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3일만에 거의 8천만 뷰에 이른 로제의 솔로곡 'on the ground'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도 사대주의적 발상에 적은 채 BTS의 그래마상 수사 실패만 떠들어대는 한국언론을 보며 그들의 양성평등과 여성인권, 성소수자 옹호 등의 행태에 구역질이 올라옵니다. '뭐가 중한디?'라는 질문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유효하다면, BTS의 그래미상 수상 실패와 공연은 빨아대면서도 로제의 엄청난 흥행에는 침묵하는 이중적 태도에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성아이돌에 비해 남성아이돌 시장이 압도적으로 큰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래미의 보수성(인종차별) 운운하며 BTS를 빨아주는 짓거리는 위선의 극치를 보는 듯합니다. 인종차별이 동양남성보다 동양여성에게 더욱 심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의 보도행태는 여성기자가 많은 방송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더욱 위선적입니다. KBS는 9시 메인뉴스에 BTS를 초대했으면서도 블랙핑크는 무시해버리기 일쑤입니다.
한국언론이 타락의 끝을 보여주는 SBS의 <펜트하우스 시즌2>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이들의 위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상류지향적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텔레비전의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은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불만을 물타기하는 역할을 자처할 때가 많습니다. 상류층의 삶을 다루되, 막장 중의 막장으로 다루면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시청자의 분노와 불만의 감정이 값싼 배설을 통해 카타르시스적 오르가슴으로 희석됩니다.
상류층의 삶이 저렇게 막장이고 개판이라면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을 통한 감정의 배설이 무서운 것은, 벤야민이 <보를레르의 작품에서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와 <초현실주의> 등에서 다루었듯이, 카지노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혁명적 에너지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이런 지적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무한대의 타락과 하향평준화를 이끌고 있는 영상매체에 대한 경고까지 하지 않을 순 없는 것 같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혁명적 전복이 불가능하다면 미래세대를 위한 양성평등과 성소수자 차별만이라도 극복했으면 합니다,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장애인 차별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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