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속담 중에 '자연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통곡부터 할 것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11번가 광고 캠페인을 통해 유기동물에게 다시 가족을 찾아주자는 이승윤의 질문을 듣는 순간 이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늙은도령의 본 근현대사'라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세계사를 연재할 때ㅡ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새롭게 추가할 내용들이 너무 많아 연재를 다시 시작하고 책으로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ㅡ첫 번째로 인용한 속담이어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자연을 신의 의지가 적용된 완전한 세계로 보지 않고 인간에 의해 얼마든지 개발되고 변형될 수 있는 존재로 격하시킨 이후 인류의 자연파괴사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기 그지없었지요. 데카르트와 함께 이성의 시대를 연 장본인 중 한 명인 베이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지만 인류의 자연파괴사를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통곡부터 할 것'이라는 유추는 너무나 쉬워서 부가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터였지요.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와 <폭력비판을 위하여>, <새로운 천사>, <아케이트 프로젝트(파사주 작업)> 등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등을 보면 '자연의 통곡'은 현재의 인류가 겪어야 하는 온갖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의 다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일 이내에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 당하는 유기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벤야민은 '역사적으로 파악된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16~17세기 이후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진보와 파괴, 성장과 빈곤, 풍요와 불평등, 전쟁과 재건, 차별과 배려, 배제와 관용, 차별과 포용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극단이 동시에 벌어졌던 지난 수백 년 간의 인류의 역사에서 반려동물로 길들여진 생명체들의 역사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핵가족을 넘어 1인가구가 늘어나는 변화 추세는 반려동물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고, 상당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까지 치달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변화의 와중에 인간이란 종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쉽게 정을 주고 쉽게 거둬들이는 편의주의적 접근이 반려동물의 폭발전 증가와 함께했습니다. 인간과 가까워진 동물들은 인간이 걸리는 온갖 병들에 노출된다고 하지만, 그중에서 버려지는 것 만큼 잔인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자유와 권리에 대한 주장과 사용은 너무 쉽고 값싸지는데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은 더욱더 쉬워지고 값싸지는 것 같습니다. 승윤씨의 유기동물 가족 찾아주기 광고캠페인이 고마운 것도 자본주의적 소비에 물들고 자본주의적 소외에 사로잡힌 분들을 욕하기 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도움과 사랑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반려동물을 들이기에는 제 자신도 책임질 수 없는 형편없는 놈이라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저의 집안에서 개를 키울 때 이름은 항상 '보비'였지요. 이제는 수명을 다했겠지만, 문득 그 시절의 보비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토해내도 모자랄 시기에 이른 지금, 그리워해야 할 것들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나이가 들면 귀에서도 눈물이 난다 했는데, 제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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