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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과학비판2 ㅡ 위험사회의 등장



이익에 초월했던 베이컨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과학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사람이라면, 데카르트는 현재의 결과만 놓고 볼 때 문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경험을 통한 과학적 지식을 중시했던 베이컨과는 달리 자연과 종교에 대한 근대이성의 우월성을 《제1철학에 대한 명상》과 《방법서설》을 통해 정립함으로써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자 세상의 지배자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기 때문이다(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철학이란 데카르트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그는 과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이성이라는 종교에 귀속시켰다. 



모든 생각과 추론, 사상과 개념을 부정할 수 있어도, 신이 준 선물인 생각하는 있는 과정만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21세기의 명제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뀌었다)를 정립할 수 있었다. 그의 성찰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해 반박될 때까지 근대과학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베이컨과 데카르트(와 데이비드 흄)를 근대이성과 근대철학을 논할 때 맨앞에 두는 것도 연역과 귀납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근대과학과 근대이성이라는 무한 진보를 견인하는 양축이 인간의 의식과 시대의 문화에 확고하게 자리 잡음으로써 무차별적인 자연 파괴와 자원을 찾아 떠나는 식민지 시대의 팽창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근대국가와 함께 등장한 중농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고전파 경제학과 양축을 이루었다). 두 사람과 함께 ‘돌다리도 두들겨 본 다음에 건너라’는 방법적 회의에 대한 데이비드 흄의 회의적 방법론(특히 《오성에 관하여》를 보라)이 더해져 폭발적인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여기에 브라헤와 케플러, 뉴턴의 연구결과의 도움을 받은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과학지식이 목표로 하는 대상은 무한대로 넓어졌고, 한 세기가 더 걸렸지만 종교적 제약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신과 동형인 인간은 과학적 결과가 축적되고 고도화됨에 따라 지구라는 협소한 근거지에서 벗어나 우주 정복에 나설 수 있을 것이고, 뉴턴 역학에 의해 우주의 법칙은 어디서나 동일하기 때문에 시간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었다. 





비록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더욱 공고해짐과 동시에 깨져버린 고전물리학에 기반한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인공위성 같은 우주공학의 발전과 기념비적인 인간의 달 착륙으로 이어졌다. 우주과학의 눈부신 성공까지 확인한 지식인들은 과학 찬양에 열을 올렸고, 제러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에서 이런 황홀경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리스는 블랙홀의 권위자다...그런 리스가 과학 탐구의 방법 가운데 일부는 존재에 큰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그의 주장은 과학의 기본 자체를 위협하면서 학계에 암운을 드리웠다. 규제 없는 과학탐구가 현대 과학의 기초이기 때문이었다. 계몽주의 과학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목표였다...과학 탐구에 대한 규제를 받아들이면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진보’가 비현실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이성을 활용하는 인간의 능력에 회의를 갖는다면 지구상의 완벽한 삶에 대한 소중한 꿈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몽주의의 시초부터 과학계는 인간의 모든 탐구가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우주 정복과 식민지 건설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풍요로움에 대한 환상이 컸던 것에 비해서, 근대과학의 기초는 생각보다 빈약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이성이 생각보다 대단치 않아서 이런 환상은 오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정 속도에 오른 기차란 멈추기 어려운 법이다. 낙관적 결과에 힘입은 과학의 행진이 무분별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각종 폐기물과 부작용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독소를 지니고 있는 폐기물의 양이 늘어남으로써 장단기적인 위험을 축적하는 부작용(산업적 측면으로 볼 때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부수효과)이 속출했지만, ‘탐욕의 삼위일체’에게는 더 큰 진보를 위한 감내해야 할 ‘부수적 피해’에 불과했다. 





이윤의 논리는 ‘빨리 빨리’의 행태가 필수적으로 초래하는 부작용들이 새로운 시장의 단초로 남도록 만들었다. 이것들이 또 다른 응용과학의 발전에 따라 이윤의 추가요소로 전환될 때까지 철저하게 감춰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결과의 낙관론과 부수적 피해의 운명론을 되뇌면 충분됐다. 이미 시장논리에 길들여진 시민들은 언제나 자기유지의 타협과 힘의 열세에 따른 체념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디지털기록의 축적으로 개별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욕구를 창출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는 소비사회에 대한 체념을 넘은 소비사회를 구축하는 자발적 복종의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뜻한다(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대표되는 무한한 진보에 대한 과학적 맹신은 인류로 하여금 반성하는 성찰과 비판하는 능력을 망각의 창고로 보내버리도록 만들었다. 과학의 신성화는 갈수록 시민에게서 멀어지는 전문가들의 언어에 현혹되기 마련이어서 과학의 부작용을 보편적인 것으로, 언젠가는 해결될 일시적인 문제로, 그래서 그때까지는 개인이 알아서 대처해야 할 문제로 만들었다. 철저히 지배 세력에게 유리한 체념과 순응의 사회심리학은 이런 방식으로 과학의 부작용이 개인에게 분배되는 악마의 방식에 면죄부를 발행한다. 





최근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초미세먼저의 공습(반 이상이 국내에서 배출된다)과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일본 제1원전의 폭발에 따른 방사능 유출의 위험성을 예보의 정확성과 그에 따른 개인적인 대처의 문제로 뒤집어버렸다. 자신의 대보다 다음 세대에서 주로 나타날 피해와 부작용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근대과학이 견인한 무차별적이고 무분별한 개발의 후유증으로 나타날 미래의 피해를 지금 확인해 그에 대한 보상을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질적 지배자들에게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볼 때, 과학의 역사를 위험 확산의 역사라고 입증한 울리히 벡의 성찰은 20세기 물론 21세기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과학의 부작용이 축적이자 확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위험은 근대성이 출발할 때부터 이미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을 확률이라는 의미론적 지평 안에서 합치시켜’ 버렸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확률을 통해 ‘오만하게 지배할 수 있다는 가정’을 담고 있는 미적분학의 발전이 과학계 전반에 퍼지면서, 인류를 비대칭적 종말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의 폭발적인 확산이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대양의 오염과 극도의 불평등으로 축적됐다. 이제는 과학의 부작용이 초래한 폭발 직전의 위험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울리히 벡의 성찰을 따라가는 바우만의 사유는 다음과 같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이 세계의 우연성과 무작위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의식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처럼 벡이 ‘오만’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자만심이 바로 근대적 의식을 지탱해주던 두 기둥이며, 결국 위험이라는 범주가 이 두 기둥을 화해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 ‘위험’이라는 범주는 두 번째 기둥인 ‘자만심’을 구해내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비록 원망스럽고 무서운 동반자일지라도 고집스럽게도 도처에서 계속 따라다니는 첫 번째 기둥이라는 동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동안은 과학자의 전유물이었던 위험이 비과학자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증폭되자, 다급해진 정부와 더 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었던 과학자들은 ‘위험을 계산해내려는 기획’을 통해 다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주도권을 움켜쥐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전문적인 통계를 해독하기 어려우며, 주어진 정보의 타당성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개인들로서는 범죄자에게 범죄의 피해를 해결하도록 맡기는 것 이외에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에 고무된 과학자들은 위험을 통제하기에는 완벽하지 않지만, 과학의 발전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위험을 제어하는 확률의 오차를 최대한도로 줄여나가다 보면 ‘통제할 수 있는’ 상태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며, 과학적 의미의 ‘낙수효과’를 약속했다. 이를 위해서는 변함없이 정부의 예산지원이 필요하고, 그 결과물들을 이용해 폭발 직전의 위험을 통제하는 일은 여전히 정부의 위탁을 받은 기업들이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한 것은 완전한 위험 통제와 전혀 실패가 없는 확률의 계산이 아니었다.



바우만에 따르면 그들이 약속한 통제의 범주는 “단지 위험할 수 있는 확률과 예상되는 위험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만을 약속했을 뿐”이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원래 목표로 삼았던 일을 최대한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원들을 가장 최적의 상태로 분포시키는 방법을 계산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약속”했을 뿐이었다. 만약에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몰고 가는 사건들이, 과학자들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발생하고 만다면, 그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들에 대해서는 이미 계산해두었기에 대처가 가능하다는 약속 말이다. 



물론 엄밀하게 계산된 확률과 오차 범위 안에서의 실패일 뿐인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최소한의 피해ㅡ그것이 수천만에서 수억 명의 죽음일지라도ㅡ는 개인이 감당해내야 할 문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적 절차인 선거에 의해 공인된 정당성을 획득한 ‘단기적인 군주’로서 통치하는 정부의 행태가 정책 실패의 책임에서 갈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질적 지배자인 세계적 특권그룹이 일방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현재의 구조 하에서 개인에게 돌아갈 피해를 보상해주거나 막아줄 방법이란 결단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원자탄의 발명은 위험의 보편성과 공멸의 동시성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이 견인하는 진보의 영원성에 대한 믿음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지만, 미국이 끝내 원자탄 두 개를 일본에 떨어뜨림으로써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험은 오히려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선례가 생겼으므로 핵무기 확산은 불가피할 것이며,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상호견제의 버팀목으로 변질된 핵무기를 보유하는 국가는 갈수록 늘어났다.



또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면서, 더 이상 핵무기의 확산은 없어야 하며, 이에 대한 국제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본말이 전도된 이런 현상이 ‘위험사회’의 본질이며, 그래서 인류는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어떤 방법도 강구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에너지 안보를 확고히 하고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핵발전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었다.





이렇게 절대 행해지면 안 되는 악마의 선례가 이루어졌음으로 과학의 광기를 이용해 이익을 독점하는 ‘탐욕의 삼위일체’의 행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져버렸다. 꾸준히 늘어나는 핵보유국 숫자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를 바로잡을 제대로 된 기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세계적인 장기공황이 불러온 지난 7년 간 핵 관련 프로젝트들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이루어졌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이제는 위험이란 불확실성의 미래와 함께 사는 것이 일상이 됐고, 개인이 사회적으로 발생한 위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무장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공멸의 순간에 이르지 않으려면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노력이 필수인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 신자유주의적 선동은 미래세대의 선택지를 갈수록 줄인다는 점에서 무책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전멸할 위험을 항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핵우산’이란 정치논리의 미친 허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온갖 피해마저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과학이 철학을 귀찮게 여기면 인본주의적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자본의 탐욕을 추구할 뿐이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