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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4장 ㅡ 무영의 비상3

 

 

 

비궁 연무장을 내려다 보는 불혼과 도혼은 순간순간이 놀라움이요 감탄의 연속이다. 한 번 연무장에 들어섰다가 나올 때에 이르면, 무영은 태극일심제천요결의 오의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늘어 그에게 쌓이는 제천태극진기의 깊이는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기 일쑤였다. 무영이 무명곡의 인공절벽을 평지 거듯 올라서는 그는 마지막 이백 장을 손으로 잡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달려서 정상까지 올랐다. 거기엔 신법의 원리도 들어 있었지만 거꾸로 달려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다리가 냈고, 무영이 몸을 공기처럼 비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옥 앞, 뒤의 연무장에서 물 흐르듯 각종 기둥과 인공기문들의 온갖 변화에 완벽히 대처하는 것을 보면, 그의 신법과 각종 무공에 대한 이해가 이제 상승원리에 들었음을 말해줬다. 딛고 찍고 날고 하는 신법 및 경공의 동작들과 뻗고 차고 때리는 권, 각, 장, 지 등의 동작들, 뻗고 긋고 위로 찌르고 아래로 자르는 검과 도의 동작들을 자유자재로 하며 무영은 이제 무료한 표정까지 지었다. 이런 무영을 치켜보던 불혼과 도혼이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그의 발전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무영아, 그만 해라. 내일부터 일원무극결 상의 후반부 상승초식을 배우자.”

 

 

불혼이 말했을 때 무영은 막 기둥 사이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가벼움이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 같았다. 불혼과 도혼이 그런 무영의 경공을 보며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불혼 할아버지, 그 상승초식도 다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무영이 입을 오무리고 미간을 찡그린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불혼과 도혼을 쳐다봤다. 무영은 지금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할아버지의 뜻이 있겠거니 하면서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으론 이런 순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허허, 이놈 봐라. 감히 일극무원결이 우습다 이거냐?”

 

 

불혼의 불호령이 그의 즐거운 웃음과 표정 속에서 흘러나왔다. 무영의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지겨움을 참고 묵묵히 수련에 집중했을 터, 그 깊은 속내가 오히려 대견했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저는 실전적 비무를 하고 싶어요. 그런 때도 된 것 같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불혼 할아버지. 미안해요.”

 

 

불혼의 칭찬 같은 꾸중에 무영이 손 사례를 치고 얼굴 표정을 풀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적극적인 구애를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헌데 무영이 불혼의 십 보 거리쯤에 이르렀을까, 순간 불혼이 무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권풍이 발사됐다. 무영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순간 당황했으나,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허리를 뒤로 꺾으며, 왼 다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오른 다리로 뒷땅을 짚었다. 그것은 마치 갈대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비스듬히 누어지는 것 같았다. 그 위로 불혼의 권풍이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어쭈, 이놈 봐라! 좋아, 좀 더 놀래켜 볼까?’

 

 

불혼이 빙긋 웃더니, 손목을 좌우로 몇 번 흔들며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와 함께 무영을 향해 열 보 거리를 한걸음에 좁혔다. 무영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그의 신형이 얼핏 세 개로 보였다. 하나는 원래의 자리에서 풀어지는 연기 같았고, 중간에는 옮겨가는 쪽은 그대로인데 따라가는 쪽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보였으며, 마지막으로 도착한 자리에는 아직 다 도착하지 못한 신형이 불혼의 뒤로 늘어져 보였다. 그의 신법은 무영의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빨랐던 것이고, 그 과정을 지켜본 무영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이크! 이건 또 뭐야?’

“할아버지 뭐 하는 거야?! 무영이 죽일 생각이야!”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선의 형태로 뒤로 뉘였던 몸을 지면과 한 치 간격까지 더 누이고, 두 손으로는 바닥을 강하게 때린 후 몸을 띄워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이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헌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영의 시선에 여전히 수십 개의 권이 어지럽게 보였다. 무영은 이것을 피하기에 늦었다는 판단이 서자 어느새 양 손을 흔들어 불혼이 펼친 수십 개의 권에 부딪쳐 갔다. 무영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펑!펑!펑!!

 

 

제법 그럴싸한 충돌음이 났고 무영은 그 반탄력에 두 손이 모두 크게 저렸다. 자신의 내공이 불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약간 분함이 들기는 했다. 허나 그는 충돌과 동시에 그 반탁력을 이용해 뒤로 미끄러지듯 다시 십오 보를 물러났다. 그것은 불혼이 그에게 다가온 십 보와 거리가 같았다. 

 

 

헌데, 놀라운 것은 불혼과는 달리 무영의 신형은 두 개로 보였다는 것이다. 불혼과는 달리 물러나는 쪽의 신형이 늘어졌고 도착하는 쪽의 신형이 찌그러지는 두 개의 신형만이 드러날 뿐이었다. 무영은 순식간에 불혼의 신법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일극무원결의 정수가 무영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불혼의 신법을 보며 빛났던 무영의 시선은 이것을 위해서였다. 

 

 

 

 

"허허! 이놈, 허허, 이놈!!"

 

 

불혼이 한껏 웃었다. 그가 발사한 권은 소림의 백보신권이었고, 십 보를 순식간에 다가간 것은 일종의 축지성촌(縮地星寸) 같은 공간을 속도로 압축하는 상승의 경공을 펼친 것이었다. 반면에 무영이 손을 흔들어 시전한 것은 일극무원결 상의 수비식 제 일초 수(守)를 백보신권에 맞게 변형한 수권(守券)이었고, 그가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난 것은 상대의 힘을 빌어 물러나는 대나이신법(大那移身法)의 원리를 차용한 수보(守步)였다.

 

 

 

“불혼 할아버지…?”

 

 

무영의 눈이 함지박 만해졌다. 더 말할 틈도 없었다. 

 

 

“제법이구나. 허나 이것은 또 무엇이더냐, 무영아.”

 

 

그의 방어에 감탄한 불혼이 무영의 눈을 보며 빙긋 웃더니, 이번에는 세 가지 공격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앞의 권풍보다 몇 단계는 위의 공격들이었다. 비록 살기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권법과 지공의 최상승 경지의 입구에 있는 것들이라 그 속도와 변화가 눈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무영은 집중했다. 이것은 실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을 정도여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부상도 입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고, 무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합!”

 

 

불혼은 기합과 함께 자신의 손과 발, 왼손 검지를 허공을 향해 부단하게 움직였다. 이런 그의 움직임은 절도가 있기 보다는 이것저것을 막무가내로 펼치는 그런 혼란스러운 공격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혼은 무영의 눈이 일극무원결 상의 시(視)가 열린 것을 간파했고, 그래서 이번의 공격에는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방식들로 다양한 초식들을 펼쳐보였다. 무영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막무가내로 펼친 것 같은 장풍과 연각(連脚), 연환지(連還指)는 각각 아홉 번과 열여덟 번, 다시 아홉 번 시전돼 무영이 움직일 수 있는 삼십육 방위 모두를 일사분란하고 그물망처럼 차단시키며, 무영의 온갖 혈도를 파고들었다. 말도 안 되는 공격이었지만, 그런 혼란스러움이 어떤 비전절기보다 위협적이었다. 

 

 

“이크! 할아버지가 날 죽일 생각이구나. 이크! 이크!”

 

 

무영은 더욱 세진 불혼의 공격에 오도방정을 떨었지만, 어느 새 불혼의 어지러운 공격에 대응을 하고 있었다. 무영은 언뜻 봐도 불혼의 공격이 모든 방위를 차단한 상태에서 파고들기에 자신이 신법으로 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무영은 수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직감을 하자, 그는 마치 불혼의 장풍을 잡겠다는 듯이 한 번 손바닥을 펴 움켜지는 동작을 했고 이어서 손목을 뒤에서 앞으로 돌려 움켜진 것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듯이 불혼을 향해 발사했다. 

 

 

 

휘릭! 펑!!

 

 

그의 초식이 불혼의 공격과 첫 번째 충돌을 일으키며 파공음이 일 때, 무영이 불혼에게 말했다.

 

 

 

“소림의 금강장은 상대 초식을 흡수하여, 이를 다시 내보내는 일극무원결 상의 수비식 제 이초 겸, 공격식 제 일초 흡이발(吸以發)로 대응했으며.”

 

 

동시에 무영은 다리를 들어 연속으로 차며 불혼의 연각을 상대했다.

 

 

 

탁!탁!탁!!!

 

 

“관음십팔각(觀音十八脚)은 일극무원결 상의 수비식 제 일초 수(守)를 연각에 맞게 변형시켜 대응했으며.”

 

 

불혼과 마찬가지로 무영도 검지를 연속으로 튕겨 아홉 번의 지풍을 날렸다.

 

 

 

팟!팟!팟!!!

 

 

“마지막으로 탄지신통은 일극무원결 상의 수비식 제 이초를 지풍에 맞게 변형한 파지(破指)로 막았습니다."

 

 

불혼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무영이 다시 불혼 앞으로 걸어갔다. 무영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어도 그가 불혼의 초식을 파악해 완벽하게 막아내고, 그 와중에 한 번의 공격까지 가미한 것을 보며 불혼과 옆에서 지켜보던 도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영은 이미 일극무원결의 성취가 그들의 예상을 넘어 있었다. 무영의 발전속도는 이제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정말 훌륭하구나. 무영아.”

 

 

다가오는 무영을 보고 불혼이 가득 웃었고.

 

 

“이제부터 삼혼의 무공을 정식으로 가르쳐 주마.”

 

 

도혼이 마침내 절대 경지의 무공에 대해 언급했다. 순간, 무영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그것은 심연 같은 눈빛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어도 심연만큼 깊어질 것은 느낄 수 있는 맑음이 배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두 분 할아버지.”

 

 

무영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호들갑 떨던 모습은 감추고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소리를 지르고 한 번 뛰어오른 다음 늘 그렇듯이 웃어야 했는데 지금 이 순간의 무영은 너무 달랐다. 

 

 

 

'또 이것으로 그만큼 천상천에 다가선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삼재의 무공에서 무혈류를 빼고 천상빙혈검류의 빙혈류를 채우면, 태극의 무공이 재현된다. 허나 이를 위해선 빙혈류를 다스려야 한다. 결국 천상무극진기를 오성까지는 이루는 것이 필요한데, 나에겐 불가능하다.”

 

 

천이 태극의 무공인 천상빙혈검류의 원리와 삼재의 무공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것은 천상무극진기의 성취였다. 빙혈류를 다스려 검에 담아 천상빙혈검류를 이루려면 대장로보다 천상무극진기의 성취가 높아야 했다. 이것은 한천마결을 익힌 오천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방법은 하나, 복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상대에게 해를 주지 않고 힘만 빌려 공력을 증진시키는 천상대력무상대법(天上貸力無傷大法)을 그는 선택했다. 허나 이 대법을 펼치면 힘을 빌려준 상대에게 그 내력을 삼일 이내로 돌려주지 못하면 상대방은 결국 무공이 사라져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허나, 궁인들 중 몇 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는 이를 익혀야 해. 복수를 하기 전까지 난 짐승일 뿐이야. 무슨 짓이든 한다.”

 

 

그는 특유의 무색무취의 눈빛에 극도의 복수심을 담아, 마치 악령처럼 변한 눈빛을 허공 중에 발사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흔들렸음은 당연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류심환이 화월곡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재와 쌍비의 침입이 있었던 그날 이후, 화월곡은 귀신이 나올 듯 음산하게 변해 폐허를 방불케 했다. 가옥은 무너졌고 절벽도 일부 무너져 위험한 상태. 수련을 위한 가옥 앞, 뒤의 분지에도 먼지가 쌓였고 곳곳에 이름 모를 잡초도 듬성듬성 자리했다. 류심환은 화월곡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고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이 이를 말했다.

 

 

 

‘역시 기묘한 족적이야. 너무 희미해 찾기 어려운 만큼 이 족적의 주인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야. 흔적만으로 보면 검강천이나 삼재, 쌍비의 신법과는 달라. 역시 내 예상이 맞아. 제 삼의 뭔가 있어. 허나, 아무리 생각하고 조사해도 모르겠어. 하지만, 존재는 해.’

 

 

 

잠시 생각을 멈추고 숨을 고른 류심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월곡의 초가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류심환은 이곳을 떠나며 초가를 폐쇄시켜 그곳 역시 잡풀로 무성했다. 순간, 그의 눈이 조금 빛났다.

 

 

“나도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그대들도 모습을 드러내시게. 오랫 동안 여기서 기다려 온 것 같은데…”

 

 

류심환이 손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초가를 향해 돌아섰다.

 

 

‘아니,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만만치 않은 놈이군. 이곳에 온 이래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더니만… 이미 알고 있었어.’

 

 

류심환의 말과 동시에 초가 쪽에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미세했지만 잠복자의 은형술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어찌할까요, 사형?'

 

 

오른 쪽에서 두 번째 매복한 자가 옆에 있는 자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 일시에 공격하자. 각자 사상의 위치로 날아올라 초식을 펼쳐라. 저자에게서 단서라도 찾아야 하니 절대 죽여서는 안 돼.'

 

 

사형으로 보이는 자가 다시 눈빛으로 질문한 자와 나머지 두 명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가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 후 하나씩 접었다.

 

 

'하나, 둘, 셋, 네… 엇!!!!'

 

 

휘리리릭!

 

 

마지막으로 그의 약지가 접히는 순간 그들 주위에서 난데없이 회오리가 일었다.

 

 

‘어? 이건 뭐지? 왜 이러지…?’

 

 

대사형으로 보이는 자가 마지막 네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공격을 하려는 순간, 그들이 위장을 위해 덮고 있던 나뭇가지와 풀, 잎들과 그들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둥실 떠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매목한 상태의 네 명이 쭈그린 자세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은형술까지 깨졌다? 저 자가 어찌 했기에?'

 

 

매복도구와 은혈술까지 깨진 네 명의 사람이 같은 도포를 입고 매복한 채 멍하니 류심환을 쳐다보았다.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수법으로 상대는 우리의 매복을 풀었고, 은형술마저 깨드렸다! 예상을 훨씬 넘어선 자야!’

 

 

그들은 생각이 이에 이르자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불명의 상대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막강한 고수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점에 근접한. 

 

 

“쥐새끼들은 아니었군.”

 

 

류심환이 무겁게 가라앉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자네가 고양이는 아니지. 물론 자네가 이곳의 주인이라면,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것은 사과하겠네.”

 

 

네 명 중 첫째로 보이는 자가 쭈그린 자세에서 일어나며 류심환의 말을 당당하게 받았다. 숨어 있을 땐 몰랐지만 그가 하는 말이란 품위와 격식이 있었고 기도 또한 유려하고 당당했다.

 

 

헌데 류심환은 그들의 기도가 익숙했다.

 

 

“역시, 천상천 사람이군.”

 

 

류심환은 자신을 향해 날아 오르는 네 명의 무공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일극무원결을 극한까지 대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공을 펼치며 날아 오른 그들에게서 천상무극진기가 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맨 앞에서 날아 오르던 첫째가 소리쳤다.

 

 

“사제들, 멈춰라! … 그리고, 자네… 지금 천상천이라 했나?”

 

 

그는 달려나가던 몸의 속도를 급격하게 줄이며, 나뭇잎이 떨어지듯 지면에 표홀히 내려서며 물었다. 그의 뒤로 비슷한 동선(動線)을 그리며 세 명의 매복자가 내려섰다. 상당한 속도까지 오른 경공을 일시에 줄이며, 기혈의 작은 흔들림도 없이 내려설 수 있는 자는 절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들었으니 알 것이고. 그보다 너희는 전 천주의 사람이냐, 아니면 현, 아, 아니지..  도둑놈의 사람이냐?”

 

 

류심환은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하게 그들에게 물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것만 알면 됐다.

 

 

“뭐라 했느냐?! 전 천주의 사람이냐 했느냐?!”

 

 

그들의 첫째, 천상천 내궁의 십팔 호법 중 살아남은 일 호법 구정회가 격정에 찬 음성으로 물었다.

 

 

“전 천주의 사람이냐고 말했느냐? 누구냐, 너는?”

 

 

이번에는 떠리는 음성으로 이 호법 민경언이 다시 물었다. 나머지 두 명도 앞의 두 사람과 같은 질문을 눈으로 대신했다.

그들은 칠호법 서풍과 십육호법 백호강이다. 이들은 역천의 날, 세 명의 장로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 천상천 여덟 호법 중 네 명이었다.

 

 

“말을 길게 할 필요는 없고. 전 천주 검강천의 사람이면 전할 말이 있고, 아니면 이곳에 매복한 이유에 따라 내 결정이 달라질 거야.”

 

 

그들의 간절한 질문에 대한 류심환의 답은, 자신이 검강천까지 말했으니 이제는 너희가 답할 차례라는 뜻이다. 처음 보는 순간 이미 그들이 검강천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해도.

 

 

‘주군의 성함까지 말했어. 그날의 일을 알고 있는 자야. 그렇다면…’

“나는 천상천 내궁의 일호법 구정회라 한다. 만일 네가 좋은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면 너의 생사는 우리가 정한다. 말하라. 네가 어떻게 주군을 아는 것인지?”

 

 

구정회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동시에 자신의 무기 대청검에 공력을 실었다. 그의 행동에 나머지 세 명의 호법도 다시 공력을 끌어올렸다. 상대는 상상 이상으로 강한 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초식으로 보여주지.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네.”

 

 

말을 마친 류심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애검 여의청명검을 꺼내며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어떤 것이든, 너는 주군을 입에 담았어. 나쁜 뜻이 아니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구정회가 답하며 대청검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네 명의 호법도 구정회와 동시에 자신의 검과 도, 장에 최대의 공력을 실었다. 이는 일호법인 구정회가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의 독문 비공, 극검천결력(克劍天決力)을 전력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상대가 천주를 언급했기에 빠른 답을 구하는 것이 옳았다.

 

 

“그대들 또한 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여의청명검에서 하나의 기운이 떠올랐다. 구정회와 네 명의 호법은 류심환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대는 주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주군을 그라는 호칭으로 말했다. 상대는 주군을 그라고 부를 만큼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좋은 인연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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