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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4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에 벤처기업에게 대출을 끌어다 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벤처투자 브로커인 고등학교 동기동창을 만나게 됐습니다. 저보다 먼저 벤처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억의 투자를 받은 동창을 통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던 동창놈과의 만남이 악마의 선물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거기서부터 제 인생이 거침없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놈과 전혀 친하지도 않아 기억 속에도 없었던 놈이었는데, 이젠 평생의 원수 같은 놈(벤처거품이 터진 후에 도망을 다니다 끝내는 행방불명처리된 상태)이 되었으니 그것도 다 운명인가 봅니다.



 

 

여자를 엄청나게 밝히는 그놈은 투자자들을 소개시켜줄 때 언제나 룸살롱을 택했습니다. 그놈의 이상한 취향 때문에 저도 뻔질나게 룸살롱을 들락거리게 됐습니다. 낮에는 영업하고, 늘어난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한 후 밤마다 투자자들을 만나러 강남에 널려 있더 룸사롱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를 변태처럼 좋아하는 투자자들과 너무나 젊고 도저히 이런데 있을 것 같지 않은 수많은 매력적인 도우미들 앞에서 온갖 설득과 애교, 아양을 떨면서 투자 의향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야 했습니다. 



정말 서글프고 한편으로는 제가 그렇게 터부시했던 밤 문화에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 돈을 쓴 것도 아니고 투자가 확정되기까지는 절대 일정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2차를 나가는 도우미 여성들의 손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투자가 확정된 날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태어나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자를 품어보지 못한, 아.. 상상 속에서는 제법 품었지만 아무튼 지독할 정도로 오래된 굶주림 때문이었는지, 그만 저는 천연기념물의 위치에서 평범한 짐승(토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날의 허무함과 성적 욕구, 가치의 몰락, 돈의 위력 등을 생각하면 등꼴이 오싹해 옵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며, 한 번 선례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게 선을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나 첫 번째가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최소한의 갈등도 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감정적 교감이 없는 육체적인 관계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아무튼 정력이 약해서 첫경험이 너무나 허무했던 저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투자를 대출 형태(몰락의 시작)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개인투자자의 자금도 유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개발비를 완불하니, 전송장비도 즉각 나오더라고요. 저는 따끈따끈한 장비를 들고 여러 대기업과 금융기관, 관공서와 대학들, 소규모 통신회사, 유치원, 교회, 학교, 어린이집, 심지어는 다단계기업과 깡패들이 운영하는 스팸메일 업자들에게까지 찾아가 장비를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청산유수처럼 흘러갔지요. 저의 회사가 판매한 문자메시지 전송장비는 사용할 때마다 통신비의 일부를 L통신사로부터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매달 고리대금이자처럼 돈이 들어왔습니다. 통신비 일부는 무려 3년간이나 받기 때문에 사업은 날개를 달았고, 회사의 수입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영업사원들의 실적도 제법 쏠쏠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잘 풀렸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장밋빛 전망에 빠져들었고, 보다 많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직원 수도 늘렸습니다.

 

 

슬슬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 직원이 늘어날수록 고정비가 눈에 띨 정도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고정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로 불어나더라고요. 그것은 정말 패망의 지름길이었습니다. 초기의 기업은 인건비를 늘리지 않는 것으로 연명해야 하는데, 저는 정반대로 간 것이었지요. 그만큼 사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제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서..

 

 

아무튼 제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L통신사는 문자메시지 매출 면에서 타 통신사들을 제치고 최고에 이르는 기염을 토했고, 모든 통신사 고객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지만 L통신사만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통신요금 부과구조 때문에 연례적인 통신사 사장 회의에서 격렬한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좋은 물건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기업들이 사줄 것으로 알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라 실질적 영업에 실패하기 일쑤였던 선발 벤처기업들이 루팡의 소문을 듣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제품 중에는 통신사들의 기지국 용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아주 느리게 작동했지만 iPAD와 거의 유사한 제품도 있었고,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PDA와 심지어는 현재의 스마트폰과 거의 동일한 플랫폼을 채택한 이스라엘 제품도 있었습니다. 경쟁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영업력이 전무한, 그래서 자본잠식 상태 직전까지 몰려 있던 그들이 영업을 대행해 달라고 지겨울 정도로 찾아왔고, 저는 그중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제품들을 선별해 틈틈이 영업을 대행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업의 경우에는 그들의 제품을 사줄 만한 대기업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수수료도 받지 않은 채로. 그렇게 저와 영업사원들은 조금씩 영업 대상을 넓혀 갔습니다. 자연히 사업의 아이템 수가 늘어났고 따라서 직원 수도 늘어났습니다. 심지어는 타 벤처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던 팀까지 채용하기에 이르렀으니,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말로 겁대가리 없이 치밀한 자금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마구 벌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에겐 사업이 가장 쉬웠어요. 영업이 바쳐주니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보인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벤처열풍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 오히려 복을 불러오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투자받은 자금이 고갈돼 영업조차 못하는 기업들의 뛰어난 제품들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오라면 따올 것 같았습니다. 고정비가 주는 압력이 갈수록 목을 조여왔지만, 통신비 수수료를 생각하면 능히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정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루팡’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과 투자사들이 줄을 섰고, 타 통신사에서도 공동사업을 하자는 유혹의 손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나날이 판매도 늘어갔고 수수료의 매출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상태로 1년만 지나면 새로운 벤처신화로 등극할 날도 멀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