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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팬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팬택과도 일을 해본 사람으로써 잠시 팬택의 문제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팬택에는 휴대폰 개발팀이 12~17개가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나 LG전자에도 팬택보다 많은 개발팀이 있었습니다. 각 팀들은 자신만의 제품을 내놓았고 그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들이 선택돼 생산되곤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건희 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선택을 받은 것이고,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밀여붙여 대한민국 휴대폰 사상 최고의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오너의 힘이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어쨌든 다양한 루트로 경쟁력을 확인해 본 다음에 출시된 폰들이 모두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휴대폰의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가장 많은 개발팀을 운영하던 삼성전자는 같은 방식으로 개발팀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탈락된 팀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들이 많은 중소 휴대폰 메이커로 옮겨가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팬택의 개발팀 전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밀려난 연구원(실력과는 상관없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팬택이 홈페이지에서 캡처


 

아무튼 기술력으로 무장한 팬택은 삼성전자가 독주하던 시절에 LG전자를 쫓아가며 다른 중소 휴대폰 메이커들과는 달리 대기업군으로 진입했습니다. 휴대폰 점유율이 10%대를 넘으면서 해외수출에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규모도 점점 커졌고, 다양한 제품군을 원했던 이동통신사들도 팬택의 휴대폰들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팬택이 위기에 처한 것은 국내 휴대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과 제조사에서 부담해야 하는 휴대폰 보조금의 끝없는 상승, 중국 후발업체의 공세, 퀄컴이 독점하고 있던 CDMA와 MS의 운영체제에의 완벽한 종속 등이 겹치면서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상당한 투자비를 쏟아부은 PDA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자금 압박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때 PDA를 대체할 것으로 판단된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했고, 팬택도 스마트폰 개발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에 최적화된 기존 이통사의 기지국(동시접속이 274명을 넘지 못한다, 필자도 이것 때문에 망했다)들로는 스마트폰의 테이터량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액정화면도, 터치스크린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 초기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자신문에서 인용



노키아가 석권하고 있던 유럽의 경우처럼, 한국도 휴대폰을 대체할 스마트폰이란 시기상조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의 스마트폰 기술들을 쓸어모은 애플에서 아이폰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MP3의 원조국가였던 한국의 기술들을 차용해서 아이팟으로 대박을 터뜨린 것에 이어 애플의 두 번째 기습공격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등은 스마트폰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폰의 독주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두 회사와는 달리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팬택으로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진 것입니다. 휴대폰 국내시장에는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던 삼성전자(삼성전자의 휴대폰 중 7%만이 국내에서 판매됐다)가 애플을 쫓아가기 위해 국내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습니다.



비록 옴니아 시리즈가 참패를 거듭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잡기 시작한 삼성전자에 비해 자금력에서 한참 뒤떨어진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팬택의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기술 개발에 몰두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지만, 노키아와 모토로라, 소니에릭손의 몰락처럼 완전한 재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벤처신화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팬택의 회생은 자금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입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웨어러블 모바일기기(이것도 테블릿PC와 당뇨폰처럼, 필자가 사업을 할 때 숱하게 연구되던 것이었다)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 캡처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채권단이 아닌 이통사들의 수중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팬택 스마트폰의 점유율을 유지해줄 것이냐에 따라 팬택의 회생은 결정됩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팬택의 국유화는 스마트폰 혁신이 한계 이른 현재의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고, 현실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팬택의 기술(특히 광대역 LTE-A)이 중국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의 스마트폰 기술이 그렇게까지 형편없지 않습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아이폰의 신화가 깨지는 것도 중국 토종업체의 약진 때문입니다. 휴대폰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을 내놓았고, 소니와 모토로라, 아마존 등도 스마트폰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는 길이 정답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택을 살려야 한다면 정부가 채권단에게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대해 보증을 서주고 이통사들이 팬택의 제품군을 밀어줘야 가능합니다. 이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감상적 해결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해도 이를 국가 경제가 감수할 역량이 있다면, 정치적 해결책 이외에는 팬택을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