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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승윤의 '흩어진 꿈을 모아'와 '번역가들'

 

 

흩어진 꿈을 모아

 

이 노래는 승윤씨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해설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승윤씨가 아무리 조숙하도 해도 고등학생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시의 상황, 개인적 경험, 진학문제, 가정환경 등등을 유추해서 가사를 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고등학생 특유의 세계관이나 감수성을 고려하되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오직 어둠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리나요 이 작은 외침이 ㅡ 만일 승윤씨 이 노래를 고3때 작곡한 것이라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당시의 세상이란 대공황을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어서 들려오는 얘기란 어둠뿐이었을 것입니다.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암울한 전망만 번성했을 때니 사방천지를 채운 것은 한탄뿐이었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승윤씨라고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귀기울여  들어줘요, 절망 속에 흘린 눈물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ㅡ 그러니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귀기울여 둘어주세요. 모두가 한탄을 쏟아내며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과 각자도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만 말고, 그런 최악의 절망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물까지 포함해 강을 이룰 듯한 눈물들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다시 말해 절망의 눈물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단서로서 아름답게 빛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절망과 한탄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특유의 탄력성과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설 때, 이를 테면 절망과 한탄의 노예가 될 수 없는 우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세계 어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ㅡ 어른의 잘못으로 아무 책임도 없는 자신과 같은 또래들의 꿈들이 조각조각 찢어지며 이리저리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조작들을 하나하나 모아 희망이라고 불러요.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절망하고 한탄하며 포기기에는 우리의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희망마저 포기하기에는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을 절망과 한탄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테니까.

 

이 세상엔 오직 절망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렸나요 내 작은 외침이 ㅡ 절망과 한탄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지만 들리지 않았나요. 나와 또래의 아이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미래세대인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희망의 노래들을 듣기라도 했나요? 들리기라도 했나요?

 

다시 들어봐쥐요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아름다운 노랠 할 때 ㅡ 예전처럼, 1~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들어봐줘요. 어렸을 때부터 썼기 때문에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희망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눈물의 이름으로 노래를 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이, 어쩌면 더 어린아이들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우리까지 절망과 한탄에 휩쓸리거나 굴복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어리고, 남은 시간들이 너무 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위해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희망이라고

 

 

 

 

 

번역가들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동그란 마음 ㅡ 기존의 관념, 관점, 체제, 세계관 등에 갇혀있는 개별 개인들의 마음을 표현, 난 동그란 것을 말하려 하는데 왜 네모난 모양으로 말해야 하는 거지? 그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난 갇히기 싫어.   

 

언제나 알아주기란 힘들지 ㅡ 그래서 모든 글을, 또는 나처럼 각각의 글을 네모난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동그란, 기존의 관점에서 자유롭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네 동그란 마음을 알아주기란 힘들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아주겠어.  

 

뚜렷한 글씨 안에 갇힌 투명한 말 ㅡ 나의 마음을 분명하게 담아낸 글이지만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어 뚜렷하게 보여지는 글씨(글자의 여러 종류 표현)에 갇혀버린 표현들. 투명인간처럼 취급되는 내 마음, 그래서 투명해진 나의 말, 또는 가사, 노래에 담아낸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 마음들. 

 

언제나 보여 주기란 어렵지 ㅡ 어려운 것 같아. 기성의 틀 안에서, 정해진 규범 속에서 나만의 얘기와 마음, 노래를 보여주고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늘 어려워. 나의 마음을 가장 나답게 담아낸 말로 타인과 소통하기란 참 힘들어. 난 그래서 유명하지 않아. 방구석 음악인이야. 

 

우린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들 ㅡ 나는 내 마음을 글로 표현했고, 노래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기존의 해석틀로는 번역이 안돼, 난 내 마음을 전하는 작가이고 싶지만 번역조차 되지 않은, 그래서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에 불과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난 인정의 기준인 검증을 받지도 못했기에 창작자나 작가아 아닌 내 마음을 전달하려면 기존의 틀로 번역해야 하지만, 검증받지 못했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    

 

여긴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이지 ㅡ 이중적 의미,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것을 뜻할 수도 있고, 기존의 틀이 아니면 타인에 의해 해석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래서 나만의 언어로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나의 창작물은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로 격하될 수밖에 없어. 괴테의 삶을 신화화한 뒤, 그것을 독점(선취)함으로써 괴테의 작품 해석까지 독차지하려 했던 군돌프의 <괴테>를 통렬하게 비판한 발터 벤야민의 <괴테의 친화력>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너의 이야기를, 타인의 이야기를, 나와 다른 말과 해석도구를 사용하는 기성세대의 작품과 말, 마음과 노래들을 나의 시각과 관점,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어. 그렇게 나의 마음을 담아낸 내 말과 노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이해 받고 싶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내 마음은 이거였었어. 이해해주면 안될까? 이해받고 싶어.  

 

조그만 불빛 아래 숨긴 커다란 밤 ㅡ 작은 월세방, 작은 탁상 앞에 앉아, 그 작은 공간을 빛추는 불빛 아래, 수많은 상상과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커다란 공간으로써의 나의 밤. 쓸쓸하고 외로운, 인정 받지 못하는 한 명의 청춘인 나, 방구석 음악인. 문밖으로 나가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지만... 

 

언제나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ㅡ 나의 욕망을, 내 희망을, 내 바람을, 너와 타인의 욕망을, 희망을, 바람을 모른 척하기란 쉽지 않아. 내가 나에게, 네가 너에게,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그렇게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과감한 걸음 아래 숨긴 가난한 발 ㅡ 그래서 문을 나섰어. 난 2020년 12월 31일까지 방구석 음악인이 아닌 30호 무명가수가 아닌 음악보다 이름이 조금은 앞서기를 바라는 이승윤이 여기있다고 말하기 위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헌데 걸음은 과감해 보이지만 나의 현실이란, 나의 초라한 월세방이란, 나의 월수입이란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 난 가난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언제나 보이지 않기란 어렵지 ㅡ  나의 이런 가난함을 숨기기란 힘들지. 나의 마음을 담은 말과 노래, 얘기들을 숨기고만 살 수 없듯이, 그것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음도 드러내 보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 인디나 마이너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이중의 갈등. 모순적 이율배반. 아웃사이더 특유의 사유.  

 

우린 진실 할 수 없는 반역가들 ㅡ 나를 나로써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네모난 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데, 내가 말하고 노래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쓰고 말하고 노래해, 그러면서도 노래보다 이름이 조금 앞에 있는 성공을 갈망해.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너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인디와 마이너들은 일종의 반역가야. 기성체제의 성공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이지만, 쓰고 말하고 노래하니 반역가이기도 하지.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서성이지 ㅡ 우리끼리,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무대에서, 서로를 위해, 그렇게라도 작은 생태계라도 유지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그 작은 시장규모 때문에 스스로를 거역하며, 많은 무대를 양보하며, 알려지고 싶은 욕망과 희망을 거역하며, 난 그렇게 서성이지. 넌 그렇게 서성이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서성이고 있지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경계선 상의 우리를 넘어 그밖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의 이승윤이 진득히 묻어있고,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동료와 친구들의 마음이, 갈등이, 현실이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