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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10장 - 무영의 마지막 눈물



무영이 타고난 선천지체는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하고 뛰어난 천혜의 신체지만, 그 혜택만큼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선천지제를 타고나면 열 살 경에 삶의 최대 고비가 온다. 신체에 부여된 능력을 그때까지 다스릴 수 있는 치료를 받거나 무공을 익혀 제거하지 못하면, 신체 본연의 힘이 단전을 파괴한다. 그럴 경우 기혈이 혈맥을 타고 올라 혈도를 폐쇄시켜 사지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일종의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이고 스스로 작동하는 그 힘이 뇌에 이르면 기능이 마비돼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전설의 편작이나 화타 같은 의선(醫仙)도 손을 쓸 수 없다. 이것이 선천지체의 치명적 단점으로, 이런 신체를 갖고 태어난 사람의 수가 극히 적지만, 주어진 축복만큼 그 한계를 넘어선 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선천지체는 천형(天刑)이라고도 했다.

 

 

무영이라고 해서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류심환이 그를 처음 치료했을 때 그의 단전에 천상무극진기의 기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선천지체 본연의 힘을 다스리기 위한 검강천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는 무영의 나이 세살 때부터 벌모세수와 추궁과혈을 시행해 어린 무영의 단전에 기정을 담아둘 수 있었다. 무영이 너무 어려서 이를 다 소화할 수 없었지만, 이 내기의 도움으로 무영은 선천지체 본연의 힘을 막아내면서 신체가 부여한 천부의 재능을 하나씩 실현할 수 있었다.

 

 

선천지체인 그의 재능은 문무를 넘나들었다. 무영은 다섯 살 때 이미 사서오경뿐만 아니라 춘추백가의 주요 서적들을 독파했다. 더 나아가 깊은 지식이 뒤받침 돼야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서적도 쉽게 독파했다. 이를 통해 무영은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보는 눈이 어른과 다를 것이 없었고, 상당 부분 사람의 내면을 읽고 그를 다독일 수 있는 미래의 지혜를 넓혀 갈 수 있었다.

 

 

이는 늘 강호출도에 대한 욕망에 힘들어 하는 천년 은둔의 천상천궁인들을 도닥거리고 다스리며 무림 전체를 대응해 가야 하는 천상천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이점에서 무영은 역대 천주들 중 최고였고, 놀라울 정도의 속도를 보여주었다. 어린 무영은 그렇게 내궁의 식솔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미래의 천주로서 그들로부터 마음까지 얻고 있었다. 무영은 천상천 역대 최고의 천재라는 아버지 검강천의 어린 시절을 앞선 성취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영이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자 검강천은 그의 나이 여섯 살 때 무공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우선 천상천의 비전명약인 천양천단을 먹여 자신이 넣어 준 천상무극진기와 조화를 이루게 했고 무영이 천상무극진기를 익혀감에 따라 그 효능이 한 단계씩 풀어져 그의 내력으로 자리 잡도록 조치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벌모세수를 시켜주었고 그의 수련이 10개월에 이르러 진기 운용의 묘리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자 추궁과혈을 거쳐 임독양맥까지 타통시켜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무영의 내력은 운기를 실시할 단계에 이를 만큼 충만해졌고, 일곱 살에 이르자 천상무극진기의 심결을 익힐 단계에 이르렀다. 그때 역천이 일어났다. 무영의 단전에 자리한 내력의 일주천에 성공한 후 천상무극진기를 익히기 시작한 지 정확히 삼 일 후였다.

 

 

그렇게 운명의 날은 그에게 닥쳤고 무영은 그날 일어난 일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자신과 아버지가 어떻게 천상무극독에 중독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누가 했는지는 분명히 기억했다. 아버지의 어깨를 관통한 검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역천의 주역이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천상무극독에 중독된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천상천을 빠져나올 때 무영은 울지 않았다. 이유도 묻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어 미칠 듯이 가슴이 뛰었지만 그냥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하나의 기억만 떠오르지 않기를 기원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곱 살 나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무영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뿐이었다. 지금 그가 기억하는 것도 거기까지다.

 

 

그런 무영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류심환에게 처음 묻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생사였다. 자신은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수면상태로 들어섰고, 깨어서도 기억할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한 후에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꿈속에서조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무영은 깨어나는 순간에 아버지의 생사를 물으려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됐다. 무영은 그것만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무슨 일이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헌데 깨어나 다시 아저씨를 보니 꿈속에서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령움의 마음이 커 꿈에서조차 아버지가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이 생각났다. 결국 무영은 물어볼 수 없었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아저씨의 답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무영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차라리 묻지 않음으로써 아버지의 생존에 대해 최소한의 가능성만은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존재할 수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면서 흘릴 수 없는 숱한 눈물을 가슴에 담아둔 채 그가 처음 꺼낸 말이 ‘무공 수련을 하고 싶어요’ 였다. 어쩌면 선천지체의 잔인함은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되는 세상의 이치에 그 나이 또래의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고금제일인이 될 거야.’

 

 

무영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휘돌아 뇌리에 박히고 뼈에 새겨서 죽어서도 이뤄야 하는 목표, 고금제일인이 돼 천상천으로 돌아가는 그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최대한 빨리 고금제일인 될 거야!’

 

-----

 

“할아버지, 심법이 뭐야?”

 

 

그가 마침내 불혼에게 물었다.

 

 

 

“심법은 모든 무공의 기초란다. 기초이면서도 대성하면 그 자체가 절대무공이 될 수도 있어. 상대의 마음에 말이 떠오르게 하는 소림의 혜광심어도 그 중 하나란다.”

 

 

“정말? 심법도 절대 무공이 돼?”

 

 

무영의 눈빛이 유난히 밝아졌다. 심법의 중요성은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 심법은 혜광심어 말고도 많이 있어.”

“그래? 나도 조금 배웠는데.”

‘..아버지 한테.’

 

 

무영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천상천에서의 짧은 무공수련 기간을 떠올렸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 같았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면서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오, 그러니. 그럼 네가 배운 심법이 어디까지야?”

 

 

불혼이 생각에 잠긴 무영을 보며 인자하게 물었다.

 

 

“음.. 내력을 쌓아 일주천하는 거, 거기까지.”

“뭐라고? 일주천을 했다고?”

“응, 일주천을 했어.”

“허허, 일주천을 했단 말이지?”

“정말이야!”

“그래, 그래.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주천 다음에? 어, 어.. 그건..”

 

 

무영이 당황해서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불혼이 보기에 무영은 일주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어린 나이에 내력의 일주천을 했지만, 그 다음까지는 주군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니 무영이라고 다를 것이 없을 터였다.

 

 

“다음은 일주천한 내력을…”

 

 

불혼이 일주천 다음에 해야 할 것을 설명하려 하자, 무영이 그의 말을 잘랐다.  

 

 

“밖으로 내보내면 되지! 할아버지 바보야?”

 

 

무영의 눈빛이 초롱초롱 하게 빛났다. 그는 불혼의 답을 알고 있었다.   

 

 

‘허허… 내가 정말 바보가 됐어. 무영은 아무리 어려도 선천지체의 소유자이며, 천상천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깜빡했어.’

 

 

불혼이 무영에게 기분 좋은 한 방을 또 먹었다. 비록 아이에게 보기 좋게 당했지만, 그것은 즐거움이 가득할 날들에 대한 예감이기도 했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해볼까.’

“그럼 너는 몸 밖으로 내력을 어떻게 내보낼 생각이야?”

 

 

불혼이 무영에게 다시 물었다. 생각의 연상작용을 통해 심법의 기초를 확실하게 다지기 위해서였다. 심법이 받쳐주지 않는 무공이란 있을 수 없다.    

 

 

“응, 그것은? 어, 어.. 그래 맞다. 주먹이나 발을 통해 내보면 되지 않을까?”

 

 

잠시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그의 답은 순식간에 나왔고 정확했다. 무영의 눈망울이 다시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허허. 그 짧은 순간에! 생각보다 더 뛰어난 아이일 수도 있겠어. 좋아, 그러면 한 발 더 나가볼까?’

“주먹과 발로 어떻게? 내력은 몸 안에만 있는 것인데?”

 

 

불혼이 감탄을 담아 둔 채 무영에게 발기의 기본을 물었다. 그는 이번에도 무영이 짧은 시간 안에 유추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무공이라는 것이 죽도록 노력하면 일정 선까지는 발전한다. 하지만 그 다음의 수준인 절정고수가 되려면 창조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고수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절정고수의 차이는 무공의 종류나 수련의 정도가 아닌,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무공에 접목시키는 창의적인 발상에 있다.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다.

 

 

“어, 그건.. 그건..”

 

 

이번에는 무영이 이마를 찡그리며 입을 모았고 앙증맞은 손으로 턱을 괸 상태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운기에서 발기까지 상상만으로 유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슬며시 무영이 웃었다.

 

 

“할아버지가 가르치려는 심법을 익히면 되지.”

 

 

그의 눈빛은 이미 혜성처럼 빛났다. 불혼이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니 무영은 무엇을 하나 넘을 때마다 그랬던 것 같았다. 주군도 비슷한 버릇이 있었는데 무영도 그런 버릇이 있었다.

 

 

‘정말로 주군과 닮은 점이 많아. 대체 이 아이란..’

“허허, 이놈 봐라. 그래, 그래, 그것이지. 허허허!”

 

 

불혼은 다시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내는 그의 영특함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불혼은 자신이 심법을 가르치는 이 아이가 주군에 필적하는 절대고수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가능성이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위대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왜소하기도 하다. 가능성의 시작에는 희망이 있지만 가능성의 끝에는 절망이 있다. 인간은 언제나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다.     

 

 

“그래, 네 말처럼 심법을 익히면 돼.”

 

 

무영의 무한한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불혼은 가슴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천상무극진기요결』, 책자의 겉장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무영이 불혼이 건네준 서책을 천천히 들었다. 그의 시선에 황금빛을 인쇄된 ‘천상무극진기요결’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들어왔다.

 

 

‘그래, 이거야! 이거였어!’

 

 

무영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이내 깊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다스리려 해도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호흡도 거칠어졌다. 참을 수 없는 물기가 저절로 차올라 두 눈에 맺혔다. 그 단어로 하여 무영이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아버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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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아, 이것이 천상천의 근본이란다.”

 

 

어느 햇살 맑은 날, 검강천이 무영에게 다가와 책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청명함은 그저 높다 하기에는 너무 깊었고 푸르다 하기에는 오히려 투명해 그 끝도 보일 듯했다. 담장 밑에 핀 꽃들이 햇살에 부딪치며 눈부시게 피어났고, 그저 예쁘다 하기에는 너무나 향기가 진했다. 그날 약한 바람에 연을 날리려 애를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서책 겉장의 황금빛 글자가 눈부시게 빛났다.

 

 

“이거 뭐야?”

“천상천의 시작이란다.”

“천상천의 시작?”

“네 미래이기도 하지.”

 

 

무영이 연을 놓고 서책을 들었다.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고 검강천은 그를 보고 가득 웃었다. 무영은 ‘천상무극전기요결’의 첫 장을 펼쳤다. 자신의 미래라 하는 것의 첫 장을 열었다.

 

 

‘무릇 우주 간에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니 이를 순(順)이라 한다. 나머지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것이니 이을 역(易)이라 한다. 둘은 서로 마주하는 곳에서 생성되어 각각의 성향이 시작된 곳으로 역으로 흘러간다. 이로써 하나 된 성향은 조화를 이루어 생명을 만들고 질서를 이루니, 이를 삼라만상의 본질인 천(天)이라 한다. 생은 우주 간의 두 가지 기운, 빛과 어둠에 의해 흐르고 솟고 꺼지고 갈라지니, 이를 삼라만상이 터전을 이룬 지(地)라고 한다. 그 사이에 두 성향과 기운이 충만하여 음과 양이 생성되니, 이를 영겁회귀의 원(原)이라 한다. 이 원이 나뉘고 분화되어 삼라만상이 자리를 하니, 이를 각각의 성질로 발화하는 생(生)이라 한다. 이렇게 순으로부터 시작하여 생에 이르는 과정을 개벽(開闢)이라 하니, 그 개벽이 무수한 변화와 순한의 끝에 이르면 비로서 무극(無極)이 열린다. 천상무극진기가 이와 같음이니, 모든 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무영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을 발했고 미소도 함께 지었다. 옆에서 연을 날리던 한살 어린 예준도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이 밝기란 무영보다 더 했고 그렇게 웃으니 그 아리따움이 여섯 살 아이라 하기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무영의 한 손은 연을 잡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은 예준의 손을 잡고 있었다.

 

 

허나, 무영은 검강천이 조심스럽게 한숨을 쉬는 것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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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은 고인 눈물을 옷깃으로 닦았다. 책의 내용은 그날과 같은데 자신의 처지는 그날과 달랐다. 그날 그쯤의 시간에 멈춰 있는 듯, 햇살은 여전히 빛났고 계곡에 널려 있는 꽃들은 다투어 자신을 뽐내는데 지금 자신의 손에는 연이 없었고 예준도 없었다. 황금빛 글자는 여전히 빛났지만, 심법의 원리를 들려주는 사람은 달랐다.

 

 

‘아버지, 이제 시작해요. 지켜봐 주세요. 흑흑.’

 

 

무영이 마음속으로 끝내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무영의 마음속으로 흘렀던 눈물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천상천을 다시 찾을 때까지 그가 흘릴 마지막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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