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은 무너져 내린 비궁을 샅샅이 뒤졌다. 그는 일환에게 육경을 깨우라고 했지만, 비궁만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제천은 무너져 내린 비궁의 잔해들을 일일이 살펴보았고, 천년 동안 처음 느껴본 의문을 풀 단서를 찾아냈다.



“이것 봐라? 류심환, 이놈이 나를 속였어! 감히 나를, 천년의 주재자인 나 제천을! 클클클.. 클클..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



하나의 떠 있는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제천은 그렇게 한참동안 분노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 따라 비궁 주변이 통째로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주변 수백 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두 놈이었어, 두 놈!! 류심환, 이놈이 나를 속였어. 클클클! 처음이야, 천년 동안 나를 속인 놈은 류심환이 처음이야.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류심환, 네 놈부터 없애주마. 흔적조차 남겨놓지 않겠어. 무영, 이 어린놈은 그 다음에. 클클, 클클,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날 속였어, 내가 무림을 주재해왔던 바로 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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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이 직접 움직였기에 류심환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천년이란 긴긴 시간 동안 무림의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없다. 제천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무림 전체를 관장하기 위해서였다. 숫자가 얼마 안 되는 수하들로 무림 전체를 감시할 수 있었던 것도 제천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천은 이를 위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무한공력을 이룬다 해도 육체라는 형태를 유지한 채 천년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곳에 있으면서도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란 떠 있는 시각의 형태를 취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한 줌의 진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떠 있는 눈, 그러나 모든 곳에 동시에 떠 있을 수 있는 기(氣)의 형태로 자신을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물질과 비슷해서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었고, 무림 전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수천만 개의 떠 있는 눈으로 분산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 각각의 떠 있는 눈을 연결하는 것은 자체의 진동에서 얻은 극히 미약한 기였다.



하지만 모든 기는 동일한 운동을 통해 창출되고 서로의 기를 주고받기 때문에 통일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눈이 미약한 기로 연결돼 있기에 무엇으로도 자를 수 없었고, 존재의 형태를 기로 바꿨기에 천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무림 전체에 퍼져있는 각각의 눈들이 보는 것을 모든 눈이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헌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류심환이 제천을 속일 수 있었다. 류심환도 무영의 수련을 숨기기 위해 기의 형태로 수련을 함으로써 자신을 감시하는 눈을 속일 수 있었다. 기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의 형태로 수련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류심환은 천년 동안 천상천과 천외천을 속일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는 천상천이 배출한 최고의 천재였던 검강천도 역천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이어오던 생각이었다. 그가 천년 동안 천상천을 감시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천상지무를 대성한 이후였다.



검강천은 천년 동안 어떤 천주도 이르지 못한 최후의 경지에 이르자, 천상지무가 반쪽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쪽만으로도 어떤 무공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이런 결과는 천상지무를 처음 만들 때부터 의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검강천은 류심환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됐지만,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류심환과의 비무를 통해 천상지무의 반쪽이 류심환이 펼친 무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강천이 류심환에게 천상지무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며 한 가지 단서를 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치면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판단했고, 이를 류심환에게 알려주었다. 일극무원결을 만든 류심환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검강천은 천년 동안 천상천은 물론 무림 전체를 속이고, 천상지무라는 반쪽 무공만으로도 절대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면, 도박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류심환은 검강천의 기대처럼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고, 천년의 전설에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거짓은 검창천이 깨달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이 하나의 무공에서 갈라진 두 개의 무공이란 사실이었다. 하나의 비밀이란 그것을 실행한 제3자가 있다는 것이었고, 그의 능력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천년 동안 생명을 유지한 채 무림 전체를 감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류심환은 삼라만상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근본 원리와 일치하지 않으면 천년을 이어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모든 무공의 근원이자 삶의 기원인 기의 형태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명이 수련하는 동안 류심환이 50장 떨어진 비궁에서 기의 형태로 무영과 똑같은 수련을 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 무영이 수련 중에 펼치는 기와 자신의 기를 일치시켜 하나이면서도 둘인 상태로 무공을 수련했고, 제천을 속일 수 있었다. 기를 속이는 것은 기만이 가능하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면 의심이 들 이유도 없으므로.



다만 류심환도 천년의 주재자가 음의 기운 형태로 존재할지, 양의 기운 형태로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천년을 살아서 무림을 주재한들, 기의 형태에 머문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천년의 주재자라면 무림을 자신의 손아귀에 두려는 욕망이 끝이 없을 터, 자신과 같은 돌발변수가 생긴다면, 그리고 천년의 주재자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다면 기의 형태에서 인간의 형태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류심환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의 흐름을 살폈고, 음과 양의 조화가 깨지는 현상을 몇 번이나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음의 기운이 클 때 그런 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이 음양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무공 같지만, 일극무원결을 통해 두 개의 무공을 동시에 운용하면 양의 기운이 미약하나마 강하게 작용할 수 있었듯이, 천년의 주재자는 음의 기운 형태로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류심환이 제천의 수하들과 세외문의 감시자들이 서로 다른 문파의 소속이란 것은 알지 못했다. 또한 류심환이 두 개의 무공을 완벽하게 하나로 합친 이후에는 자신을 감시하는 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천년의 주재자였지, 그의 수하들이 아니었다.



류심환은 그때부터 한 가지 원칙하에 움직였다. 그것은 누군가를 속이려면, 그 누군가가 천년 무림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오른 단 한 명의 무인이라면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는 원칙. 삼혼부터 시작해 자신까지 속일 수 있을 천년의 주재자를 속일 수 있을 것이며, 그럴 때만이 무영의 수련이 절대변수가 될 수가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검강천이 무영을 데리고 류심환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시작됐다. 류심환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검강천의 죽음을 목도하며, 천년의 거짓과 비밀을 푸는 것을 무영에게 맡기기로 결심했고, 한 치의 어김도 완벽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무영을 위한 안배들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했던 것이고, 동시에 삼혼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고 싶었다.



무영이 천년의 주재자를 꺾는 것까지 보장할 수 없지만, 류심환은 최대한으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영은 고금제일의 경지에 올랐고, 천년의 주재자와 맞설 수 있는 수준에 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과 일극무원결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곧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류심환은 천년의 주재자를 속이는데 성공했다. 하나가 가능했다면, 그 다음도 가능한 것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끝없는 변화를 창출했으면서도 본질에 이르면 변한 것이 없는 삼라만상의 법칙이 증명해왔지 않은가. 류심환이 생각하기에 무영의 성취가 그러했다. 무영의 성취에 관한 한 천년의 주재자는 주재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류심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무영과 삼혼, 삼영, 그리고 삼성처럼 현존하는 무림인들의 몫이지,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류심환은 무영을 위한 마지막 안배를 위해 일주일만 더 천년의 주재자를 속이면 됐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제천이 직접 움직였기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의 감시망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류심환도 제천처럼 기의 형태로 움직이지 않은 한의 그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제천이 류심환을 찾아낸 것은 단 반나절 만이었다. 류심환은 최소 이틀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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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천년 전설의 거짓이냐?”



류심환이 삼장 앞에 떠 있는 하나의 눈을 향해 물었다. 천년의 주재자가 음의 기운을 취하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형태가 하나의 떠 있는 눈이라니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었다.



“후후. 그렇다면?”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답했다.



“어지간히 급해나 보군, 직접 모습을 드러낼 정도면?”

“클. 건방진 놈.”

“그 상태에선 아무것도 못할 텐데?”



류심환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는 천년의 주재자가 하나의 떠 있는 눈의 상태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변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기의 형태로 있는 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컬컬!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네가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 본데, 컬컬,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한 번은 만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컬컬! 그래, 좋아. 이제 만났으니 어떡할 건데?”

“몇 가지 궁금한 것부터 물어봐야지.”

“궁금한 것?”

“응.”

“응? 응! 컬컬컬! 컬컬컬컬! 좋아, 좋아. 뭐가 궁금한데?”

“우선 네 이름.”

“내 이름? 클. 그건 말해줄 수 있는데, 그 다음은?”

“내가 너를 무시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해?”



류심환은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있는 천년의 주재자가 말을 나눌수록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천년의 주재자는 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내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류심환은 천년의 주재자가 무림 전체에 퍼져 있는 기운을 하나로 합쳐 인간의 형태로 돌아온다면 무공의 신이라도 그를 제압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몇 수 위야. 어쩌면 최악이라고 가정했을 때보다 더 강한 것 같아. 무영이 이 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내 안배가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류심환은 처음으로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천년 무림을 주재해왔다면, 그의 능력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존재의 형태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를 속일 수 있었잖아? 완벽하다면 구태여 저런 형태로 있을 필요가 없어. 뭔가 약점이 있을 거야. 절대나 전능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류심환은 시간을 끌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천년의 주재자가 저런 형태로 자신을 찾아왔다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이 아닌가? 류심환은 뇌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뭘, 그렇게 생각해? 내게 질문할 것이 두 개밖에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물론 질문을 많이 하고 아무리 생각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나를 한 번 속인 것만으로도 너는 무림 역사상 최고고 그 대가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어. 다음 질문이 뭐야? 그 질문에 따라 네놈이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할 테니, 충분히 생각해서 해야 할 거야.”  

  1. 뉴론7 2014.09.26 05:36 신고

    류심환과 제천의 대면 잘읽고 감니다.

  2. 태봉 2014.09.26 06:47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새벽녁에 수고하셨어요^^

    • 늙은도령 2014.09.26 06:50 신고

      이러다간 천검지로의 3부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끝낸 소설인데, 고민되네요.

  3. 박창식 2014.09.26 09:17

    님의 다른 글도 꼼꼼하게 읽지만
    무협은 날마다 기다려 집니다.

    • 늙은도령 2014.09.26 16:53 신고

      블로그의 내용들이 무거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올렸는데...
      정말 3부를 써야 할 것 같네요.
      에고.. 그럴 시간이 나올지?

  4. 태봉 2014.09.26 12:03

    책을 내시면 좋겠고요 한권의 분량이 안되시면 석삼이라고 이왕 3부도 쓰세용^^

    • 늙은도령 2014.09.26 16:55 신고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내야 합니다.
      제 건강 상 다른 글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협지를 책으로 내면 팔리기나 할까요?
      그냥 소장용 이상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책으로 내려면 많은 퇴고해야 합니다.
      아무튼 고민해 보겠습니다.

    • 태봉 2014.09.27 12:08

      아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군요
      건강 생각하시고 쉬엄 쉬엄 하셨으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4.09.27 21:20 신고

      네,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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