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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최종편 ㅡ 새 천년 그 시작을 향한 마무리



무천은 자신의 일초도 받아내지 못하는 류심환을 보며 작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와 대화할 때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는 자신이라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막강했었다.



헌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자들은 아니었기에 정확히 감지할 수는 없었지만 세외문의 십이 력 중 제천문으로 파견 나온 여섯 명의 력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자신이 키운 진정한 제천문의 힘 중에서 삼경과 사경의 기운이 사라짐을 느꼈다.



처음에 무천은 믿기 힘들었다. 그는 그들을 한 푼의 공기와 바람, 햇살과 구름의 기운을 담아 천년 동안 키운 전사들이어서 고금제일의 수준에 이르렀다. 느렸지만 하루하루 다져간 자들이었기에 가히 천하무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무천은 그들이 있는 한 자신은 류심환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믿었고 그들을 깨워 류심환의 안배를 저지시키기 위해 두 명을 삼혼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다음이 무영과 삼혼이었으며 그 외의 나머지들은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헌데 그 티끌 같은 존재들에 의해 자신이 키운 천하무적 전사들의 기운이 일환이 그랬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을 키우기 위해 쌓았던 공기와 바람, 햇살과 구름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무천은 류심환의 기도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천은 삼경과 사경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자신의 최대의 적인 류심환의 기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자,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무천은 잠시 동안 그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자신의 천년 연극이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점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단 류심환의 변화가 너무 뜻밖이었고 급작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느낀 류심환의 변화는 깨달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무위의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까지 갖고 있던 공력마저 사라지는 느낌이 분명했다. 이를 테면 류심환이 무공을 익히기 전의 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했다.



무천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류심환의 변화는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류심환 자신이 본신(本身)의 공력을 스스로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것은 오직 미친놈만이 하는 짓이었고, 자신과 대화하는 중에 공력을 전달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무천은 류심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삼성의 공력으로 제천무한장(制天無限掌)을 펼쳤고 , 그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고금제일에 이른 류심환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처럼 튕겨지더니 회오리바람에 휘날리는 부유물처럼 제천무한장이 일으키는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부딪치고 휘날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똑똑히 지켜보면서.. 무천은 지랄 맞게도 자신이 느낀 것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심환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펼친 3성의 제천무한장에 류심환은 한 문파의 수장 정도밖에 안 되는 무인처럼 너무 쉽게 무너졌다.



“어떻게..? 왜? 너는 이러는 것인가?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돌아와! 다시 돌아와 나와 전력으로 부딪쳐! 류심환!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



무천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자신이 수억 번 양보한다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류심환과의 대결이 이래서는 안 됐다. 류심환이 이렇게 쉽게 자신에게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그래야만 자신의 천년이, 그 작은 첨과 삭의 흠집이 자신의 완벽함을 갉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 뭐라 해도 천년을 이어온 전설이었고, 그 중심에 있는 자가 류심환이거늘 이렇게 쉽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퇴장은 그로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야! 이놈! 류심환!! 이렇게.. 이렇게는..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무천이 오히려 미쳐버릴 판이었다.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단 말이야. 천년 연극의 흥행 대박을 위해 다지고 다졌고, 삭하고 첨하기, 일탈과 부분 수정을 통해 완벽하게 진행돼온 것이 천년인데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단 말이야!! 준비한 것만 천년이란 말이야!!! 류심환 일어나, 돌아와, 돌아와 나에게 검을 겨누란 말이야!!!”



그때였다. 그가 미친 듯이 외칠 때였다. 무천은 류심환의 말이.. 그가 보낸 영혼의 말이 들렸다.



- 오직 하나만.. 너는 나와 나눈 대화만 기억하면 된다. 그 다음에 일어날 모든 것들은 내 뜻도 아니요, 더군다나 자네의 뜻도 아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하고 떠날 뿐이다. 운명이란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운명인 것이지. 내가 비튼 것이 새로운 운명이 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아니..? 왜, 왜! 내 영혼에서 너의 말이 들리는 것이냐? 나와 네놈이 있는 이 실제의 공간에서 들리지 않고 왜, 영혼에서.. 그 지겨웠던 천년의 기다림처럼 왜, 왜, 영혼의 울림으로 네놈이 말한단 말이냐? 돌아와, 류심환. 이놈 어서 돌아오란 말이야. 제발.. 제발 돌아와 나에게 검을 휘두르고 베고 자르고 찔러라. 크크크크! 켈켈켈켈!! 어서.. 빨리.. 다시 이 실제의 공간으로.. 크아아아악!!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너를.. 너를 기다려온 시간만 천년이야!! 천년, 천년이라고!!!”



- 네 천년은 완벽하지 않았어도 그 세월의 깊이만큼 컸음을 인정하마. 네가 이룬 정기신일체의 성취가 내가 이룬 경지와 다른 두 명의 절대자가 이룬 경지를 거저 가져감으로써 이뤄진 것이라 해도, 네가 기다린 만큼의 세월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으니까. 나, 류심환은 그것을 넘지 못했어. 노력했지만 천년을 이어온 너의 힘을 이길 순 없었어.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야.



“크크크크!!! 컬컬컬컬!!! 잡소리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무천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손은 투명하게 변했다.



- 해서 내 마지막을 무영에게 남기려 해. 이것 때문에 너하고 많은 시간의 대화를 나누어야 했고 무영으로 하여금 실전을 더 치르게 할 수 있었어. 허나, 그 실전의 깊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실제의 시간.. 천년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너를 처음 본 순간 알았어.


그 때부터 내 몸의 공력을 하나씩 응집시켰어. 너를 속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지. 그리고 내 간절한 바람에 그것을 실었어. 그것은 내 바람이어서 내가 선택한 것이고, 하나로 응집된 내 모든 것을 무영에 전했어. 다행히 내 바람이 무영에 이를 수 있었어. 삼혼이 기꺼이 신삼혼지문을 열어주었으니까.



“크크! 좋아, 좋아. 뭐가 어쨌든 좋아!! 대신, 무영을.. 그 떨거지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이 허탈함을.. 이 허망함을 무영과 나머지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임으로써 풀 테다. 그 잔해들을 네 놈의 저승길에 노자 돈으로 얹어주마. 그렇게 갈 것이면 그것까지 가지고 가라.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가장 잔인하게, 가장 고통스럽게.. 컬컬컬컬! 크하하하하하!! 켈켈켈켈켈!!!”



무천은 좀처럼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천년의 세월이 길고 거대했던 만큼 상대의 힘도 거대해야 그 끝이 의미가 있었다. 헌데, 자신의 진정한 적수라고 여겼던 류심환이 저렇게 허망하게 가고 있으니 무천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이런 끝은 있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너무나 분노해 차라리 허망함에 가까웠고, 끝내는 저주에 이르렀다. 



- 이제 신 삼혼지문에 무영이 이르렀으니 내가 이승에서 할 일은 다 끝났어. 이 말을 남기기 위한 내 본신 공력마저 사라지면 내 숨결은 이승의 것이 아니겠지. 비궁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억울한 것은 아니나 새 천년의 공기를 마셔보지 못하는 것만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야.


무천! 이로써 무영은 완벽해졌다. 그의 정기신일체가 너와 같음이요,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그 희생의 진실함이 모였어. 너는 그것을 넘지 못해. 다시 네 놈이 천년을 산다 해도, 그리하여 다시 더 강한 힘으로 돌아온다 해도 너는 무영을 넘지 못해. 그와 그들의 천년을 넌 절대 넘지 못해.



“미친놈!! 죽었으면 사라져. 네놈의 소원대로 비궁 밖의 공기를 맡게 해주마. 켈켈켈!! 가라!! 꺼져, 꺼지라고!!!!”



투명하게 변한 무천의 손이 흔들렸고 핏빛 안구에선 강렬한 안광이 폭사됐다.



팟팟!!



비궁의 대기를 가르는 아주 미약한 진동이 일었다.



퍼엉!!



굉음과 함께 류심환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비궁의 벽을 향해 날려졌다. 부딪쳤다, 류심환의 몸이. 그의 짧은 생이 웃음을 띤 표정으로 비궁의 벽에 부딪쳐선 그대로 뚫고 나갔다.



콰아앙!!





비궁의 백 장 거리에 도착한 삼혼이 주군의 영혼이 남긴 소리와 함께 결집된 하나의 힘을 받았다. 그들은 그것이 주군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아는 자신들이 용서되지 않았다. 신삼혼지문을 열어 결집된 힘을 받아 무영에게 넘기면서도 그 매개체가 된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 크흐흐흑, 주군!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절대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군.. 주군..



- 허허, 삼혼. 이렇게 더 젊어진 모습을 보니.. 허허, 무영의 곁을 잘 지켜주셨군요. 허허,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됐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함께 한 지난 삼십 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충분해서 넘칩니다, 허허..



-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충분하다니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충분하다니요.. 크흐흑! 주군, 주군! 어찌,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삼혼이 느낀 것을 그곳에 도착한 무영도 느꼈다. 그 역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음은 다르지 않았다. 류심환의 기운이 다 스러지는 것을 이곳이 아니라 초마인 진무결을 처단할 때부터 무영은 느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무영은 그 느낌에 가슴이 내려앉고 생각조차 멎었다. 부정하고 부정하며 날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제가 여기 왔는데.. 이렇게 성장해서 왔는데.. 아저씨.. 제가.. 이 범속한 제자가 스승님을 뵈러 왔는데..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왔는데.. 어찌, 어찌 이렇게..



- 허허. 됐다. 이렇게 보았는데.. 허허. 이런, 이런, 네가 이리도 늠름하게 자란 모습이란. 허허허. 스승이라니, 내 아들이라니.. 허허허.



- 아버님.. 내 아버님.. 크흑흑흑!!!



- 무영아, 슬픔을 거두고 준비를 하거라. 내 령의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너의 가슴에 돋는 살의로 준비를 해라. 어서, 무영아. 무천의 힘은 내가 상상한 이상이야.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야. 내가 깨달은 일극무원결의 마지막 오의, 여의(如意)다. 이것을 통해 너는 정기신일체를 완성해 무심공신무중력(無心空身無重力)의 경지에 이르러야 해. 그것만이 무천을 넘어설 수 있을 거야. 어서 준비.. 하거라, 무영아.. 어서.. 무영..



류심환의 혼의 소리가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무영과 삼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 알겠.. 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제가 준비할게요.



- 삼혼도 준비해주십시오. 진정한 삼혼지문을 열어주십시오. 천년 전설의, 그 비열한 거짓에, 그 안에서 먼지보다 못하게 떠난 사람들의 영혼의 한을 위해 신삼혼지문을, 그 위대함을 열어주세요.



- 크흐흐흑!!! 주군,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군의 명인데요. 저희의 단 한분의 주군이신데.. 그 위대한 여정에 몇 걸음 따라갔을 뿐인 주군의 삼혼일 뿐인데 열어야지요. 열어서 주군의 위대함을 증명해야지요.



- 무영아, 그리고 삼혼.. 영(靈)이란 무엇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을 펼치는 것은 인간의 몸이니 반드시 무천이 깨닫지 못한 것을 무영은 이루고 삼혼은 지켜주십시오.


무영아, 부탁한다. 내가 사는 길은 네가 삼혼지문을 거쳐 너에게 넘어갈 오의와 그들의 새로운 깨달음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이뤄진다. 명심해야 한다. 그 둘을 일원무극결의 모든 감각이 하나로 귀결된 현(炫)과 관(觀)을 열어 이를 받아들여라. 해서, 영육(靈肉)의 최후 단계에 들어서거라. 여의에 이르러 일극무원결의 꽃이 만발하여 우주 간에 가득하게 하거라.



"......."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는 것인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류심환이 말했고 무영과 삼혼이 듣기만 하면 됐다. 이미 하나인 것은 말하고 듣기조차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 무영아 너를 믿는다. 삼혼 수고해주십시오. 무영아, 이제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어. 우리는 늘 함께 할 거니, 힘내서 반드시 끝을 잘 마무리하거라.



- 가십니까? 이렇게 다 버리고 다 주고 가십니까? 제가 무엇이 건데, 이리 주고 또 주어도 아직 모자라다 하십니까? 가시는 순간까지 주지 못한 것들로 힘들어 하십니까? 저는 넘쳐 어느 하나도 다 담아낼 수 없는데, 다 버리고 다 주시고 또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어찌 이리도 제게 박절하십니까? 이 고마움을, 한없는 사랑을.. 저는 어쩌라고 이리도 박절하게 떠나십니까? 아아, 보낼 수 없어요. 보낼 수 없어요. 가셨어도 보내지 않을 거에요. 가셨어도.. 저는, 당신의 아들.. 이 무영은.. 크흐흐흑!!



- 가셨습니까? 가신 것입니까? 가셔서 편하신 것입니까? 벗으셨는지요? 벗어 이제는 홀가분해 지셨는지요? 그 지긋지긋한 운명을 벗어 이제는 자유로우신지요? 후인의 자리를 거부하겠다 하셨지만 결국, 그 어깨 위에 다 걸치고 여기까지 오신 주군이 이렇게 가십니까? 전설의 진정한 주인이 주군인데, 어찌 다 이루어 놓고 가십니까? 가셔서 부디.. 부디.. 자유롭게 다니시기를.. 삼혼의 주군이며 모든 이의 친구이신 새 천년의 아버지가 주군이심을 미천한 삼혼은 이제야 알겠나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무천은 비궁 밖으로 종이조각처럼 구겨진 채 날아간 류심환의 최후를 지켜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무천에게 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자신은 천년을 다시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끝은 이래서는 안 됐다.



“말하라. 류심환.. 네놈이 직접 말하라. 일극무원결이던.. 지랄 같은 세 무공의 합일이건 간에 네가 꽃을 피웠으면, 하나의 꽃을 피웠다면.. 그것이 일극무원결의 끝이 아니라면.. 말해야지. 말해야 하는 게지, 자네가. 자네가 직접.. 일어나라. 일어나 말하라. 말하여 내게 검을 겨누어라. 류심환!! 이 개 같은 자식아!!! 일어나 덤비란 말이다!!!”



그때 류심환의 몸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채 날아가 생긴 틈이 하나씩 가루로 변하더니 하나의 신형이 비궁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영이었다.



헌데.. 무천이 아무리 노력해도 무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하나의 기도도, 실존하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무심함과 그 자유로움이 한없이 담담하고 가벼워서 그 자체가 자연이요 우주였다. 그것은 무천이 천년을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어.. 너는.. 네놈은..”



무천의 신형이 저절로 뒤로 밀려났다. 그것은 몸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물러나 일어난 현상이었다.



“지금부턴 내가 말한다. 류심환의 아들, 나 무영이 말한다. 아니.. 그냥 알게 하면 되는 것이야. 아버지의 위대함을, 그 위대함이 준 희생의 고결함을, 그 고결함의 평등을 알게 하면 되지. 모든 깨달음은 그 극에 이르면 하나로 돌아옴을, 그 수많은 깨달음의 평등을 알게 하면 되지. 그리하면 되는 것이야.”



무영의 무심함이 신체의 허허로움이 진공의 상태처럼 완벽한 안정감이 흔들렸다. 어떤 깨달음이라 해도 그가 인간이어서 느끼는 슬픔과 그 안에 깃든 고마움은 숨길 수 없었다.



해서 그는 신이 아니었고 완벽하지도 않았고 기꺼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이기를 원했다. 모든 평범한 강호인이 꾸는 하나의 작은 꿈이기를 바랐다. 새 천년은 거기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 거기에 들 수 없는 유일한 모자람 하나, 그 어리석음이 죽어 재가 돼 날아가더라도.. 그래도 남을 그 모자람 하나는 그에 들 수 없지. 이제 천년을 그 다음의 천년을 또 이어갈.. 그래서 영원히 이어질 진정한 모든 이의 전설에 들 수 없는 것이지. 그것을 내가, 내 안에 계신 아버지가, 위대한 무인 류심환 그가 나를 통해 말 하려는 것이야. 너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전설의 언저리에도 어슬렁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야.”



순간.. 무영의 눈빛에서 하나의 빛이 떠올랐다. 무명곡의 입구에서 두 명의 신형이 움직였다. 현성과 금강이었다.



"하여.. 너의 마지막이 그 천년의 시작임을 천하에 알리려 한다."



오라, 무천. 그 어리석음을 운명처럼 껴안고 오라! 






P.S. 천검지로는 제가 자살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때 썼던 무협소설입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건강이 악화돼 미완성으로 끝냈습니다. 소설을 쓰는 중에도 여러 번 건강이 악화돼 중후반부터는 관성처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허점투성이 무협소설을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어주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