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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7장 ㅡ 무영, 삼혼에게 새 삼혼지문 깨우쳐 주다

 

 

삼혼이 새 삼혼지문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터질 듯 답답한 마음에 한바탕의 소나기처럼 그들의 고열을 식혀준 하늘에서 내려 온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잘 지내셨죠? 보고 싶었어요.

 

 

 

 

‘어, 이젠 환청이 다 들리네? 부처가 이곳까지 올 리도 없.. 어, 이 목소리는?’

‘잘 지내긴 뭘 잘 지네? 신선놀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만 터져 죽겠.. 어, 어, 이 목소리는?’

‘보고 싶었다고? 이 목소리는 분명..’

 

 

 

 

그것은 너무 익숙하여 단 하루로 잊을 수 없었던 소리였다. 어느 새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이제는 죽어서도 잊기 힘든 소리가 삼혼의 고막을 흔들었다. 그것도 연이어서.

 

 

 

 

어, 나만 보고 싶었나?

 

 

 

 

‘아직 1년은 더 걸릴 텐데? 무영이 벌써?’

‘무공의 신이 아닌 이상.. 이건 너무 빠르잖아? 무영이 설마?’

‘주군도 이렇게까지 빠르게는.. 하지만 무영이 분명해!’

 

 

 

 

바로 그 소리에 불혼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돌아간 목 때문에 신음을 흘렸지만, 갑작스럽게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귀를 거쳐 눈가로 번지려는 주책부터 잡아야 했다. 도혼은 그 소리에 몸 전체가 돌아섰고, 속혼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소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너로구나, 너였어. 벌써 대성한 게구나. 허허허! 부처의 홍복이야, 홍복. 허허허허.”

“부처는 개뿔! 그냥 무영이가 최고가 되서 온 거지. 얼어 죽을 부처는 왜 끌고 와! 그냥 좋은 거지. 한 마디로 말해 죽이는 거지. 안 그래, 사제? 크하하하하!”

“허허, 사형도 참! 대사형 마음 상하겠어요. 평생 배운 도둑질이 불공인데?허허, 무영아 축하한다, 축하해. 대견하구나. 눈물 날 정도로 네가 자랑스럽구나.”

 

 

 

 

과묵한 속혼까지도 말이 길어질 정도로 삼혼은 예상보다 무려 1년이나 앞당겨진 5년 만에 무영이 돌아오자, 기쁨을 표시하기에 정신없었다. 조금 전까지 새 삼혼지문에 막혀 끙끙대던 모습은 온데 간데도 없었다.

 

 

 

 

“저도 너무 기뻐요. 삼혼 할아버지를 이렇게 1년이나 앞당겨 만나게 돼서.”

 

 

 

 

무영도 한껏 반가움을 표했다. 5년 동안 혼자서 무공 수련에만 매달린 것은 죽어도 다시 못할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인내와 초조, 좌절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항상 아저씨가 함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었다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진공상태가 같은 억겁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무영은 자신의 성취를 삼혼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래, 무려 1년이나 앞당겼어. 네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불혼이 무영의 성취를 친손자가 이룬 것처럼 대견스러워 했다.

 

 

 

 

“저, 잘한 거죠?”

“그럼, 두말하면 잔소리지.”

“앓던 마누라 죽자 곳간으로 달려가 소리 나게 웃기지. 그럼, 그럼.”

“네? 왜요? 애인이 있나? 하하하!?

 

 

 

 

무영이 씨익 웃었다. 언제나 새로운 성취를 이루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웃음이 불혼은 물론 도혼과 속의 두 눈에도 가득히 담겨졌다. 무영의 성취가 이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5년간의 그리움을 푼 후, 무영은 상황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파천태극무검과 천상지무를 대성하고 하나로 합치는 과정 중에 일극무원결도 절정에 이르렀다. 무영은 이곳에 도착한 후 삼혼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리려다, 삼혼이 힘들어하는 것을 봤다. 무영은 삼혼이 막힌 곳을 돌파하기 위해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합공을 지켜봤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무영은 이제 최절정의 무공도 몇 수만 보면 근본 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류심환이 검강천과의 비무에서 천상지무의 원리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일극무원결을 대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영은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삼혼에게 선뜻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일단 만남의 회포부터 풀면서, 상황에 따라 할어버지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회포를 푸는 중에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제 삼혼이 풀지 못한 문제의 근원에 대해 풀어가도 될 것 같았다. 무영이 비궁 바로 밑에서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이 다섯 개의 감각이었다. 그 중 하나가 모든 무공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視)였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능력이었다.

 

 

 

 

무영은 시를 통해 삼혼이 막혀 있던 새 삼혼지문의 근본 원리에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을 덜 상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삼혼 할아버지? 제가 수련 중에 떠오른 건데,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서요."

"응? 뭔데. 먹는 얘기?"

"비슷해요, 도혼 할아버지.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것은 이래요. 열 살짜리 아이가 호랑이를 만났어요. 그때 아이는 손에 무기조차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손으로 때려잡으면 되지.”

 

 

 

 

도혼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큭!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아니. 정답이지.”

“그래도 다른 것은 없을까요?”

“모자라면 가죽도 벗겨버리고.”

“야! 도혼. 너, 나 따라 해. 합!”

 

 

 

 

불혼이 쌍 도끼눈을 치켜뜨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도혼한테 입 닥치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런 후에 도혼이 쌍심지를 켜며 화내기 전에 무영의 질문에 답했다.

 

 

 

 

“나라면 팔 하나 떼 줄 정도에서 타협하려 애쓰겠지.”

“왜, 팔을 줘. 그냥 때려잡자니까!”

 

 

 

 

아무리 위협해도 가만히 있을 도혼이 아니었다. 불혼이 다시 한 번 도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도혼! 합이라 했다. 너 죽는다, 한 번만 더 말하면. 넌,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처먹는 거냐? 무영아, 개 짖는 소리거니 하고 그냥 네가 다 얘기해라.”

 

 

 

 

불혼은 무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혼은 그렇지 않았다. 무영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개라고 내가?!!’

 

 

 

 

불혼의 말에 도혼의 분노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이번에는 무영이 불혼에게 말했다.

 

 

 

 

“네! 불혼 할아버지. 그럼, 제가 말할게요.”

 

 

‘윽! 개… 됐다. 말할 틈도 안 주다니!! 불혼, 너 죽을 줄 알아!’

 

 

 

 

무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도혼의 시선을 회피한 채 말을 이었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했어요. 먼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야 했어요. 그래서 아이는 용기를 내서 호랑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어요.”

“나같이 배포 큰 놈이군. 아예 호랑이 눈을 뽑아버리지. 끙!…그래서.”

 

 

 

 

불혼의 눈썹이 다시 위로 치켜지고, 그의 눈빛이 ‘야! 너 죽을래’라고 말하며 주먹을 자신의 머리까지 들어 올리자 도혼은 얼른 무영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무영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큭!’

“그런데 아이가 용기를 내어 자세히 보니 호랑이는 자신이 들고 있던 토끼를 보고 있었어요. 그것이 먹고 싶었던 거죠.”

“…음. 사람고기가 맛이 없나? 그 놈 식성 까다롭네, 누구처럼!”

“놈! 합!”

“큭! 헌데, 그 토끼는 아이가 직접 기른 거라 아이는 많이 망설였어요. 자신이 살려면 토끼를 포기해야 하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던 거에요.”

“결국, 둘 다를 잃을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구나. 흠, 알겠다, 무영아.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불혼이 도혼이 또 껴들기 전에 무영을 대신해서 얘기의 끝을 맺었다.

 

 

 

 

“어? 뭐야, 그것으로 끝이야? 에이, 나를 부르지. 내가 통째로 그 놈 가죽까지 벗겨버렸을 텐데. 하긴, 직접 기른 토끼처럼 익숙한 것은 먹기도 버리기도 힘들지.”

“그리고 호랑이라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 천외천이 이제 우리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그곳을 향해 검을 드는 것을 이젠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이지.”

 

 

 

 

속혼이 무영의 뜻을 해석했다. 묵직한 저음이 그 동안의 맘고생을 온전히 드러냈다.

 

 

 

 

“…!”

 

 

 

 

무영이 속혼의 말에 그냥 웃었다. 염화시중(捻花示衆)의 미소였다.

 

 

 

 

 

 

 

 

“그래, 삼혼이라는 명호부터 버려야 했어. 나를 비우지 못했는데 그 안에 더 큰 것을 어찌 담을 수 있겠어. 허허, 그런 것인데. 허허허…”

 

 

 

 

무영은 허탈하게 웃는 불혼의 표정에서 천외천의 수호자에게만 전해져왔던 삼혼지문에 대한 미련이 툴툴 자리를 털고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삼혼은 결국 한 가지를 떨칠 수 없었고, 한 가지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들은 새 삼혼지문을 완성하기 위해 파천태극무검의 후반부 삼 초식을 하나씩 맡아 수련했다. 그리고 각자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하나의 합공을 이루면 새 삼혼지문도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을 거쳐 이룬 무공을 스스로 비우는 것이어서, 삼혼은 무의식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검법의 초식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새 삼혼지문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이 떨치지 못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속혼이 말했듯, 새 삼혼지문을 대성하는 것이란 그들의 존재이유였던 천외천을 향해 검을 들어야 하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무영이 천상천을 향해 검을 드는 것과 주군이 천외천의 거짓을 파헤치기 위해 비궁에 든 것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정작 삼혼만은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해서 더 이상 나가지 모했던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버릴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변화가 진행 중에는 어떤 변화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해 변화가 아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됐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버리면, 모든 변화에 열려있게 되며 막상 변화를 이루고 나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일극무원결의 원리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무공을 아무리 봐도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에 열려있는 것은 어떤 것에도 열려있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중심으로 했을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파천태극무검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의 변화를 담은 것이죠. 천상지무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극에 이른 무공이죠. 하나로 귀결돼 전체가 되는 천상지무와 모든 수를 다 펼쳐 그것이 하나가 되는 파천태극무검은 그래서 서로 상극이지요. 끝에 이르면 하나가 되지만, 그 경지가 할아버지들이 익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하하!”

 

 

 

 

무영은 말을 하면서도 겸연쩍은지 말의 끝머리에 억지웃음을 집어넣어야 했다. 그 웃음이 저 홀로 몸 둘 바를 모를 때, 삼혼은 이미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무영이 해준 말은 명상의 중심에서 삼혼이 볼 수 있는 하나의 깨달음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삼혼은 그렇게 자신을 비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몸과 생각에 각인시켜 잘 때도 수련이 가능할 정도였던 동작 하나하나를 지워나갔다. 그 중에는 팔십 년을 갈고 닦았던 과정에서 자신만이 이룬 고유의 깨달음들도 들어있었다. 삼혼은 그렇게 숱한 생각과 분석, 노력과 몸부림의 순간들을 다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삼혼은 각자가 맡은 새로운 파천태극무검의 초식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자 초식도 하나씩 살아나 검법의 운결 하나하나로 이어졌고 그것이 쌓여 파천태극무검의 최후 초식이 한 눈에 보일 듯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삼혼은 길을 찾았다. 그들 스스로 치열하게 거부했던 길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더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다. 뼈를 깎는 훈련만이 그 길의 끝에 이르게 할 것이었다. 그 끝에 주군과 무영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다만 이번에는 출발하는 곳부터 무영이 있다. 삼혼은 그것이 더없이 고맙고 기쁘고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삼혼 할아버지, 저는 친구들한테 갈게요. 한 십 개월쯤 걸릴까요? 1년은 넘지 않겠지요? 그때 다 같이 만나요. 그럼, 삼혼 할아버지. 나 가요. 아, 참, 아저씨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그래서 삼혼이 무영을 보니, 그냥 슬슬 팔을 이리저리 휘휘 저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주군의 복사판이었다. 무영은 그냥 걸어가는 것 하나에도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무영의 몸 자체가 순(順)에 든 것이 확실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팍팍 밀어냈다. 헌데, 밀리는 물결이 오히려 더 즐거워 한껏 출렁거렸다.

 

 

 

 

“직접 보여주기 힘들었던 게야.”

 

 

 

 

불혼이 유유자적 떠가는 무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요. 제가 할아버지들에게 어떻게 직접 시범을 보여드리겠어요. 제가 제자며 손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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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운장. 아니 이제는 천상천임을 무림에 선포했으니 천상천 본궁(本宮)이라 하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천년 무림의 전실이 현실의 무림으로 내려온 곳, 그 중심에 있는 승천제마관에 검강인이 들어섰다. 동시에 우렁찬 소리들이 입구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가히 그 소리들만으로도 무림을 뒤흔들 만했다.

 

 

 

 

“천세 천천세! 만세 만만세!”

“삼가 궁인들이 천주님의 용안을 뵈옵니다.”

 

 

 

 

너나 할 것이 없이 소리에 흥이 넘쳤고 힘이 넘쳤다. 개나 소나 다 흥에 겨워 고래고래 소리쳤다. 허연 대낮에 이제는 아예 깨놓고 천년의 은둔을 광적으로 털어냈다.

 

 

 

 

검강인은 고개를 좌우로 한 번 돌린 후에, 가볍게 눈과 턱으로 묵례를 했고 몸은 정면에 자리한 용봉태사의로 직진했다. 걸음 하나하나마다 힘을 주는 품이 마치 황제 즉위식에 오르는 발걸음 같았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이 걸렸다. 이 이십 장에 불과한 거리를 가기 위해 삼십 년 동안 2인자의 자리에서 쓰디쓴 웅담을 핥고 짚단에서 새우잠을 잤으며, 역천을 통해 1인자에 오른 후에도 십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이제 내가 완벽한 일인자야. 천년 전설의 새로운 주인이야. 크하하하하하!’

 

 

 

 

검강인이 마음 속으로 포효하며 마침내 용봉태사의에 앉았다.

 

 

 

 

“천상천의 율법을 새로 정한다.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을 폐하고 강호에 나섬을 자유롭게 한다. 이로써 지난 천년은 가고 새 천년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검강인의 음성이 천년 신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며, 승천제마궁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천세 만세 만만세!”

 

 

 

 

검궁인 앞에 도열해 있던 궁의 고위 당직자와 궁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도 천년의 은둔 속에서 가슴 속에 쌓이고 쌓여 선대로부터 계속해서 물려받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물려줘야 했을 분노와 좌절과 체념을 모조리 토해냈다.

 

 

 

 

“새로운 율법의 이름으로 명하니 가서 천상천의 강호출도를 천하에 선포하라. 전설에서 나왔지만 그 전설의 위대함도 함께 갖고 나왔음을 만천하에 알려라.”

“천주님 만세!”

“천무대제 검강인 만세!”

“천상천 만세!”

 

 

 

 

그렇게 열기와 광기가 넘쳐났고, 그것은 전체 무림을 완전히 뒤집어버릴 그런 것이었다.

 

 

 

 

“그 처음에 천마성을 멸문시켰으니 다음은 귀곡을 벌하겠다. 그 다음에 제마단 태상맹주 자리에 오를 것이니 이를 천하에 알려 본 천주의 위대함을 칭송케 하라. 천상천을 높이 받들 게 하라. 가서 이를 실행하라.”

 

 

 

 

검궁인이 마침내 무림통일의 대전을 선포했다. 그는 천년 동안 갈고닦을 뿐 드러낼 수 없었던 이빨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무림 역사에 단 한 번만 재현된 적이 없는 천하혈난지세의 본격적인 출발을 선언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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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도 깊으면 병이지. 애새끼, 지 높은 줄만 알지. 클클! 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몸이라도 보존하지. 클클!”

 

 

 

 

이번에도 여지없이 승천제마궁 위에서 들리는 천년의 진정한 감시자의 냉랭한 소리, 육력이었다. 허나, 검강인을 감시하는 것이 이번에는 그 혼자였다. 오력은 다른 일에 투입됐다. 세외문의 감시자들도 할 일이 갑자기 늘었으니 그에 합당하게 움직여야 했다.

 

 

 

 

“클클, 음지에 있던 놈들이 양지로 나오니까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 이거 가랑이가 찢어져 죽을 판이야. 그냥, 확 쓸어버렸으면 원이 없겠는데.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원, 미친개 지랄하는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니. 오력이라고 나와 다를 것 있겠어. 그 놈도 거기서 이런 미친개가 울부짖는 소리나 듣고 있겠지.”

 

 

 

 

오력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천년을 이어온 세외문의 감시자로 마음의 인내가 슬슬 바닥을 드러낼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검강인, 지금이라도 마음껏 웃어라.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클클, 천년의 기다림.. 너무 길었어. 그래서 넌, 내 손으로 자근자근 발라주마. 클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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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해, 류심환의 행동이. 마치 다른 놈이 있어 함께 수련하는 이 느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지만, 하여튼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뭔가.. 있다고 봐야 해. 뭔가, 이상해. 그렇다면..’

 

 

 

 

제천이 일환을 부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처음 류심환이 천상지무를 대성할 때 미간을 찡그렸던 그는 류심환이 자신의 예상보다 빠르게 파천태극무검마저 완성하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류심환이 보여준 속도란 자신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가 지켜본 무인 중 최고의 자질을 보여주었던 검강천보다 훨씬 빨랐다. 천외천의 적자라고 해도 이 정도의 속도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천은 자신의 예측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무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무림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제천으로도 당황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또 한 명이 있다는 느낌까지, 뭔가 이상해? 알아보고, 대비해야지. 류심환의 경지가 이제 끝에 이르렀으니, 무엇이든 좋지 않은 낌새가 있다면 철저하게 밝혀 대비해야지. 내가 관장하는 범위 밖에 단 한 명의 무인도 용납할 수 없으니까. 결국, 손이 더 필요한 거야.’

 

 

 

 

며칠 째 류심환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복기해본 제천이 마음을 굳혔다. 류심환이 이런 경지에 이를 것은 필연의 과정이었지만, 막상 류심환이 최후의 지점에 이르자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무엇이 느껴졌다. 어떤 변수도 두려울 것이 없지만, 지금까지 그가 허용할 수 있는 변수의 범위 밖으로 나간 것은 류심환을 둘러싼 풍문 같은 것, 즉 유체이탈 같은 또 다른 존재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이는 천년의 주재자인 제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환! 마지막 세상 밖의 힘, 육경(六誙)을 깨운다.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