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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현상으로써의 서태지와 이승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승윤 자작곡 가사에 대한 주해를 중심으로 한 저의 접근들은 몇 가지 전제하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방구석 음악인의 결과물 중 하나인 가사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승윤이 보여준 무대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퍼포먼스 전체에 대해서만 가사 해설과 연동해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출처가 있는 그의 말과 글을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승윤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대와 욕망, 믿음, 성공, 사랑 등을 투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부모와 형제, 지인들의 사랑과 응원, 격려, 믿음 속에서 착실하게 성장했다며 완성된 성인처럼 보는 기독교적 접근이 저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승윤씨의 성장기를 알 수 없는 저로써는 TV와 인터넷 공간에서 얻는 한정된 정보들로써 가사 해설과 그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전해주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벤야민이 보여주었던 방식의 고차원적 비평은 얼마되지 않지만 너무나 고마운 저의 독자분들이 고차원적 비평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기초지식이 탄탄해졌다고 판단됐을 때 진행할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승윤씨의 말과 행동, 글, 공연 등을 통해 심층적이고 다면적으로, 때로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 수단들을 동원해서 다층적이고 종합적으로 하고 있는 분석들을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등장했을 때의 전율과 임팩트에 비견될 만한 무대를 보여준 승윤씨의 치릿치릿뱅뱅이 철저하게 준비된 연출의 결과물이며, 다음 라운드에서 살짝살짝 보여준 살인적인 미소도 자신의 공연을 극대화하기 위해 준비해온 장치들의 하나였다는 것, 여러 번이나 흘린 눈물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다 진실일 수 없으며 계산된 멘트들이라는 것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비평은 대상을 씹어먹을 정도로 파고들어야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승윤씨에 대한 칭찬과 찬양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태지와 이승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맛보기로 해보고 두 천재의 합동공연을 기대하며 이번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디스토로에서 운영 중인 저의 2번째 블로그의 누적 뷰가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온갖 병과 개인적 사정 때문에 수없이 중단했다, 겨우겨우 이어지곤 했던 블로그 활동이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그동안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님들 덕분에 두 번의 암도 극복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어머님에 대한 형의상학적 죄의식과 시도때도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을 상당 부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해야 하겠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을 이루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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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연주자로 그룹활동. 락에 전념했으나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함. 그러나 유재하처럼 그룹활동을 통해 시대를 뒤집어버릴 실력을 키울 수 있었음. 자신의 음색을 고려하고, 대중가요의 시대적 상황과 가능성으로써의 미래상을 예측해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데뷔하기에 이르렀음. 호불호가 뚜렷했고 평가조차 별로였던 데뷔평을 완벽하게 전복시켜버린 폭발적인 대중의 환호는 서태지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을 정도.

 

 

처음에는 그것을 즐겼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자신을 짓눌러 옴. 당시에는 기획사 체제가 자리잡기 전이라 방송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차기 앨범 작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음. 그런 관행에 맞서 방송 활동과 음반 작업 기간을 나눠, 방송국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성공. 이것이 그가 내놓은 4개의 앨범과 함께 서태지가 거둔 업적 중 최고. 

 

 

 

최소한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는 당시의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만큼 감당하기 힘든 팬들과 대중의 요구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음. 개방적이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과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추구까지 겹쳐, 자신의 신비화가 하늘을 관통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은퇴를 함으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의 현재진행형에 종지부를 찍음. 그후 오랫동안 침묵한 뒤 자신이 추구하는 노래세계로 되돌아옴. 명성의 상당 부분은 잃었으나 대중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음.

 

 

이에 비해 이승윤은 짧지 않은 당양한 시도들을 했고,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경험들을 축적한 상태에서 대중과의 소개팅에 나왔음. 각종 오디션에 나간 이전의 승윤과 다른 점은 최후의 도전이었다는 점. 실패했을 경우 '방구석 음악인'으로서의 삶도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는 점.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성공했기에 실패했을 때의 선택을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 

 

 

이것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승윤씨가 서태지와 다른 점은 11장의 엘범과 거기에 실린 수많은 자작곡들이 있다는 것. 그중에서 상당 부분은, 아니 거의 대부분을 새롭게 가다듬어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태지가 받았을 중압감에 힘들어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더욱더 그럴 것임. 승윤씨가 가장 많은 폭발력을 보여준 치릿치릿뱅뱅보다 소우주에 더욱 많은 점수를 준 것도 그런 폭발력은 생애를 통틀어도 몇 번 나올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면 더 이상의 뮤지션 활동은 불가능.

 

 

승윤씨가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고, 서태지 수준의 인기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의 결과가 이승윤으로 남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나왔음. 서태지는 어렸고, 그를 도와줄 멘토도 없었지만, 승윤은 지금까지의 실패와 좌절, 고뇌 등으로 단련됐으며, 지금의 인기는 낯설지만 충분히 즐길 만큼의 경험치는 가지고 있음.

 

 

알라리 깡숑 멤버들도 있고,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홍일과 이무진과의 우정도 있으며, 김이나나 유희열처럼 그의 재능을 아끼고 함께해줄 이들이 많다는 것도 서태지와 다름. 음악부터 외모까지,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태지는 디지털 시대의 여명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가는 계량화가 불가능할 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지만, 이승윤은 디지털 시대의 정점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유리한 지점에 있다. 

 

 

틀을 깨는 가수라는 틀을 경계하고, 자신이 그 자체로 장르가 되는 것도 경계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작곡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있음. 나이 또한 결코 작지 않기에 즐기되 중독될 만큼까지 나가지는 않을 것임. 그렇다해도 팬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두 사람의 합동공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