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 양에게 지난 두 달이란 1초가 여삼추 같은 고뇌와 번민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성불멸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치검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성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끽했던 기레기들, 반칙과 특권을 남발하며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자한당의 무차별적인 연합공격에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했겠지요.

미국의 반지성주의 전성시대를 떠올리는 기독교 무리들의 후안무치하고 반예수적인 공격까지 더해졌으니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었겠지요. 

하이에나보다 집요하고 파시스트보다 난폭한 저들의 무차별폭격은 꿈속까지 따라와 조민 양을 괴롭히고 또 괴롭혔겠지요.

조민 양에게 지난 두 달이란 거대한 쓰나미 앞에 놓인 일엽편주에 다름아니었을 것입니다.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좀먹어들어갔을 저들의 융단폭격에 조민 양이 감당해야 했을 고통의 양은 가늠조차 하기 힘듭니다. 

 

 

조민 양, 조셉 콘래드의 <로드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일체의 반론도 허락하지 않는 저들의 폭압적이고 일방적인 연합폭격에 무방비로 당힐 수밖에 없었던 조민 양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희망이 줄어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은 삶의 요구까지 정복해 버리게 되지···턱없이 큰 세력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잘 알고 있지. 이를테면 난파선에서 구명정으로 빠져 나온 사람들이나,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나 군중의 우둔한 포악함에 대항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일세."

조민 양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국민은 물론 대통령의 인사권마저도 우습게 여기는 저들의 연합공격 앞에 어떤 사람인들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어떤 역경이 닥쳐도 결코 굴하지 않던 위대한 거인마저 한 줌의 재로 만든 저들의 연합공격인데 조민 양이 감당할 방법이란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조민 양의 아버지(지나칠 정도로 무뚝뚝하지만)와 어머니(지나칠 정도로 보살펴주지만)가 없었다면 무너져도 수백 번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땅의 기득권 카르텔을 대표하는 저들이 조민 양에게 적용한 기준이란, 원죄는 물론 일체의 죄지음이 없는 예수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드높은 것이었으니까요. 

 

예수는 성난 군중으로부터 막달라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중에 죄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지켜낼 수 있었는데, 검찰·언론·자한당의 3축동맹은 그런 신적인 기준을 역으로 적용해 조민 양을 압박했으니 빠져나갈 방법이란 애초부처 없었겠지요. 

조민 양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작고한 할아버지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맹공을 퍼부었으니 예수가 재림한다고 해도 조민 양을 변호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정의를 내세워 조민 양을 공격했던 어리석고 무지한 서울대·고대·연대생들에게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나 읽어보라고 하면서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그들의 일부가 검찰이나 언론, 자한당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해서 상상하는 것조차 역겹기만 합니다.

      

아버지를 사퇴시키면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들은, 태어나 보니 부모 모두가 교수라는 우연까지 원죄인양 들먹이며 조민 양을 공격하니, 그것은 기회의 평등도 아니고 공정한 정의도 아닙니다.

존 롤스가 말했듯이, 기회의 평등이란 결과의 재조정을 수반하지 않으면 기존의 불평등을 늘리는 것임에도 이미 기득권의 반열에 오른 저들은 기회의 평등, 기회의 공정만 주구장창 외칩니다. 

상위 10%에 속한 자들이 하위 90%를 속이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인 기회의 평등은 작금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이용해 취업과 결혼에서 유리한 위치를 유지하고, 이렇게 얻은 것들을 축적하고 세습해 자신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욕망과 탐욕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상위 10%에 속하는 저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은 피땀 어린 노력의 산물이고 조민 양이 거둔 성취는 부모의 후광에 의지한 불공정이고 불의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간 탓에 국어 실력이 떨어져 국내의 학생들과 동등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영어 실력을 살려 대학에 진학한 것까지 물고늘어집니다. 

서울대, 연대, 고대에 진학한 상위 10%에 속하는 학생들만이 유독 조민 양에게 시퍼렇게 독이 오른 칼날을 들이댑니다. 그들의 촛불에서는 기득권에 진입한 자들의 추악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나옵니다.

 

조민 양, 하위 90%에 속하는 청춘들에는 미안해 해야 하겠지요.

우연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선물받은 것은 행운이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것이 악운으로 돌변했지만,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청춘을 위해 법과 제도, 관행 등을 바로잡고 그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옥의 연속이었던 이번의 경험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불평등과 불공정, 불의를 줄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면 최상이겠지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푸코의 성찰과 위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모토도 있으니까요.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모두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덕분에 얻은 것이 있다면 최대한 나누고 살면 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번 사태로 인해 유럽의 선진국가와 영어권 선진국가처럼 금수저 출신의 진보좌파가 늘어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진보좌파는 가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만큼 보수우파에게 유리하고 진보좌파를 분열시키는 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는 조민 양과 비슷한 사례의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학벌과 불평등만 조장하는 전세계적 대학순위로만 보면 서울대보다 한참 위에 있는 미국과 영국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국내 대학 진학에는 거의 대부분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국내 대학 진학에 성공한 아이들은 조민 양처럼 영어 실력으로 인한 특별전형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법과 제도로써 보장되는 그런 진학 방식마저 불공정하고 불의하다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한 학생들은 대한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주 오래 전에 연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을 때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동기가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영어시험마저 망치는 것을 지켜본 저로써는 저들의 주장에 단 하나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주장이 옳다면 젊은 날의 저 같은 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불공정하고 불의한 것이 됩니다. 

왜 조민 양에게는 우연하게 주어진 교육환경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불공정과 불의가 되는 것일까요? 

서울대,연대,고대는 물론 모든 대학에 특별 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수두룩한데 왜 조민 양에게만 그것이 인정되지 않는 것일까요?

부모가 교수인 학생들은 특별 전형에 응시하면 안 되고, 스펙을 쌓는데 도움을 받으면 범죄가 되는 것일까요?

조민 양이 대학에 진학할 때 아버지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임명될 수 있다는 예지력을 발휘해 우연으로 주어진 교육환경을 활용하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요?  

 

저들의 여론몰이에 휩쓸려 순식간에 취소된 논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의 학술지에 영어로 된 논문을 발표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저들은 학술논문에 적합한 영어 문장을 작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나 봅니다.

조민 양의 영어 실력에 도움을 받은 지도교수(교신저자)가 논문의 제1저자로 조민 양을 올릴 때, 또다시 아버지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임명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도교수의 선택을 꺽어버려야 했을까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조민 양을 제1저자로 등재한 것도 전적으로 지도교수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지, 조민 양이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조민 양의 고려대 합격에 해당 논문에 제1저자로 올라간 것이 결정적이었을까요?

아니면 외국의 학술지에 실릴 정도의 논문을 영어로 작성한 조민 양의 실력이 결정적이었을까요?

조민 양이 진학한 학과만 따져봐도 답이 나옵니다. 

고려대에서 해당 논문을 제출했다는 목록이 발견됐다지만, 그것의 사실관계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제가 고려대 입학사정관이었다면 조민 양의 영어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논문 제출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언론과 검찰, 자한당으로부터 무차별 융단폭격을 당해 자기방어가 필요했던 아버지가 청문회와 기자간담회에서 거짓말(이것도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고려대에서 발견했다는 목록표의 진위 여부와 작성경위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했다는 이유로 조민 양의 합격이 취소되고 파렴치범으로 내몰리는 것도 어불성설의 전형입니다.   

 

표창장 조작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발행된 동양대 표창장이 없었다면 고려대 입학이 불가능했을까요?

수많은 스펙 중의 하나에 불과한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기 위해 조민 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경력을 걸만큼 어리석고 무모한 사람들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동양대 표창장에 자식의 미래는 물론 자신들의 인생까지 모조리 망칠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할 사람들이 존재하기나 할까요?

조국과 정경심 교수가 그것도 판단할 수 없는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검찰이라고 해도 동양대 표창장 위조로 조민 양의 어머니를 불기속 기소하는 것이 상식선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요?

윤석렬의 검사들은 하나같이 또라이에 해당하는 수준 미달의 헛똑똑이들일까요?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기억의 30%까지 왜곡된다는 연구 결과는 뇌과학 서적들을 보면 빠짐없이 나오는 레파토리로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조민 양의 아버지도 그런 기억 왜곡의 희생양일 수도 있습니다.

미증유의 융단폭격에 당황했을 수도 있고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재판을 통해 밝혀지겠지요.

공판을 담당한 검사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재판에서도 진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겠지만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발된 간암을 치료하고 얼마남지 않은 어머님의 삶을 돌보느라 뒤늦게 조국 대전에 참여하게 된 저이지만, 그 동안 언론과 검찰, 자한당을 통해 유포된 각종 보도와 발언, 증거들을 역추적하면서 확인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것들입니다. 

조국을 죽여야 한다는 광기와 살기로 가득한 저들의 융단폭격을 확인했을 뿐, 조민 양이 파렴치범으로 몰려야 하는 이유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실도 기회가 주어져야 밝혀질 수 있습니다.

저들의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공격 앞에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늘에 별을 따는 것만큼 희박한 일입니다.

 

조민 양, '성공이 확실히 보장되는 곳에 명예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면 저들의 연합공격이 바로 그러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탈탈 털었던 방식으로 조민 양을 몰아쳤으니,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가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 보면 어떤 논리도 성립할 수 있는데, 저들의 반인륜적인 융단폭격이 그러합니다.

거기에 놀아는 자들 또한 다를 것이 없고요. 

 

조민 양,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엄청난 권력과 무한대의 스피커를 가진 특정 세력이 조작되고 편집된 단편적 사실들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여론몰이를 지속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한 채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진실을 가려내는 냉철한 판단은 사라지고 예단과 편견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하물며 특정 세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과 무한대의 스피커를 가진 언론, 정권을 수십 년이나 장악했던 거대 기득권 야당의 연합이라면 개가 고양이가 되고, 새우 싸움에 고래등이 터집니다.

지극히 단편적이고 조각난 정보에도 절대적인 진리 같은 신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달 간에 걸친 저들의 연합폭격이 상당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을 씌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민 양,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지속된 저들의 일방적이고 반인륜적인 융단폭격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과 딸에게 가해진 광란과 저주의 살풀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의 검찰과 언론, 한나라당이 지금의 검찰과 언론, 자한당과 똑같았습니다.

미쳐 날뛰는 기독교 무리들도 그때와 똑같았습니다. 

데자뷰도 이런 데자뷰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비극으로 한 번, 희극으로 한 번 되풀이된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마르크스가 오버랩됐습니다. 

미셀 푸코가 부활해 저들의 살풀이를 지켜봤다면 저들의 초법적 마녀사냥에 대한 <광기의 역사>를 새로 썼을 것입니다.

      

조민 양, 정말 잘 버텨주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매일같이 자실만 생각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저이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조민 양이 감당해야 했을 고통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쓰러져도 수없이 쓰러졌을 터인데, 지금까지 잘 버텨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조민 양이 버텨주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위대한 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조민 양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가 있다면, 흠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관참시도 마다하지 않는 저 무도한 무리들의 연합공격 앞에 어떤 사람도 버틸 수 없다면, 지금까지 잘 버텨준 조민 양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전할 수 없습니다. 

'오컴의 면도날' 위에 서있는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세상의 어떤 것도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르게 돼있습니다.

 

 

전 국민을 가지고 놀았던 저들의 시간은 이제 끝이 보입니다.

여명처럼, 반격의 나팔이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조민 양이 버텨주었기에 이런 시간이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순탄치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이번처럼 어떤 고난과 역경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민 양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의 무게는 덜어드릴 방법이 없지만, 한 편의 글을 통해서라도 순백의 응원을 보냅니다.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도 저와 같은 응원을 보내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조민 양이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 다시 힘을 받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은 위대한 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조민 양, 정말 잘 버텨주었습니다.

역사의 우연성은 압도적인 권력 카르텔로부터 초법적 핍박을 당한 아주 평범한 사람의 처절한 희생으로부터 거대한 전환의 계기를 얻기도 한답니다. 

지난 두 달 간의 지옥을 묵묵히 버텨준 조민 양이 있었기에 문재인 정부와 촛불시민들은 조민 양의 아버지, 조국 법무부장관을 앞세워 민주세력의 최대 염원 중 하나인 검찰개혁에 매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를 믿는다면, 목놓아 우는 것은 조금만 미뤄두었으면 합니다.

조민 양 주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아버지로써, 어머니로써, 친구와 동료로써 함께 서있을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저들의 광기에도 조종이 울리기 시작했으니.

무엇보다도 건강을 잃으면 안 됩니다.

달궈진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면, 조민 양이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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