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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파퀴아오 대 메이웨더, 3년 전이었다면?



내일 슈가레이 레너드와 토마스 헌즈의 대결 이후, 최대의 빅매치인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슈퍼매치가 펼쳐집니다. 파퀴아오는 체급경기인 권투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8체급을 석권한 유일한 복서입니다. 5체급을 석권은 복서는 있었지만, 8체급을 석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권투의 역사가 아무리 길어져도 8체급을 석권한 복서가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에게 도핑검사를 받은 후에 일전을 치르자고 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권투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을수록 8체급 석권이라는 것은 설명 불가능한 영역의 업적입니다.



살을 찌워 8체급을 거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이런 면에서 파퀴아오는 불멸의 복서 반열에 오른 동양 최고의 복서입니다. 8체급을 석권하면서 오스카 델라호야(이 경기 이후 은퇴했다)처럼 최고의 선수들도 꺾었으니 서양까지 합쳐도 최고의 복서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최고의 복서로 인정받았던 장정구나 유명우보다 한 수 위의 챔피언입니다.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던 박찬희와 두 체급을 석권한 홍수환, 미들급으로 세계를 제패한 유제두와 박종팔도 파퀴아오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메이웨더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수비형 복서입니다. 지금까지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그의 수비를 뚫은 선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백인 헤비급챔피언이었던 록키 마르시아노는 무패로 생을 마쳤다). 공격력도 역대급이어서 그를 꺾을 수 있는 혁연선수는 마퀴아오 뿐입니다. 그것도 3년 전이라면 50대 50 정도의 승산이었습니다.



파퀴아오는 숨겨진 펀치(상대가 보지 못한 펀치를 말함)의 달인이어서 메이웨더의 수비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평가됐습니다. 펀치의 각도가 다양하고 강도 또한 상당합니다. 아무리 수비가 좋은 메이웨더라 해도 끊임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펀치를 날리는 파퀴아오의 공격을 제대로 소화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헌데 지금의 피퀴아오는 마르케즈에게 실신 KO패를 당했던 것에서 보듯 턱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 체력도 예전만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보이지 않는 펀치의 수와 강도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필자가 메이웨더의 승리를 점치는 이유입니다.



다만 권투는 의외의 펀치 한 방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파퀴아오가 승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파퀴아오를 응원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행운의 펀치가 먹히기를 바랍니다. 메이웨더는 제대로 된 펀치를 맞은 적이 없어 매집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지만,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요?





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파퀴아오가 12회 내내 쫓아만 다니다 체력이 떨어져 허무하게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가 되겠지요. 두 선수의 성향 상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터 마퀴아오가 줄기차게 몰아붙일 수 있다고 해도 중반을 넘어가면 이것이 힘들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 파퀴아오의 수비는 많이 약해진 편입니다. 무리하게 몰아붙이다 카운터펀치를 맞으면 의외로 일찍 경기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파퀴아오가 작전을 짜기 힘든 것이 이 때문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마지막 2회 정도에서 승부를 보는 작전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높습니다.



프로모터 입장에서는 파퀴아오와 메이웨더가 한두 번의 다운을 주고 받은 뒤 파퀴아오가 힘겨운 판정승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선수 간의 리턴매치가 빠른 시일 내에 열릴 것이고, 여기서 메이웨더가 판정승을 거두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3차전도 가능해집니다. 수천억의 시장이 3번이나 열리는 것이니 프로모터와 방송국은 경사나는 것이지요. 





프로모터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흥행요건이 갖춰지는 것이니 이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메이웨더가 승리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상황에서 파퀴아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력으로 불리함을 극복해내기를 바랍니다. 



장기전으로 가면 파퀴아오가 불리하니 초반에 승부를 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우 중의 여우인 메이웨더가 맞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경우 중후반은 메이웨더의 독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파퀴아오의 KO패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가 3년 전에 붙었으면 최고의 대결이 됐을 것입니다, 알리와 프레이저(알리가 2승1패), 레너드와 헌즈(레너드 1승1무), 레너드와 해글러(해글러는 미들급 역사상 가장 강했지만 이 경기에서 우세한 경기를 했으면서도 판정패가 선언되자 은퇴하고 영화배우가 됐다), 자라테와 자모라(홍수환을 두 번이나 KO로 잡은 선수, 자라테가 두 번 다 KO로 이겼다)의 대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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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기는 제가 본 슈퍼매치 중에서 최악이었습니다. 두 선수는 KO로 이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천문학적인 대전료가 지불되는 경기에서 이런 경기를 보여준 것은 두 선수 모두에게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특히 파퀴아오의 전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메이웨더가 정면대결을 하지 않고 포인트 위주로 판정승을 노릴 것이 분명했는데도 파퀴아오는 특별한 전술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깨부상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메이웨더는 어떻게든 승리만 하면 그만인 경기였고, 무패로 은퇴하면 되는 경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때보다 교활하게 움직였고, 승리할 만큼의 모험만 했습니다. 파퀴아오의 장점은 상대가 맞대응하도록 만드는데 있는데, 메이웨더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파퀴아오는 메이웨더가 그렇게 나왔을 때 승리를 이끌어낼 특별한 묘수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메이웨더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파퀴아오가 너무 못해서 진 것입니다. 오늘의 슈퍼매치에서 파퀴아오는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