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것을 문재인 책임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현명한 선택을 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행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광주와 호남의 결과만 놓고 볼 때 문재인의 책임이 적다고 할 수 없지만, 김종인 비대위의 막장 행태는 묻어버린 채, 광주·호남의 결과만 놓고 문재인에게 책임론을 전가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서 동의하기 힘듭니다.
중간집계만 놓고 볼 때 더민주가 광주·호남에서 얻은 전체 득표율은 국민의당 122만9064표(47.95%), 더민주 78만8964표(30.33%), 정의당 18만2703표(7.09%), 새누리당 14만4361표(5.35%)이었습니다. 각 당의 득표율만 놓고 보면 '문재인 책임론'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지만, 문재인과 심상정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문재인의 광주·호남 방문이 조금만 빨리 이루어졌어도 두 당의 득표율은 더욱 줄었을 것입니다(리얼미터, 윈지컨설팅 등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분명하게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이 광주·호남을 독식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소선구제에 있습니다. 소선구제는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자가 승리를 독점합니다. 국민의당의 광주·호남 득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지역구를 독식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선구제였기 때문입니다. 득표율에 따라 의원수가 나눠지는 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면 국민의당의 광주·호남 독식은 불가능했습니다.
거대양당이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를 고집하는 이유가 지역독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비대위가 필리버스터를 조기중단한 채 새누리당과의 선거구획정에서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무력화시킨 것도 동일한 이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거대양당의 정치적 야합을 유권자들(특히 19~30세의 유권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새누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일여다야 구도도 유권자의 선택을 막지 못했습니다.
다만 유권자의 선택이 소선구제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당이 안철수를 빼면 광주·호남 이외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줍니다.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려면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갈수록 퇴행하고, 반칙과 부패와 비리가 넘쳐나고, 지역과 보수에 기생한 저질·패륜·막장 의원들이 양산되고,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없는 것도 거대양당이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총선 결과를 '문재인 책임론'으로 몰고갈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김종인 비대위체제의 '문재인 견제'가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문재인이 백의종군을 결정했을 때 광주·호남으로 내려가 성난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주문했었습니다. 더민주가 국민의당의 도전에 맞서려면 문재인이 광주·호남에 머물며 반문정서를 달래주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필요하다면 총선 전날까지도 광주·호남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광주·호남의 반문정서는 조중동과 박지원·박주선·정동영·주승용 같은 호남기득권들이 만들어낸 '참여정부의 호남홀대론'에 기원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비교해도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광주와 호남에 대한 배려가 몇 배는 높았습니다. 참여정부의 핵심요직을 광주·호남 출신이 차지했고, 예산도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배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노무현과 문재인이 상대적으로 홀대받은 영남 출신을 비서관에 중용했습니다.
헌데 이것을 조중동과 호남기득권이 '호남홀대론'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박지원이 입에 달고사는 참여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이 출발점(조중동과 새누리당이 여론 형성에 성공해 참여정부를 압박한 것이 진실이다)이었습니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로는 조중동이 '호남홀대론'을 집중적으로 떠들어댔고, 호남기득권은 모든 책임을 문재인에게 집중시켰습니다. 그 결과가'호남홀대론에 기반한 반문정서의 탄생과 확대재생산입니다.
광주와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호남홀대론'과 '반문정서'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파파이스 93'에 출연한 전남대 교수가 '정서는 정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광주·호남의 반문정서는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답이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필자가 문재인에게 광주·호남으로 내려가 그들의 정서를 달래줄 때까지 머물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문재인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책임론'이 이점에서는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서 세 번째 이유인 '김종인 책임론'이 나옵니다. 문재인은 물론 더민주 당직자들, 의원들, 영입인사들, 야권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김종인이 총선 관리를 넘어 대권 욕심까지 드러내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에 버금가는 막장공천을 넘어 반문정서를 이용해 광주·호남의 새로운 맹주로 올라서려는 김종인의 욕심이 문재인과 광주·호남의 간격을 최대한으로 넓혀버렸습니다.
김종인의 뜻을 무시할 수 없는 문재인이 광주·호남 방문을 늦출 수밖에 없었지만, 광주·호남 시민의 눈에는 그런 문재인이 호남을 홀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막장공천을 둘러싸고 김종인이 당무 거부에 들어갔을 때 문재인이 직접나서 사태를 마무리지은 것과 비교하면 (김종인과 이철희의 노골적인 반대가 있었다 해도) 광주·호남 방문을 뒤로만 미루는 문재인이 괘씸해 보였을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92%의 몰표를 행사한 광주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문재인의 광주·호남 방문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음에도 광주·호남의 반문정서를 극복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문재인의 입장에서는 더민주 전체와 전국의 판세를 고려해야 하지만, 광주·호남 시민들에게는 그것마저도 호남을 홀대하는 문재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국민의당을 겁박했던 김종인의 오만방잠함에 대한 반발심리도 문재인에게 투영됐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의 실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광주·호남의 민심만 악화시켰고, 문재인 책임론의 단초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문재인의 광주·호남 방문이 수도권과 낙동강 벨트 등에서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그것이 총선 승리라는 기적으로 이어졌음에도 광주와 호남에서의 완패가 유독 부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재인 책임론의 상당 부분은 김종인 비대위의 막장공천과 전략 부재 등에서 나왔음에도 반문정서를 강화하는 역효과(김종인과 박영선, 이철희 등에게는 유리한)만 불러왔습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폄하하고 비판한 유시민(정봉주, 김어준)과 필자의 어리석음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안철수가 확실한 대선주자로 보였고, 국민의당의 후보들도 더민주에 있을 때는 교체의 대상이었을지 모르지만, 탈당한 이후에는 광주와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니 유시민(정봉주, 김어준)과 필자의 비판에 반발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호남자민련'이라는 조롱은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호남·광주의 결과만 놓고 볼 때, 필자의 경우 '문재인 책임론'이 40~50% 정도의 정당성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책임은 조중동과 호남기득권, 김종인 비대위에 있을 것이고요.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광주·호남에서 30.33%의 득표율을 올린 문재인의 성과를 깡그리 무시한 채, 정당성도 부족하고 논리로 빈약한 주장만 내세워 여론몰이를 한다면 유권자의 준엄한 선택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방식의 여론몰이는 대선에서 문재인을 배제시키려는 정치공작에 다름 아닙니다. 이 땅의 기득권과 정면으로 맞선 노무현이 대선후보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동됐으며, 대선후보가 확정된 이후에는 낙마시키기 위해 가동됐던 조중동과 특권층의 정치공작을 연상시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총선 결과만 놓고 비대위원을 교체한 것은 셀프공천에 이은 셀프비대위 구축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체제는 총선까지만 유효함에도 비대위원을 교체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한 김종인의 행태는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무시한 채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박근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하무인 김종인이 정말로 차르가 되려는 모양입니다. 킹메이커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 빈말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김종인의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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