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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8장 - 무영, 삼영의 깨달음을 이끌다



삼영은 사년 육 개월의 노력 끝에 삼혼의 무공을 대부분 소화할 수 있었다. 아직 내공 면에서 차이가 났지만, 속혼이 무림을 샅샅이 뒤져 선발한 그들은 무영만큼은 아니지만 1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어서 이런 성취가 가능했다. 또한 그들의 성취가 비정상적일 만큼 빨랐던 것은 류심환이 그들의 신체를 삼혼의 무공을 소화하는데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이 크게 작용했지만, 그들의 천재성을 압도할 만큼의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비약적 발전이 가능했다.



그들은 단 하루로 쉰 적이 없었다. 초반에는 철용이 준영과 한성을 쫓아가지 못해 악을 쓰며 따라가다 결국 6개월 만에 몸져눕기까지 했다. 철용은 온몸을 태울 듯한 신열에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푹푹 꺼져 물먹은 솜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팔을 뻗었다. 팔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상상 속에서라도 검을 휘둘렀다.



한성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철용보다야 시작은 훨씬 수월했지만, 그 역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 이르면, 앉아서 검을 휘둘렀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철용처럼 누워서라도 검결을 운용했다. 한성은 철용의 모습을 지켜보며 약해지려는 자신을 다그쳤고, 그럴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영은 불혼에게서 받은 일할의 공력을 처음부터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기에 한성과 철용과는 달리 지금까지 도중에 쓰러진 적은 없었다. 또 성격 상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철용과 한성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거나 힘들어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서있기 어려우면 앉아서, 앉아있기도 힘들면 누워서라도 검을 뻗고 그으며 베라고 했다.



한성과 철용은 그런 준영의 닦달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피곤에 곯아떨어지면 준영이 한 시진 이상 온몸을 주물러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등 그날그날의 피로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형이자 아버지 같은 준영의 희생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준영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한성과 철용은 힘겨운 무공수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삼혼이 직접 만들어준 해설서를 갖고 사년 육 개월을 일각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채 수련에 매진했다. 한성은 삼년 전에 도혼의 내공 일할을 자신의 내력에 완전히 흡수해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제는 초절정 고수의 반열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철용은 그보다 1년이 더 걸렸지만 류심환의 치료를 받은 까닭에 발전 속도는 셋 중에 가장 빨랐다.



그리고 그들의 내공이 삼혼의 반 정도가 됐을 때야, 류심환이 숨겨놓았던 또 다른 선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류심환은 삼영이 노력에 노력을 더해 내공의 깊이가 삼혼의 반에 이르면 봉인된 상태로 단전의 가장 내부에 저장해둔 태극무한진기가 삼영의 내공에 합쳐질 수 있도록 안배해두었고, 1년 반 전에 그것이 실현되었다. 삼영이 자력으로 삼혼의 내공의 반에 이르러야 봉인된 태극무한진기가 풀어지도록 만들어놓은 것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차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년 반이라는 턱없이 짧은 기간에 삼혼에 필적하는 경지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들은 육 개월이 더 흐른 후에 삼혼지문을 한 단계 발전시킨 삼영지문의 수련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더 흘렀고, 삼영은 삼영지문을 대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헌데 그때부터 삼영은 단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삼혼이 그랬던 것처럼 삼영도 온갖 것들을 시도해봤지만 모든 것들이 허사로 돌아갔다. 삼영지문은 류심환이 기존 삼혼지문의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해 그들에 맞게 수정한 합공이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육 개월 동안 허송세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문제도 삼혼과 비슷했던 것이다. 류심환이 새로운 무공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합공은 삼영지문의 초입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각자가 맡은 부분이 문제없이 돌아가 하나로 합쳐졌지만 마지막 격발의 시점에서 흐름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들이 일극무원결을 배웠다면, 그래서 기관 속에 들었던 무영 정도에 이르렀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을 텐데 지금의 삼영으로서는 이 지점에서 막혀 어떤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더 해보자.”



준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무명이 난관에 봉착한 삼영지문의 초입부터 모든 것을 되풀이하고 되풀이해도 딱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무작정 반복하다 보면 번개처럼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을까 해서 무모하리만치 반복에 반복을 더하며, 한성과 철용을 몰아붙였다.



그것은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몸에라도 각인시켜 불연 듯 다가올지도 모를 깨달음의 순간에 완벽한 삼영지문에 도달하기 위한 준영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흘려버린 시간이 너무 많아 그의 조급함이 극한에 이르렀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의 성격상 무엇이라도 시도해야 했다.



“또? ..알았어.”

“대형.. 도대체 언제까지.. 아,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한성도 지겨울 정도로 이어지는 반복 수련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처음을 올리고 끝을 내리는 말투가 전부였다. 철용도 답답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미간을 찡그리며 호통을 칠 것은 같은 대형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라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한성과 철용은 준영의 심정이 자신들보다 더욱 답답해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준영의 명령에 무조건 따랐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죽을 맛이었고, 준영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차라리 수련을 하다 과로사하는 것이 모양새도 있고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이 단계만 넘으면 끝에 이르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포기할 수 없었다.



“철용!”



준영이 삼영의 막내, 철용을 호명했다.



“알겠어요, 대형. 합!”



철용이 힘이 빠진 기합을 한 번 넣더니, 파천태극무검의 제 사초를 펼쳤다. 그의 검에서 한 가닥 검기가 일더니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태극에 이르러 검에 뜻이 담기니 하늘도 자를 것이며(太極馭劍斷天流)!



“한성!”



준영이 이번에는 한성을 불렀고,



“갑니다. 사형. 합!”



그가 철용처럼 기합을 넣으며 검법의 제 오초를 시전했다. 그의 검에서도 한 가닥 검기가 뻗어 나오더니 하늘이라도 가를 듯, 맹렬하게 허공을 치달았다.



그 뜻이 검과 다르지 않으니 하늘도 무너뜨릴 것이며(如意馭劍破天流)!



이어서 준영 자신이, 검을 들어 검기를 격발시키자 세 개의 검기가 무서운 속도로 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뜻과 검이 같아 그 존재조차 망각하니 그것이 또 하늘을 무너뜨린다(如意無常破天流)!



그는 검법의 제 육초를 전력으로 펼쳤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철용과 한성이 준영의 검이 그려내는 형상에 자신의 초식을 더해 삼영지문의 마지막 초식으로 거듭난 신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로써 뜻이 길에 이르니 세상 어는 것도 그 앞에 존재할 수 없다(如意一道破天荒)!



신 여의일도파천황!! 삼영이 전력을 다해 세 개의 검기를 하나로 합쳐 초식의 검결을 이루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격발의 단계에서 급격한 역혈을 일으켰다. 그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역혈을 달래며, 또 한 번의 시도를 다시 하려고 하는데, 하나의 소리가 그들의 고막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여의일도파천황이네?



삼영은 분명 미쳐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만들어낸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삼영지문의 정수에 이르는 입구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머릿속은 온통 순백의 설원인데,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세상 너머에서 ‘새로운 여의일도파천황이네?’라는 말이 들렸다.



헌데 그 목소리라는 것이 평생을 듣고 싶어, 지난 오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않았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류심환과 삼혼이 무영이 돌아오려면 최소 6년은 걸린다 했으니 무영을 빼닮은 이 목소리라는 것이 환청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구나. 미쳐가는 것이.’



준영은 지금 자신의 귀에서 영혼까지 울려버린 환청이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초기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환청을 털어내고자 고개를 좌우로 짧고 빠르게 흔들었다. 헌데, 이놈의 초기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환청이 이르길.



“첫째, 검에 담은 뜻이 태극에 이르지 못했고.”



이런 말과 함께 하나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살아서 숨 쉬고 있었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 하늘로 치솟았다고 눈이 인식하는 순간 땅으로 방향을 틀었고(陰陽), 그 방향이 가는 곳에 하늘과 땅과 인간(三才)이 공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동시에 네 가지 우주의 모습(四象)이 네 가지 뚜렷한 검강을 만들었고 그 흐름은 자신이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삼라만상의 이치(五行)를 드러내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 모든 것이 유연하고 정연해 마침내 하나에 이르니 그것이 진정 태극이었다. 준영이 두 눈이 있는 대로 커졌다. 그리고 다시 환청이 이르길.



“둘째, 검에 담긴 뜻 또한 태극과 같지 않았으며.”



이제는 무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며 태극에 이른 검이 전후좌우로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준영은 볼 수 있었다. 검이 그리는 선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참뜻(眞意)에 이를 때 비로소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니 그 선을 따라 하늘이 좌우로 갈라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제는 환청이 아닌 무영이 얘기하길.



“셋째, 그래서 망각한 것은 검도, 뜻도 아니었어.”



무영의 말끝에서 그가 펼친 기검(氣劍)마저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성의 생각 속에 하나의 검이 떠올랐다. 무형검과 함께 검의 최고 경지라 하는 심검(心劍)이 그의 생각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검은 그가 생각하는 대로 천지간을 유영했고, 그것은 마치 물결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미끄러지듯 허공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철용의 눈앞에 무영이 내려서며 소곤거리기를.



“해서 여의일도파천황은 시현되지 않았던 거야. 태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 본질을 잃으면 허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 삼영지문은 출발이 가장 중요해. 먼저 태극으로 돌아가야 해. 알았지, 철용아. 나야 무영. 반가워. 너무나 보고 싶었어. 그 동안 잘 지냈지?”



철용에게 오년 만에 평생의 친구가 돌아왔다며 무영이 활짝 웃었다. 그 투명한 웃음 뒤로 삼영지문의 정수를 담은 심검이 흘러가는 곳마다 금이 생기며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천상천처럼. 마치, 천외천처럼.



“형! 무영형!!!”



철용이 가득 팔을 벌린 무영의 가슴으로 와락 안겼다.



“왔구나. 반가워, 무영아!”



한성이 무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깍지까지 끼면서.



“…동생, 수고했어. 고맙고.”



준영이 무영보다 더 활짝 웃었다.



“와! 다들 너무 컸다. 철용이가 내 눈까지 컸네. 하하하. 내가 보고 싶었지, 한성형, 준영형. 응, 그렇지?”

“그럼. 매일 생각했어. 형아.”

“철용아, 그랬어? 나도 그랬어. 형들도 그랬지."



무영이 철용을 한껏 안으며 깍지를 낀 한성의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움켜쥐고 준영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며 그렇게 온몸으로 삼영 모두에게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럼.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 넌 내 생각이 가는 어디에도 있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었겠어."



한성이 도혼의 후예답지 않게 반가움을 표했다. 그의 두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올라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우리에게 너를 잊는다는 것은 호흡할 때 공기가 없는 것과 같아. 무영아 축하해. 네 기도가 보통이 아니구나."



준영이 맏형처럼 든든하게 말했다.



"어? 헌데, 왜 이리 배가 고프지.”



무영이 자신을 생각하는 삼영의 마음에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려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자신의 가슴에 안긴 채 이미 울고 있는 철용의 두 눈과 들썩이는 어깨가 있었다. 무영의 옷이 그의 눈물에 젖어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의 눈도 젖어 들었다. 철용과 준영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