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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서에는 자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저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유서를 보면 그가 자살할 만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국정원 직원이 ‘내국인과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고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을 위해 사찰했음에도,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자살했다면 국정원 직원의 상당수가 자살로 삶을 마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특정 부분을 삭제했더라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면 더더욱 자살할 이유가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자료 삭제’가 잘못된 판단이 부른 실수였음을 자신도 인지했기 때문에,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가 자비를 들여 해킹 및 감청장비를 수입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의 자살한 이유를 그의 유서에서는 찾을 방법이 없다. 또한 자살한 직원의 부인이 평상시처럼 출근했던 남편이 5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실종신고를 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국정원 댓글사건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모 과장과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협조자처럼남편이 국정원 차원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는 판단이 없었다면ㅡ직장과 맡은 업무의 특성상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텐데ㅡ5시간 연락이 안 된다고 실종신고를 낼 이유도 없다. 또한 부인이 남편의 자살을 염려했다면 경찰이 아니라 국정원에 연락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바쁜가 보구나’ 했을 5시간 정도의 연락두절(국가적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이 7시간이나 사라진 경우도 있는데, 5시간 정도야 무슨 문제란 말인가?)에 신변에 변고가 생겼다고 판단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는 한, 국정원이 아닌 경찰에 실종신고를 낼 이유가 없다.



‘나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가 핵심인 유서와, 평상시처럼 출근했음에도 5시간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발 빠르게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부인의 대응을 볼 때 국정원 직원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별도의 이유가 있다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유출하는 등 국정원을 해체해도 모자랄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상황에서, 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재의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대북사찰’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뿐, 이명박의 오른팔 원세훈의 국정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임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국정원 직원은 자살했고, 부인은 국정원이 아닌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면 ‘느닷없고 기기묘묘한 유병언 사체의 발견과 세월호 내에서 발견된 국정원 문건’에 이어 또 하나의 ‘국정원 미스터리’가 더해졌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정원 직원의 자살을 설명할 수 있을까?



기레기가 아닌 언론들과 해킹방지 전문가 안철수 위원장이 밝혀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도 국민이라면, 안철수가 지켜줘야 할 인권에 그도 포함됨은 당연한 일이다.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만 할 수 있도록,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도록 만들려면, 이번만은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P.S.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 참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거나 사회적 살인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놈의 권력과 이익이 무엇이기에,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국민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단 말입니까?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얻는 권력과 이익도 반인륜적인데,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 얻는 권력과 이익, 조직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