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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4장 ㅡ 탈출1



더 이상 경공만으로 그들을 따돌릴 수 없다. 이 상태로 일각이라도 더 지체한다면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중독된 상태의 아이를 안은 채 진동을 주지 않고 내가 낼 수 있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무려 5개의 추적조들 중에서 여섯 명은 생각보다 무공이 뛰어난 초절정 고수였다. 하남성(河南省)에서 시작된 도피가 이제 수백 리를 지나 산서성(山西省)에 접어들었는데도 그들을 좀처럼 따돌릴 수 없었다. 그들의 내력은 떨어지지 않았고 속도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론 아이를 살릴 수 없어. 어떻게든 아이들 치료할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검강천이 추적조 중에서 가장 강한 자들의 검과 도에 수십 번 찔리고 베인 상태에서 반 시진을 버티고 그런 상태에서 또 그의 양 팔과 두 다리를 희생하며 일각을 벌어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아이에 대한 응급치료를 할 수 있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사랑이 그리도 크고 높은지 비로소 알 것 같던 그 순간을 이용해 아이에게 최소한의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생명을 노리는 독은 생각보다 강했고, 류심환이 화월곡을 벗어났을 때 사방에서 새로 추적자들이 들이닥쳤다. 고금제일의 천상천을 무너뜨린 자들은 그만큼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들은 치명상을 입은 검강천을 추적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화월곡 주변에 폭넓은 포위망을 구성했고, 탈출구를 찾지 못한 류심환은 화월곡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온몸에 퍼져 있는 독의 진행을 막으면서 4개의 추적조를 따돌리려면 나무 하나의 위치까지 꿰고 있는 화월곡을 이용해 새로운 탈출로로 그들을 따돌리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5년 동안 자신이 머물렀던 모옥이 최상이었다. 그는 모옥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검강천은 역천의 무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 벌고 있는 것이었다. 지독히 잔혹한 것이지만, 검강천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아들과 재면해야 했다.

 

 

‘무영아, 죽으면 안 돼. 어떻게든 살아서..’

 

 

검강천의 표정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류심환의 능력을 믿지만 역천의 무리들의 능력을 고려할 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 수 있었다. 이런 검강천의 마음을 꿰뚫었을까, 류심환이 극도로 초조해 하는 검강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추적자가 너무 많아서. 모옥 뒤편에 비상구가 있어 그리고 갈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죽지 않습니다, 절대로.]

 

 

류심환은 전음으로 검강천에게 자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검강천은 류심환의 품안에서 죽은 듯 혼절해 있는 무영을 근심 가득한 시선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더냐?”

“역천을 준비한 기간만 10년이야.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어!”

“천주를 상대로 즐길 만큼 즐겼고, 이젠 마무리 한다.”

 

 

역천의 무리들이 무엇이라 떠들던, 류심환에게 무영을 맡긴 이상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만 무영이 살아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

 

 

‘단 일각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해.’

 

 

처음 팔 하나가 잘릴 때 검강천은 무영의 상태를 살폈고, 다리 하나가 잘릴 때는 류심환과 함께 모옥으로 들어가는 창백한 무영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 다리로 힘들게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손으로 상대의 검을 잡아 손가락이 잘리고, 팔뚝으로 도를 막아 그것마저 잘려나갔을 때는 잔혹하게 웃는 그들의 표정 너머로, 잔영처럼 남아 있는 무영의 얼굴을 떠올리며 모옥의 입구를 막아섰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내가 알량한 신화에 갇혀..’

 

 

다시 역천의 검에 의해 하나 남은 다리가 사타구니로부터 잘려나가고, 동시에 도에 의해 허리 살이 뭉툭 잘려나갔지만 검강천은 모옥의 입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는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까지 삼킬 수 없었지만, 사지가 잘린 상태에서도 모옥의 입구를 지켰다. 자식에 대한 아비의 사랑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최고에 이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검강천의 머리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목젖을 중심으로 몸에서 양단될 때 생을 다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비장함조차도 없었다. 오직 아비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만이 남아 있었다.

 

 

‘아들까지 그렇게 살라 할 순 없어.’

 

 

목에서 잘라나간 그의 머리가 지면에 떨어져 몇 번이나 굴렀지만, 목표했던 일각의 시간은 끌 수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었다. 류심환이라면 일각이란 시간에 무엇도 가능하게 만들 능력의 소유자 아닌가?

 

 

천상천의 주인은 그렇게 닫힌 하늘에서 열려 있는 땅으로 내려왔다. 살아서는 전능의 능력으로 무엇이던 할 수 있었지만 신화가 남겨놓은 족쇄에 갇혀 살았고, 죽어서는 대지에 몸 하나 둘 곳 없는 신세로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것이 자유라는 것일까?’

 

 

자유에 대한 성찰이 검강천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한 행위였다. 잘려나간 부위들이 꿈틀거렸다. 오체절단된 머리와 팔과 다리, 이리저리 잘리고 떨어져 나간 살덩어리와 잘려진 뼈에서 조각난 영혼들이 육체와 신화의 족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렇게 오체절단된 영혼의 조각들이 다시 모여 하나의 형체로 돌아왔을 때 검강천의 영혼은 류심환과 무영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했다.

 

 

“류공, 이제야 알겠구려. 난 신과 맞설 만큼 전능의 소유자가 됐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음을 이제야 알 것 같소. 신화란 무결점의 최고 권력의 상징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하지 못하면 세상 밖에서 영원히 군림하는 죽은 권력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소. 신화의 본질은 사람사는 세상에서 단절된 것이어서 모든 이로부터 칭송받을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소. 내가 살아서 잘한 일이란 당신을 만나 천상지무를 보여주고, 단 하나의 약속을 예약해둔 것뿐이라오.”

 

 

“무영아, 너에게 너무 큰 짐을 물려주고 가서 미안해. 너는 최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단다.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노력의 양에 따라 너는 천하제일인을 넘어 고금제일인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천상천의 신화 속으로 절대 들어가지 마라. 세상에 남아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너의 길을 가라. 고립돼 함께 하지 못하면 전능의 힘도 결국은 무력한 것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실존할 때만 너의 능력은 비로소 의미를 회득할 수 있어. 무엇보다도 신화와 복수에서 자유로워져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너에겐 너의 길이 있을 터, 무엇에도 구속되지 마라. 사..랑.. 사랑한다, 무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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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주인공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검강천이 한 아이의 아비로써 일각이란 시간을 끌어주었기 때문에 류심환은 무영의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은 채 잠시 동안이라도 추적조를 따돌릴 수 있었고, 산서성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돼. 응급조치로 막아둔 혈도가 풀리기 직전이야. 천상무극독을 잠시 동안 막을 수 있었지만, 진동에 의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이가 중독된 천상무극독의 독성은 천상지무처럼 고금제일이라 독의 재준동은 곧 아이의 죽음을 의미했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류심환은 생애 처음으로 초조함이란 단어의 뜻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아이의 단전에 아비가 내장시킨 천상천 고유의 천상무극진기와 어려서 복용한 천양천단의 효능이 독의 준동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아비가 단전에 남겨준 천상무극진기와 아이의 죽음을 재촉하는 천상무극독은 서로 본질이 같아 처음에는 진기에 포함된 아비의 내성이 아이의 온몸으로 퍼져가는 독의 흐름을 상당 부분 차단하고 있었지만, 두 개의 본류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아이는 절명하게 된다. 더는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소 한 시진은 치료해야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상태였다.

 

 

‘결국 방법은 하나야.’

 

 

류심환에게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아이에겐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할 수 없지. 내가 버렸던 것을 가져올 수밖에. 살아 검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아버님, 어머님의 용서해주세요. 이번만, 이번 한 번만 검을 쓸게요.’

 

 

그는 속죄의 약속마저 깨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부모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니, 그것은 류심환이 자신에게 하는 변명에 불과했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검강천의 최후를 귀로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에게는 마음의 부담보다 무영의 상태가 급했다. 이래서 자유를 속박하는 운명은 빌어먹을 놈이었다.

 

 

‘경공을 접고 저들을 죽인다. 세초 안에 끝내야 해. 그것도 충돌의 파장이 아이에게 미치지 않아야 해.’

 

 

아이의 혈색이 창백하면서도 검게 변했다. 호흡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매우 불규칙했다. 세 초 안에 저들을 없애라면 그것은 어렵지 않다. 헌데, 충돌의 파장까지 흡수한 채 하라고 하면 그것은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피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어차피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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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급하다. 우리는 주군의 임시거처에서 여기까지 쫓아왔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도피하면서도 주군은 끝내 우리를 불러주지 않았다. 아이의 상태는 촌각을 다투는데도 주군은 요지부동이다. 새삼 확인하지만 주군의 맹세가 너무나 깊고 잔인하다.

 

 

물론 주군이 천상천의 적자를 구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것이 주군의 선택이니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주군이 정하면 그때부터 그것은 준엄한 명이며 우리들의 따라야 할 삶의 준칙이다. 따라서 아이의 출신은 따지지 않는다. 주군이 뜻하는 바가 있으리라.

 

 

우리에게 주군은 모든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렇게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선택하자. 선택해 무엇이든 해서 주군의 애로사항을 풀어 들이고 신하된 자로서 허락도 없이 선을 넘은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벌을 구하자. 그것이 죽음이라도 지금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이를 구해 약속을 지켜 주군이 갖고 있는 마음의 부담을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못할 것은 없다. 주군은 현재 도움이 절실하고 주군의 곁에는 우리가 있다. 하남에서 산서까지 따라온 우리가 바로 지척에 있다. 당연히, 무엇이든 해야 한다.

 

삼혼(三魂)은 마침내 주군의 뜻을 거스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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