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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나경원씨, 아직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겠습니까?



평새을 장애인으로 살아온 필자라 나경원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짧게라고 나경원의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나경원의 문제는 딸을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딸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딸을 내세워 표를 구걸한 것이다. 나경원은 아직도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딸의 부정입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경원의 문제는 딸이 장애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식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신문사에서 일하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장애인 부모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분들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것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부당한 방법으로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삶을 희생할지언정 자식을 이용해 어떤 이득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최소한 필자의 눈으로 봤을 때 나경원은 그러하지 않았다. 아니,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경원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식에게 최상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사랑을 제공해줘야 한다. 가진 것이 많고 돌봐줄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해도 그것이 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경원은 부모가 아니라 딸의 입장에서 장애라는 것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깨닫게 될 것이다, 장애가 부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만큼 그렇게 슬픈 것도 안타까운 것도 아님을. 



작금의 논란에 딸은 아무런 책임도 없고, 그녀에게 가해지는 것도 아니다. 헌데 나경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에도 장애인 딸을 내세워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그것은 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정치생명을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국회의원으로 재선되는 것이 딸의 행복한 삶보다 중요하다면 나경원은 부모로서의 자격도 없다. 딸의 장애를 있는 그래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