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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와 이영훈의 건국절 주장과 문재인의 일갈



박근혜가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2016년 8월15일)이 71주기 광복절이자, 68주기 건국절이라며 친일·뉴라이트의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부 수립과 건국을 동일시하는 박근혜(뉴라이트 출신으로 현 KBS 이사장인 이인호로부터 배웠다)와 뉴라이트교과서 집필자인 이영훈(친일식민사관을 정립한 이병도의 제자)의 주장은 국민국가의 구성요소가 주권과 영토, 국민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부분적 진리를 보편적 진리인양 포장하는 대표적인 예이며, 수많은 민족과 도시국가들이 천년이 넘도록 얽히고 설킨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근대유럽에서나 가능했던 논리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통일이 됐을 정도로 근대유럽은 주권, 영토, 국민으로 이루어진 국민국가 개념이 너무나 절실했다(주권 개념은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로크의 《시민정부론》,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타적 주권이 독점되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국경을 정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영토 내의 국민(동일국가 동일민족이란 개념이 이때 무너졌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근대유럽과 우리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수천 년 동안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의 나라였던 우리의 경우 주권·영토·국민이란 3요소로 대표되는 국민국가 개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영토와 주권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오직 주권만 일제에게 빼앗겼을 뿐, 광복과 함께 주권도 회복됐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제헌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상해임시정부가 결성돼 전 세계에 독립국가를 선언한 날이지, 친일파의 온상인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1948년 8월15일이 아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수정헌법에 건국의 시점을 명시해놓은 것처럼, 제헌국회도 제헌헌법에 건국의 시점을 명시해놓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정당성을 지닌다. 또한 '역사를 역사학자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왜곡과 오류로 넘쳐나는 뉴라이트교과서를 집필했던 (뻔뻔하고 멍청한) 이영훈과 무지하고 무능한 박근혜의 건국절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1948년 이전에 정부를 수립한 북한도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문재인이 친일부역의 원죄를 벗고 싶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얼빠진 짓이라고 일갈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의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하고, 전화인터뷰와 팩트체크를 통해 3중으로 확인한 것처럼 건국절 논란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0년 전에 처음으로 제기했다.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그의 주장은 모든 친일부역자와 그들의 후손들이 독단적으로 발행한 자가면죄부인데, 그 근원에는 친일식민사관의 창시자이며, 역사학회 초대회장으로 서울대(일제가 만든 경성제대)를 오랫동안 친일파의 본거지로 만든 이병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병도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정신을 말살해 식민지지배를 영속시켜려 했던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보로 시작해 고문까지 올랐고, '조선사편수회'를 이끌었던 요시다 도고(유럽의 식민지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동원된 실증사학의 대가였던 랑케의 제자)의 《일한고사단》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와세대 동문과 경성제대 출신 학자들과 진단학회(1934년)를 결성해 친일식민사관을 정립한 자로, 안병직과 김진홍, 이인호, 박효종, 제성호 등이 참여한 뉴라이트의 정신적 스승이다.



결국 이영훈이 처음으로 제기했으며, 박근혜가 재점화시킨 건국절 논란의 배후에는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옹호하기 위해 친일식민사관(식민지근대화론)을 정립한 이병도의 망령이 자리하고 있으며, 박정희의 명예회복과 정치적 부활이 목표인 박근혜의 꿈이 자리하고 있다. 이병훈과 뉴라이트를 거쳐 박근혜의 입을 통해 재점화된 건국절 논란은 헌법에도 반하지만, 친일부역의 딱지를 떼는 것이 목표인 친일파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국정화된 역사교과서에도 상당히 반영된 친일식민사관의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모조리 부정하는 반역적이며 반민족적 행태이자 이땅의 통치권력이 아직도 친일부역자와 그들의 후손의 수중에 있음을 말해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치욕이다. 노무현 참여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시작된 과거사 청산작업이 이명박의 당선과 함께 무력화됐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친일식민사관의 부활까지 치달은 헬조선의 참혹한 현실이기도 하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광복은 왔는데 어디에도 광복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