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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세력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몰락한 첫 번째 이유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새정연이 몰락하는 과정을 복기해 보면 계층구조와 이념구조의 변화가 중첩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로는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 시발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1997년의 외환위기다.

 


수출 일변도의 압축성장의 폐해가 외환위기로 폭발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돌이킬 수 없는 해부학적 외과수술이 단행됐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구조조정은 수없이 많은 해직자를 양산했고, 노동유연화의 본격화에 따라 노동의 몰락이 촉진됐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강화됐지만, 질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계층구조는 10 대 90로 악화되고 있고, 이념구조도 보수3 : 중도3 : 진보4에서 보수4 : 중도4 : 진보2로 재편되고 있다. 







현 제1야당의 갈지자 행보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여기에 이른다. 참여정부 후반부터 오늘의 새정연에 이르기까지 제1야당이 외연을 넓히겠다고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면, 계층구조의 90%를 이루고 있는 중하위층 중에서 중도(이중이념)와 합리적 보수 성향을 띠는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끌어들여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7.30 재보권선거의 참패로 이어진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추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시민이 개인을 거쳐 소비자로 변한 상황에서 공통의 정체성이 없는 계층들은 사실상 세대로 대체된 상태다. 계급적 의식을 대표했던 노조도 노동유연성이 대세가 됨에 따라 전통의 영향력을 상실하며, 한국노총의 경우 아예 보수화됐다.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귀족화됐고, 정작 노조가 필요한 사업장은 비정규직으로대체됐다. 



여기에 성별의 차이(차별)와 지역적 환경, 학력과 이주민, 직종과 노동의 분화까지 더해지면서 중하위층 90%는 수없이 분열되고 파편화됐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삶정치적 영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는 반정치적 정서의 확대와 투표율 하락에 따른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졌다. 정치를 얘기하는 것조차 시대에 뒤쳐진 자들의 특징이 됐다.  



소비자로 떨어진 시민은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어떠한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그에 따라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정치경제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없어 공통의 의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네트워크의 과잉은 네트워크의 무력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세력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때그때의 사안에 따라 단기적이고 즉물적인 이합집산만 보여준다. 



네그리와 하트가 꿈꾸었던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수평적인 떼처럼 '다중'으로서의 세계시민적 네트워크는 이루어지지도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시민적 자유와 계급적 의식이나 공토의 이해를 구축하지 못하는 극도로 파편화된 소비자의 시대에는 유럽적 의미의 신좌파란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어색한 동거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형태의 네트워크적 유목민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에 의해 여론 조작의 대상으로 최적화된다. 민주주의란 사회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정치적 자유와 각종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데, 정착하지 못하는 디지털 유목민은 신빈곤층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권리들을 제대로 행사하기 힘들다.



저임금 비정규직과 임시직의 젖줄인 잉여들이 포화상태를 넘어 삼포세대처럼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의 전 단계까지 추락을 거듭한다. 이들에게는 빈곤의 대가로 떠들어댈 수 있는 자유,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아예 진입을 거부하는 자유,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 기타등등의 자유들이 주어진다. 



1인가구와 빈곤가구의 증가는 평균수명의 확대와 중첩되며, 필연적으로 신빈곤층이 늘어난다. 청년 실업자의 증가와 교용 형태의 악화는 노인 빈곤과 낮은 수준의 복지, 저임금 여성노동자와 이주민 및 외국인노동자의 확대와 삼중사중으로 중첩되며, 세대간 갈등과 성적·인종적 차별과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중하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스트레스와 만성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강화되며 계층간 이동이 최소화된다.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확대와 맞물려 최소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강화된다. 모든 분야에서 구조적 부정의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에 비해 상위 10%는 부와 기회의 대물림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1%의 특권층과 9%의 상류층을 이루며 두터운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중하위층이 이익 집단과 특정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1이라면 상위층은 10에 이르고, 최상위 1%는 20~25에 이른다. 



그 결과 상위 10%와 중하위 90%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벌어진다. 정치자금 제공과 각종 기부를 통해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고액의 광고비와 대규모 협찬 등으로 대중매체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특권층으로 접어든다. 마침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1인1표가 1원1표로 대체되며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만큼 금권정치를 강화한다.



국가와 사회의 보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신빈곤층은 복지의 사각지대로 떨어지거나, 이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에 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이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결과물인 빅데이터가 구축됨에 따라 프라이버시가 축소된다. 감시받는 사람들이 기득권에 맞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중산층도 언제든지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류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노후대책도 챙겨야 한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가족이 해체되고, 계층구조가 10 대 90으로 재편됐음에도 이념구조가 4 : 3 : 3으로 고착화되는 이유다.





여기서 진보의 가치가 정체성인 새정연의 중도와 보수화의 논리가 힘을 얻는다. 안철수 신당과의 통합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화의 시발점이 됐던 신민주당 플랜이나, 신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당의 강령을 정할 때 4.19와 5.18 정신과 10.4선언 계승 등이 빠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헌데 새정연의 주류는 진보고, 고정 지지층의 대부분도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이들에게는 새정연의 보수화가 달갑지 않았고, 당의 정체성마저 약화되고 혼란은 가중됐다. 계파의 난립이 강화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이는 대여 투쟁이나 협상에서 연전연패로 이어졌다.



또한 고착화된 이념구조인 4 : 3 : 3도 진보세력을 대변하던 새정연의 쇄락으로 인해 4 : 4 : 2로 변화될 조짐마저 강화되고 있다. 새정연이 진보적 가치를 강화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된 정치적 리더십을 제시할 수 있으면 계층구조의 변화 때문에 진보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새정연은 정반대로 간 것이다.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만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참사 초기에 국민이 보여준 분노의 분출은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대한 사회경제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강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참사 초기에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조중동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여야 모두에게 떠넘김으로써 정치적 프레임 설정해 전력을 다한 것이 이 때문이며, 그 결과는 정치적 접근의 원천봉쇄였다. 



새정연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요인이 다음 글에서 다룰 두 번째 요인에 휘둘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행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유족과 새정연은 이렇게 갈라졌고, 박영선 대표의 연이은 실족이 이어지며, 제1야당의 몰락이 역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진보정당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정연의 중도보수화는 진보 진영 전체를 무너뜨린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능함과 그에 대한 정치적 무책임이 겹쳐져 일어난 퇴행이었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놓고 새누리당과 일전을 불사한다면 고정지지층마저 잃게 되는 필패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고, 전략적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