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

이승윤의 무명성 지구인, 도대체 이런 가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지?

 

 

무명성 지구인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ㅡ 마치 싱어게인에서 번호로 불리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다른 이와 구별되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명의 서로움. 그래서 명성이 없으면 이름조자 가질 수 없는 걸까, 아니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는 것일까? 비상할 수 있는, 패자불활전과도 같은 천재일우의 경쟁의 장이라도 해도 너무나 잔인한 63호와의 경쟁,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 그래서 빅10에 들어야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무명의 설움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ㅡ 여기의 왕은 권력의 상징, 신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작은 돈으로 자신을 부리는 행사 주최자일 수도,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으로 상징되는 모든 이들, 그런 모두가 인정받고 평등한 그런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을까? 태양계의 마지막에 자리한 명왕성에라도 도망갈까? 아, 그렇지! 명왕성도 태양과, 그 사이의 행성들과 중력으로 연결됐다고 알려졌던 명왕성이 보다 발전된 측정 기술로 그의 궤도를 살펴보니, 태양이 아닌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에는 다른 항성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 밝혀져 태양계에서 퇴출됐으니 갈 수도 없겠지. 그 또한 이름을 상실한 것과 같으니까. 

 

여기서 잠깐 뉴턴의 중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ㅡ 그래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처럼, 초속 30만Km의 빛에 올라타 명왕성까지 가보자. 상상은 자유니까. 안녕, 명왕성. 난 너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에게는 이름없는 행성일 뿐 지구에서 온, 무명의 가수인 이승윤이야, 헌데 기억할 정도는 아니니 잊어도 돼, 내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 태양계에서 떨어져나간 너도 지구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갈 테니..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ㅡ 현재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부분, 정규교육이던, 가정교육의 이름이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진 빚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태산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위에 앉아, 실은 실이되 이름도 없는 무영실로 빚 때문에 자꾸만 구멍나고 사라져가는 청춘의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라도 해야 이자라도 갚을 것 같은데, 천재소리 듣는 형과는 달리, 대단히 유명한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놈이니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라도 만든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네. 그 절망감과 비참함이란.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ㅡ 이땅에서, 이 시대에서, 청춘의 삶이란, 삶은 달걀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곳이라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것 아니야? 숨이 턱턱 막히고 아무도 함께하는 이가 없는, 꽃 하나 나무 하나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라 해도,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심지어는 달 그림자도 있는데, 게다가 사막을 횡단하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오아시스 같은 샘이 숨겨져 있지 않아도 사막은 모래와 언덕과 바람과 달 그림자로라도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일까? 실패한 청춘들만 추방되는 지옥 같은 곳인가? 설사 오아시스가 백일몽 같은 실제가 아니더라도.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사막아, 아녕. 난 이름도 없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는 무의미한 발자취 정도에 불과하니 기억하지 않아도 돼. 이름 모를 빛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고 무명길로 기우고 기워도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다시 말해 희망이란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지게 된 빚더미 위에 앉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도, 희망이란 이름의 빚더미의 미래란, 무명실로 기워서라도 잡고 싶은 희망이란 빛은, 무엇으로도 잡아둘 수 없으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ㅡ 무명성 지구에는 이름없는 생물의 종만도 천만 개체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만들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무의미하고 숨막히는 삶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다구치니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인가봐? 성공해야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무명실로 정체도 모를 무엇인가 기워도 되지 않는, 막막한 공간에 갇혀있는 청춘의 삶이란, 아니 모두의 삶이란 광내거나 아니면, 성공을 포기한 채 도망가서 분노나 포출하는 그런 것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해서 신에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소명을 준다는 신에게 나의 이름을, 내 존재 이유를, 삶의 가치를 물었더니, 이런 신이 말하길 난 이름도 없다네. 난 신의 계획 속에 없었던 그런 버려진 존재일까? 나는 카인의 후예일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이름이 없다고 할 경우입니다. 신은 절대자이고 모든 것들을 주재하며, 그래서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둘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뜻으로써 자신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승윤에게는 신도 이름이 없으니 모든 이름없는 청춘들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자, 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명왕성도, 사막도 살만한 곳이 됩니다. 청춘들에게 지금의 삶이 삭막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 되지요. 척박한 곳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tps://youtu.be/o5_YYIfR7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