야 합니다.
    도지사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한 나쁜 인간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4.03 09:37 신고

    방법은 우선 선거를 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당장 눈앞에 선거도 야당 필패할것 같은 양상이니..

    • 늙은도령 2015.04.03 17:22 신고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숨어있는 표가 있습니다.
      문재인이 조금 더 담대하게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내부 단속도 하면서요.

  4. 뉴론♥ 2015.04.03 13:36 신고

    전 애들이 없긴 하지만 세금을 내는 처지라 무상급식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4.03 17:25 신고

      무상급식은 세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정부가 쓰잘 데 없는 일만 안 해도 남아 돕니다.

  5.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2015.04.03 20:55

    지금 현재에서는 저들에게 아무리 말해 보았자
    입만 아프고 만일에 실수라도 했을 경우는
    이를 빌미 삼아 오히려 역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말이 통해야 이것 저것 의논하며 이해라도 해보지만
    지금은 앞뒤가 꽉막혀있는 수구세력들 보다는

    먼저 건전한 시민사회들을 더 설득하고
    나아가 그 지역에 살고있는 도민들을 향하여
    수구세력들의 잔인성을 적 나라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도 방문해 주시고 댓글까지도 올려주신
    도령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 꼭 드리고 싶군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드림

    • 늙은도령 2015.04.03 22:19 신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 참 힘듭니다.
      청춘들이 투표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좀처럼 희망을 찾기 힘듭니다.
      산발적 저항은 저들의 면역만 높여주는데 그것을 돌파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민들이 좀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막상 투표장에 가면 관성적으로 투표하니 수구세력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마르크스로 칭송받으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예약해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부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공식을 통해 각종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자료가공도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피케티는 이런 오류에도 불구하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변함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빛을 바랜 것은 분명합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항상 앞서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피케티의 공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너무나 간단명료해서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류와 부정을 인정해야 하는 회복하기 힘든 수모를 자처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좌우의 경제학자들이 피케티 현상을 “자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자본수익률도 떨어진다는 기본 법칙을 고려하지 않아 시작부터 오류가 있었던 가설”이라고 일축하는 것과, “부의 불평등 해소라는 진보적 과제에 대해 ‘과학 공식’처럼 간단명료한 주장을 펴자 덮어놓고 찬사를 보낸 해프닝”이라고 꼬집는 것이 힘을 얻게 됐습니다(원래 비판만 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피케티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없었던 필자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피케티를 보면서 마르크스적 오류가 떠올랐습니다. 마르크스적 오류란 뉴턴역학이나 다윈의 진화론처럼 현실경제를 단순명료하게 나타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지나친 추상화(단순화)에 매몰되는 것을 말합니다.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 헤겔의 변증법과 블랑키의 사상(당시에는 마르크스보다 영향력이 있었다. 일찍 죽지 않았다면 마르크스와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다)에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초기에 그것의 전체 역사를 예측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역사결정론)으로 단순화시키는 추상화의 오류(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에 빠졌습니다. 



순수한 자본주의라면 마르크스의 설명이 정확하고 이를 능가하거나 부정할 방법이 없지만, 현실의 자본주의는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베르그송 정도의 물리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완성하지 못한 《자본론》 4권에서 이런 오류들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어서 너무나 아쉽기는 합니다.





마르크스는 정치와 과학기술, 언론, 종교, 문화, 교육, 철학, 제도, 법, 관습, 전통 등을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치부했지만, 정치적 기술(마키아벨리적 추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현실의 자본주의는 그의 성찰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푸코의 지적처럼 마르크스의 성찰로 양자역학이나 분자생물학, 인문과학 등의 발견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라는 하부구조와 시장에서의 교환과정에 집착하는 바람에 상부구조를 이루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폴라니의 지적처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현실경제의 다양성과 지배적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합의를 무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성찰이 대체적으로 옳음에도 레닌의 경우처럼 실제현실에 부딪치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치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칼 포퍼, 한나 아렌트, 울리히 백 등의 현실성 높은 비판들을 반박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반면에 모순과 오류투성이의 경제학인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통치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와 모든 규제를 부정하는 시장근본주의를 통해 국가의 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을 동시에 풀어냈기 때문입니다(미셀 푸코와 노엄 촘스키 등이 명료하게 설명했다). 



신자유주의가 체계화되고 일관된 논리가 관통하는 과학적인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의 힘을 빌린 현실적인 통치학이 된 것도 국가의 두 가지 성향을 꿰뚫었던 데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와 레이건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무소불위의 통치술로 격상됩니다. 



자본주의(특히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에 대한 피케티의 공식이 대체적으로 옳지만, 우주의 원리를 하나의 공식에 담아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E=MC2로 압축된다)처럼 단순화된 공식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부의 불평등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화(진리와는 다르다)의 속성상 근본주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의 개념을 극도로 단순화한 유일신 사상이 배타적인 근본주의로 빠져들어 폭력을 양산(십자군전쟁, 좌우의 전체주의, 

미국의 제국적 탐욕, IS의 테러 등)하는 것처럼, 단순화가 극에 이른 모든 근본주의는 이분법적 세상에서만 유효합니다.



진보좌파가 마르크스적 오류에 빠지면 보수우파의 꼴통과 동일해지는 것도 단순화의 속성인 근본주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김기종의 광기도 민족근본주의에 뿌리하고 있으며, IS의 테러도 이슬람근본주의에 뿌리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탐욕도 시장근본주의에 뿌리함은 상식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 등을 접하지 못한 마르크스가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근대를 지배한 두 가지)에 기반한 추상화와 결정론에 빠졌다면, 피케티 또한 자신의 공식에 빠져 피케티적 오류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21세기의 마르크스, 피케티의 오류 인정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입니다. 현대경제학이 최소한의 밥값이라도 지불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피케티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피케티가 5월에 전문이 공개될 <21세기 자본에 대하여>에서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자신의 공식을 어떻게 수정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주의 원리를 파악하는 통합이론의 발견에 실패한 아인슈타인처럼 피케티도 부의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는 공식 발견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몇 개의 공식으로 현실경제와 부의 불평등을 풀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피케티의 능력과 보수적 시각에서 진보적 시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볼 때, 그가 마르크스의 성찰에 근접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경제학을 설파해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한 맨큐에 비하면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피케티의 성찰은 오류를 통해 현실경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 해도 21세기의 참담한 현실로 위대한 마르크스를 불러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습니다. 



5월에 전문이 공개될 <21세기 자본에 대하여>가 기다려집니다. 아울러 후속 연구가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부의 불평등이 세습자본주의로 전환되고 있다는 발견만으로도, 그래서 글로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도 피케티의 성찰은 인류의 공존과 공생에 한 가닥 빛을 선사하는 거대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피케티가 마르크스에 견줄 만한 위업을 이루기는 힘들었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근접하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늙으면 2015.03.12 07:45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불평등을 체험하는 인간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위대함을 모르지만 비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절대적빈곤을 겪은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잘 알지요

    • 늙은도령 2015.03.12 14:46 신고

      경제학과 빈곤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네요.
      님의 댓글과 정반대가 사실에 부합하죠.

  2. 참교육 2015.03.12 09:41

    저는 세종시 국립도서관에서 저 책을 보고 너무 많은 분량이 엙을 엄무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왔습니다.
    언제 시간 내 읽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소활 수 있는 역량이 될런지....

    • 늙은도령 2015.03.12 14:46 신고

      피케티를 읽기 보단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보는 게 낫습니다.

  3. 졸리다 2016.01.01 02:35

    저는 그냥 불평등이 왜 문제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합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질투를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 동물이 그렇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야생동물이 먹이를 가졌을때 상대를 질투하는 메커니즘이 가동됩니다.
    그 질투는 공격성을 발휘하고 상대의 먹이를 빼앗아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생존하도록 유도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상대의 음식, 아름다운와이프, 연인, 돈, 자동차, 집등등 다양한 욕구에 맞춰 질투를합니다.

    실제 삶은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비교를 하게됩니다.
    애초에 불평등이 문제가되는건 인간의 이런 진화과정에 습득된 공격적인 메커니즘이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꾸준히 발전하고 삶의 질이 좋아져도. 인간의 이런 공격매커니즘은 여전히 유전되어오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근본원인은 인간의 본능이라고봅니다.
    평등한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거라봅니다.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욕망을 추구할테니까요.
    다행스럽게도 법이란게 있다는것이 천만다행이라고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사유재산은 고사하고 서로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살육을 할테니까요.

    과거는 대체로 평등했습니다. 물론 계급제였긴했지만.
    대부분이 노비고 잘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평등하지만.
    계급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노비들 가운데 열심히 노동을하든 머리를 잘굴리든 장사를 잘하든.
    이중에 결국 잘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할겁니다.
    확실이 이런 상황이 되면 불평등이 눈에띄게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나쁜 현상인가? 라고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으로 봅니다.

    근본적으로 뭐가 평등한것인가?를 따지고들어가보면.
    평등을 목표를 하는 사회는 대부분 실패할거라봅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욕구와 평등의 정의,가치가 전부다르기때문입니다.
    월급, 차량의수, 집의수, 집의평수, 명품브랜드, 화장실갯수, 이쁜와이프, 잘생긴남친 등등 끝도없습니다.
    애초에 나는 힘들게 노동해서 한달에 200버는데 너는 왜 앉아서 1억 버느냐 등등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질투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현 불평등을 사회문제만으로 보기보다는.
    과거와 비교해 어느정도 문명이 진보하였고 편리해졌고 전체적인 부가 늘어났는지 질적인 측면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평등을 문제삼아 잘사는 사람들을 끌어내린다고 가정해본다면 오히려 문명의 진보는 정체된다고 봅니다.
    좋으나 싫으나 문명의 진보를 이끈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를한 기업가들입니다.
    불평등하다고 공격목표를 기업가들로 방향을 잡아버리면 문명의 진보는 그것으로 끝이라고봅니다.

  4. 졸리다 2016.01.01 02:54

    아마 대표적인게
    단통법,도서정가제 같은 규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쟁,할인을 금지시켜 모두다 동일한 가격에 사도록하면
    확실히 평등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싸진다는겁니다.

    이런 현실적인 사회현상을 접해보면.
    평등은 무조건 옳다 또는 다수에게 이익이된다라는 논리는 오류라고 봐야될거같습니다.

    이걸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로 보면
    평등이 과연 경제발전과 경제주체 다수에 질적인 이득을 가져올까?
    아니면 평등의 댓가로 중요한 많은 것을 잃지는 않을까?
    충분히 의심해볼 근거가 있다고봅니다.



미국식 대량 소비 경제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면 지구 같은 행성이 여러 개 필요하다...우리가 알고 있는 개발 모델은 자기 파멸적 모델인 것이다.


                                                                 ㅡ 필립 맥아이클의 《거대한 역설》 중에서



사회적으로 위험과 모순은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그것들을 해결할 의무와 필요는 계속 개인 차원의 문제가 되어간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 중에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근대이성의 동의어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시민이 상위층을 형성하고 있었던 귀족계급에 대항해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넓혀가려면, 그전에는 시민들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제도적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세금을 냄으로써 투표권을 획득했고, 참전을 하면서 투표권을 확대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의회에서 자신의 제도적이고 법적인 권리를 대표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과 노동의 분업으로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강화됐다. 지식의 보편화에 따른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고, 베이컨에서 데카르트를 거친 근대이성이 칸트의 관념론으로 완성되며 이성이란 종교는 신을 대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후 시간의 발견(역사)에 힘입은 헤겔이 계몽의 변증법과 시민사회를 정립했고, 이로써 무한한 진보와 결과의 낙관론이 이성의 폭주를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진보의 낙관론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팽창 일변도의 중상주의를 통해 식민지 침탈과 세계시장 구축을 위한 금본위제가 정립됐고, 대도시의 발달과 중농주의의 확산과 함께 식민지 팽창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근대(국민)국가가 탄생했다. 거대 관료제와 식민지 자산을 지킬 수 있는 경찰력을 지닌 근대국가의 발전은 식민지 팽창을 넘어 세계적 차원의 시장 구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유무역이라는 최초의 세계화가 서구패권주의의 닻을 올렸다(푸코의 《주권, 영토, 인구》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라).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귀족과 노동자 사이에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제3신분)들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독점함에 따라 자유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돈이 곧 권력인 경제체제이고, 자유시장은 이를 실현하는 유일한 매개체이며, 이것들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무한경쟁을 추동해 부의 독점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주의와 국가이성, 자본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결합물인 신자유주의다.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데 그것은 부와 기회와 권력의 독점을 위한 인간의 놀라운 탐욕이다. 한 세대 만에 벼락부자가 된 시민사업가와 소수의 금융가들은 인간의 탐욕을 축으로 삼각편대를 이루게 됐다. 필자는 이를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탐욕의 삼위일체’라 명하는데, 이때부터 양적 성장을 주도하는 파시즘적 속도의 폭주가 시작됐다. ‘개발과 성장의 역설’에서 볼 수 있듯이, 비대칭적 종말이라는 작금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무엇으로도 이들의 폭주를 제어할 세력이나 주체는 없었다. 거의 10년마다 경제공황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1929년과 2008년의 대공황을 일으키며, 세계경제를 파탄의 질곡으로 빠뜨렸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탐욕의 삼위일체’의 역사를 보면 현재의 절망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무한 진보에 대한 믿음을 먹고 사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과학기술과 경영의 합리화 및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통해 견인된 산업과 국가의 발전 단계를 활용해, 인간과 사회와 국가의 조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문화와 종교, 교육과 철학 등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종교혁명과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에 고무된 ‘탐욕의 삼위일체’는 자본 축적을 위해 본격적인 팽창을 시작했지만 곳곳에서 현실적 제약에 부딪쳤다. 이들은 최종목적인 거대한 부를 통한 영원한 지배에 이르려면 그들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첫 번째, 노동 분업으로 급상승한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집중화된 공장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대량생산된 제품을 시장(소비자)에 보내기 위한 물샐틈없는 연계망 구축이 필요했다.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과도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수요의 연결망이 필요했다. 이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도시국가 차원에 머물러 있던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제임스 베니거의 《통제혁명》과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를 보라).



결국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인프라(철도, 도로, 항만 건설 등이 대표적)를 구축하려면 국민의 세금이 필요했고, 정부가 보증하는 금융지원(유대계 자본의 수중에 있었던)이 필요했다. 막강한 행정력과 공권력을 독점하는 중앙집중적이면서도 친산업적이고 친금융적인 국민(민족)국가와 자유주의를 내세운 권위주의적 정부가 필요했다. 이런 시장 중심의 이중사회의 구성에 대해 칼 폴라니는 정치경제학의 기념비적인 저서,《거대한 전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은 인간의 삶을 두 영역으로 ‘파편화’시켜서 사람들의 시야를 크게 좁혀버리니, 첫째는 생산물이 시장에 도착하면서 종결되는 생산자의 영역이요, 둘째는 모든 재화를 시장에서 가져오는 것에서 시작하는 소비자의 영역이다. 생산자는 자신의 소득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얻으며, 소비자는 시장에서 자신의 소득을 ‘자유롭게’ 지출한다. 이 틀에서는 전체로서의 한 사회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게 된다. 국가권력이란 존재 이유가 없다. 국가 권력이 적을수록 시장 메커니즘이 더 원활하게 작동할 터이니까.



(푸코의 <주권, 영토, 인구>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네그리의 <제국>, 바우만의 <액체근대> <유동하는 공포> 등에서 보충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습니다).



원했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한 ‘탐욕의 삼위일체’는 전 세계적 시장 구축과 소비의 팽창을 담보할 무제한적인 신용 창출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빚도 자산’이라는 악마의 경제이론ㅡ로스차일가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이 온갖 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독점하고 있었던 합법적 고리대금업ㅡ이 탄생했다(세계화와 금융에 대한 스티글리츠와 라잔 및 퍼거슨의 저작들을 참조할 것).






두 번째로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생산을 담당할 건강하고 숙련된 남성노동자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남성 노동자의 품질을 보장하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과 함께, 업무에 지친 노동자를 재충전시킬 수 있는 안정적인 가족제도가 필요했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생산은 증대될 것이기에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에 맞게 부인이 가사와 교육을 맡는 가부장적 1부1체를 법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었다(특히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감옥의 역사》,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루이스 멈포드의 《유토피아 이야기》를 보라).



여기서 중상주의로 대변되는 상업자본(초기 산업자본 포함)과 국민국가와 기독교가 손을 잡았고, 그 사회학적 기원은 막스 베버에 의해 합리적인 이성의 산물이자 자본주의적 종교규범으로 잘못 해석된 루터와 칼뱅의 청교도정신이었다. 헌데 노동 분업의 정교화와 조립 라인의 발전(자본주의의 전성시대는 숙련된 직원의 이직을 막기 위해 두 배의 임금을 주고도 이익이 넘쳤던 포드의 노동 분업으로 통한 대량생산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에 따라 남성노동자의 숙련도는 임금상승의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윤의 극대화가 유일한 목표인 자본의 입장에서 숙련된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질수록, 숙련의 필요성이 단순 작업으로 대체될수록, 이들을 대체할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했고, 이런 필요를 해소하기 위해 부분적인 여성의 해방이 필요했다. 다음 세대의 신규 노동자가 될 자식의 숫자도 시장규모에 따라 조정될 수 있어야 했다(마르크스 사상의 해석에 집중했던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 같은 초기 저작과 <제국>과 <다중>처럼 하트와의 공동저작, 퍼트넘의 <혼자 볼링 하기>를 참고하라).





세 번째로 고전물리학적 발견(우주는 하나의 법칙에 의해 질서정연하다는 것으로 뉴턴 역학이 핵심이며,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표되는 것으로서 이 세상이 정해진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두 개의 과학적 발견에 의해 무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에 기반해 무한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필요했고, 칸트와 헤겔과 니체가 이를 사상적으로 풀어주거나 정반대로 나갔다. ‘장기간에 걸친 자연선택’이 핵심인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저서 《생물학 원리》에서 ‘적자생존(진화의 ‘승자’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적자’라는 개념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식민지약탈과 대량학살 및 승자독식의 원리로 변질됐는데, 정작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에는 ‘변종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나와도, 적자생존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이 승자의 철학이 되는 적자생존으로 번역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의 진화론’을 주장한 허버트 스펜서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보편적 영역으로 올려놓았다.



이때부터 진보는 퇴보로 전향했지만 사람들은 언어마저 상품화하는 ‘탐욕의 삼위일체’의 농간에 200년 가까이 이를 알지 못했다. 이로써 중앙집중적인 국민국가와 자연과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가능해진 무한 진보를 역사의 필연으로 수용한 사회,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임금으로 계산되지 않는 여성(특히 전업주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규범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구축됐다.



마지막으로 게오르그 짐멜이 《돈의 철학》을 통해 산업사회와 화폐경제의 필연성이 소비지상주의와 개인주의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불길한) 성찰이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사회와 가족의 해체 및 1인가구의 확대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국가와 사회, 가족과 개인까지 산업발전에 따른 문명의 재구축이 완료됨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에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사전 준비가 마감됐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건는다산 2015.02.07 03:21 신고

    탈산업이 진행되며 기존의 세력들은 더욱더 공고히 부를축적하는반면, 개천에서 용나려는 사람이 정당한 노력으로 부를 모을수 있는상황이 되더라도 보수적분위기상 그것을 용납하지않는다.. 라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봤어요.

    역사를보아오더라도 피해받는것은 서민. 결국 귀결되는것은 폭동. 전쟁..

    저는왜이렇게 대한민국 미래가 암울해보이는걸까요

    • 늙은도령 2015.02.07 03:35 신고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면 본격적인 반격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국민의 상당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대대적인 반격이 있을 것입니다.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저도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힘냅시다!!!!!!!!

  2. 건는다산 2015.02.07 04:35 신고

    ㅎㅎ저는사실 진보도보수도 그여느쪽 성향이 있는것은아니지만 이번정부는 너무 노골적이라 정치적성향이 생겨버릴것같기도하네요

    누군가가 나서서 견제해야만할것같아요

  3. 건는다산 2015.02.07 04:36 신고

    심심풀이 정치성향테스트 제블로그에올려두겠습니다~심심하실때한번 해보셔요!

    • 늙은도령 2015.02.07 05:52 신고

      네, 들려서 카피해 해보겠습니다.

    • 공수래공수거 2015.02.07 09:08 신고

      저두 짬을 내서 해 봣는데요
      아주 흥미 있군요
      저는 제3의길 부분이 가장 넓네요 ㅎ

    • 건는다산 2015.02.07 12:54 신고

      저는모든영역 고르게나왔지만 저ㄸ‥한 제3의길이 근소하게크긴해요.

      답하기너무어려운 문항도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을 더많이가져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식물류와 마찬가지로) 동물류 그 자체에서도 다른 동물을 희생시킴으로써 살아가는 동물이 많이 생겼다. 실제 동물적인 유기체는 움직일 수 있으므로 그 운동성을 이용하여 무방비적인 동물을 찾으러 가서, 식물을 먹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먹고 산 것이다. 이렇게 종이 더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탐식하게 되고 서로에게 위협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불변의 진리로 신격화한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만연할 때는 「창조적 진화」에 나오는 위의 인용문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이 정치에서도 불변의 진리처럼 떠받들어졌습니다. 16대 대선에서 뛰어난 돌파력과 창조력을 발휘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넓히며 서민을 옥죌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시민들은 변화를 바랐고, 그것이 노풍으로 자라났습니다. 



그가 외친 것은 반칙과 특권이 없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세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던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경계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주변에 몰려든 것도 그가 꿈꾸었던 세상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제대로 이루지 못한 과거사 청산과 기득권 위주의 세상을 바로 잡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그를 통해 다시 구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노무현의 승리 요인은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도움도 컸지만, 좌파몰이와 ‘빨갱이 논란’을 일으켜 노무현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던 조중동(집권 후에는 진보매체들도 노무현을 비난했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모두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향이 제일 문제지만)에 정면으로 맞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은 뚝심과 탁월한 공격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정치가 말’이라면 노무현은 어떤 장애도 돌파할 수 있는 설득력과 공감능력을 지닌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공격은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다...대체로 생명 전체의 진화에 있어서도 인간 사회의 발전이나 개인적인 운명의 전개와 마찬가지로,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노무현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하는 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조중동의 영향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중에 노무현은 혈혈단신으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도전을 훌륭하게 치렀고, 이에 감동한 국민들이 ’돼지저금통‘으로 노무현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극적인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서민적 언어와 감성의 소유자인 노무현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문재인이 있었고요.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가장 피상적인 원인을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을 세계 안에 발사한 추진력이다. 그 추진력은 식물과 동물을 분열시켰고 동물성을 유연한 형태 쪽으로 향하게 하였으며, 동물계가 잠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던 어느 시점에 이르자 적어도 약간의 부분에서는 그들로 하여금 깨어나 전진하도록 하였다.”



「창조적 진화」에 나오는 또 다른 인용문처럼, 노무현의 탁월한 돌파력이 생성한 노풍이라는 신드롬은 ‘특권과 반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