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


                                                       ㅡ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삼성전자의 어닝쇼크에서 보듯 초국적기업들의 문제는 미래의 먹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발전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음은 애플의 혁신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최근에 들어 후발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시장을 조금씩 나눠가질 뿐 인류의 성장을 견인했던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3D프린터와 유전공학 등이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물보다 싼 석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규모 생산과 소비를 대체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처럼, 가벼운 경제가 무거운 경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한 《롱테일 경제학》도 프랙털 이론(아래의 P.S를 참조할 것)에 기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빅뱅의 순간ㅡ다음이미지 인용



지금까지의 성장을 견인해온 신용 창출(화폐경제에서는 돈이 돌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이라는 것이 힉스입자가 만들어내는 전자기장에 의해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다. 신용 창출이란 어떤 경우에도 사후 결재가 뒤따른다. 즉,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줄기차게 실시하고 있는 무제한 양적완화가 인플레를 초래하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에 직면하는 것도 발행된 통화량에 비해 그것을 변제할 수 있는 담보(지불준비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경제학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본질적 결함을 치유할 수 없다. 완전시장이라는 유토피아는 마르크스가 추상해낸 자유의 왕국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뉴턴역학 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절대적 신봉에서 출발한 근대이성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기본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끝없는 신용 창출로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비극적인 종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을 끝없이 찾아내 광속으로 공간이동을 할 때만 가능하다.


                                                 머니투데이에서 인용(단위는 억이 아니라 조입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인 자기조정 시장(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무한한 진보를 견인하는)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황폐화시키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도, 애플이 혁신도 한계에 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산을 지탱해줄 소비자의 소득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의 무한 창출이란 그것을 바쳐줄 수 있는 생산이 우선돼야 하는데, 지구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개발의 후유증을 무한대로 품어낼 지구도 한계가 있다. 생산비가 저렴한 사이버 세상마저도 전기라는 에너지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 역시 천연자원의 사용이 있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라, 삼성전자나 애플, 구글 같은 초국적기업들이 무엇인들 검토해보지 않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어느 것인들 시도해보거나 고민해보지 않았겠는가? 미국이란 유일제국이 신자유주의로 갈아탄지 겨우 40년만에 국민들의 과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장기불황에 빠져들었으며, 중국이란 신흥제국이 개발도상국의 GDP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겠는가?



잠시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것 같던 브라질이 극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고, 과거의 영광 중 일부라도 재현하는 것 같던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것에서 보듯, 무한한 진보를 견인할 미래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와 미래세대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샌드라 핼퍼린의 《유럽의 자본주의》를 보면 산업혁명이 유럽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과대포장된 이데올로기임을 증명했다)이 일어난지 300년도 안 돼 지구는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토지사막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부터 죽어나가는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대부터 실질적인 면에서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빚잔치에 불과했고, 물가가 오른 만큼도 인류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소비해왔고, 신상에 매달렸으며, 그러는 사이 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선 주변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치했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 진보가 선사해줄 풍요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약도 계속해서 수정보완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것이 완만한 진보이던, 영겁회귀하는 윤회의 반복이던 공존과 상생을 위한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P.S. 《롱테일 경제학》의 핵심은 가우스의 종의 곡선에서 양쪽 끝으로 내려가 직선처럼 길게 늘어지는 부분(χ축에 근접한 부분)이 실제로는 더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1 대 99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우스의 종의 곡선으로는 첨단정보통신 산업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며, 가우스 확률에서는 의미없는 부분으로 취급되는 부분의 경제가 첨단정보통신기술과 어우러져 무거운 경제(중후장대)를 가벼운 경제(경박단소)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때 주장의 근거로 대는 이론이 프랙털 이론으로, 이것의 핵심은 전체는 그것을 이루는 부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체를 다 살펴보지 않고 부문만 살펴봐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프랙털 이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해안선들의 모양이나, 한 지역에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을 살펴보면 지구 차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0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비트로 무엇이던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처럼, 많은 투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에서는 변수가 적은 종 부분이 중요하지만,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에서는 의미 없다며 잘려나간 부분이 중요하며, 99%가 몰려 있는 이곳에서 미래의 먹거리가 나올 것이란 뜻이다.



실제로 가우스 확률은 양자역학이 나온 이래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변수가 적은 거대한 규모에서나 이용되고 있다. 가우스가 정립한 수학과 확률이론은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기술과 나노단위로 작동하는 첨단산업, 금융공학 등에서는 유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패턴을 발견하는 데는 가우스 수학은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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