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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민표창 양비진쌤' 마지막 회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다른 것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마십시오. 오직 '시민표창 양비진쌤'의 마지막 회가 될 수 있는 어제의 팟캐스트만 참조하십시오. 범야권 공영방송을 지향했던 팟캐스트가 반도 못하고 중단된 것이 현재의 상황을 말해줍니다. 저는 총평만 올리는 것으로 독자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야권 전체의 폭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머리가 텅 비고, 가슴이 휑하니 뚫린 것만 같습니다.  ·





표창원은 정치에 대한 형편없는 이해와 친노·운동권에 대한 표피적인 반감 때문에 김종인과 별반 다르지 않는 어리석고 멍청한 논리만 되풀이했습니다. 거대정당인 더민주 밑으로 다 기어들어오라는 그의 주장은 논리도 허술하고 비약도 심하며, 무엇보다도 교만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프로파일러의 특성 때문인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범죄자를 향한 그런 것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표창원은 보수 특유의 엘리트주의가 너무 강합니다. JTBC 밤샘토론에서 이준석에게 휘둘린 것이 그의 한계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평등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체제임에도 표창원은 '니들에게 선택지가 있어. 더민주 안 찍으면 어떻게 할 텐데. 집권 능력도 없는 정의당에게 몰표를 줄 수 있겠어'라는 투의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제1야당이라는 기득권을 주장하는 선에서 모든 논지를 펼쳤습니다. 



김종인 체제의 비대위원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고려한다고 해도 표창원의 인식체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대단히 위험한 것들이 많아, 그에 대한 지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불평만 할뿐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향한 정치초년병의 분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그의 발언들은 언제든지 제2의 김종인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현실정치의 경험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변하고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를 지지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시민표창 양비진쌤'을 청취하면서 계속해서 거슬렸던 부분이었는데, 표창원은 마지막 방송에서조차 변함없는 우월적 지위를 강조하며, 유권자들을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압박을 거둬들이지 않았습니다. 리틀 김종인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양정철은 전체적으로 옳으나 IMF 이후 세대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합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가끔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실언을 할 때가 있었는데, 양정철의 발언에서 그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김종인의 비례 2번을 인정하자는 조국과 문성근의 뜬금없는 트윗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양정철이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예수의 12제자들이 보여준 어리석음이 양정철에게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진중권은 드디어 사태의 본질에 다가섰지만 늘 그렇지만 논리가 비약하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사표방지심리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아쉬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그가 사표방지심리를 뒤엎어버리자는 분노의 표현은 정확하고, 미래세대에게 단 하나의 길도 열어주지 않는 저 지랄 같은 꼰대들의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유시민은 현 상황에 대해 완벽한 이해와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볼 때 현실정치를 떠나 작가로서의 경험이 그를 거듭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는 늙은 꼰대들의 생각을 관통하고 있으며, IMF 이후 세대들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솔직히 유시민은 비판할 것이 없는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정의에 이르는 분노의 참모습이 그의 발언에는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흘러다녔습니다. 



특히 야권 전체가 폭망하자는 '혁명적 파괴주의'는 필자가 가장 걱정했고, 어떻게든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글을 썼던 것인데, 민주주의와 진보적 가치를 주창했던 더민주 지지자들이 '이기고 보자는 전체주의적 선택'에 열광하는 지켜보면서 '혁명적 파괴주의'가 승리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던 친노·운동권과 청춘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몇 편의 글에서 '전체주의적 억압과 감시 하에서도 삶은 지속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혁명적 파괴주의'와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권자의 사표방지심리가 투표의 날에는 더민주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김종인 비대위체제의 오만방자함에 멋진 카운터펀치를 날려야 한다는 진중권의 분노 표출과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지난 날의 혁명들이란 그렇게 일어났다는 경험적 직관이 2016년에도 유효하다고 믿는 한에서만.   



총선에서 야권이 폭망해야 그 다음을 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강해졌습니다, '시민표창 양비진쌤'의 마지막 회를 듣고 나니. 이제는 문재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자들이 문재인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만 머리 속을 끝없이 맴돌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을 접었던 날의 텅빈 머리 속에서 미친듯이 휘돌았던 절망과 슬픔으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