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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비판ㅡ들어가는 글1

   

 

 

 

자연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통곡부터 할 것이다(유럽의 속담).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서 인용)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들어가는 글

 

 

 

 

 

 

 

 

 

 

 

 

 

대한민국의 맨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세월호 참사와 군대의 잔혹한 폭행과 살인행위를 목도하면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살육행위를 무력하게 지켜보면서, 인류 문명과 진보의 허상에 대한 비판을 시작한다는 것이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가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구태여 내가 그 퇴행과 야만의 기록들을 파고드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같이 가장 초라하면서도, 그저 딜리트 버튼을 누르면 삭제되는 그런 방식의 자살만 생각하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나 죽자며 시작했던 지적 여행이 8년이나 이어졌다. 내 삶의 조건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ㅡ아니, 시간의 흐름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몸은 간암이라는 추가적인 병을 분양받았으니 그때보다 더욱 악화된 상태인데, 나는 여전히 살아 지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조금만 더 알면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실체, 너무나 거대해 한 번에 다 볼 수도 없고, 보잘 것 없는 한 명의 사람이 이해하기란 너무나 복잡하게 펼처져 있는, 그래서 나를 헤어나올 수 없는 파멸로 밀어넣고도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런 불변하는 우주의 법칙이나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 보일 듯했다. 습기와 먼지가 엉켜있는 불투명한 안개가 지나가는 바람에 흩어질 때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작은 단편들을 통해 전체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겁고 두터운 안개는 좀처럼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전체 또한 생각보다 가벼운지 흐르는 안개와 함께 소리없이 움직여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내가 다가가는 만큼 안개와 전체는 멀어졌고, 내가 멈춰서면 그들은 내 주위를 돌며 끊임없이 나를 유혹했다. 잡힐 듯한데, 절묘하게 간격은 유지됐다. 게다가 나의 사고는 게처럼 자꾸로 옆으로 새는 경향이 있어 안개 속에 또 다른 것이 있는지 시야를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철저히 홀로 가는, 그런 중구난방의 지적 여정이 삶의 고단함처럼 우격다짐의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나는 부분적으로 보이는 단편들을 조합해 전체의 일부라도 파악하려 하지 않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럴 때마다 사유를 끝까지 밀고나갈 수 없는 체력과 건강 때문에 나는 게처럼 또 옆으로 새곤 했다. 이런 수없는 실족들은 어쩌면 내 능력 부족에 대한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변명의 일부였을 수도 있고, 비겁한 변명이자 정면돌파를 시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자기기만일 수도 있었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하지만 내가 바람이 선사해준 투명한 시야를 통해 본 것들이 온통 절망의 증거들로 가득해, 내 시야에 들어온 단편들을 조합해 전체의 일부라도 그려보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내가 지난 8년 간의 지적 여정(3년이 더 흘렀다)을 통해 본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넘쳐났다. 어쩌면 내가 자꾸 게처럼 옆으로 샜던 것도 짙은 안개가 걷힐 때마다 본 단편들이 주는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본 것들은 하나같이 암울한 전망만 하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했다.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의 횡포, 정치의 부재와 언론의 타락 속에 갈수록 양극화되는 불평등, 이미 익숙해진 불의함, 단단히 고착화된 구조적 부정의, 너무나 벌어진 세대 간 단절,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청년실업, 갈수록 줄어드는 정규직과 비정규·비임금노동자의 확대,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교육, 여전히 강요되는 여성의 희생, 젠더와 성소수자에 대한 불편한 이해와 어정쩡한 관용, 세습되는 부와 권력, 닫혀버린 사회적 이동성, 급진성을 띠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대지의 사막화, 석유에 이어 새로운 분쟁거리로 떠오른 물 부족 사태, 정치·경제·사회적 약자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밀어 넣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그에 따라 점점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폭력시장, 신자유주의의 폭주를 숨겨주는 기능도 포함된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한 의구심, 미국과 유럽의 전철을 밟고 있는 중국의 부상과 경착륙 위기, 일본의 재무장과 독일 중심의 유럽 재편, 남아메리카의 정치·사회적 불안, 아프리카 대륙의 재식민지화, 끝없이 늘어나는 난민, 여전히 의문부호를 지니고 있는 다문화사회와 시민정신의 실종,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실패 사례, 성장이 불가능해진 세계 경제와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국가, 자연의 원소와 생명의 유전자들마저 특허로 등록해 인류의 미래마저 사유화하는 지적재산권의 강화 등등.. 

 

 

 

 

내가 본 단편들이 말해주는 것은 성장과 진보를 거듭해온 인류 문명의 현주소가 모조리 거짓일 수 있다는 그런 암울한 것들이었다.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형태의 자살만 생각하다 알고나 죽자며 시작했던 인류의 근현대사가 내게 말해주는 것들은 우주의 법칙도, 자연의 섭리 같은 낭만적이고 합리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해서 시작된 인류의 근현대사는 오류와 모순, 거짓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본 인류의 근현대사란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인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권력의 역사'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의 역사는 국제적 범죄와 대량학살의 역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네그리와 하트는 한나 아렌트와 묶어, 칼 포퍼의 성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전체주의 하에서도 저항세력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구체적 역사가 있다면 사람들 모두에 관한 역사일 것"이야 하는데, 내가 바람 덕분에 언뜻언뜻 봤던 것들은 정반대의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본 단편들의 어설픈 연계들은 인류의 근현대사라는 것이 과학과 기술, 경제의 규모 면에서만 성장과 진보를 해왔을 뿐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파괴와 학살과 퇴행의 역사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1973~1975년을 지나면서는 정말로 그랬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래 세계의 경제 규모는 수백 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최소한의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보면 19세기의 미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주를 향해 인공위성과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리고, 빛의 속도로 세계를 넘나들 수 있으면서도, 막상 자신의 유일한 거주지인 지구마저 불모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인류의 진보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풍요와 행복을 보장했던 자본주의의 등장 이래, 인류의 삶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칼 폴라니의 성찰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경제적이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가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끝나는 지점에는 파국적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1,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인류 문명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이런 면에서 이반 일리치의 《성장을 멈춰라》는 자본주의적 성장의 허상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해준다). 수많은 통계와 자료, 연구들이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영국과 미국, 독일에 들어서기 전(1975년)까지만 성장하고 진보해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한 확과한 신념이 있었던 그 기간 동안만 인류는 성장과 진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고, 행복지수도 높았다. 

 

 

 

 

 

 

 

 

 

 

헌데 마가렛 대처-하이에크 조합과 로날드 레이건-밀턴 프리드먼 조합이 영국과 미국에서 권력을 잡은 이후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재식민지화가 이루어졌으며, 2차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던 한 국가의 중심부에 의한 주변부의 내부식민지화도 재현됐고 강화됐다. 그 이후로는 거의 10년 단위로 경제위기가 속출하고, 인류의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이를 동안 각국 정부와 세계적 기구들은 이를 방조하고 부추기며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에 복속했다. 

 

 

 

 

 

 

 

전체주의적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갈수록 퇴행적인 결과만 초래했고, 최근에는 가히 무정부 상태를 연상시킬 만큼 고유의 기능마저 상실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주류 경제학과 탐욕의 금융공학은 상시적 대공황을 만들고도 모자라, 여전히 착취와 추문들을 양산하고 있다. 수많은 석학들이 이 상태로 가다간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시스템과 경제시스템 중 하나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지만 각국 정부들과 정치권의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장과 개발의 주체들은 장밋빛 약속들을 남발하며, 미래세대의 몫까지 온갖 자원들을 끌어다 썼으면서도 영원히 감당할 수 없는 빚과 미증유의 위험을 미래세대에게 남겨놓았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모든 욕망에 우선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 각국 정부와 대기업들의 탐욕에 완전히 무시됐다. 이를 비판해야 할 강단의 지식인은 비판정신을 잃은 지 오래이며, 자신만의 참호 속으로 들어가 광적인 외침을 쏟아내거나 영원히 침묵할 뿐이었다.

 

 

 

 

 

극도로 세분화된 전문가 집단들은 몇 푼 안 되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자본과 국가(정부가 정확하겠지만)의 이해 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기어들어 갔다. 세상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때마다 보수작업을 담당해왔던 철학이란 계몽의 근대이성을 해체하고 재부활을 경계하느라, 전 지구적 관리(특권)그룹의 부정적 세계화를 경고하지도 저지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세상이 바닥을 들어내고, 지구 표면 위로 세워진 것들이 지구를 뒤덮을 만한 천문학적인 빚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하지도 않았고, 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에 의해 일관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전체 인류의 0.00…0001%) 등을 중심으로 한 수천 명의 슈퍼리치(0.1%)가 전 세계 자산의 25%를 독식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왕족이자 귀족으로 자리 잡은 그들의 주변에서 맹활약을 펼친 상위 1%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자산의 45%를 독점하게 됐다. 거의 모든 나라가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채택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봉건시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에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상위 10%가 전 세계 자산의 90%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무려 69억 3,000만 명에 이르는 하위 90%는 전 세계 자산의 10%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자유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이 주어졌지만, 막상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란 대규모 할인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 알량한 자유도 '먼저 쓰고 나중에 지불하는' 플라스틱 신용의 유혹에 빠져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존선 수준의 돈을 벌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아르바이트를 놓고 세대간, 남녀간 전쟁이 벌어지는 비극적인 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저학력에 저소득의 50~70대가 보수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기인한다.

 

 

 

 

 

 

 

부정적 세계화에 귀속된 나라들일수록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병들의 80~90%가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안고 출발하며, 첫 번째 직장에서 반듯한 정규직으로 채용될 확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으로 이어져 각국의 투표율은 정치인의 대표성을 인정하기 힘들만큼 떨어지고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부유층과 그들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어야 살 수 있는 노인들의 투표율은 높은 반면, 비정규·임시직을 전전하는 저임금 노동자와 청년과 중년세대의 투표율은 20~30%(대선의 경우 이보다 20~30% 정도 높다) 사이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의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정치인들은 부자와 이익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적극적일뿐, 하위층의 요구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평등과 성장의 부작용이 인류의 종말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정치와 언론, 교육과 종교, 과학과 기술의 타락은 끝을 모르게 이어졌다. 수없이 많은 석학들이 더 이상 모든 계급을 대표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혁명을 반대하면서도, 현대 민주주의가 1인1표가 아닌 1인1달러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 전체주의(또는 시장 독재)로 변질됐다고 한탄만 할 뿐, 행동하지도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도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대중 동원에 힘을 쏟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의 기능을 수없이 많은 시민단체(근대의 시민정신은 일찌감치 잊어버린)와 비영리단체로 넘겨버리고, 개인적 봉사나 지역적 실천 차원의 파편적인 것으로 흩어놓았다. 그들은 대중의 참여가 반갑지 않을 정도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정당간에는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 싸움에 소비하는 개인으로 변질된 시민의 참여는 환영하지 않는다. 정치 세계의 시장도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나눠먹을 파이도 한정돼 있어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것이 시민의 참여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지식인조차 뿔뿔이 흩어져서 각개 전투를 벌이거나, 자본과 대학, 연구소 등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레닌과 스탈린이 주도한 파시즘적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가 헐거운 논리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대변돼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치부됐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사라졌고, 논리적 모순의 건널 수 없는 간격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전 지구적 시장 구축에 성공했다. 

 

 

 

 

 

시장 전체주의의 득세로 인해 국가 업무와 기능의 축소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기성정치의 몰락으로 이어져 민영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와 노조의 해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저임금 노동자와 새로운 빈곤층은 하위정치의 아우성을 이루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 공간으로 모여들었고, 그중에 일부는 세계화 반대 세력의 일원으로 변모하기도 했다(이 틈에 디지털 기록으로 먹고사는 빅데이터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출현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사회경제적 약자와 빈자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정부와 자본에 압력을 넣었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공통의 지향을 가졌으나, 개별적인 특이성을 잃지 않았으며, 부정적 세계화를 추동하는 세력들에게 역으로 공포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런 다중의 탄생은 아직도 뚜렷한 방향성이 없으며,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와 해산의 자유로움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 다중의 게릴라전은 플래쉬 몹의 수준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다. 촛불집회의 기억과 경험은 지배세력의 진화에 커다란 공헌을 한 채 횃불로 타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빚도 자산이라는 악마의 경제학에 갇혀 있는 신세며,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삶의 정치화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렇게 빈곤의 거버넌스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동력을 위한 재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즐기고 나중에 갚는 플락스틱 신용의 질곡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개인과 인류 단위의 빚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 속도란 가히 빛을 방불케한다, 인류가 '개발과 성장의 역설'을 체감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