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연극은 무대 위로 올렸지. 자네가 모를 뿐이지.

- 무영이 천상귀원검에 이어 여의일도파천황을 이뤘다고 해서? 컬컬! 두 초식을 이뤘다고 해서 무턱대고 올릴 무대가 아니야. 천년의 연극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 빨리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야.

- 자네의 눈으로 보면 그렇겠지. 이미 천년을 너의 입장에서만 봤으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지. 아, 몇 번 수정을 했다고 했지? 그런 게야. 직접 살아 움직이는 것에선 완벽함이란 없어. 그건 삶에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 자의 개념일 뿐이야. 수많은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기도 하지만 우연이 그냥 우연으로 끝나는 경우도 숱하게 있어. 모든 변화와 단절, 비약과 우연에 열려 있는 게 삶이야.

살아 있는 연극이란 때로 남이 마련한 무대에 올릴 때가 더욱 쉬울 수도 있어. 혼자만의 삶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만물은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보완적 경향을 취해.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하고. 단절이 지속을 보장하고, 비약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자유, 그게 핵심이야. 창조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야. 확정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뭐 그런 혼돈 속의 질서이지.

스스로 구성이 완벽하다고 확신해, 탈고하지 않는 극본이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어. 모방이 창조의 시작이니까. 너의 연극이 그래서 더 쉬운 거야. 완벽하다고 믿는 것에 늘 허점이 있지. 난 그것만 찾으면 됐어. 아주 작은 틈을 찾아내는 게 삶이고 미래에 투자하는 현재의 의지야. 그게 무엇도 가능하게 하지.

게다가 너의 연극은 천년 동안이나 최고의 흥행을 거둔 연극이라 관성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네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첨삭이란 너조차 관성을 되돌릴 수 없어 미세조정만 가능하게 된 거지. 그게 네 연극의 단점이야. 난 관성에 올라타기만 하면 됐으니까.

- ..베꼈다는 게냐?

- 아니. 검결 몇 자 수정한 것처럼 가장 느슨해진 각본의 일부를 조금 고쳤을 뿐이야. 네가 자네처럼 어리벙벙하게 하겠어? 물론 자네야 무엇이든 갔다 쓰면 됐지만, 중간에 들어간 난 대사도 고치고 연기 지도도 직접 해야 했어. 때론 이리저리 빈자리도 메워야 했고, 고친 각본에 따라 연기할 배우들도 새로 뽑아야 했어. 당연히 천년의 흥행에 성공한 자네와 같을 수야 없겠지.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 자네가 첨삭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었으니까.

- 뭐라고? 이놈이 감히!!!

- 허허. 이제야 이해를 하네. 그래, 자네는 지금 천년의 주재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이 된 거야. 나, 류심환이 썼고 무영이 주연한 연극의 첫 번째 관객!

- 이.. 노엄! 이.. 클클.. 클클.. 좋아, 그렇다고 하고, 다음!!!

- 하하. 너무 서두르지 마라. 성질을 내니 이제 사람답군. 좋아, 그 모습.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놈의 성미하곤.. 좋아, 지금부터 확실하게 느껴보라고. 연극 속에 갇혀 네가 정한대로 연기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그 많은 배역들의 눈물과 피와 한을 철저하게 느껴보라고. 네 놈의 극본에 갇혀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눈을 뽑고 입을 찢으며 사지를 절단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수많은 희생들을. 지금부터 내가 그들의 한을 네놈의 영혼과 뼈와 살에 하나하나씩 각인시켜 놓을 테니.

- 쓰레기들 얘기를 내가 왜? 아, 참! 대역이라면 삼영을 말하나? 설마 혜준을 같고 그럴 리는 없을 테니.

- 마음대로 생각해. 이젠 네 생각이나 궁금증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혜준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게야. 그때 확인해 보라고?

- 진정한 가치라? 겨우 그것으로. 클! 너무 재미없잖아, 그러면?

- 상상은 자유니까, 너 꼴리는 대로 생각해. 아무튼 다시 얘기하면 이렇지. 이곳에서 보낸 총 6년간의 기간 중 5년은 무영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하나로 합치는 기간이었어.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합쳐지는 것이지, 대등하게.

- 대등하게?

- 그래, 대등하게. 여기서 자네와 다른 것 하나, 어떤 깨달음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다 의미가 있다는 것. 하나의 무공이 독점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지. 자네처럼 관념 속에서 무공을 익히고, 사변으로 경험을 대신하는 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 생명 말이야. 약동하는 생명!!

- 생명?

- 넌 존재도 아니고, 실존도 아닌 채 천년을 이어왔어. 너는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어디서도 실존하지 못했어. 네 각본 속에서는 한 자의 문자였던 것이 현실에선 실재의 삶이야. 숱한 우연과 단절, 변이와 지속이 난무하는 삶 말이야. 넌 이해할 순 있어도 체험하지 못했어. 해서, 무의 근본이 힘에서 출발한다고?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소리!!

- 삶.. 기껏해야 백년도 못 넘기는 삶? 클클,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야. 그까지 삶, 체험하지 않아도 돼. 난 천년을 주재했어. 편재가 곧 집중이야. 난 언제나 연결돼 있었으니까.

- 그럴까? 그렇다면 왜 첨삭이 필요했지? 변수는? 그것도 안배했나? 모든 변수를? 편재가 곧 집중이라고? 그건 집중이 아닌 연결일 뿐이야. 어디서나 단속은 일어나. 그래서 변수가 생기고, 첨삭이 필요한 거야. 너의 연극도 그랬고. 지금 너와 나의 대화가 바로 그래. 알겠나? 다시 말하지만, 너의 연극,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니까.

-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네 놈이 천년의 극본을 육년 만에 바꿀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어. 안 돼, 안 돼. 안 돼!!

- 너무 자책하지 마라. 추해 보이니까. 천년을 영혼으로만 떠다녔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넌 너도 아니야. 누고도 아니야. 그저..

- 으드득! 감히 어디 앞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망발을!! 노엄!!!

- 망발이라… 이제 시작인데, 망발이라면? 아직 많이 남았거든. 너무 흥분하지 말게. 좀 더 들어보라고. 내 각본도 재미있거든. 사람이.. 사람? 뭐, 사람이라 하지.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래, 천년의 전설을 바꾸는 건데 마냥 쉽기야 했겠어? 나도 사람인데.

- 크.. 크.. 다음!

-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웃기라도 해야겠지. 허나, 두 번째로 내 연극이 자네하고 다른 건 이거야. 자네가 초마인을 죽여 삭(削)하고, 검강인을 제거해 첨(添)할 임시주인공을 내게 보내주었을 때,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지. 그것은 임시주인공이 연기가 아니라, 삶의 무대로 내려와 부모의 처참한 죽음에 순정(純情)한 피의 분노와 한이 너무 깊어 투명해진 영혼으로 내게 다가온 순간 이루어진 깨달음이었어.

그것이 너와 달라. 인간의 삶에 담긴 진정한 가치란 그 잠재능력으로 하여 인간 자체가 우주가 될 수 있음을 그 아이가 가르쳐 주었어. 천상무극독을 치료할 때 무영의 본능이 보여준 잠재능력의 무안함과 순정함, 그것이 나를 깨우치게 해줬어. 그걸 해탈이라 하면 해탈이고, 그걸 우화등선이라 하면 우화등선이지.

내가 씨를 뿌렸으나 아이의 아비가 물을 주었고 아이에 의해 몽우리를 맺어 비로소 완성된 것, 일극무원결이 바로 그 결과야. 이로부터 해탈과 우화등선의 길에 오르고 두 무공의 합일을 통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끝이 끝이 아닌 거라는 깨달음, 죽음에서 시작되는 것도 있다는 깨달음, 그게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삶도 운명도, 하물며 무(武)라고 해도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귀결돼. 그게 무의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넌 집중했지만, 난 풀어놓았어. 넌 상승만 생각했다면, 난 하락도 받아들였어. 그 깨달음을 아이가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지난 오년이었고, 나머지 1년은 그 과실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어. 바로 이것이 자네의 집중이나 독점과는 근본부터 다른 거야.

- 무의 해탈? 무의 우화등선? 그따위는 없어. 점점으로 나눠 편재할 순 있어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순 없어. 그건 무야. 무란 없는 거야. 관념이고 허상이야.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일어나기나 하겠어?

- 그건 무가 아니라 진공이지. 무란 충만한 거야.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무엔 모든 것이 있어. 그냥 시공간에 드러나는 것이 없어 보일 뿐이지만, 무에는 모든 것이 있어. 그래서 무란 유의 부재가 아니라 충만이야. 다시 말해 우주인 거지.

- 철학적 유희는 그만하면 됐어. 네 놈은 일극무원결을 너무 믿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그것이 세 무공의 합일보다 더 강하다? 시정잡배가 말하길 개소리라 했던가, 네가 말한 것들이?

- 개소리도 극에 이른다면, 인간의 말이라고 못할 게 또 무엇이겠나?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힘을 알 수 없어. 크하하하하!!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이고 네놈이 다시 천년을 산다고.. 아니 뭐, 살아있던 떠 있든 간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진정 무영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할 때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어떻게 여의일도파천황과 하나로 합쳤는지, 그 사이에서 일극무원결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네놈이 천년을 생각하고 지켜본다 한들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 얻는 것과 남이 이룬 것을 훔쳐가는 것의 차이를 네놈이 알 턱이 없지. 인간은 정신과 육체 외에도 영혼의 공간이 있어. 넌 그걸 이해하지 못해. 너와 나, 무영과 검강천이 죽음으로 안배한 것이 혜준의 사랑으로 완벽해지는 것을 너는 알 수 없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무영과의 차이이기도 하고. 이게 지난 6년의 진정한 가치야. 천년보다 더욱 소중한.’



- 후후. 해서.

- 그렇게 총 육년, 나의 연극은 막을 내렸지. 네 말을 또 빌리면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한 연극의 전반부야.

- 전반부라고? 컬컬, 컬컬, 재미있어, 재밌어. 다음은?

- 먼저 4년이란 기간의 연기에 대한 대가를 너의 각본으로부터 받아내야 했어.

- 초마인과 검강인의 제거군. 당연히, 초마인이 먼저겠지.

-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헌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하! 너와 겨루려면 검무영과 그 떨거지들을 먼저 죽여야 한다? 크하하하. 건방진 놈. 이경이라? 뭐, 천외천이 아니라 제천문이라고? 컬컬컬! 뭐든 상관없어. 다 쓸어버리면 되는데 이제 와서 따진다 한들 뭐가 다르겠어. 좋아, 그래, 제마단으로 가마. 한 번에 모두 쓸어버리고 네놈의 본거지로 가지.”



초마인 진무결이 자신의 앞에 대기처럼 떠있는 이경에게 말했다.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이 놀랍고 어의없는 것이어서 잠시 황당하기만 했지만 그 역시 이런 형태의 경공이란 처음 보는 것이라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솔솔 흥미마저 일었다. 그는 원래 먼저 현 무림을 다 쓸어버린 후 천상천을 칠 생각이었다. 천외천은 그 다음에 멸문시켜야 가장 멋있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마성과 몇 개 문파를 멸문시킨 것이었다.



물론 뜻밖의 희생도 있었지만 천외천, 아니 제천문의 능력이 생각보다 커서 오히려 재미가 늘어났다. 그 결과란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 새로운 재미와 긴장을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가.



헌데... 천외천은 껍데기고 실은 제천문이라고 했다. 저놈이 말하길 자신도 그 문파의 일원이라고 했다.

툴툴!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다. 지난 천년의 한이, 그 굴욕의 세월이 다 허망할 뿐이었다. 해서 순서고 계획이고 다 없애기로 마음을 바꿨다. 저놈부터 당장 없애고 싶었지만 그것은 재미가 덜할 것이어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마침 제마단에 검무영과 그 무리들까지 모였다니 이 살의와 허망함을 달래기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개 지옥의 힘과 곡인들은 들어라. 이제부터 무림을 쓸어버린다. 마음껏 죽여라. 살육을 즐겨라. 그 다음에 제천문을 쓸어버리겠다. 그것으로 천년을 바꾼다. 역천마곡의 이름으로 다시 무림 사를 기록한다. 일어나라. 마의 혼들아!”



초마인 만세!!

곡주님 만세!!

역천마곡 만만세!!!



천지를 흔드는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내뿜는 마기가 끝없이 일어나 하늘의 푸름마저 산 너머로 검붉게 기울게 했다. 마기 덩어리의 함성은 노을을 타고 제마단을 향했다, 놀라운 속도로.

그곳에선 지금, 무영이 막 열 걸음 째를 딛고 있었다.






천검지로23 -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5




“컬컬! 그런 것이었어. 천상천의 진정한 힘은 다섯 장로와 십팔 호법, 금제 당하지 않았어야 했던 십이 제마령, 삼재와 나머지 내궁 고수들이었어. 대부분 외궁에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나만 강해진 것이었어, 제기랄.”



검강인인 무영이 열 걸음 째를 내딛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모든 천상천 식솔들은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일부는 삼혼에게, 혜준에게, 검신과 도천에게 목숨을 잃었다. 온몸으로 번져가던 공포가 그들의 시신을 보자 일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모두들 최대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되 이 갑자 이하의 무인들은 아예 집성전 밖으로 나가, 당장!”

검신이 두 절대자의 일전이 시작되려 하자 주위에 있던 각 파 대표들에게 그 위험성을 일깨워줬다. 그의 말에 각 문파의 대표들은 서둘러 물러났다.



허나 그들 중 단 한 명도 집성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생을 살면서 이런 대결을 보게 됐는데 누군들 그 자리를 떠나겠는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검강인이 툴툴거렸다.



“후후. 물러나야겠지. 컬컬컬! 내 판단이 잘못됐어. 그때 삼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움직여 너를 죽였어야 했어. 결국 내가 씨를 키운 셈이야, 클클클.”



무영이 검강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네가 직접 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네 잘못과 그 대가는 내 아버지 검강천 천주를 제거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역천의 순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길게 생각할 것 없다. 지금부터 너는 죽어주면 되니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넌, 그렇게 죽어주면 되는 거야.”

“후후후. 자신이 지나치군. 검강천도 그랬지.”

“네 입에 내 선친의 이름을 올리지 마라. 한 번 더 올리면 네가 받을 고통의 크기는 그만큼 는다. 이미 한 번은 늘었다.”

“후후.. 컬컬. 이제는 말도 못하게 하는군. 허나 난 검강인이다. 천상천의 천주며 천상지무를 대성한 최초의 천주다.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죽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너는 데려가야겠어. 원래 천주자리는 내 것이었고, 굴러 들어온 놈의 자식마저 없애야 천상천은 바로 서는 것이지. 천외천이라 해도 예외는 없어. 내가 원하는 만큼은 데려가야 하겠어, 클클.”



검강인의 자신의 검 천무신검(天武神劍)의 검병을 잡았다.



“하나만 얘기해 주지. 네가 알고 있는 천외천은 허상이야. 껍데기야. 천년 전설도 그래서 껍데기고. 그 뒤에 천년을 주재했던 세력이 있어. 그들이 있는 곳에 천검 류심환 사부님이 계시니, 너와 초마인 진무결을 없앤 후에 그곳으로 합류하면 천년의 전설은 막을 내리는 거야. 결국 천외천은 허상이야. 너는 껍데기가 간직한 비밀 속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야. 너의 삶 모두가 의미 없다는 거야, 알겠나?”



말을 마친 무영도 승천제마검을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이제는 복수의 완성을 이뤄야 할 시간,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뭐? 천외천이 허상이라고? 그 뒤에 다른 세력이 있다고? 크하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놈, 무영! 분명히 해라, 네 말이 정말인지?”



검강인이 검을 뽑은 상태에서 무영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실은 죽어 지옥에서 확인해라. 일단 너의 손목으로부터 시작한다. 역천의 대가다. 갈!”



무영이 검을 뽑자마자 신형을 우측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검 끝을 튕겨 검강인을 향해 투명한 빛을 격발했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였다. 그가 튕긴 검강은 검강인의 손목을 향했다. 그 거리 안에서 이보다 빠른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속도로.



검강인은 무영이 한 말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으나 무영이 이미 몸을 이동했기에 그도 천상지무를 펼쳐야 했다. 그의 천무신검에서도 투명한 빛이 일었다. 동시에 하나의 검이 떠오르고 검강이 격발됐다.



천상지무 대 천상지무!



천년 전설의 검법이, 바로 그 천년 전설의 또 다른 검법을 상대하는 뒤틀어진 운명이 만들어낸 두 번째 일전이 시작됐다. 그 일전 첫 합은 투명한 두 개의 빛이 정면충돌하는 것이었다.



퍽!



두 사람 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 천상태극뇌전류를 격발했는데 의외로 충돌음은 작았다. 다만 두 검강이 그 끝을 마주한 채 힘겨루기를 했다. 이런 모습이란 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두 개의 검강은 살아있는 생물인 듯 그렇게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렸다.



윙! 윙! 윙!



두 개의 감강이 반의반의 반각도 안 되는 순간에 만들어낸 수천 번의 충돌에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휘돌며, 엄청난 크기의 파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발생된 파장이 두 검강이 이루는 반탄력에 밀려 맹렬하게 휘돌며 주위를 휘몰아쳤다. 그들의 첫 합이 집성전을 고려해 내력 대결로 간 것인데 그 대결의 여파가 순식간에 집성전 내부를 쓸어버릴 듯 퍼졌다. 두 사람에게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던 각 문파의 대표들이 이에 휩쓸릴 정도였다. 그 중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몇몇 장로급 인물들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그들 중 일부는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때 삼혼과 검신, 도천이 그들을 앞에 하나의 기막을 형성시켰다.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반탄력을 흡수하는 성질의 기막을 펼쳤다. 그렇게 방어벽이 생기자 비로소 각 문파 대표들의 흔들림이 멈췄다. 그 순간 두 절대 절초가 대치한 곳에서 일고 있는 윙윙거리던 소리가 급격하게 커졌다. 두 사람이 내력을 올린 것이었다. 검강인인 이런 힘겨루기라면 자신의 내력이 무영보다 강하다고 판단해 승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내력을 올렸고 무영도 이에 뒤질세라 내력을 올렸다. 그는 어떤 식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모든 초식에서 검강인을 아예 압도해버릴 생각이었다. 상대가 느낄 공포란 그럴 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휭!! 휭!! 휭!!



상승된 공력이 전달되자 두 검강의 끝에서 엄청난 속도의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마침내 하나의 화염을 형성했다. 충돌이 만들어낸 열기와 불꽃이 주변의 공기를 태우기에 이른 것이다.



콰-앙!!!!!



처음 제대로 된 폭발음이 터졌다.



쏴아악!!! 트트트특!!!



폭발의 여진이 집성전을 미친 듯 회오리 쳐 거력의 광풍을 만들었다.



쩌억! 쩌억! 쩍! 쩍!



집성전의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삼혼과 검신, 도천의 기막이 뒤로 크게 밀렸다. 순간 혜준이 그 기막에 하나의 기막을 더 얹었다. 그러자 그들이 펼친 기막을 뚫어버릴 듯했던 거력의 강풍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일전을 치켜보다 다음을 결정해요.”



혜준은 무영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문은 중요치 않았다. 그런 혜준의 시선과 함께 그들의 눈에도 검강인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내공에서도 밀리다니... 이럴 리가 없는데..’



검강인이 기혈이 흔들리며 솟아온 신음을 삼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번쩍! 차르르르륵!!



맹렬히 뒤엉키던 검강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강인은 다급히 기혈을 조절해 파편들을 튕겨내며 다음 초식을 펼치기 위해 천상지무의 운결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시야에서 빛이 먼저 어른거렸다. 그것은 화염이 폭발할 때 생긴 강기의 수천 조각 중 하나였다.



“역반투라 한다.”



무영의 말과 동시에 검강인인 자신의 왼 손목에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들었던 순간에 소림 끼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삭둑!



그 느낌은 이런 소리와 함께 극렬한 통증으로 변했다. 강렬한 신음이 검강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큭!”



헌데 자신의 손목을 자른 것은 자신이 펼친 검강 조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강에는 일정량의 마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었다.



툭! 파앗!



검강인의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잘린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검강인은 급히 요혈을 짚어 지혈했다. 그렇게 검강인 지혈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던 팔의 일부를 볼 수 없었다.



“마기만 돌려줬다. 천상지무가 아니어서. 다음은 오른쪽 발목!”



무영의 말이 검강인이 고막을 흔들기 전에 무영의 신형이 흐려졌다. 검강인의 눈이 본 것과 귀가 느낀 차이는 그런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삼혼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핫!”



검강인은 천무신검의 끝을 두 번 튕겨 천상지무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을 격발시켰다. 흐린 무영의 모습 끝에 두 번 번쩍이는 것이 그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펑! 펑!



검강의 정면충돌이 두 번 일어났다. 또 다시 내력의 대결이 일어났고 일합보다 더 큰 파장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집성전 전체가 흔들렸고 삼혼과 혜준의 기막도 크게 흔들렸다. 폭풍을 동반한 거력이 집성전을 삼킬 듯 휘몰아치던 그 혼돈의 순간, 두 내력의 폭발에 의해 수없이 만들어진 조각난 강기 중 하나가 폭발과 동시에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빠져 나왔다.



무영은 일합과는 달리 자신이 격발한 검강이 검강인의 검강과 충돌할 때 일극무원결의 수비식 망(網)을 동시에 펼쳤고 검강을 통한 치열한 내력 겨루기를 하는 동안 하나의 검기를 분리시켜 다시 역반투로 발사했던 것이다.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란 이런 임기응변적 창조성에 있었다.



“이번에는 망을 더했고 역반투는 아버님 몫의 일부다.”



검강인은 그런 수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불신의 결과는 여지없이 슥! 하고 싹둑! 이었다. 찰라 지간의 차이를 두고 검강인의 귀에 두 소리가 인식됐다. 이어 신경이 감각을 건드렸고 이를 감지한 뇌에서 신호를 보내기 전에 검강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감각보다 본능이 빨랐다.



“크악!”

톡!



발목이 작은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고 엇갈리듯 그 위의 다리는 앞으로 밀려났다.



휘청!



발목이 잘린 여파에 발이 앞으로 나가자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턱!



잘린 발목이 바닥을 짚었고 피가 튀면서 다시 비명이 터졌다.



“컥!”



순간 내력의 대결을 펼쳤던 검강인의 검강이 검결에서 이탈했다. 무영의 검강도 같은 순간 사라졌다. 마기가 담긴 일탈한 검강인의 검강들이 사방으로 폭사됐다. 집성전이 그 파편에 의해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그 충격에 금이 깊어지고 간격이 넓어졌다.



쩌ㅡ억!!!



“이번 합에선 발목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영의 청아한 음성이 울렸고 각 문파의 고수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혜준이 그들의 앞에 기막을 유지해 퇴로를 확보해 주었다. 그 순간 삼혼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제마단 집성전 위 삼십여 장 위로 빛살처럼 날아갔다. 삼영은 이곳 제마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검강인이 급히 검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으로 발목으로 가는 혈도들을 점해 출혈을 막았다. 검강인의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 봤다. 고금제일인을 꿈꿨던 자신이 허리를 비틀며 힘겹게 중심을 잡고 발목으로 서있는 것이었다. 이제 통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이 더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는 툴툴거리며 겨드랑이에 꼈던 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들면서 고개를 들어 무영을 바라봤다.



그때 무영은 집성전에 생긴 금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했다. 그 정도면 검신과 혜준 등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어 검강인을 보며 말했다.



“다음 무릎까지는 이곳에서. 지금부터 어머님의 몫도 함께 포함된다.”



그의 말에 어머니이란 단어가 들어가자 검강인의 뇌리에 다시 공포가 떠올랐다. 그 공포엔 치욕 같은 수치심이 묻어 있었다. 허망함이 아무리 크고 자존심의 상처가 뼈에 사무쳐도 수치심을 동반한 공포는 그에게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검강인의 눈빛이 마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그때 삼영에게 목숨을 잃은 일환이 쓰러져 있는 곳에 나머지 세 명의 환이 내려섰다.

  1. Arthur Jung 2015.02.02 17:00 신고

    아, 이런 글도 쓰시는군요.
    블로그를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

    • 늙은도령 2015.02.02 18:55 신고

      아, 예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죽지 못해 썼던 소설입니다.
      그때는 정말 자살만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이끌어갈 수 있게 해준 소일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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