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極)이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추구한다. 그것이 힘(力)이던, 생각(念)이던, 성향(氣)이던, 마음(心)이던 그것들이 이르고자 하는 지향점은 같다. 결국 끝(極)에 이르고자 하지. 주어진 것에서 최후의 지향점에 이르는 것, 그것이 극이다.”
무영이 가부좌를 틀고 태극일심제천요결에 따라 제천태극진기(制天太極眞氣)의 원리를 떠올렸다. 현재 무영의 단전 일부에는 회복된 그의 새 내력이 주화입마를 치료 하는 과정에서 그의 혈도와 기경팔맥에 저장시켜 놓은 불혼의 불력(佛力)을 흡수해 안전한 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그 불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 제천태극진기였고, 무영은 지금 그 진기를 운용하려는 것이다.
“그 극은 움직여 양(陽)을 생성하고 양이 차면 음(陰)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삼라만상이 이루어진다. 극에 이른 것이다. 허면 태극이란 무엇인가? 끝에 이른 힘이나 생각, 성향 등이 물(物)의 개념을 넘어 같음(如)이 되는 것, 이것이 태극이다. 이에 이르면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꿰뚫어 비로소 생과 사에서 자유로진다. 여기에 이르면 네 자신도 태극에 이른다. 알겠느냐?”
불혼이 점점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무영을 보며 한 마디 한 마디 혼신을 다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여, 제천태극진기를 단전에서 끌어올려 대주천을 시키되, 먼저 그 진기를 제 본연의 힘과 생각, 기운과 마음으로 다스려 극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내 몸안의 모든 현상을 주관하여 관(觀)에 이르면 그것이 태극이겠죠. 이에 제천태극진기는 비로소 내 내력과 합처져 하나가 되고, 단전에 안착해 그 공간의 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제 말이 맞습니까, 불혼 할아버지?”
눈을 뜨고 있지 않아도 한껏 고무된 무영의 눈빛을 불혼은 보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불혼에게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맞다, 무영아. 그대로 진행해라. 네가 깨달은 그것이 태극일심제천요결이며, 천 년의 무림에서 유일하게 천상무극진기와 견줄 수 있는 무상지기(無想之氣)라 할 수 있단다.”
불혼의 가르침이 점점 요결의 상승원리에 가까워지는 순간 무영의 몸에서 예상 못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무리한 내공을 운용하려다 식물인간 상태로 빠져드는 주화입마와는 달랐다. 무영에게서 일어난 특이한 현상은 태극일심제천요결에 대한 무영의 이해가 천지개벽의 순간처럼, 그의 뇌에서 푸른 빛으로 솟아 맹렬하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머리를 강한 둔기로 맞은 듯한 통증과 함께 온몸을 전율처럼 관통하는 기의 폭발이 극대한으로 펼쳐지던 현상들이 안정을 찾은 순간, 무영은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가 마치 투명한 물속같이 보였다. 그에게 갑자기 일어난 현상은 제천태극진기가 태극일심제천요결의 지향점인 태극에 이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무영이 태극일심제천요결의 상승원리에 다가가고 있었다.
“자연의 이치 또한 내 안에 있음이다. 모든 기운이 그에 따라 흐르니, 어느 것이 소주천이고 어느 것이 대주천인가. 무릇 내 마음과 몸, 정령의 기운이 다 극에 이르니 내가 우주요 우주가 나다. 이로써 태극은 내 안에 있고, 태극이 바로 나다.”
무영의 몸이 가부좌를 뜬 상태 그대로 떠올랐다. 그의 몸에서 청적흑백황의 기운이 정수리로 솟구치더니(五氣朝元) 곧 이어 삼 색을 가진 꽃이 정수리에 피어 났다(三華聚頂). 그는 순식 간에 무공의 경지 두 단계를 뛰어넘었다. 수십 년간의 수련과 깨달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지금 무영을 통해 일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불혼과 도혼의 놀람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영에게서 일어난 반응들로 볼 때 삼화취정의 단계가 바로 전이었는데, 무영이 대주천을 한 번 더하자 이번에는 붉은 뱀이 나타나 그의 머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영이 몸에서 나온 기운이 그런 형상을 띠었다.
적사투관(赤蛇透關)의 현상!!
무영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기적 같은 장면들을 연출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미증유의 깨달음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내공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무영의 단전으로 우주의 기운이 밀물듯이 밀려들어와 단단히 자리했다. 그 충만감이란 하늘을 날아올라 천하를 내려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무영은 이런 이런 무공 발전 단계의 축약을 통해, 순식간에 공력 면에서는 절정고수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불혼과 도혼의 놀람은 이제 경악으로 바뀌고, 가슴 가득한 기쁨과 같은 무인으로서의 부러움이나 두려움 같은 갖가지 생각들이 요동치게 만들었다. 무영의 변화는 류심환의 어린 시절을 뛰어넘는 그런 것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죽음으로 남겨준 내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무영은 단 한 번만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천상지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불혼과 도혼은 무영의 변화에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순간 무영의 입에서 경쾌한 외침이 터졌다.
“야합!”
동시에 그의 몸에서 금색 연꽃이 피어 올라 하늘로 솟아 올랐다. 바로 그가 천화난추(天花亂墜)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그의 몸에서 솟은 금색 연꽃은 하얗다 못해 파란 천공을 향해 끝없이 솟아 올랐다. 그것을 지켜보던 두 사람의 경악은 아예 판단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그저 바라 볼 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려 네 단계였다. 그들의 입에서는 오직, ‘무려 네 단계였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나왔다. 무영은 단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일월합벽(日月合闢)에서 천화난추까지 네 단계를 차례로 정복했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다. 선천지체인 무영이 화월곡의 수련과정에서 깨달은 자연 섭리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라 변화하는 인체와의 연관성까지 깨달음으로써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이뤄냈다.
깨달음은 어느 순간에 찾아와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이렇게 무공의 상식을 넘어선 무영의 입에서 나온 투명한 음성에 담겨 있는 내용이란.. 꿈에서도 달성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태극에 이르면 생각이 곧 행(行)이요, 행이 곧 이룸(得)이다. 반박귀진(返撲歸眞)도 등봉조극(登峯造極)도 다 이 안에 있으니, 내 의지가 곧 태극에 닿았음이다.”
한 번 깨달음을 얻으니 그 경계의 선이 무너졌다. 화경(化境) 또한 태극에 맞닿아 있을지니 무영의 깨달음이 그 경지에 이름도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이로써 그가 무엇을 하든 막힘이 없어졌고(順) 무영이 어떤 초식이던 그저 보기만 해도 그 안의 흐름과 변화를 파악해 그에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순간에 경계의 끝을 넘어선 무영이 온몸의 모공을 열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현상을 흡수해 버리더니 마침내 눈을 떴다.
순간 엄청난 안광이 폭사됐으나, 이내 맑고 투명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변해 무영의 눈동자에 자리했다. 그는 공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경지의 초입에 들어섰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도혼 할아버지, 초식이란 또 무엇입니까? 태극에 이르면 제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초식이지요. 그것이 베고, 긋고, 찌르고, 자르는 단순한 동작이라 해도 절정의 초식이 될 수 있음이지요. 그럼, 시작할게요. 그것이 무엇이든 제가 능히 할게요.”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그들에게 말한 무영은 그러나 웃지 않았다. 천상천에 복수할 때까지 웃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며, 지금의 깨달음에 어떤 과거의 기억도 스며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맑고 투명하다는 느낌, 그것에 무영은 흠뻑 빠져들었다.
“네가 배울 것은 크게 두 가지야. 먼저 주군의 깨달음을 무공으로 정리한 것이야. 일극무원결(一極武原訣)이 그 하나로, 모든 무공의 기본 원리를 분석해 하나로 정리한 무결(武訣)이지. 검, 도, 장, 지, 풍, 권, 창과 신법 등 무림 천 년간 등장했다 사라진 무공들의 공통점을 하나의 원리로 모은 것이야. 이것으로 너는 어떤 무공이든 보면 이해하고 파헤치는 능력의 첫 단계인 시(視)에 이르게 되며, 이는 다섯 개의 감각 중 하나야.”
류심환이 만든 이 무공은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만지는 다섯 개의 감각을 통해 모든 무공의 원리가 하나임을 밝혀 그 어떤 무공이든 최고로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는 검강천의 비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담긴 무공의 원리로 류심환의 깨달음이, 마치 공자의 이순처럼 무엇을 하던 하늘의 뜻에 거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는 나를 비롯한 삼혼의 무공이야. 일극무원결이 그 시작이라면, 삼혼지문은 그 끝이라 할 수 있어. 비록 고금 제일은 아니나, 훗날 네가 천상지무를 완성하게 되면 삼혼지문의 참 뜻을 알게 될 거야."
도혼이 가볍게 웃으며 무영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턱을 조금 당겨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의 시선과 마주친 무영의 눈망울이 투명하다 못해 시리도록 푸르렀다.
“네, 알겠어요, 도혼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제부터 제가 시작할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무영이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그대로 떠올랐다. 그는 팔짱을 끼면서 잠시 공중에 머물러 자신이 떠오른 높이를 가늠하더니,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마디 말을 툭 뱉었다.
“이 높이만큼 다가간 거야.”
‘천상천에 이르는 길 중에서. 거기에 이르러 아버지의 위대함을 알릴 거며, 그 분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아들의 원한의 깊이도 알게 만들 거야. 그날에 너희는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게 될 거고. 기다려, 내가 찾아갈 때까지.’
"천상천에!"
무영의 마지막 말에 앞서 나간 도혼의 신형이 주춤했다.
“천상천에는 세 가지 비밀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천주만이 알아야 하는 일이라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개는 오천협과 삼재와 관련된 것이다. 이중 오천협과 관련된 비밀도 상관 없으므로 제외하면 다 하나, 삼재와 관련된 비밀이 남는다. 이것이 그것에 관한 기록이다.”
검강인이 천에게 한 권의 서책을 천에게 건넸다. 이곳은 천상천 천주의 비처, 천상천의 비밀과 비전 무공서, 천 년 무림의 극비사항들이 기록된 비록들이 비치된 천상비전실이다. 이것이 천상천의 진정한 힘의 원천이었고, 그것 때문에 천상천은 영원히 음지에서 남아 있어야 했다. 검강인이 건넨 서책을 받아 들고, 천이 겉 장의 제목을 보았다.
『태극비설(太極秘設), 삼재의 근원』
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부터 무엇인가 있음에 틀림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는 자신의 무공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부터 삼재의 무공에 무엇인가 제약이 있음을 짐작하게 됐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는 못해 의식 안에다 묻어 두었다. 그 자체로도 삼재의 무공은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한권의 서책, 『태극비설(太極秘設), 삼재의 근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천상천의 천주는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을 최소 육성 이상 깨우쳐야 오르지. 허나 육성에 이르기도 쉽지 않아 천주가 없는 대(代)도 있었다. 그런 경우가 천 년에 세 번 있었지. 그 중 한 번이 백년 전 육대마인에 의한 소림대첩(小林大捷) 때였고, 다른 하나는 칠백년 전 강호를 혈난에 빠뜨렸다 홀연히 사라진 한천마후의 세외지란(世外之亂) 때였다. 그때 천에는 정식 천주가 없었지. 허나 그 둘의 혈난은 다행스럽게도 천상천 천주의 도움 없이 해결됐어.”
일사천리로 천상천의 숨겨진 비사를 설명하던 검강인이 잠깐 말을 멈춘 뒤, 천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의 눈빛으로 한 동안 그를 잡아먹을 듯 쳐다 보았다.
"마지막 한 번은…"
검강인이 다시 입을 열었고, 천이 서책의 첫 장을 펼쳤다.
칠백 년전 천하를 피로 씻어간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설지연으로 북해빙궁 출신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정확한 출신내력은 발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독문비공인 극빙마혈공(極氷魔血功)은 무적의 위력을 가졌고 그 무위에 수많은 문파가 피로 물들었다. 그 파죽지세에 죽은 자가 일년 동안에만 수 만에 이를 정도였다. 그 상태로 1~2년만 더 흐르면 강호의 무사들이 씨가 마를 판이었다. 허나 당시의 본 천에 천상지무를 육성 이상 익힌 천주가 없어 이 천하 혈난을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다행히 혈난은 육 개월이 더 진행된 뒤 종식됐다. 천하는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본 천은 그녀와 그녀의 무공. 저절로 막을 파주지세의 난에 대해 아무 것도 밝히지 못했다. 이에 본 천은 천주의 부재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천하의 겁난에 대비해 두 가지 방안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태극의 탄생이다. 태극은 천상지무와 한천마결의 장점을 취하여 본 천의 십삼 대에 이르러 만든 무공인 천상빙혈검류(天上氷血劍流)를 익혔으며, 그 성취는 천상지무를 익힌 천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렇게 탄생한 태극이 오백 년전 빙혈천마 사마천에 의해 천하가 다시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태극은 위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자신의 힘으로 혈난을 해결했다. 허나, 태극의 출현과 혈난의 종식까지 소리소문 없이 진행돼, 무림에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로써 본 천은 태극의 위력을 확인했고 천주의 부재 시 그를 대용으로 활용했다. 허나 태극의 위력이 천주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강해서, 본 천은 태극의 무공인 천상빙혈검류를 세 개로 나눠 위력을 반으로 줄인 뒤, 본 천의 최고 인재 세 명을 뽑아 전수하니 이들을 천의 비밀병기 삼재라 하였다. 천상빙혈검류의 운결은 다음과 같으니, 이는 삼재의 무공을 다시 하나로 합쳐 대성하면 태극의 성취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까지 읽은 천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무색무취의 회색빛 안광은 이미 그에게는 없었다. 오직 태극의 성취를 이뤄 지와 인의 복수을 행하는 자신만을 떠올렸다.
“허나, 본 천은 태극으로 돌아간 삼재가 생기면, 무공을 폐하여 지하감옥에 가두어 나오지 못하게 했고, 천하가 피로 물들지 않는 한 태극의 존재는 허락하지 않음을 본 천의 율법으로 정해 놓았지. 오늘, 내가 그것을 깬다. 단, 조건이 있다.”
검강인이 뚫어질 듯 노려보던 천의 눈에서 시선을 거둬, 그의 머리 너머로 옮기며 그에게 물었다.
“어떤 조건이든 상관없습니다.”
천이 고개를 서책에서 조금 들어 시선을 검강인의 허리에 맞추며,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답했다.
“좋다. 검무영과 그 조력자들을 척살하되, 그것이 성공하면 스스로 무공을 폐해야 한다. 이것이 내 조건이다.”
검강인이 다시 시선을 천의 눈에 맞췄다.
“…존명!”
잠시 머뭇거렸던 천이 단호하게 외쳤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시선을 검강인의 허리보다 아래에 두었다.
“무엇으로 보장받지?”
검강인이 추가 질문을 했고.
“저의 심령에 본 천의 비전을 걸어두십시오.”
천의 명료한 답변이 이어졌다.
“좋다. 그것으로 하지.”
검강인이 고개를 끄덕이니, 이것으로 둘 사이의 거래는 이루어졌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천주!”
천이 분명한 소리로 천주라 외쳤다.
“심령을 걸어둘 사람을 보내겠다.”
검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명곡에서 동쪽으로 이백여 장 더 들어오면 오십 장 높이의 폭포가 나오고 그 중간쯤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지하로 오십여 장을 내려가면 천외천 비궁의 입구가 나온다. 류심환이 그 앞에 서있다. 그는 확인할 것이 하나 있어 이곳에 왔다.
“팔 년만이군. 그때처럼, 천외천의 후인으로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대로구나. 변하지 않은 것은 이것뿐이야. 어차피 한가지 사실만 확인하면 되니까..”
재차 결심을 굳힌 류심환이 여의청명검을 꺼내 하나의 검결을 운용했다. 그러자 검에서 한 가닥 기운이 일었다. 그 기운은 투명했으며 무상한 느낌이었고 삼라만상의 기운이 하나로 모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 착각은 실제였는지 아니면 정말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실 같은 검기가 검에서 나와 비궁 입구 중심에 자리한 태극 문양의 정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겨우 실 하나 들어갈 듯한 틈새가 있었고 그가 일으킨 초식의 검기는 정확히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만일 내 판단이 맞다면, 태극 문양의 중심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과 양이 갈라지면서 태극 문양이 안으로 한 치 정도 들어갔고 이어서 오행을 거쳐 팔괘의 순서로 움직이더니 다시 태극 문양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철커덕!
아귀가 맞는 소리가 들리며 입구가 통째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류심환이 자신의 검에서 기운을 회수했고 그대로 돌아서 비궁 입구로부터 멀어져 갔다.
‘역시.. 천년의 전설에는 하나의 비밀과 하나의 거짓이 있음이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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