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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세력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

새정연이 몰락한 두 번째 이유, 조중동 프레임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행정․입법․사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도나 해설 등을 통해서 여론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대중매체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거대 포털을 중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영향력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거대 대중매체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헌데 모든 대중매체 엄정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닌 정치적 편향성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광고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자본과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의 사명인 권력 감시와 저널리즘 특유의 비판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중매체의 기술적 본질이 상류층과 오락화를 지향하는 것이어서 권력 편향성과 상업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더욱 강화됐다.



특히 한국 언론생태계의 지형도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보수적이며 권력 편향적인 성향이 더욱 심화됐다. 보수정부가 일으킨 IMF 환란을 극복해야 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임기 중반부터는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반격에 직면해야 했다. 조중동이 보도행태는 금도를 넘었고, 증오의 정치를 일상화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는 조중동의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대통령 자신도 권력이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언론철학을 가지고 있어, 임기 초반부터 조중동의 융단폭격에 시라렸다. 부동산거품 붕괴와 맞물린 중반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대중매체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이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몰락한 두 번째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참여정부 중반부터 노골적으로 보수 성향을 드러낸 조중동의 공격에 더해, 낙하산 사장에 장악된 KBS와 MBC의 권력 편향성이 강화됐다. 최소한의 보도준칙마저 지키지 않는 무더기 종편의 등장은 진보 진영의 맏형을 자처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극도로 악화된 언론생태계에 직면했다.



이렇게 해서 제1야당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정치적 프레임이 설정됐고, 신자유주의의 번성에 따른 사회의 보수화와 맞물려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중동이 이끄는 언론생태계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타오르던 시기를 빼면, 이명박 정부 내내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들에 이 난무했고, 새정연(구 민주당)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 현상의 등장도 언론생태계가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였다. 노무현이 일으킨 바람과는 달리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반발이 안철수라는 대중적 스타를 선택한 안철수 현상은 기득권 정치와 재벌로 대표되는 특권층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강했지만, 거대정당인 구 민주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중도보수화에 대한 열망으로 안철수 현상을 해석(필자는 형편없는 왜곡으로 보지만)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대한 노조의 장기파업이 참혹한 패배로 끝나면서 MBC의 종편화는 가속화됐고, 이것이 방송생태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손석희를 영입한 JTBC의 변화는 이를 만회할 정도는 아니어서 언론생태계 전체의 보수화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통진당의 투표부정과 폭력사태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정부에 의한 이석기의 내란음모죄 적용과 통진당 해산심판청구라는 반민주적인 행태까지 치달았다. 정부와 보수화된 언론들에 의해 진보정당과 종북세력이 이음동의어로 변질·왜곡됐다. 진보진영 전체의 위축과 이분법적인 사상 검열이 일상화됐고, 마침내 진보진영 전체의 몰락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총체적 보수화가 정점에 이르렀다.



조중동이 주도한 언론생태계의 보수화에 대한 극도의 피해의식과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구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언론생태계 하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안철수 현상은 세를 넓혀갔고, 잠재적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지방선거를 통한 친노의 부활도 오래갈 수 없었다.



보수화된 언론생태계가 주도한 사회의 보수화는 구 민주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패배 원인이 친노 강경파라는 언론몰이가 계속됐고, 친노라면 치를 떠는 의원들과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도보수화 주장이 난무했다. 그 결과 김한길 대표의 당선과 안철수 신당의 탄생 및 졸속적인 합당으로 이어졌다.





잠깐 동안의 지지율 반등이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합당과정에서 보여준 절차적 민주성의 상실은 전통의 지지자들에게는 야합으로 보였다. 민주정부 10년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정강 소동까지 벌어지면서, 60년 전통의 정체성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다는 것이 합당의 실체라는 것이 알려졌다. 



당 내외에서 극도의 반발이 분출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합당을 했으면서도 분열의 강도는 내부화되며 계파별로 공고해졌다. 이는 새정연 내부의 정체성 혼란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음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진보 매체들마저 새정연에서 등을 돌렸고, 이것이 공천파동과 재보선 참패로 이어지면서 지도부의 리더십과 의원들의 팔로워십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정연은 사분오열됐다. 



국회의원이란 공천권을 잃는 순간 잉여보다 못한 존재로 떨어질 수 있는 특수한 존재다. 반정치적 정서가 만연돼 있는 한국의 경우, 특히 야당 의원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야당의 국회의원이었다는 것이 족쇄로 작용해서, 모아둔 돈이 없으면 정치브로커나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니면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것이 계파정치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4년에는 이것이 맞다



이 모든 것이 수십 년에 걸쳐 조중동이 설정해 놓은 정치적 프레임의 대국민 세뇌작용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결과다. 열린우리당에서 구 민주당을 거쳐 새정연으로 이어진 제1야당이 권위주의와 독재에 맞서 민주정부 10년이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 60년 전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채 보수화된 언론생태계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이다.



세 번째 요인으로 다룰 조중동의 안보상업주의와 종북몰이까지 더하면, 새정연으로서는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보수화된 언론생태계에 맞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한다는 것이 진보(자유주의적 진보라 해도)를 표방한 정당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독히 강화된 반정치적 정서와 공적 영역이 사적인 것들로 점령된 상태에서 어떤 정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사실 새정연의 몰락과 지리멸렬함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잘못된 만남이 만들어낸 정치의 몰락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몰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