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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16장ㅡ무영의 위기2

 

 

“어이, 뭘 그리 속닥거려? 다시 시작해야지.”

 

 

도혼이 삼재를 향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그들은 서로 전음을 주고받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영을 탈출시킬 때 그가 물리쳤던 오천협룡과의 대결도 생각났다. 

 

 

'저자가 전음을... 상관없어. 무조건 이겨야 다음이 있으니까.'

 

“……”

 

 

천은 도혼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그는 도혼이 뭐라 하던 상관하지 않았다. 도혼은 그런 천을 보며 정말 수련이 잘 된 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대단한 놈… 하지만  거기까지야.’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법.”

 

 

말과 함께 도혼이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주군이 준 기회, 두 번의 실수란 있을 수 없다. 길게 끌거나 꼼수를 부릴 일도 아니다. 전력을 다해 상처난 자존심을 회복하고, 새롭게 깨달은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면 된다. 도혼은 떠오른 상태에서 복마도장을 한 번 흔들었다.

 

 

“좀 전의 것이 이거였어. 초식이란 놈도 자존심이 있어서 껍데기 세 개라도 베야겠다나.. 뭐, 그런 이유로 해서.”

 

 

 

지-잉!

 

 

그렇게 도혼이 초식의 운결을 떠올리니 복마도장에서 공명이 일었다. 공명이 파문을 일으켜 메아리로 퍼져나가려 하는데 도혼이 사라졌다. 그가 있던 곳에는 복마도장만 떠있었다. 그와 함께 공명마저 사라졌다.

 

 

'이기어검!'

 

 

공명이 사라진 곳에서 검법의 정수가 펼쳐졌다.

 

 

 

“…”

 

 

여전히 천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검법의 최고의 경지가 펼쳐졌다 해도 그에게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지라고 해서 천과 다를 이유는 없었다. 인도 그러했는데 그의 입에서 단어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가 말한 것은 분명했는데 소리가 들리는 곳에 원래부터 맴돌고 있던 말 같았다. 사람이 말을 뱉었음에도 무심하기가 이보다 더 할 수 없었다.

 

 

 

“이기어검류…”

 

 

그의 말이 허공 중에 홀로 맴돌다 저절로 사라졌다. 거기에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절정의 고수라도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이기어검류가 펼쳐졌음에도.

 

 

 

'지랄 맞기는…'

 

 

도혼의 검미가 좁혀졌다. 이번에는 공중에 떠있던 그의 복마도장도 공명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하나의 기운만이 떠있었다. 그 기운은 복마도장을 닮은 듯도 했고 한 자루의 도를 보는 듯도 했다. 원래부터 그곳에는 도혼도 없었고 복마도장도 없었던 듯했다.

 

 

 

“……”

 

 

검법의 최고의 정수가 펼쳐졌음에도 천의 눈빛에는 어떤 변화도 일지 않았다. 그의 무념의 상태는 도혼도 진저리 칠 만큼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을 비롯해 지와 인의 마음 속으론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두려움이 휘몰아쳤다. 이런 이기어검류는 보기도 처음이지만,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언제나 공포의 근원이다.  

 

 

 

‘어떻게 저런 경지를.. 전에 싸웠던 상대보다 한 수 위야. 승리하려면.. 파천이기어검류에 뭐라도 더해야 해.’

 

 

천은 이런 생각을 했고, 지와 인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최강의 합공을 선택했지만, 도혼 다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또 다른 자가 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몰랐다. 



번쩍! 

 

도처럼 떠 있는 기운 속에서 빛이 일었다. 천의 무심은 도혼이라고 해도 두려울 정도의 평정심이었다. 빛은 그런 도혼의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먹혔을까…

 

 

 

'이기어천류가 아니라 심검(心劍)인가?'

 

 

처음으로 지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그의 심연 같은 무상의 눈빛 속에 작은 떨림이 일었다. 그도 심검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무념 속으로 작은 파문이 일으켰고 눈빛의 작은 떨림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생겼을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심검이라면, 더할 것은 이거야!’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눈빛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지의 반응을 보면서 도혼은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고 지체없이 실행에 옮겼다. 그 순간 복마도장이기 보다는 도에 가까워 보이는 기운이 바람에 흔들려 출렁거렸다. 이는 도혼이 한 것이 아니라 심검의 기운이 그냥 바람에 흔들린 것 같았다. 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인은 달랐다.

 

 

 

“심검, 그 이상이야.”

 

 

인의 평정심이 무념의 상태에서 살짝 흔들렸다. 그 말로써 비로소 그가 거기에 존재하는 실체 같았다. 삼재의 최대 강점, 그 한 귀퉁이가 무너지려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기운 뒤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이 떠올랐다. 심검처럼 보이게 이기어검류에서 빛을 발산시킨 것이 먹혀들었다. 저들은 합공을 취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작은 균열이라도 일으키면 최상일 터였다.   

 

 

 

‘지금!’

 

 

지에 의해서 인으로 이어진 반응을 지켜보던 도혼이 마치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위장하던 기운을 그대로 격발시켰다. 도강이 삼재를 향해 해일처럼 일었다. 그와 동시에, 아니, 그 바로 직전에 천이 전음으로 인에게 소리쳤다.

 

 

 

[갈! 눈속임이다.]

 

 

천이 인에게 전음을 보내는 동시에 그대로 날아올랐다. 허나 그는 인에게 정신 차리라고 갈을 외치기 직전에 한가지 전음을 먼저 보냈다. 그는 거의 동시에 두 종류의 전음을 시전했다. 하나는 지에게로 갔다.

 

 

[가!]

 

 

천의 명령에 지가 날아올랐고, 그에게 간 천의 전음은 천상천 비전 음공인 천상밀음공이었다. 지의 비상은 천이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뤄졌다. 뒤를 이어 인이 날아올랐고, 그에게 시전된 천의 전음은 상대의 마음 속에서만 들리는 전음밀입어(傳音謐入語)였다.

 

 

[이검발 일도참!]

 

 

 

천의 전음이 두 명의 사제에게 전해졌을 때 도혼의 도강이 삼재에게 빗살처럼 날아들었다. 도가 펼친 파천이기어검류의 도강이란 그 빠르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도혼은 삼재와의 대결을 오래끌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상처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합공이 최고의 위력을 띠기 전에 대결을 끝내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징! 징! 징!

 

 

도혼이 펼친 도강을 드러난 그대로 보면 하나였는데, 삼재가 느끼기에는 여섯 개였다. 헌데 류심환의 눈에는 아홉 개가 들어왔다. 

 

 

"합!"

 

 

천과 지의 검에서 두 개의 검강이 격발됐다. 같은 순간 인의 도에서 한 개의 도강이 폭사됐다. 먼저 펼친 두 개의 검강은 격발되자 마자 폭발해 사방으로 퍼지더니 천지 간에 천라지망을 펼쳤다. 그것은 도혼의 시선 전체를 덮어버렸고 그런 중에 두 개씩 두 번의 격발이 다시 이뤄졌다. 

 

 

팟팟!

 

 

앞의 두 개는 도혼의 도강 세 개와 충돌했고 뒤의 두 개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도혼의 나머지 세 개의 도강과 부딪쳤다.

 

 

 

콰앙! 쾅!

 

 

천지를 가를 듯한 두 번의 충돌이 일었다. 그 여파로 화월곡 입구가 통째로 흔들렸고 충돌이 일어난 주변 십 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멀리 떨어져 대결을 지켜보던 류심환의 장삼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충돌이었다.

 

 

 

콰광! 쾅! 쾅!

 

 

여진이 계속됐고 엄청난 회오리가 일었다. 그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세 가지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컥!”

 

 

천과 지의 입에서 어쩔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기혈이 크게 흔들렸고 그들의 몸이 바위에 부딪친 돌처럼 튕겨나갔다. 그 뒤로 선혈이 유성처럼 폭발해 허공 중에 붉게 퍼졌다.

 

 

“헉!”

 

 

도혼의 입에서도 삼재와 비슷한 신음이 터졌다. 그 역시 충돌의 반탄력에 몸이 활처럼 휘더니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려나기 시작한 지점으로부터 선혈이 점점이 이어졌다. 이제 인의 차례였다. 그의 도강이 도혼의 몸을 관통하면 됐다.

찰나 지간보다 더 짧은 시차를 두고 격발됐던 그의 도강이 도혼의 생을 거두면 됐다. 천과 지의 생각은 그랬다. 인이라고 그들과 다를 것은 없었다. 그의 판단도 도혼의 죽음에 패를 걸었고 그만큼 자신의 초식은 천과 지의 합공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검발 일도참(二劍發 一刀斬)!

 

 

두 개의 검이 먼저 발사되고 뒤를 이은 하나의 도가 상대를 참한다. 그들에 의해 펼쳐지고 나니 초식의 이름 그대로였다.

그들이 무수히 연습해 이제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것. 삼재의 생각은 그랬다. 이것으로 도혼의 삶은 더 이상 이승의 것이 아니었다. 

 

 

'크윽.. 피해가 심하지만..'

'우리가 이겼어!'

 

 

천지인 삼재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다음 공격도 펼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류심환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그의 눈에는 아직 도혼의 도강 세 개가 남아 있었다.

 

 

 

“도혼의 승.”

 

 

류심환이 돌아서려 했다. 이것으로 도혼의 자존심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삼재의 눈에도 비로소 세 개의 도강이 보였다. 그 차이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 짧았지만 억겁보다 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핫!""얍!"

 

천지인 삼재가 젖 먹던 힘까지 더해 몸을 흔들었다. 어떻게든 반 보라도 움직여야 했다, 죽지 않으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공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도혼이란 놈이 격발한 도기란 6개가 분명했거늘. 천지인 삼재는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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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인 것은 확실했다. 불혼은 화월곡의 동쪽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침입자의 수는 분명해졌다. 그때 화월곡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도혼인가?”

 

 

불혼이 북쪽 입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쪽에 더는 신경을 쓸 수 시간이 없었다. 화월곡 안으로 침입한 자들의 수는 분명해졌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그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댜.

 

 

 

‘주군도 그곳으로 간 것 같고. 걱정할 일이 아니야.’

 

 

불혼은 이것으로 그쪽 사정에 대해서는 궁금중을 닫았다. 주군이 그곳으로 갔으면 그것으로 상황 종료다. 그렇다면 그곳보다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이곳이 문제였다. 불혼은 침입자가 그가 죽인 검강윤에 결코 뒤지지 않은 고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각각이 그렇게 느껴졌다. 자신의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침입자의 흔적을 쫓았는데, 침입자의 움직임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건..'

 

 

불혼은 그들 움직임의 은밀함이 마치 공기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말고도 침입한 자가 있는 모양이네?]

[상관 있겠습니까?]

[하긴… 검무영만 잡으면 되지.]

[오늘로 끝내죠. 천상천의 적통을 찾아다니는 것을.]

 

 

 

희미한 달빛 아래 어둠보다 더 어둠 같은 두 개의 인형이 가옥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은 달빛에 몸을 숨긴 채 가옥과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곳에서 공기의 흐름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달빛과 함께 화월곡 내의 바람에도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아도 그들은 삼재의 은형술과 경공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주변의 것들을 활용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그들보다 앞선다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런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그들의 신중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헌데… 불혼의 방향이 그들과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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