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옥은 바깥에서 볼 때와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넓었다. 꼭 필요한 가구만 있어서 내부공간이 실제보다 넓어 보였다. 나무와 짚단, 진흙과 돌을 고루 사용해서 지었기 때문에 튼튼하면서도 아늑했고 온도와 습도도 알맞게 유지됐다. 세 개의 방과 열 명 정도가 함께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가옥의 중심에 자리했다. 마루 끝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자리했고 무엇보다도 무영의 방이 가장 잘 꾸며졌다.

 

 

방 세 개 중 류심환과 검무영이 각각 하나씩을 사용했고 삼혼이 하나의 방을 사용했다. 삼혼으로선 억울하지만 주군의 명을 따라야 했다. 기골이 장대한 편인 그들이 잠을 자기 위해 함께 누우면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였다. 마누라면 모를까 몇 십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낸 늙은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잠을 자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도혼의 불만은 그중에서 으뜸이었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이 아니더라도 늙은 홀아비 냄새란 차라리 퇴비보다 못했다.

 

 

그래도 삼혼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주군이 무영에게 무공을 가르치라 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어디선가 꼭꼭 숨어 잠을 자야 했다. 주군의 곁을 떠날 수 없어 그가 어디라도 갈 경우에는 노숙은 기본이었다. 방이 한 개였지만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게다가 주군은 무영에게 무공의 기초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제한된 형태의 해방이었고 아이의 출신 성분이 한 때 마음에 걸렸지만, 교육의 목적이 아이를 통한 천하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니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 열두 시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아쉬울 정도였다. 그들은 이것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고 그것에 주군의 배려가 있음을 능히 알 수 있었다.

 

 

‘방 하나라도 늘리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욕심 같아선 후다닥 새집을 짓고 싶지만, 무영과 빨리 친해지기를 바라는 주군의 뜻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군의 삶을 생각하면 자신들의 투정이 가을날의 공기처럼 가볍기만 했다. 허나 그들은 무영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즐거움 때문에 이런 배려에 류심환의 복안이 하나 더 들어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류심환은 무영을 해독하는 과정과 천상천의 무공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그 근본이 되는 천상무극진기와 그에 근거한 천상지무의 원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해를 무영에게 전수하는 과정이 수련의 핵심일 터, 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검강천에 못지않은 무신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삼혼의 진보, 그것이 류심환이 그들에게 주려는 두 번째 보답이었다.

 

 

주군의 이런 배려까지 더해진 삼혼은 오늘도 즐겁게 무영과의 하루를 보냈고 무영도 자신의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삼혼과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화월곡의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던 어느 날, 새벽부터 술시(戌時)까지 이어진 수련을 끝낸 후 호수에서 가볍게 몸을 씻은 무영이 류심환의 방으로 불쑥 찾아왔다.

 

 

 

“무영아, 무슨 일로 이곳에?”

 

 

류심환은 처음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무영을 보며 물었다. 헌데 무영은 주저하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뭘 말하려고?’

“왔으면 말해야지.”

 

 

류심환이 무영에게 다시 물었다.

 

 

“아저씨, 나 검 하나 만들어 주면 안돼요? 아버지 검은 너무 무겁고 나뭇가지는 잘 부러져. 나도 검 하나 갖고 싶어. 만들어 주면 안돼요?”

 

 

무영은 맑은 눈빛으로 류심환을 올려다봤고, 입을 삐쭉 내밀어 그 끝을 모음으로써 간절함을 드러냈다. 그를 데리러 온 사신이라도 그 표정을 보면 일단 검은 만들어주고 데려가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무영의 그런 모습이 류심환의 마음에 아련하게 전해졌다.

 

 

‘마음을 굳혔구나, 본격적인 무공수련에 들 것을.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과거를 털어냈어. 역시, 검강천의 아들다워. 그래, 이 순간부터 뒤돌아보는 일은 없는 거야.’

“알았어, 만들어줄게. 하지만 검을 들려면 오늘부터 삼혼 할아버지한테 검술의 기초부터 배워야 해. 알았지?”

 

 

류심환은 무영이 자신과의 무공수련을 원하고 있기에 삼혼을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네? 삼혼 할아버지 한 테요?”

 

 

그의 말에 무영의 눈이 커지더니 잠시 그 상태를 유지했다. 그의 초롱한 눈은 왜 아저씨가 아니고 삼혼이냐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육포 하나 씹어 삼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영의 눈에서 의문이 사라졌고 다시 그의 표정도 밝아졌다. 류심환이 말한 것이면 그것이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는 뜻, 어렸지만 무영은 그것을 이해했고, 무조건 따랐다. 지금까지 자신의 의문이 얼마나 쓸모없었는지 체득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삼혼 할아버지와 수련을 할게요. 근데 처음은 누구세요?”

 

 

무영이 다시 초롱해진 눈망울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자신도 삼혼과의 첫 무공수련 날 그들에게 똑같이 물었기 때문이다.

 

 

‘허허, 이것까지 나를 닮았다니!’

“불혼 할아버지. 그는 무림 역사 상 불공에서는 소림도 능가하는 고수야. 지금 당장 강호에 출도해도 아마 불혼 할아버지를 이길 자는 없을 걸. 불혼 할아버지 엄청 강한 분이야.”

 

 

그는 무영에게 불혼의 능력을 말해줬고 그것을 통해 무영의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을 아쉬움을 털어내고자 했다. 무공 수련의 근본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상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이것이 없으면 가르치는 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배우는 자는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

 

 

“와! 그렇게 세요. 불혼 할아버지 다시 봐야겠다. 와!! 많이 늙은 줄만 알았는네, 그게 아니었네? 불혼 할아버지, 너무 멋있어!”

 

 

무영의 믿음이 류심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헌데, 그 받는 방법이 한 사람을 뻘쭘하게 했다. 많이 과장하는 무영의 말에 류심환 뒤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불혼이 허탈하게 웃었다.

 

 

“팔십을 바라보지만 그래도 아직은 팔팔해. 왜? 아닌 것 같아? 어, 그러면.. 그래! 무영아 이 팔뚝의 근육 좀 볼래?"

 

 

그가 도포를 걷어 올려 주먹을 불끈 쥔 채 팔을 구부려 알통을 만든 행동을 했다. 큼지막한 알통과 툭 튀어나온 핏줄이 30대를 방불케 했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저 팔 떨리는 것 좀 봐! 애쓴다, 애써. 알통은 개뿔, 살이 오래 돼 뭉친 거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이 영감탱이, 사형이라고 하나 있s는 것이, 원…”

 

 

도혼이 무영에게 잘 보이려는 불혼에게 면박을 줬다. 불혼을 놀려먹는 것은 그의 유일한 낙이었고, 그런 도혼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불혼의 넉넉함이었다.

 

 

“너… 이놈, 도혼아! 너라고 안 늙은 줄 아냐. 너도 칠십이야! 늙어 보이기는 니가 더 해!”

 

 

불혼이 도혼의 농에 씩씩거리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평상시면 이 정도 농은 그냥 웃고 넘기는데 오늘은 유독 강하게 맞받아쳤다.

 

 

“헐, 그럼 두 분 할아버지 엄청 늙은 거네. 아, 재미없겠다. 한숨 쉬는 거나 가르쳐주실 모양이네? 아, 이를 어쩌나?"

 

 

무영이 그들의 너스레에 더한 농으로 응답했다. 불혼과 도혼이 멀뚱해졌다. 둘 다 엄청 늙었다는 무영의 말에 그들은 더 멀뚱해져 무영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한 숨이나 배울 뿐이라고 말한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심법부터 배워야 한단다. 쉼 쉬는 것, 한숨까지도 배워야 하지."

 

 

류심환이 무명 대신 무영이 한 말의 의미를 그들에게 설명해 줬고 불혼과 도혼은 그제야 무영이 했던 말의 의미를 파악했다. 그들의 얼굴에 경탄과 낭패감이 교차했다.

 

 

“쩝! 나 바보 됐네.”

 

 

도혼이 불혼을 보며 입을 다셨다. 그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으이그. 여기 바보 하나 더 있어.’

 

 

도혼은 넉살 좋게 웃고 있는 불혼을 보면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무영에게 허를 찔려 순식간에 바보가 됐지만 그래도 좋았다. 게다가 무영이 웃었다.

 

 

"하하, 시작해요. 할아버지."

 

 

무영이 마음을 열어 삼혼을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그들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간격도 사라졌다. 거의 70년에 이르는 세월과 경험의 차이를 넘어 믿음에 근거한 관계가 시작됐다.

 

 

“무영아, 네가 최고가 되는 날까지 우리가 지켜주마.”

 

 

불혼과 도혼, 그리고 속혼이 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어린 주군에게 그랬던 것처럼.

 

-----

 

무영과 삼혼이 방을 나선 후 류심환이 창문 밖 천공을 올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이승까지 오는 길이 멀기만 했을 텐데 그 마음의 짐은 여기다 두고 가십시오. 무영을 고금제일인으로 키워낼 테니, 대신에 저의 말이나 선친들에게 전해주십시오.”

 

 

그의 시선이 천공의 한 언저리, 무한정의 공간에 홀로 떠있는 조각난 구름을 쳐다봤다. 못난 아들이 죽어 저승에 이를 때까지 검강천의 영혼에 노잣돈을 보내드리니, 부디 그곳에서 몇 평의 땅이라도 얻어 편안히 지내십시오. 살아서는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했지만 그곳에 가면 제가 두 분의 머슴이 되어 일각도 쉬지 않고 행복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날까지 맘 편히 계시고 이 분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못난 아들의 이승 일과 저 아이에게 이어진 운명의 무게를 서로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날에 두 분을 볼 때 더 이상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를 천 년 같이 보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저와 아이를.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이제는 신화라는 강요된 고독에서 자유로워진 검강천, 당신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장 - 확월곡의 정상에서  (0) 2014.07.19
제10장 - 무영의 마지막 눈물  (0) 2014.07.19
제9장 ㅡ 무영의 첫 걸음  (0) 2014.07.19
제8장 ㅡ 아저씨 나 괜찮아  (0) 2014.07.19
제7장 - 역천  (0) 2014.07.19
제6장 - 탈출3  (0) 2014.07.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