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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세월호참사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묻고 있다



국가(정부)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피해를 입지 않게 노력합니다. 국민이 생각지도 못한 범죄조직에 납치되고 테러를 받았거나, 타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면 그를 무사하게 구출하고, 외교부 등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상대 정부와 협상을 하거나 법정에서 변호하는 등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최대한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에서 사고라고 일어나면 국민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하고 인력을 파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벌입니다.





국가(정부)의 존재이유는 국가이성에 대한 숱한 논의와 헌법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찰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건강,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평등한 자유와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을 보장하고, 행복과 풍요를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정부)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고, 가급적이면 다치지 않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다쳤다면 고쳐주거나 죽지 않게 하고,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면 원인을 찾아 보상과 배상을 받아 내거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배상을 제공합니다.



심지어 이민을 간 사람들의 안위도 살피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국민이 세금(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며, 법과 제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고, 일정한 불만이나 이익의 손실이 있어도 정부 정책을 따르는 것도 국가(정부)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알고 있고, 그렇게 지켜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입니다. 국민이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가 없고, 국가가 없으면 국민이 안전할 수 없는 것처럼, 양자 간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소수의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자신의 권한을 대의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민주주의체제에서는 이런 신뢰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공동체와 사회가 해오던 역할의 대부분이 국가(정부)로 이양된 현대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비록 자본(가)과 지식(인)의 경우 국경을 넘나들며 부와 기회를 늘려가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민은 영토 내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내기 때문에 국가(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면 회복불가능한 피해에 직면하기 일쑤입니다. 유동하는 위험이 일상화된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국가(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국가(정부)의 부재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이어진 세월호참사가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이 나라(정부)가 정말로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에 충실했다면, 세월호참사 같은 초대형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어서 초대형 비극이 발생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며, 단 한 명의 억울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도록 침몰의 원인을 규명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초대형 비극을 막지 못한 책임자를 지위를 불만하고 처벌해야 하며, 비슷한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정부)를 정비해야 합니다. 세월호를 고의적으로 침몰시킨 것이 아니라면. 



이런 노력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는 것이며, 특정 정부와 정파적 이해관계에 구속되지 않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배타적 주권과 행정력을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세금을 걷고, 행정력을 독점하는 정부가 5년이란 임기 동안 국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도, 각 정당의 정파적 이해관계가 국민과 별도의 시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도 이런 노력을 전제할 때만 정통성과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독재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처럼, 특정 정부와 정파적 이해관계도 국민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법이나 제도, 관습과 규범이 아닌 국민과의 신뢰관계에서 나옵니다. 세월호참사는 이런 신뢰관계에 기초해 국가(정부)의 존재이유와 역할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지, 특정 정부나 정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월호참사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근원적인 차원에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250명의 단원고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희생자(아직도 9명의 수습되지도 못했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참사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문제점들이 압축돼 있습니다.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에 물어야 하지만, 국가의 역할을 포기한 현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채 차갑고 어두운 바닥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국가(박근혜 정부와 여당)와 국민 간의 신뢰관계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동안 단 한 명도 구출하지 못한 박근혜 정부는, 전쟁만 나면 단 3일 만에 북한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이승만이, 막상 북한군의 남침에 국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자신만 먼저 도망가면서 국민이 따라올 수 없도록 한강철교를 파괴한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도, 박근혜와 새누리당 정부도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국가로 존재하는 한, 박근혜와 새누리당 정부가 5년 동안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책임져야 하는 한, 9명이 미수습자가 맹골수도에 수장되어 있는 한, 유족들이 희생자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는 어떤 공소시효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임기 동안 세월호가 인양되지 못할지라도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어떤 성역도 없는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의 염원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사는 나라가 되도, 세월호참사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고, 재발방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영원히 3류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며, 국민과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반쪽 국가(정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유족이 포기하지 않는 한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정권을 교체해서라도 진실 규명을 하고야 말 것이며 책임자 처벌을 진행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