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를 펼쳐 봐>
탕, 탕, 탕.. 수차례 총성이 울렸고/ 난 잠에서 깨었어/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수업중이었어/ ㅡ 버지니아 공대를 다니던 한국계 미국인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승윤은 강의실에서 꿈뻑꿈뻑 졸다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아니면 지난 새벽에 타진된 충격적인 사건에 꼬박 밤을 지샜는지도 모른다. 탕,탕,탕.. 노래의 도입부가 충격의 정도와 인간이란 존재의 사악함에 대한 불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어제의 총기난사 사건은 오늘의 소재가 되었고/ 교수는 말했지 좋은 교재가 될 거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 거야/ ㅡ 악몽에 시달리며 강의실에서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해당 사건을 얘기한다. 당연하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헌데 교수라는 작자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메뉴얼로써의 교재가 필요하단다. 아니면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전문적인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사건들과 이번의 사건만으로는 교재를 만들기에는 사례가 부족하다고 말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교수라고 지칭되는 자들의 머거리를 위해 더 많은 죽음이, 더 많은 희생이,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하다고 대학생 시절의 승윤씨는 분노했던 것 같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한 최대 이익단체이자 압력단체인 전미총기협회회장, 찰톤 헤스톤의 말과 그의 이력에 대해 설명할 것, '총기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사용자의 손가락에 책임이 있다'는 궤변과 함께. 그의 논리가 진실이 되려면 핵폭탄이 사용되도 책임은 발사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있을 뿐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마지노선, <역마차>의 존 웨인과 <람보>의 실베스타 스텔론,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의 주인공들로 이어지는 미국의 제국적 팽창과 근육질 외교의 할리우드식 변명들. 국제연합 등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 예방적 차원의 선제 공격 등등등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탄식은 생에 스미기도 전 활자가 돼 있어/ ㅡ 어이없는 희생,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총기보다 못한 목숨, 계속해서 벌어지는 비극,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로 만들어진 교재를 펼쳐봐, 아픔과 피로 적어넣은 이름들이 적혀있는 교재를 펼쳐봐, 총기소유 자유가 초래한 정치경제적 결정이 초래한 비극들이 활자화돼 일체의 슬픔과 분노, 연민이 박제화된 그런 교재가 출판되고 대학의 강의로 쓰이는 그날, 그 순간을 위해. 교수들이란 작자들이 반인륜적 행태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이 없는 인간은 모든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다. 스탈린,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가 된다'는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음.
뼛속에 말을 심은 누군가 낭독해/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할지/ 눈물을 닦고 귀를 닫고/ 마음대로 치유하고 감사해/ ㅡ 인간의 죽음까지 상업화하고 자신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자란 뼛속에 타인의 비극을 새겨놓을 만큼 자인한 자, 그 누군가 활자화된 죽음들을 낭독한다. 또는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읽으라고 했을 수도. 만일 교수나 학생이 신학교 소속이라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있어야 우리가 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총격사건의 범인처럼 사악한 자들을 몰아낼 수 있으며, 이런 사건들이 즐비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 그런 믿음과 신앙에 들 수 있을지! 승윤은 처절하게 절규한다, 눈을 닦고 귀를 닫고, 그래서 진실에서 멀어짐으로 해서, 성전과 학문의 전당에 기어들어와,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마음대로 치유하고, 그런 나라에서, 그런 범죄에 당하지 않은 신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해야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거야/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사실은 나도 똑같아 노랫말을 짓는다는 것은/ 너의 비극을 식탁에 꺼내놔줄래/ 내가 멋지게 위로해줘볼게/ ㅡ 대학생 시절의, 또는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승윤은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할 때와 똑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나도 똑같은 놈이 아닌가? 이런 참혹한 비극을 노랫말로 짓고 있으니. 우리는 말한다, '용서하지만 기억할게'라고. 이런 무책임과 회피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기억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가지 마 그냥 덮어두자/ 탕, 탕, 탕.. ㅡ 승윤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는다, 가지 마! 라고,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지고 노랫말을 쓰는 자기나, 교재가 필요하다며 더 많은 비극을 요구하는 교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죄의식 때문에.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소리들, 탕! 탕! 탕!
www.youtube.com/watch?v=vK692D_ud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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