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골프의 2번째 메이저대회인 하이트진로배에서 김효주가 우승한 것은 LPGA 그랜드슬램 대회인 예비앙에서의 역전우승보다 더욱 드라마틱했다. 준우승만 5번을 한 김하늘이 일찌감치 우승대열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종합랭킹 1, 2, 3위가 3, 1, 2위를 달리고 있었다. 4홀이나 남았는데 세 명의 타수는 단 한 타였다.
줄곧 선두를 달리던 랭킹 1위 김효주가 15, 16홀 연속으로 보기를 함으로써 3위로 떨어졌고, 공동선두였던 이정민은 2타자 1위, 앞 조에서 시합을 끝난 장타소녀 장하나가 3언더파로 2등을 기록하고 있었다. 두 홀 남겨두고 김효주에 2타 앞서고 장하나보다 1타 앞선 이정민이 방어적으로만 게임을 운영하면 우승은 따 논 당상 같았다. 이정민이 실수하면 장하나는 연장전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한국 최고의 순위에 올라있는 세 선수여서 플레이 난이도 가장 낮은 18홀을 감안하면, 17번 홀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정민의 우승이 거의 화정된 듯싶었다. 헌데 긴장한 이정민이 파를 기록했지만 김효주가 연속 보기의 악몽을 극복한 채 회심의 버디를 기록했다. 김효주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순간이었고,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두 번이나 함성을 질렀다.
이로써 장하나와 동타가 되며 이정민을 1타자로 쫓아갔다. 그리고 운명의 18홀 김효주는 홀에서 3m 정도 떨어진 내리막 퍼팅으로 남겨놓았고, 이정민은 잘해야 파였다. 먼저 김효주가 퍼팅에 들어갔고, 홀을 향한 볼이 아슬아슬하게 홀로 떨어졌다. 김효주가 주먹을 뿔끈 쥐며 포효했고, 이정민은 파를 기록해 둘은 동파로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김효주의 상승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다잡은 우승을 놓친 이정민은 어두워보였다.
앞선 두 개의 홀에서 두타를 연속해서 잃었던 것을 그 홀들에 이어 연속된 두 홀에서 버디로 만회하며 김효주는 이정민과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18홀에서 벌어진 연장전은 이정민이 러프에서 친 두 번째 해저드에 빠져 4타 만에 그린에 올렸지만, 버디를 잡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김효주는 충분히 버디를 잡을 수 있는 자리에 3샷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김효주의 드라마틱한 승리로 하이트진로배가 막을 내렸다. 김효주의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올해 통산 4승, 상금 10억 돌파, 랭킹 포인트 부동의 1위까지 명실상부한 한국 프로여자골프계의 여제로 등극했다. 박세리에서 신지애로 이어지는 여제의 족보에 김효주가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몆 주 전에 LPGA의 그랜드슬램대회인 에비앙에서 우승한 상금까지 더하면 올해 김효주는 돈방석(15억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에 앉는 최고의 한 해를 본냈다. 오늘 우승 인터뷰를 들어보니 내년부터는 LPGA 투어에 나설 것 같아 이번 우승이 한국에서 김효주의 우승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 낭자군의 활약상을 볼 때 내년도 LPGA는 한국 낭자들이 여전히 주름잡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완숙의 경지에 들어선 박인비와 리디아 고, 김효주, 현 랭킹 1위 스테이스 루이스, 꾸준한 상위권을 유지하는 스팬퍼드, 유소연, 이미림(2승) 등이 최고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KLPGA에서 김효주가 빠져나가고, 장타소녀 장하나 퀄리파잉 스쿨을 통해 본선 멤버로 합류하면 내년도 세계 골프계는 역사상 최고의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루이스, 클라머 등을 앞세운 미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언제든지 우승이 가능한 박인비와 김효주 쌍두마차를 이루면 나머지 선수들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씨너지 효과란 기량향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김효주는 내년 LPGA가 시작되기 전까지 체력훈련에 전념해 훨씬 많은 대회와 필드 거리, 지역이동에 따른 체력 저하에 만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김효주와 장하나가 빠져나간다 해도 KPGA는 여전히 좋은 선수들이 많아 올해의 인기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올해 우승한 선수들도 김효주나 이정민, 장하나에 결코 뒤질 정도는 아니어서 이들도 1~2년 사이에 일본이나 미국으로 진출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최소한 스포츠에 관한 한, 한국 여성의 위대함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똑같은 돈을 들여 특정 운동을 가르치면 한국의 낭자들이 가장 적은 수에 세계 최고에 오른다는 연구도 있고 하니 남남북녀는 잘못된 것 같다. 이제는 남녀북녀라 해야 할 것 같다. 배상문과 노승열 만으로는 여자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골프처럼 박태환이 무려 10년 동안이나 활약할 동안 꿈나무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한국 수영연맹의 무능력, 김연아 뒤를 이를만한 선수를 마찬가지로 키워내지 못한 것, 불모지나 다름없는 리듬체조의 높은 벽을 하나씩 허물고 있는 손연재의 발전과 그녀의 뒤를 이를 후배들이 없다는 것 등은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대단히 인기 없는 프로 스포츠였던 여자골프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다른 종목에서 이런 일들이 많아진다면,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가 여자 골프계를 통해 이루어지 못할 것도 없다. 김효주와 박인비를 비롯해 올해 한 해 한국 사람들에게 희망과 좋은 소식을 전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올 한 해 KLPGA를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때로는 LPGA보다 재미있을 때도 많았다.
향후 10년간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우승의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어라. 가끔씩 우승을 나눠주는 일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나갔나? 아무튼 김효주 선수, 한국을 떠나기 전에 팬과 선수들에게 한 턱 톡톡히 내시라. 필자 같은 은둔의 광팬에게도.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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