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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승윤의 '무얼 훔치지?', 음악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무얼 훔치지

 

생각을 정돈하려다/ 마음을 어지럽혔나 봐/ 대충 이불로 덮어 놓고/ 방 문을 닫았어 ㅡ 여기서 생각은 다양한 것이 가능하겠으나 가사 전체를 보면 음악을 관둘까 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방구석 음악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11집에 이르는 음반으로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무명에 머문 이유과 현실의 압박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마음만 어지러웠을 뿐,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멈추고 잠을 자기 위해 대충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방 문을 닫았다. 여기서 방문은 생각을 멈추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과의 단절이나 여러 가지 시도를 멈추는 것을 의미하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완전한 단절을 뜻한다.

 

선반에 숨겨 놓았던/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읽으려다 그냥 말았어/ 거의 외웠으니까 ㅡ 상징으로서의 선반에 숨겨 놓았던, 대부분 선반에 무엇인가 넣어두기 때문에 기거서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희망이 필요한 사람, 그 작은 희망 때문에 행동에 옮긴 사람, 헌데 결과란 늘 똑같이 별 거 없는 사람, 그들에게는 수많은 후회들로 넘친다. 내 꿈이 지나친 것일까, 세상에서 받아주기 힘든 꿈일까, 내 능력을 넘어선 꿈일까,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 꿈은 꿈일 뿐이니까. 아니야, 어쩌면 노력이 부적해서 일 수도 있어. 보다 일찍,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더 노력했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야, 난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어, 운이 없었을 뿐이야.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게 문제지 난 문제업어. 난 배아픈 가수지만 그건 실력이 넘치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정말 전력을 다해, 만족하지 않으려 늘 배아픈 거야.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리듬, 더 좋은 노래를 위해 그랬던 거야. 헌데 이게 뭐지. 난 여전히 방구석 음악인이야... 이런 수없이 되풀이 했던 그래서 거의 외워버린 후회들, 그것들을 아무리 많이 꺼내서 읽어봤자 똑같은 것들이 계속될 뿐이야.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으면 외울 정도일까? 승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말해주는 것, 그래서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시도해보겠다고 결심했던 것. 죽는 것보다 싫은 음악을 포기하고 보통의 삶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그래서 자신의 하늘은 늘 낡았어. 이런 후회로, 분노로, 절망으로 하늘을 보니 낡은 미소만 보였겠지, 너무 한 거 아니야? 나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 밝은 미소로 하늘을 볼 수 없을 터, 좀더 밝은 미소를 건넸으면 달라졌을까?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하늘은 녹슬어 있는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럴까? 방구석에서 보는 하늘은 미세먼지와 각종 오염물질에 물들어 녹슬어 있는 황혼녘의 어스름일까?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그럼 난 무얼 훔치지 ㅡ 노을마저도 점점 어둠에 밀려가네. 급한 마음이 언덕으로 달려가보지만 노을은 그만큼 멀찍이 멀어지고, 그래서 내게 희망을 주어야 할 태양은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떨어져 있지. 그럼 날 무엇을 훔치지. 태양의 신으로부터 무언가 행운이 상징이라도 훔쳐야 할 텐데, 무언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무엇이라도 희망의 이름으로 훔치기라도 해야 할 텐데, 모두 다 멀어져 가기만 하니 난 무얼 훔치지, 빛이 희망이라면 태양만이 나에게 또다른 기회라도 줄 텐데, 왜 멀어져만 가는 거야. 


텅 빈 하루를 채우다/ 잠은 가루가 됐나 봐/ 쓸어 안아 누워 있다가/ 그냥 불어 버렸어 ㅡ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민스러운 생각만으로 가득한, 그래서 일상의 삶이란 하나도 하지 못한 텅빈 하루를 고민으로, 절망으로 채우다, 그렇게 뒤척걷리다 보니 잠은 가루처럼 아주 잘게 조각난 가루 수준까지 됐나 봐, 다 타버린 재처럼 가루가 됐나 봐, 그것을 목숨처럼 쓸어안아 누워 있다가, 바람에 놓아줄 수 없어서, 이것마저 놓아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아서, 그래서 쓸어안고 있었지만 그냥 불어 버렸어. 너를 내 꿈과 희망에서 날려 버렸어. 보내 버렸어.

 

옷장에 숨겨 놓았던/ 꿈들을 몇 벌 꺼내서/ 입으려다 그냥 말았어/ 어울리지 않잖아 ㅡ 이번에는 선반이 아닌 옷장에 숨겨 놓았던 무대 의상들을, 그래서 꿈일 수밖에 없는 옷들을 몇 벌 꺼내서 입어보려다, 가루를 날려 버린 후 미련이 남아서 입어보려고 했지만 그냥 입지 않았어, 그건 무대의상인데, 아무것도 아닌 방구석 음악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잖아. 그건 꿈일뿐, 현실이 아니잖아.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똑같다.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난 무얼 훔치지 ㅡ 앞과는 달리 이 절에서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것이 들어있다. 무엇인가 했다. 김이나 이전의 별밤에 자신의 노래를 신청한 것을 말할까?

 

조바심에 저 바람에/ 주파수를 훔쳐 봐도/ 모래 가루만 날리고/ 밤을 어지르지 ㅡ 2020년 12월 31일이 다가와서, 팬들이 늘지 않아서,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어서, 신청곡 사연마저도 채택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에, 밖으로는 바람만 무성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밤의 주파수를 훔치려고 했던 것이 혹시나 성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별밤 시청자들이 내 노래를 듣고 진행자가 좋은 감상평을 해주면 뭔가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채택되지 않았어. (채택됐나요? 네, 제가 확인하라고요? 어떻게? 팬카페에 가면 있을 거 아니야? 덕질한다며? 네, 알아볼게요. 채택됐는데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더 절망했을 텐데...) 결국 모래 가루만 날렸어, 그 때문에 밤만 어지러울 뿐, 모래만 휘날리는 죽음 같은 어둠 속이야.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이제 그만 할래 ㅡ 마지막에 아,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할래. 음악 포기할래. 내 나이도 있고, 이젠 뭔가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지. 내 음악인생은 실패야. 처참한 실패야. 이제 그만 할래. 힘들어. 넘 지쳤어. 

 

날짜들보다 오래 된/ 발자국처럼 노래가/ 신발 아래서 들려 와 ㅡ 수많은 시도를 했던 지난 10여년의 날짜들보다 더욱 오래된 이제는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발자국처럼, 그렇게 가루로 부셔 날려버려도 나의 노래는 저 죽음 같은 지옥에서라도 기어올라와 내 귀속으로 들여 와, 내 무너지는 마음 속에서 울려,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마, 우리 한 번만 더 해 봐, 한 번 더 도전해 봐, 포기하지마, 포기하면 모든 게 다 끝나. 포기하지 마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ㅡ 너무 힘들어, 너무 지셔서, 마음에는 상처 뿐인데, 그래서 포기하려 했는데, 이 낡은대로 낡아진, 무너지고 무너질대로 무너진 마음에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나에게 꿈을 줘,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게 해줘. 힘을 줘, 에너지를 줘, 돈을 줘... 아, 이건 아니구나. 아, 분위기 잡고 잘 갔는데.... 아무트 노래는 밝은 미소를 내게 건네 와, 고맙게도, 질기게도, 그 빌어먹을 쥐꼬리만한 희망의 이름으로.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난 눈물을 훔치지 ㅡ 너라는 놈은, 너라는 나의 꿈은, 너라는 나의 얘기는, 너라는 나의 모든 삶은, 너라는 노래는 왜 녹슬지 않는지, 이렇게 힘들고 좌절하고 외면받고 상처받고 쓰러져봤음에도 언제나 밝은 미소처럼 나를 일으켜세우는 것이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이지?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