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커튼이 가려 놓은 창 밖의 하루를 거뜬히 감당 해 내기를 기도해요 ㅡ 방구석 음악인으로써 나와 세상은 창문 커튼에 의해 분리됐다. 커튼은 상징, 정말의 나와 잘나가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 축제에 함께하지 못하는 실패한 자의 답답하고 힘든 작은 공간. 월세를 제때 내기에도 힘겨운 나의 하루하루. 난, 기도해야 방구석이 아닌 커튼 밖의 세상에 하루를 거뜬히 감당해낼 수 있는 날을.

 

어떤 이는 오늘도 창백한 얼굴로 터뜨리지 못한 분노를 삼키네요 ㅡ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아니 능력이 모자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은커녕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데,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는 꿈도 꾸지 못해요. 1%도 안되는 희망의 이름으로 압도적인 절망을 버텨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삼키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부와 권력은 물론 기회마저 독점한 자들은 더 갖지 못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지만 하루하루 넘기기도 힘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죠.

 

삼켜야만 할 일 투성이인 오늘 하룰테죠 ㅡ 비정규직의 불안정성, 낮은 시급, 멸시하는 시선들, 차별의 일상화, 연예도 결혼도 내집 마련도 모두 다 포기한 세대로써 아무리 노오오오력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일은 넘칠 만큼 많은데, 쥐꼬리만한 일당,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오늘의 법벌이를 위해 하루에도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다쳐야만 끝이 나는 하루 일수도 있겠죠 ㅡ 먹고살기 위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파견나간 현장의 구석진 곳에서 컵라면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지만, 상시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열악한 작업환경,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고를 당해야, 때로는 목숨까지 잃어야 저임금 작업이 끝나는 그런 청춘들도 있겠지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울지 말아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울지 않으면 어떻게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겠어요. 다쳤으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울어요. 세상에 말해요,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으니 잡아달라고. 누구라도, 어느 누구라도. 

 

달이 등장 했지만 아직도 하루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깰 짓눌러요 ㅡ 쥐꼬리만한 시급이라도 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달이 뜰 때까지 투잡, 쓰리잡도 뛰는데, 남들은 편히 쉬어야 할 이 시간에도 나는 쉴 수 없어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깨를 짓누르는 저임금 노동이 너무너무 힘들어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픈 것밖에 없어서, 그럼에도 치료도 받지 못하는 청춘이에요.    

 

말이 그저 하고픈지 할 말이 있는지 잠이 와도 쉽사리 잠들지 못해요 ㅡ 하루하루가 이러한데 누구라도 잡고 나의 절망과 현실에 대해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저 들어만줘도 마음이 조금은 풀릴 텐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죽을 만큼 피로한데, 피로가 쌓여 이제는 일상화됐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요. 잠들지 못해요.  

 

삼키다 너무 힘이 들면 토해 낼 때가 있겠죠 ㅡ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히는 분노와 절망의 양이 임계점을 돌파하면 토해낼 때도 있겠죠. 내가 나를 갉아먹는 이런 마음앓이가 더 이상 담아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비명처럼 토해낼 때도 있겠지요. 토해내고 싶어요, 우리 이렇게 여기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그러나 토 해낸 자리는 내가 치워야 할테죠 울지는 말아요 ㅡ 토해낸들 이 냉정하고 잔혹한 세상이 답해주지는 않겠지요. 결국 힘겹게 토해낸 감정의 배설은, 그 청춘의 절규는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하기에 토해낸 것은 내가 치워야 하는 것이 현실의 반복이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 빌어먹을 1%이 희망을 믿고 울지는 말아요. 우는 것까지 하면 너무 초라하고 슬프고 참담하잖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아니, 아니, 울어요. 울어도 되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청춘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연속이니까.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화가 되어 버릴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ㅡ 참으로 처절한 부분. 순간순간 매일매일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회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절망과 체념, 굴종이 내면화돼 완벽한 절망속에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그런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왜, 희망은 모든 악한 것들이 담겨있던 판도라상자에 있었을까? 희망은 원래 악한 것이었던가요? 그래서 판도라상자의 맨 밑바닥에 있었던가요? 탈출도 못할 만큼 그렇게 악한 것이었던가요?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ㅡ 그런 희망을 믿어도 될까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람사는 세상을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믿어 보기로 해요 ㅡ 우리 무너지지 말고 좌절해서 방구석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요. 커튼 뒤에 숨어서 세상과 단절하지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지만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니까. 믿어 보기로 해요. 믿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살아야, 살아서 패자부활전의 기회라도 잡아야요. 그런 기회가 기적처럼 올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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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직설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기 일쑤다. 사랑 고백은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허튼소리로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사랑에 능숙한 것도 수줍어하는 청춘 승윤에게는 힘들기만 했나 보다.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ㅡ 그녀 앞에 서면 난 얼어버려. 머리가 하해지면 말을 잃어버리기 일쑤야.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ㅡ 말을 잃어버리는 만큼 심장은 벌렁벌렁, 쿵쾅쿵쾅. 허튼소리가 아닌 내 심장박동을 들어줘!!!! 

 

옅은 채색은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승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그 고백이란 화려한 말로 이루어진 채색이 아니라설레임과 부끄러움을 간직한 옅은 채색이었을지도. 나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지만 투명에 가까울 만큼 한결같으니까.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너의 앞에서 허튼소리만 했듯이, 내 사랑을 화려한 말로 채색해서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도 못해.   

실은 내 물감통에는 단색뿐이었는데 ㅡ 시적 표현이나 멋진 은유와는 달리 사랑에 대한 내 말들은 화려할 수 없는 단색일 뿐이야. 화려한 말은, 그런 채색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하겠어.  

신기하게 총 천연색 섬이 그려지더라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대한 내 사랑을 그려보기라도 하면 언제나 총연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섬이 되기만 해.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ㅡ 잠에 들었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뭐야? 혹시 네가 나를 부른 거니? 허튼소리와 옅은 단색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내 사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이니. 아니면 꿈을 꾸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ㅡ 혹시 몰라 나는,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는 실눈을 뜨고, 마치 꿈꾸는 것이라고 둘러대려고 잠꼬대를, 아니 잠꼬대인양 말할 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ㅡ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어쩌면 열병 같은 사랑앓이가 밤이라고 하면, 그런 어둠속에서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ㅡ 넌 떠오르는 태양처럼 동그랗게 빛나는 아침이었어. 어둠이 아닌 빛나는 사랑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ㅡ 마찬가지로 너만 바라 보는 내가 망원경 같기만 했을 때도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 넌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자리만 같았어. 칠흑 같은 창공에서 가장 빛나는 그런 별자리. 이후 반복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ㅡㅡㅡㅡ

 

승윤씨의 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지만, 제가 승윤씨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썼던 시 한 편을 읽어드릴게요. 시는 커뮤너티에 올릴게요. 

 

 

 

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4)                                                

 

 

편지를 씁니다                                  

봄비 그친 후 첫 햇살로

당신 이름을 쓰고

당신 닮은 목련의 향기들로 인사를 하고

4월 바람 속 온기들만 모아서

첫 줄을 씁니다

 

다음 한 줄은 5월의 나무들에 기대어

물오른 초록들을 빌리렵니다

봄볕에 하나 씩 익어가는 딸기의 당분으로

내 떨림을 적으렵니다

 

지금 방안엔 숱한 꽃들과 바람

잎새들로 넘쳐 있는데 

4번째 줄에서 멈춰 있는 말들이

당신 모습만큼 아름답지 못해서



 

날아가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ㅡ 떠나자, 그냥 즐기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어. 난 노래를 넌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만 추면 되니까. 그곳이 도시의 한 가운데라고 해도.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 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ㅡ 휴식처럼 다가온 도시의 물안개 위로 살포시 걸을 거야. 그러나 높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낮지 않게.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만큼의 그런 높이로 걸어갈 거야.  

컨크리트 건물들을 보다 보면/ 나도 시멘트가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도시라는 곳, 컨트리트로 지워진 건물들, 마천루로 가득한 곳, 이곳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도 건물의 재료인 시멘트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나 또한 이놈의 꽉믹힌 세상에 매몰될 것 같아.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가면 뒤의 얼굴을 마주 하면/ 석고상이 무표정하게 날 노려 봐 ㅡ 수많은 충돌하는 이익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란 남을 속이기 위한 가면과도 같아. 그들과 얽히다 보면 무표정한 석고상이, 곧 생명도 없는 석고상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도시의 사람들이 저놈들 뭐하는 거야, 제 정신이야, 하며 노려보는 것 같아.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ㅡ 도시의 현실에서 소맷자락 속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다 가져와, 난 노래할게 넌 마음껏 춤춰추면 돼. 즐기자고, 마음껏!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ㅡ 조용한 호수에 돌맹이 하나를 던지면 그곳으로부터 물결이 퍼져나가듯, 그렇게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회색빛 도시의 한가운데 청춘과 같은 색인 파란 호수를 만들어보자. 난 노래하고 넌 흥겹게 춤만 추면 돼.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나는 카페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인데,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맘껏 노래하고 춤을 추니까 잠도 오지 않아.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출 수 있어.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카페인이 된 것처럼. 

낮이 섞인 밤들을 마주 하면/ 잠은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ㅡ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 낮이 섞인 밤들이란 낮부터 시작해 밤까지 계속된 고민과 좌절의 연속일 수도 있고, 낮에 꾸었던 꿈인,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물결처럼 노래하고 춤출 꿈일 수도 있다. 낮에 꾸는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그것이 천장에 아른거리니, 그래서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잠들 수 없는 것.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들려주고 싶으었던 

 

꿈을 꾸는 나의 미소 위에다/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향기로운 노래로 피어날까/ 이렇게 이렇게 ㅡ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가사, 그저 상상하면 돼. 생각만해도 달콤한 미소가 나오는데, 거기에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그런 기분 좋은 설레임들이 향기로운 노래는 피어날 수 있을까, 마치 아름다운 장미처럼, 그댈 향한 내 마음처럼, 이렇게 이렇게 

나의 노래 속에 놓인 길 따윈/ 못 다 핀 꽃이 뒤덮힌 어지러운 꿈/ 너에게로 뻗어가기만 하면 돼/ 그렇게 그렇게 ㅡ 사랑하는 너를 향해 가고 있지만, 노래 속에 놓여있는 그 길이란 아직 다 피지 못한 꼿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어지러운 꿈 같아.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지만 걸음보다, 노래보다 빠르게 너로 향해 가는 걸음이란 너무 어지러워 방향을 잡기도 힘들지만, 너에게로 향하는 길이면 돼. 내가 노래 속에 만들어놓은 길이 너라는 목표를 향해 이르기만 하며 돼, 그렇게 그렇게

 

엉켜있는 가시 넝쿨들이 많긴 해/ 뒤 얽혀 있는 가사들을 꺼내야 해 ㅡ 꽃들이 장미라면 가시 넝클들이 많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의 가시 넝쿨에 뒤죽박죽이 된, 또는 너에게 내 마음을 노래로 보내려면 가시 덩쿨에 뒤얽혀 있는 가사들을 어지러운 내 머리속에서 꺼내야 해. 노래는 그런 다음에야 완성될 테니.

 

그리고 불러야 해 네가 들을 수 있도록 ㅡ 전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열병처럼 나를 잡아먹는 짝사랑처럼

그댈 위한 장미야/ 검은 흙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그댈 위한 향기야/ 떠는 기타 줄에 휘감아 ㅡ 내 노래란 그댈 위한 장미야. 내 불타는 마음이야. 검은 흙속의 장미처럼, 그 향기처럼 홀로 속삭였어. 노랠 불러봤어. 

그댈 위한 밤이야/ 붉은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ㅡ 내가 그댈 위해 부르는 이 노래로 가득한 밤이야, 내 사랑이 모든 밤을 채웠어. 장미처럼 붉은 꿈속에서, 너에게로 가는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너만 들을 수 있게 홀로 속삭였어, 달콤하게. 

그댈 위한 마음이야/ 네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ㅡ 이 노래는 홀로 속삭인, 장미의 향기처럼 달콤한 이 노래는 그댈 위한 나의 마음이야, 내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사랑고백이야, 

 

 

 

삼권분립이 헌법에 명시돼 있고, 법관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1심재판부의 무죄 선고 논리의 허약함과 제멋대로의 비약,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죄를 묻는 지랄발광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저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사법부에 개차반 같은 판사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기에 그들의 모자람을 입에 올리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1심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유가족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기사화하는 진보매체들의 저열함에는 분노를 참기 힘듭니다. 

 

 

이승윤의 '교재를 펼쳐 봐'를 다룬 영상에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자행한 비극에 대한 청년 이승윤의 치열한 고뇌와 번민, 절망은 '기도보다 아프게'에서 가장 슬프고도 먹먹하게 휘청거립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라고 치부하는 자들이 널려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세기 메시추세스 주에서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였던 시어도어 파커 목사의 설교를 인용'해 '도덕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이 나라의 일부 판사들은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을 아예 장님으로 만들어야 만족할 모양입니다.   

 

 

저는 밤을 세워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듣고 들으렵니다. 흔히 지미 핸드릭스와 제프 백과 3대 기타리스트로 회자되는 에릭 크립튼이 자신의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낸 후 작곡했다는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들어보렵니다. 이승윤도 기타를 연습하고 작곡과 작사를 하며 수없이 들었으리라 추측하면서.   

   

  1. 여강여호 2021.02.16 07:03 신고

    제멋대로 사법부...디케의 저울과 검, 가린 눈이 기득권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교재를 펼쳐 봐>

 

 

탕, 탕, 탕.. 수차례 총성이 울렸고/ 난 잠에서 깨었어/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수업중이었어/ ㅡ 버지니아 공대를 다니던 한국계 미국인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승윤은 강의실에서 꿈뻑꿈뻑 졸다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아니면 지난 새벽에 타진된 충격적인 사건에 꼬박 밤을 지샜는지도 모른다. 탕,탕,탕.. 노래의 도입부가 충격의 정도와 인간이란 존재의 사악함에 대한 불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어제의 총기난사 사건은 오늘의 소재가 되었고/ 교수는 말했지 좋은 교재가 될 거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 거야/ ㅡ 악몽에 시달리며 강의실에서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해당 사건을 얘기한다. 당연하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헌데 교수라는 작자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메뉴얼로써의 교재가 필요하단다. 아니면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전문적인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사건들과 이번의 사건만으로는 교재를 만들기에는 사례가 부족하다고 말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교수라고 지칭되는 자들의 머거리를 위해 더 많은 죽음이, 더 많은 희생이,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하다고 대학생 시절의 승윤씨는 분노했던 것 같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한 최대 이익단체이자 압력단체인 전미총기협회회장, 찰톤 헤스톤의 말과 그의 이력에 대해 설명할 것, '총기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사용자의 손가락에 책임이 있다'는 궤변과 함께. 그의 논리가 진실이 되려면 핵폭탄이 사용되도 책임은 발사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있을 뿐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마지노선, <역마차>의 존 웨인과 <람보>의 실베스타 스텔론,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의 주인공들로 이어지는 미국의 제국적 팽창과 근육질 외교의 할리우드식 변명들. 국제연합 등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 예방적 차원의 선제 공격 등등등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탄식은 생에 스미기도 전 활자가 돼 있어/   ㅡ 어이없는 희생,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총기보다 못한 목숨, 계속해서 벌어지는 비극,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로 만들어진 교재를 펼쳐봐, 아픔과 피로 적어넣은 이름들이 적혀있는 교재를 펼쳐봐, 총기소유 자유가 초래한 정치경제적 결정이 초래한 비극들이 활자화돼 일체의 슬픔과 분노, 연민이 박제화된 그런 교재가 출판되고 대학의 강의로 쓰이는 그날, 그 순간을 위해. 교수들이란 작자들이 반인륜적 행태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이 없는 인간은 모든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다. 스탈린,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가 된다'는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음.   

 

 

 

 

뼛속에 말을 심은 누군가 낭독해/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할지/ 눈물을 닦고 귀를 닫고/ 마음대로 치유하고 감사해/ ㅡ 인간의 죽음까지 상업화하고 자신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자란 뼛속에 타인의 비극을 새겨놓을 만큼 자인한 자, 그 누군가 활자화된 죽음들을 낭독한다. 또는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읽으라고 했을 수도. 만일 교수나 학생이 신학교 소속이라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있어야 우리가 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총격사건의 범인처럼 사악한 자들을 몰아낼 수 있으며, 이런 사건들이 즐비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 그런 믿음과 신앙에 들 수 있을지! 승윤은 처절하게 절규한다, 눈을 닦고 귀를 닫고, 그래서 진실에서 멀어짐으로 해서, 성전과 학문의 전당에 기어들어와,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마음대로 치유하고, 그런 나라에서, 그런 범죄에 당하지 않은 신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해야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거야/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사실은 나도 똑같아 노랫말을 짓는다는 것은/ 너의 비극을 식탁에 꺼내놔줄래/ 내가 멋지게 위로해줘볼게/ ㅡ 대학생 시절의, 또는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승윤은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할 때와 똑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나도 똑같은 놈이 아닌가? 이런 참혹한 비극을 노랫말로 짓고 있으니. 우리는 말한다, '용서하지만 기억할게'라고. 이런 무책임과 회피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기억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가지 마 그냥 덮어두자/ 탕, 탕, 탕.. ㅡ 승윤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는다, 가지 마! 라고,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지고 노랫말을 쓰는 자기나, 교재가 필요하다며 더 많은 비극을 요구하는 교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죄의식 때문에.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소리들, 탕! 탕! 탕! 

 

 

www.youtube.com/watch?v=vK692D_udmU

 

  1. 하하호호 2021.02.16 12:55

    잘 보고 갑니다~~~

 

앞의 글과 영상의 후반부입니다. '공정으로써의 정의'가 아닌 '공정한 정의'로 포장된 능력주의 담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파고든 마이클 센델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만, 문화비평으로써 제가 제일 좋아하고 흠모하고 안타까워하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평론'의 접근방식도 차용했습니다.

 

 

'패자에게 책임을 넘어 굴욕까지 받아들이라는 교만한 능력주의 엘리트의 위선과 무능함'에 대한 이승윤과 이무진의 통쾌한 반격, 싱어게인의 기획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이 대가의 면목을 보인 <공정하다는 착각>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도덕을 상실한 시대의 맨얼굴'을 종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대가다운 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kF0UlUhpPe8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ㅡ미쓰이와 함께 일본 전범기업의 쌍두마차인 미쓰비시의 조건부 장학금으로 교수 생활을 이어가는 램지어와 완벽히 대비되는ㅡ의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 ㅡ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의 관점을 통해 이승윤과 이무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주장 설명

첫 번째, 코로나19 펜데믹의 도덕적 이율배반에 대해

두 번째,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라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세 번째, 능력주의의 전제인 공정하게 제공된 교육이라는 환상에 대해

네 번째, 태어날 때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의 담론에 따라 패배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해

여섯 번째, <싱어게인>이라는 기회 또는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에 대해

 

 

훗날 코로나19세대로 회자될 이땅의 청춘들에게 능력주의로 중무장한 세계화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버거워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승윤과 이무진처럼 나 여기있다고 외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화답한다는 것을 믿어주길 희망해본다. 기성세대 모두가 사악하지 않음을, 최악의 세상을 물려준 것에 미안하고 있음을,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박하지 못하는 죄의식과 어리석음을, 우리가 너희를 응원하듯이, 너희도 우리를 믿어주기를.    

  

 

 

https://youtu.be/Rk5Fom4yN1I

 

 

JTBC 싱어게인이 배출한 세 명의 스타가 뉴스룸에 출연했습니다. 최종성적이 1~3위였던 이들을 뉴스룸 '문화초대석'에서 볼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 = 당일 잠 못잠. 다음을 잠만 잠.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라 실감하지 못했지만, 비대면상이라도 SNS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 실감, 배가 아프다는 것은 창작자로써 좋은 자세라고 생각, 계속 아플 것,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다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에. 자신의 노래가 어디까지 퍼질 수 있나 궁금해 싱어게인에 참가했는데 그에 대한 데이타가 쌓여야 이제는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성을 띨 수 있는지 확인했음. 데이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싱어게인 초창기에 이무진 같은 참가자를 보고 큰일났다시퍼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김이나 심사위원과 많은 팬의 성원 덕분에 자신감을 갖게 됐음. 이승윤씨가 기보보다 아프게를 불러줘서 너무 고마웠고 감동적. 살이 더 빠지고 안색도 좋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미사여구없이 감사합니다, 그다운 마지막 멘트!

 

 

이무진 = 경연 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모인 팬카페에 글 하나 올렸다. 방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어머님의 잔소리가 줄고 식사 메뉴의 퀄러티가 올라진 것에서 인기 오른 것 실감. 공교롭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오래된 노래들 선택한 것은 자신의 색채를 실을 수 있고 섞을 수 있는 노래라고 판단해서 선택했음. 오늘 노래, 이문세의 휘파람도 대단히 좋았는데 그의 음색과 색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어린 사람, 이승윤과 정홍일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기적

 

 

정홍일 = 예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인기몰이와 그에 따른 팬들의 홍수가 너무나도 고마워 그들과 소통하는데 집중.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인기를 말해주는 것. 마리아를 선곡한 것도 하드락을 해온 그에게 적절했음. 그가 노래 부를 때 활짝 웃는 이승윤과 이무진의 표정과 리액션도 좋았다. 시사문제를 다루는 뉴스룸에 하드락 가수의 라이브가 이루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고 혁명이었음. 자신을 통해 마니아 음악인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이 행복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생겼다.  그들에게도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https://youtu.be/cLVr99Xk0EY

 

  1. 참교육 2021.02.15 11:37 신고

    공중파들이 뽕짝공화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윤의 영웅수집가를 작곡하게 된 이유를 밝힌 인스타그램 글을 분석해봤습니다. 빅미 시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성찰이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을 보여줘, 넌 소중하고 중요하고 행복할 자격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셀럽과 분야별 스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아바타와 익명성을 이용해 너의 욕망을 펼치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물어뜯어봐!

 

 

거대 플랫폼사업자의 시대이기도 한, 빅미 시대의 디지털 현상을 날카롭게 파고든 이승윤의 냉소적이면서도 폐부를 찌르며, 그러면서도 탁월한 비틀기가 돋보이는, 방구석 음악인 특유의 유머들이 포진된 이 짧은 글이 그의 천재성을 말해줍니다. 시대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날카롭고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방어적인 이승윤의 영웅수집가가 새롭게 해석될 것입니다, 이 인스타그램의 글로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youtu.be/vZhXvtXHzjY

 

  

 

제가 이승윤의 덕후가 된 후에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그의 팬클럽 카페 이승사자(이름을 변경한다고 합니다)에도 오늘 가입했기 때문에 이승윤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무위키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살펴봤지만 그가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가사의 행간에 담겨있는 이승윤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곡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명한 것은 JTBC 싱어게인에 출연하기 전이라면, 노래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꿈을 쫓아 살아왔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지도 못한 것 때문에 후회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시절의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습니다. 

 

 

특히 사형선고라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고, 절대의 절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게 특히 충격적인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사를 보고 추측컨데,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닐까? 지독할 정도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승윤에게 이런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삶에 상당한 무게를 갖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런 추측도 해봤습니다. 방구석에 갇혀있던 시기라 자신의 모습에 절망했을 수도 있고요.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ㅡ 그와 가까운, 그와 비슷한 어떤 사람들로부터 현타가 올만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당했다고 말할 정도니. 아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절교의 선언을 들었거나, 그의 음악세계나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혹독한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났지만/ 난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 ㅡ 자신들만 야훼에게 선택받은 민족, 도는 선민이라며 주장하며 독점권을 주장했던 유대인의 종교에서 벗어나 인류 모두의 종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구약의 야훼와는 달리 모든 이들의 원죄를 대속해주기 위해, 그래서 인류 모두가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날에 모두 다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불리는 최고의 신, 성부에게는 모든 인류가 다 선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우뚝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수의 엘리트만 독점해온 라틴어에서 벗어나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세 번째는 서유럽을 지배해온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선교사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선교가 서유럽 강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선봉에 서서, 식민지 지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켜준 것입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예수의 부활이 절대적입니다. 그가 야훼의 아들이자 성자로써, 무엇보다도 모두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그리하여 인간으로 죽었지만 신으로써 부활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또한 충분히 긴 시간이 흘러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 예수의 재림으로 깨어있는 모든 이들이 최후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도 또다른 이유입니다. 최대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노력이 천국으로 가는 보증수표임을 밝힘으로써 신자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과 지복한 삶을 약속한 것까지 더해지면서. 

 

이승윤씨는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한 최초의 인간이자 신으로써의 예수와 한낱 인간인 자신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형선고를 당한 자신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재심을 청구하진 않았어/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해/ 피고인석엔 다신 앉기 싫어 ㅡ 나 또한 부활하고 싶다고, 다시 말해 사형선고가 잘못된 판결이라며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지요. 현타가 대단히 심했나 봅니다. 사람인지라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한 노릇이지요.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수의 부활에 버금갈 정도로 힘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돌리는 일이란 여간해서는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노력이 재심법정의 피고석에 다시 앉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재심판사를 설득하려면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잘못됐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니 피곤한 일이겠습니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재심판사는 1심판사의 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어차피 내 진술을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넌 축배를 들 테니 ㅡ 사형선고가 잘못됐다는 판결임을 밝히기 위한 자신의 진술은 어차피 판사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 자신이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호처럼 배심원단이나 판사를 설득한다고 한들 이미 예단을 가진 그들은 또는 그는 사형선고가 정당했다는 반대 논리로 활용해 자신의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승리의 축배를 들 테니까, 소크라테스에게 강권된 독배처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ㅡ 똑같이 사형선고를 내릴 재심판사와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1심판사, 즉 자신을 법정에 고발한 몇몇 마음의 당사자들이 내 죽음의 형장에서 이슬(자신이 흘릴 피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승윤 자신의 마음 고생이겠지만)을 가져와 축배를 들고, 그렇게 취한 상태에서 심장까지 도려내기까지 할 것이므로. 그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이들은 심장이 도려내진 자신을 현장에 묻어버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최종적인 승리를 건배와 함께 내릴 테니까.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ㅡ 그렇게 버려진 자신을 위해 엄마가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마당에, 그것도 재심을 포기한 상황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행복해져야 하리라. 그것이 그들의 사형선고가 잘못된 것임을 증명할 것이기에.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성을 말하며, 도망가라는 제자와 친구들의 간청도 물리친 채 배심원들이 내린 독배를 마셨던 것처럼.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ㅡ 이승윤도 결심했다. 그렇게 하겠다. 죽을 만큼 살아서 행복해지겠다고. 이때의 처절한 경험이, 그 쓰라린 기억이 이승윤으로 하여금 JTBC 싱어게인에 도전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승윤의 공식인터뷰와 비교해보면 이것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때의 사형선고가 그로 하여금 조금 더 유명해져 행복해지겠다는 결심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테니.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나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살아갈 거야 ㅡ 미련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살아갈 거야. 엄마의 부탁대로 죽을 만큼 행복해질 거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youtu.be/Aba81z683UI

 

 

 

스포츠 채널로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정지한 TV화면에는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 30번으로 불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었다. 공연을 하기 직전의 가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을 푸는 경우는 많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참가자는 처음 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생경함과 연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부르겠다는 노래라는 것이 이런,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이란다.

 

 

뭐지, 이건?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몸을 관통해갔다. 리모콘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청년의 성대에서 튀어나온 노래라는 것이... 그랬다, 충격 그 자체였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솟구쳐 제멋대로 온몸을 휘졌더니 어마어마한 전율로 자라나 나를 압도했다. 아니, 집어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그 청년의 압도적인 열창에 빠져들었다. 

 

 

청년이 보여준 몰입도와 무대를 폭발시킬 듯한 그 퍼포먼스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낸 노래가 청년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춤사위가 청년이었다.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은 그렇게 청년의 것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을 동원해야 청년의 무대에 걸맞은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랬다, 그 몇 분의 시간이란 초대형 가수를 넘어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승윤이란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러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이승윤의 열창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땠을까? 만일, 정말로 만일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동안의 시간 지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승윤의 치릿치릿뱅뱅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시사와 시대에 관한 치열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독서량으로도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유튜버에 불과했는데, 아고라의 논객으로 활동할 때와는 완벽히 다르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30호로 불리던 무명의 이승윤을 천둥벼락처럼 만났습니다. 파당정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고민과 주저함을 한방에 날려주었습니다. 사막을 헤맬 때난 느낄 수 있는 갈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한 달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은, 달콤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한 달이란 시간이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그들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녹화를 마친 영상에서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차분해졌고,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통신사업에서 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책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단 한 시간도 편할 수 없었는데 제가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승윤이란 청년에 흠뻑 빠져 덕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팬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제게 보내준 한아름의 선물이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12년 이상 저를 지켜본 독자분들은 늙은도령이 미쳤구나, 마침내 맛이 갔구나. 죽을 듯 죽을 듯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쳤습니다. 네, 미쳤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이승윤이라는 청년에게 미쳤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전율에 빠져들었던 노래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조금만 쉬어갈게. 노래 가사처럼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렸으니까. 잠시만 쉬어갈게, 물 한 모금 마시며. 엄마의 대한 그리움도 물로 적시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형이상학적 죄의식도 물로 달래가며.        

  1. 제니 2021.02.17 16:03

    제 마음을 멋지게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윤 가수님 꽃길만 걸으시길 기도합니다

 

아직도 어젯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졌던 떨림과 흥분과 감동이 온몸의 세포에 여진의 진동처럼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온 코로나19 펜데믹의 장기화로 모든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치고 감당하기 힘든 우울과 해소할 수 없는 분노로 힘들어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떠났고, 남아있는 모두가 힘겨웠으며,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지난 1년 여는 일상의 소중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고, 많은 분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우익 자유주의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을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인권과 자유의 억압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인류 공통의 방역대책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과학적으로 0.00001%의 진실도 들어있지 않은 백신음모론으로 지구 차원의 집단면역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간이 죽음을 대면하는 인간심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의 단계부터, '뭔라도 해야 한다'는 '협상'의 단계를 거쳐 '사태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쏟아붙는 '분노'의 단계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우을'의 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수용'의 단계는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도전을 극복했기에, 그랬듯이 이번의 위기도 이겨내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들고 하나씩, 그렇게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사회, 국가, 지구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헌데 전염력이 2배 이상으로 올라갔고 치료기간도 훨씬 길어졌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치사율도 높아진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펜데믹 종식이 아닌 코로나19와의 동행이라는 엔데믹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이 미증유의 위기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만능의 백신 같은 뜻밖의 선물을 들고나온 '방구석 음악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웃사이더 무명 특유의 언더 가수였고,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의 경계에 갇혀 성공한 가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배아픈 무명의 천재 아티스트였습니다. 그의 재능은 하나의 장르에 가둬놓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고, 특정 장르로 묶기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고, 그 이상의 생태계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였고, 그럼에도 완성된 천재의 전형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맹폭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능력주의 예찬은 대대로 세습되는 특정 집안이나 이익집단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온갖 경우의 불평등한 탄생 때문에 능력을 키우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배제와 차별의 장벽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칸트가 불평등과 양극화가 공고해진 작금의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이승윤의 무명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은 고사하고, 기회의 평등마저 주어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배제와 차별의 높은 벽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진입의 첫 걸음부터 갈 수 있는 길이 모두 다 막혀있는 청춘들에게는 더욱더 잔인한 배제와 차별의 거대한 벽입니다. 능력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도전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성공으로 가는 모든 길에는 갖가지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그래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장년과 노년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커녕 앞선 세대들이 남기 온갖 이름모를 빚들까지 떠앉아야 했을 뿐입니다. 희망이 절망스러운 상태에 빠진, 그래서 희망조차 가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승윤이라는 방구석 음악인은 뜻밖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며, 세대간 갈등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 치유와 해방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춘은, 그리고 저 같은 꼰대들까지 이승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빠져들었으며, 따라불렀고, 전율했으며, 주체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가 웃으면 같이 웃었고, 그가 울먹이면 같이 울먹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배제와 차별의 해소였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공정한 기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패자부활전 의미가 강한 싱어게인을 통해 그가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갈수록 커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불평등과 한낱 감기 바이러스에 무너져내리던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의 상위 라운드 진출과 탈락, 재진입을 거쳐 최종 우승으로 막을 내린 파이널 무대가 우리에게 제공된 무대이자 우승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승윤처럼 성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내가 했듯이 너도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우리 함께 가자, 명왕성으로! 그곳이 사막인들 우리가 함께 하면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승윤의 노래와 우승이 이 시대의 모든 문제점들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끊어지고 고립된 관계의 복원이자 일상으로의 돌아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승윤과 싱어게인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도전과 아름다운 경쟁, 멋진 연극 같은 피날레는 우리로 하여금 '이 고난과 위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치유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적인 것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써의 이승윤 현상이 탄생하게 이르렀습니다.

 

 

현상으로써의 이승윤과 싱어게인 참가자 모두로 해서 우리는 치유받았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기에 현상으로써의 이승윤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고, 우리는 그의 손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잡은 것이지요. 그렇게 이승윤과 우리의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모두를 리프레쉬 시켜준 이승윤은 말할 것도 없이 싱어게인 참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승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말했듯이 싱어게인 스태프 모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청춘에게, 아니 모든 무명인과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기획력에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긴 장마 뒤의 첫 햇살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은 이승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싱어게인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야기들로 해서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습니다. 첫 시즌이 끝났다는 아쉬움은 두 번째 시즌의 기다림으로 변할 것이며, 공연현장에서 이승윤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g7wMFk_RTfw     

 

  1. 장선영 2021.05.10 16:12

    저도 생전 처음 가져보는 연예인?에 대한 이 폭발적인 감정이입이 당황스럽고, 심지어 힘들기까지해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의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내 인생에 대한 위로,격려,희망 그런 것?
    간만에 끓어오르는 이 에너지를 어찌 다시 내게 돌릴지 고민이 됩니다.

 

 

이승윤이 JTBC '싱어게인' 제작진과의 공식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가 싱어게인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인생의 대반전이 이루어진 순간, 그래서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가수로 역전된 상황까지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제가 이승윤 못지않게 파보고 싶었던 63호 이무진에 대한 언급과 새로운 우승후보를 떠오른 29호 정홍일, 향후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요.

 

 

이승윤은 인터뷰에서 나 이렇게 노래하는 뮤지션이야, 대중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뮤지션이야, 좀더 많은 분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존재를,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노래보다 앞설 수 있기를 바라서, JTBC 싱어게인에 참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음반을 낸 뮤지션만 참가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은, 패자부활전 같은 열린 기회로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로써의 치릿치릿뱅뱅, 매 무대에서 최고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번호로 불리던 무명과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역전, 그래서 값질 수밖에 없는 싱어게인, 악보도 볼줄 모르고 근본도 없지만 이제 시작된 자신의 음악인생 제2막, 멋지게 이어가겠다는 다짐,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향후 더 나은 결과물과 창작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함으로써. 

 

 

제작진들의 진정성이 느껴졌고ㅡ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듯이 그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없고, 방송국 차원의 돈벌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해도ㅡ무명의 뮤지션들을, 그래서 이름보다는 번호로 불려야 했던, 이름없는 가수처럼 노래 뒤에 이름이 겨우 붙을까 말까할 정도의 자신과 같은 처지의 뮤지션들을 사려 깊게 대해주는 것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신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성공한 선배 음악인들ㅡ자신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해 배아프고 시기를 했었는데ㅡ그들의 성공을 인정하는 것에서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이승윤을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들의 재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그 성공들에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에 꽂힌 아웃사이더에서 세상의 밝은 면도 볼 수 있는 인사이더로써의 변화를 말해줍니다.

 

  

새로운 우승후보로 떠오른29호 정홍일과 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았던 63호, 이무진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싱어게인 측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더욱 많이 끌어야 하기 때문에 슈퍼스타로 떠오른 이승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천재성을 홍보하도록 한 것이지요. 실제 저도 이무진에 대해서는 별도의 영상으로 다룰 생각입니다. 2000년대 생으로 높은 수준의 실력과 폭발력, 무대를 즐길줄 아는 대범함, 그만의 음색과 노래 소화 능력까지 모두 다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승윤의 무명성 지구인과 이번 인터뷰를 함께 놓고 보면 필연보다 더 필연적으로 보이는 평행우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번 영상에서는 이승윤이 공식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것을ㅡ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믿는, 아니 진심에 가장 가깝다는 전제 하에서ㅡ하나하나 분석해봤습니다. 그가 했던 말의 행간에 숨어있는 것,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후의 음악인으로써 자신이 걸어야 할 마음자세 등에 대해 찐팬의 일인으로써 조심스럽게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완성해봤습니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하나도 다룰 생각입니다.

 

  

https://youtu.be/9zBkgnH1CrE

 

  1. 참교육 2021.02.08 06:15 신고

    코로나로 공중파들이 나라를 뽕짝세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뽕짝화...괜찮을까요?

    • 늙은도령 2021.02.09 18:00 신고

      저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다만 홀대받던 가수들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대중문화란 유행을 타는 것이고 돈이 되면 누구나 달려붙으니 그런 과정이 하나라고 봅니다.
      비대면 세상에서 극도의 우울과 분노로 힘든 사람들이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이런 현상은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조차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때가 되면 행동할 것입니다.
      기레기들의 조작과 왜곡, 선동에 놀아니지 않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무명성 지구인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ㅡ 마치 싱어게인에서 번호로 불리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다른 이와 구별되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명의 서로움. 그래서 명성이 없으면 이름조자 가질 수 없는 걸까, 아니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는 것일까? 비상할 수 있는, 패자불활전과도 같은 천재일우의 경쟁의 장이라도 해도 너무나 잔인한 63호와의 경쟁,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 그래서 빅10에 들어야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무명의 설움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ㅡ 여기의 왕은 권력의 상징, 신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작은 돈으로 자신을 부리는 행사 주최자일 수도,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으로 상징되는 모든 이들, 그런 모두가 인정받고 평등한 그런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을까? 태양계의 마지막에 자리한 명왕성에라도 도망갈까? 아, 그렇지! 명왕성도 태양과, 그 사이의 행성들과 중력으로 연결됐다고 알려졌던 명왕성이 보다 발전된 측정 기술로 그의 궤도를 살펴보니, 태양이 아닌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에는 다른 항성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 밝혀져 태양계에서 퇴출됐으니 갈 수도 없겠지. 그 또한 이름을 상실한 것과 같으니까. 

 

여기서 잠깐 뉴턴의 중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ㅡ 그래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처럼, 초속 30만Km의 빛에 올라타 명왕성까지 가보자. 상상은 자유니까. 안녕, 명왕성. 난 너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에게는 이름없는 행성일 뿐 지구에서 온, 무명의 가수인 이승윤이야, 헌데 기억할 정도는 아니니 잊어도 돼, 내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 태양계에서 떨어져나간 너도 지구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갈 테니..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ㅡ 현재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부분, 정규교육이던, 가정교육의 이름이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진 빚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태산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위에 앉아, 실은 실이되 이름도 없는 무영실로 빚 때문에 자꾸만 구멍나고 사라져가는 청춘의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라도 해야 이자라도 갚을 것 같은데, 천재소리 듣는 형과는 달리, 대단히 유명한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놈이니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라도 만든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네. 그 절망감과 비참함이란.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ㅡ 이땅에서, 이 시대에서, 청춘의 삶이란, 삶은 달걀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곳이라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것 아니야? 숨이 턱턱 막히고 아무도 함께하는 이가 없는, 꽃 하나 나무 하나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라 해도,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심지어는 달 그림자도 있는데, 게다가 사막을 횡단하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오아시스 같은 샘이 숨겨져 있지 않아도 사막은 모래와 언덕과 바람과 달 그림자로라도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일까? 실패한 청춘들만 추방되는 지옥 같은 곳인가? 설사 오아시스가 백일몽 같은 실제가 아니더라도.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사막아, 아녕. 난 이름도 없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는 무의미한 발자취 정도에 불과하니 기억하지 않아도 돼. 이름 모를 빛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고 무명길로 기우고 기워도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다시 말해 희망이란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지게 된 빚더미 위에 앉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도, 희망이란 이름의 빚더미의 미래란, 무명실로 기워서라도 잡고 싶은 희망이란 빛은, 무엇으로도 잡아둘 수 없으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ㅡ 무명성 지구에는 이름없는 생물의 종만도 천만 개체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만들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무의미하고 숨막히는 삶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다구치니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인가봐? 성공해야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무명실로 정체도 모를 무엇인가 기워도 되지 않는, 막막한 공간에 갇혀있는 청춘의 삶이란, 아니 모두의 삶이란 광내거나 아니면, 성공을 포기한 채 도망가서 분노나 포출하는 그런 것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해서 신에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소명을 준다는 신에게 나의 이름을, 내 존재 이유를, 삶의 가치를 물었더니, 이런 신이 말하길 난 이름도 없다네. 난 신의 계획 속에 없었던 그런 버려진 존재일까? 나는 카인의 후예일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이름이 없다고 할 경우입니다. 신은 절대자이고 모든 것들을 주재하며, 그래서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둘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뜻으로써 자신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승윤에게는 신도 이름이 없으니 모든 이름없는 청춘들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자, 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명왕성도, 사막도 살만한 곳이 됩니다. 청춘들에게 지금의 삶이 삭막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 되지요. 척박한 곳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tps://youtu.be/o5_YYIfR7GE

 

 

서양철학만이 아니라 동양철학, 특히 초기불교(근본불교)의 권위자인 프랑스 철학자들인 로제 폴 드루아와 모니크 아틀랑이 공저한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는 코로나19와 전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책입니다. 책의 시작은 '희망은 절망스러운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철학은 언제나, 과학이나 종교도 물론 정확한 질문이 있을 때만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일람한 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없이 사는 것을 택할 정도로 희망을 잏어버렸다고 합니다. 인류를 멸종으로 이끄는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보그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고삐풀린 폭주, 극단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드는 경제구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국민의 안전과 이익,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의 타락, 민주주의 지킴이이자 권력의 감시견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자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 각자도생에 빠져든 초개인주의,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의 붕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청춘의 절망 등까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상처만 받을 것이 뻔한 현실에서 아예 희망을 갖지도 않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 코로나19 팬더믹이라는 경험하지도 막을 수 없었던 최악의 위기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책이 출간될 때는 없었던 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절망을 불러오는 것들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좋은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나쁜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커진 것이지요. 그것이 진화론이던, 창조론이던, 인류가 지구에 자리잡은 이래 지난 1년 여는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참혹한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청춘부터 코로나19의 희생자들까지, 모두가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란 불가능합니다. 서양에서 희망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으며, 현재 모두가 이해하는 희망의 뜻으로 변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판도라 상자를 언급한 후, 우리가 다시 희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절망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자고 합니다. 

 

 

이런 엄혹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마디로 희망의 반댓말인 젊망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무차별적인 분노에 휩싸이지 말고, 무엇보다도 삶을 포기하지 말자며, BTS(방탄소년단)이 모든 인류를 향해 따뜻한 위로의 노래를 전해주었습니다. 긴 가뭄을 끝내는 달콤한 비처럼, 오랜 장마 끝에 첫 번째 햇살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녹이는 따뜻하고 상쾌한 봄바람처럼 방탄의 노래, 'Life goes on'이 희망을 잃은 우리에게 이겨내자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에 나온 내용들은 영상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먼저 방탄의 노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자, 함께 가보실까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말했는데, 삶은 계속돼야 한다고 노래한 방탄의 'Life goes on'에 대한 설명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DoNp3wg5484

 

 

 

구겨진 하루를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 여기저기서 채이고 밟혀 구겨진 하루, 너무 많이 구겨져 그대로 잠들 수 없으니, 매일 밤 다려서 다시 펴지 않으면 내일 또 일어날 수 없을 테니..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를 적었던, 제대로 살고 싶지만, 최소한이라도 비상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초라한 하루, 그래서 거짓말이라도 변명해야 했던, 희망했으므로 더욱 더 커진 절망 속에서 구구절절한 일기란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이 일단이라도 드러나리라.. 

 

거짓말이 시들은 어스름에/ 쉬이 머물던 약속은 먼저 자릴 뜨네요/ ㅡ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는 일기였기에 어둠이 깊어가는 그 어스름에는 시들어버리기까지, 자신이 자신에게 했거나, 타인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은 잠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성에가 낀 창문에 불어 넣은 입김은/ 생각보다도 금방 식어 버렸죠/ ㅡ 밖으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래서 창문에는 날카롭게 갈라진 성에가 끼었는데, 별빛이나 달빛이라도 보려고 자신의 입김으로 성에를 녹이려는데, 초라한 하루를 선사한 꽉막힌 현실에, 그 냉정한 한기에 자신의 입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리라, 더욱 두꺼워졌을 성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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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심죠/ 내가 이어 붙인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렇게 야위어 가는 내 마음은 이 넓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심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절망, 매일같이 구겨지는 하루하루, 성공은커녕 한 움쿰의 마음조차 간직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기우고 이어 붙여 보았지만, 화창해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이 광할한 하늘 아래서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ㅡ 너와 나, 우리는, 청춘이라는 특권이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기만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향해 달려온 것일까요? 너와 나, 우리가 키워온 것이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른 것일까?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ㅡ 창에 성에가 낄만큼 추운 것을 고려할 때, 온도가 시작되는 곳이란 희망의 원천이거나 생명의 기원 같은 것일 수도, 너무나 적은 1%의 희망 때문에 99%에 이르는 압도적인 절망을 참아내며 매일밤 다려서 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던 초리한 하루로 온도가 시작되는 곳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바라보고 갈구했던 곳인데, 그곳을 향한 시선마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절망의 크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보여.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까지 잡았던 손을/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렸어요/ ㅡ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이란, 살을 가르는 상처가 전해주는 줄 정도의 아픔까지 참아가며,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손마저, 그 인내의 고통마저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릴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닐까? 1%의 희망이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너와의 손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포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은 무대가 아닐까?

 

손장갑을 끼지 않아도 움켜쥘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ㅡ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누구도 내 꿈을 알아주지 않아도, 1%의 희망마저, 그 꿈꾸는 마음마저, 너무 일찍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성에와 대비되는 손장갑, 손에 난 상처는 살을 에는 한기로 더욱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손장갑을 끼지 않고 무대를 향한 꿈을 놓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네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묻죠/ 네가 이어 받은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지칠대로 지쳤고, 그래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 갈수록 야위어 가는 너의, 어쩌면 이승윤의 동료일 수도 있고, 무대를 향한 그만의 꿈일 수도 있는 너는, 그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너무 쉽게 손을 놓았으므로, 그것이 내가 흘린 눈물을 이어 받아 함께 울었던 너의 눈물은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이 화창한 하늘 아래에 어디에? 내 눈물을 묻는 곳, 바로 그 옆에라도..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영상에 좀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글로도 충분히 풀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척이는 허울

 

 

잉크가 마른 경전 위에는 완장을 두른 경구들/ 어머 난 난시가 있어/

 

(모든 일신교의 특징이 최고존재자이자 전지전능하며 절대자이며 창조자이고 모든 우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이런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주장을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지요. 최초의 원인으로 소급해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충먼하고 완벽해야 하는 존재로 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에 선행하며, 영원불멸이며, 어디에나 편재해 있으며, 모든 일어나는 일들에 자신의 뜻이 배경으로 자리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잉크가 마른 경전은 모든 신자와 비신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믿음을 강요하지요, 마치 완장을 찬 것처럼.   

 

모든 종교의 경전들 만큼 수많은 경구로 넘쳐나는 책들이 니체의 <짜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입니다)

 

헌데 자신은 난시라니, 무조건적인 필연적인 믿음과 복종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보면 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전체 세상이 아닌 성경과 성전에서만 절대적이고 구원자이자 사랑받고 구원을 주는 존재인지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더욱 많은 기여를 하려면 성서와 성전밖에서 사랑과 구원을 주는 실천가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니나며 묻는 것이 나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들고나온 성서제일주의, 성서와 예수무오류설 등도 완장을 두른 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잉크가 말랐다는 것은 각각의 종교가 오래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그런 고집불통으로서.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뒤척이는 허울은 완장을 두른 경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난시이니 경전이 아마도 뒤척이는 허울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고요 완장을 두른 경전은 너무너무 싫으니까. 지척에는 조울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마음 상태가 아닐까요? 뒤쳐지는 너울은 믿는 자들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 않고 지상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최근의 일부 기독교도들처럼, 또는 경전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안은 채 자신의 이익과 탐욕에 물든 광신도들로 인해 서울이 미쳐갈 수 있고, 믿음 자체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각자도생과 욕망들의 충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빛을 잃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돌아보게 하는 반성과 성찰 기능으로써의 거울의 역할은 쓸모없어진 것이지요. 이것만 넘어서면, 그래서 위층에 오르면 거기는 햇살 가득한 곳일 수 있지요. 아니면 해,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신은 아랫층, 즉 현실을 방관하고만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신이 함께한다는 데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악하고 추한 것들이 널려 있으니...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이런 이유들로 해서 미쳐가는 서울에서, 그 탐욕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또는 종교적 광신에 휘청이는 각각의 개인들을 살펴봐 달라는 것 같습니다. 눈 감았다는 것은 비신도들을 말할 수도 있고요. 

 

토성의 고리 손가락엔 안 맞아/ 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 어머 난 얼굴도 작아/ 어쩌면 신이, 맹신을 요구하는 신이 이승윤군에게 영광의 반지, 즉 토성의 고리를 준다고 해도 맞지 않으며, 천체, 우주를 접붙인 왕관을 씌워준다고 해도 자신은 얼굴이 작아 맞지도 않는다는 것, 즉 완장 두른 경전을 따를 순 없다는 것,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시대의 품 속에 얼어붙은/ 우린 아마 여기서 얼어죽을 개인/ 얼어죽을 내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품 속에서 얼어붙은 채,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도, 세속적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해 천국이 아닌 여기서, 이 지상에서, 미쳐버린 서울에서 얼어죽는 것이지요. 지옥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인 이 서울에서. 청춘을 헐값에 가져다 쓴 후에 냉정하게 버려버리는 거대도시의 냉혹한 본질에 개인은 참혹하게 얼어죽는 것이지요. 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로 쓰인 내일에 얼어죽을 것이니 절망의 상태에서 죽음을 맡는 것이지요.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관광지 사람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는 이 도시에서/ 난 살아 아니 사실은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그래도 나는 살아/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고대로마의 도시들이나, 그리스 아테네 등을 보면 그 역사적 명성 때문에 살아는 있으나 좋았던 시절이 모두 다 사라진 퇴락한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아있지도 않은 도시가 된 것이지요. 이승윤군이 말한 관광지는 정확히 확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난 이곳에서 살고 있어, 반쯤은 죽은 채로, 반쯤은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생의 명맥만 유지한 채로, 과거의 영광에 족쇄 채워진 상태이지만 그렇게 지옥에나 있는 듯이 살아 있기는 해 

 

좋은 자린 전부 역사가 차지하고/ 우린 무덤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어제를 파낸 자리에 오늘을 묻어야만 해/ 그래야 내일이란 걸 살아/ 그래야만 내일이란 걸 살아/ 좋은 자리란 역사의 유물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역사의 무덤, 폐허처럼 쇄락한 이곳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으며,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후대의 사람들은 최악의 삶과 행복을 바쳐야 한다는 뜻, 역사의 유물들이 던져주는, 즉 관광객들이 흘리고 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뜻이지요. 많은 관광지들이 유물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까지 더하면 역사의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힘겨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역사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쓰는 돈 덕분에 먹고살 수 있으니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각종 유물들도 우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빚을 지기란 과거도 마찬가지. 게다가 후대의 사람들을 과거의 영광을 얘기라도 하는데, 그래야 도시의 유물도 관광객들을 맞을 수 있는데, 죽은 유물들은 후대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기억해주기는커녕 우리는 잊혀진 존재야, 관광객의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역전된 관계, 주민이 주인이 아닌 곳, 잠시 동안 들렀다 가는 관광객이 그래서 주인이지.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라는 표현은 정말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입니다. 관광객 또는 관람객에게 팔 그림이나 안내글, 역사책 등에 이곳의 주민들이 담기는 정도가 허용된 삶의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물관 앞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친구녀석이 묻더라/ 세기가 다섯 번을 더 지나도/ 나 같은 놈은 여전하겠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걸려 있고/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 널려 있지/ 저 안에 자리는 안 그래도 얼마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헐값에 팔아/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팔아/ 관광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희망 없는 도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명성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시, 그곳의 주민으로써 화려한 비상과 절박한 탈출이란 불가능하겠지. 우리의 자리란 없어. 벽의 여백엔 관광객을 위한 작품이 걸려있고, 유적지에서 나오면 기념품들이 즐비하지. 그런 공간이 후대의 사람들이 삶을 가꾸어가야 할 공간인데 그것도 주민의 몫은 아니지. 헐값에 팔밖에야,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파는 영겁회귀의 윤회에 갇혀버린 것이지.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비록 더럽고 누추한 도시였지만 셈족의 모든 종교가 이곳을 거룩한 성지로 만들어놓았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과거의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또한 역사의 전통을 실질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해마다 이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치적인 미래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고 싶어 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의 단합된 힘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거의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치 호텔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처럼 아무런 개성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오가는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www.youtube.com/watch?v=AOL2QknvnIQ

 

 

 

 

 

영웅수집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아마도 나의 영웅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올곧고 위대한 건지/ 끝까지 나는 따를 거야/ 다만 내가 원할 말만 영원히 하면 돼/ 걸음걸이도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 마/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에 가까워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칸트가 실천이성 비판에서 말했던 정언명령처럼 사는 사람, 즉 깊은 이성적 성찰과 그에 따른 정언명령처럼 위대하고 선한 자유의지에 따라 올곧고 위대한 인간한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따를 거라고 다짐한다.

 

 

다만.. 바로 여기서 이승윤이 이번 가사를 쓰게 된 이유가 나온다. 아마도 자신이 찾아 헤매던 영웅으로 보이는 그가 내가 원하는 말만 해주면 돼, 그것도 영원히 해주어야 해. 그래야 영웅에 대한 추종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될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웅의 걸음걸이, 즉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이 이승윤이 찾아헤매던 우상으로써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헌데 이런 영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누고도 완벽할 수 없으며 이승윤만을 위한 그런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얼마 동안 그를 숭배했지만,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실망했어. 그래서 부숴도 좋아,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된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숴도 좋아. 

 

 

이제야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나의 영웅이야/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시대가 원하고 있잖아/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을 걸/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일 거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그렇게 영웅들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찾아 헤매된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것도 마지막 나의 영웅으로. 그런데 내가 정말로 찾던 그런 영웅은 아니지만, 시대가 원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나도 따를 밖에야. 그렇게 시대가 원하는 영웅이니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지. 그의 모든 것은 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해. 심지어는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만큼.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한 것처럼 에고와 이드 위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룬 그런 초자아에 의해 시대를 이끌고 있으니까. 또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세계정신에 이른 위대한 영웅이니까. 시대가 원하는 그런 영웅이니 내 진열장을 차지할 수 있어. 누구도 손대지마. 마지막으로 찾은 영웅이니까. 어, 그런데 자세히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완벽해 보였던 이 영웅에게도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상징했던 영웅마저 완벽하지 못하고 바랜 흔적이 있네. 결국 이따위 영웅이라면 부숴도 좋아.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법이니까. 

   

 

우릴 위해서 부서진 영웅을 위해 묵념 한번 하고선/ 관짝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다 완성이야/

 

 

빛 바랜 영웅이자 흠 있는 미완성이지만 우릴 위해서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영웅이니 묵념은 한 번 해줄 수 있어야지. 그는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의 관짝을 뜯어 영웅의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하지만, 그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슬퍼할지도 모르니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프랑스혁명을 이끈 여신의 모습처럼, 영웅의 초라한 주검에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영웅의 전설은 그것으로 모두 다 완성되는 것이지.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인용).

 

 

(전설이 탄생했단 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너는 그냥 왕관을 쓰고나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될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널 완성 시켜 놓아 준 건 나니까/ 전리품은 전부 내 진열장에다/ 네 자리는 없어/ 너는 거기까지야/ 그러게 흠집 없이 완벽하지 그랬어/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영웅의 전설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우주인 우리의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고 숭배받는 것이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유물로부터 영웅을 건져올려 시대정신을 상징하도록 만든 것도 우리이므로, 그리하여 너는, 짧은 동안의 영광을 취했을 뿐 20대의 나이로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을 세계(백인이 지배하고 경험하는 한계로써의 서유럽을 말함)에 퍼뜨리려고 했으나 끝내는 황제라는 독재자가 되버린 나폴레옹의 성공과 좌절처럼, 너는 황제의 왕관을 쓴 채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되는 것이야, 얼마나 허망하고 무력한가! 영광은 없었을지언정 죽음으로 해서, 즉 성공과 완벽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무덤 아래서 잠자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넌, 영웅은 내 창조물이야, 너의 미완성을 완성으로 만들어준 것은 나의 의지이니까, 해서 전리품은 이제 모두 다 내 진열장에 놓아둘 거야. 실패한 너에게는 실존할 자리조차 주저지지 않아, 성공을 지속하지도 상속하지도 못했고 전설 속에서만 살아서 홀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그것까지만 허락된 거야, 그러게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완벽한 성을 쌓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모든 존재하는 사물과 운동의 원인의 최초의 원인이면서도 자신은 어떤 원인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실존하며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불사의 영역에 오른 절대의 유일신처럼, 어떤 흠집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넌 나의 진열장에 놓을 여러 영웅 중 한 명일 뿐이야, 게다가 넌 너무 오래돼서 바랜 흔적까지 있어, 누군가에 의해 부서져도 별로 아쉴 것도 없지.    

 

 

이승윤이 영웅수집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실제로 존재했던 모든 영웅이란 한낱 허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가 말한 영웅 중에 예수도 들어있다면 유명 목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청춘 특유의 반발이었을 수도 있다. 제가 20대 시절에 죄의식을 강요해야 비로소 돌아가는 가는 천주교의 교화방식이 너무 힘들어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을 이승윤도 비슷한 시기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youtu.be/3KKb6RmDSGo

 

 

  1. 2021.02.06 23:2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1.02.07 04:36 신고

      하하, 젊은 시절에 그럴 수도 있지 않았나 가사만 보고 추측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사를 보면 이승윤씨도 일시적이나마 방황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다른 영상을 올릴 때 님의 댓글의 내용을 언급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승윤의 자작곡 중 3편을 선정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승윤이라는 가수가 얼마나 잘 준비된 아티스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의 작사는 작곡 능력과 소화력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미적으로도 이승윤의 가사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인간을 따뜻하게 끌어앉을 수 있는 탁월한 아티스트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픔과 슬픔, 고난과 고뇌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면서도 아웃사이더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성장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니 대단할 뿐입니다. 보다 자세한 가사 분석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보다 말이 좋은 분들은 영상으로 곧자 넘어가도 되고요.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삶은 원일까/아니면 구일까/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근데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근데 나는 마름모야/여전히 삐뚜루 서 있지/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기도보다 아프게ㅡ세월호참사 아이들을 위한 노래

 

 

단 한줄도/쓸 수 없던/말들이 있었어

​기억한다는 말과/함께한다는 말은/펜보다 무거웠어

​눈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에 들었던 하늘도/닦아내 버리면 자취를 감췄으니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마치 비밀인 듯이/모르고 팠던 건/매일 태어난 아픔들이야

​울먹이며 지는 석양아 이제 나도 서 있을게/네게 모든 어둠을 맡겨 놓지 않을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노래할게/기도보다 아프게/기억할게

 

 

 

 

게인주의

 

 

헤이 미스터 갤럭시/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착각은 말랬지/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별과 별 사이엔/어둠이 더 많아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헤이 미스 무지개/뭐 그리 혼자서 숨어 있어

폭우가 그치게/기다릴 필요 이젠 더 없어

얼굴을 내밀어봐/넌 이미 전 우주야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

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

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어느 결혼식 축가와 나머지 곡들의 가사 분석은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_0j9Im6PNgw

 

  1. 참교육 2021.02.03 07:47 신고

    저도 싱어게임 가끔 보는데..
    이친구 눈여겨 봐야겠습니다...ㅎ

 

대단히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위로와 행복의 가사이자, 소우주에 비견될 만큼 소중한 개개인의 존재론적 가치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한 선한 정신을 전해주기 위한 BTS의 소우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승윤의 소우주는 초대형 팬덤으로써의 아미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승윤의 승리가 올어게인이 아닌 것도 평가와 감상의 차이가 상당한 클 것임을 말해줍니다.

 

마이너 가수들을 메이저 무대로 재호출하는 싱어게인이 탄생시킨 최대어로써 이승윤의 소우주 선택은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스타 탄생의 신화를 쓰고 있는 이승윤이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최고 스타의 곡을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따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승윤의 도전이 대범했음은 이런 위험을 감수했기 대문입니다.    

 

류희열의 심사평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던 것도 이 때문이지만, 심사의원이 아닌 한 명의 팬으로써 이승윤의 도전을 바라보면 그의 천재성과 상당히 완성된 그만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TS의 소우주가 이런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승윤의 도전을 전세계 아미들이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랍니다. 보다 깊은 평가는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승윤 덕분에 BTS의 소우주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게 된 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였고요. 

 

 

BTS 소우주의 가사 :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 Let us shi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70억 가지의 삶 도시의 야경은, 어쩌면 또 다른 도시의 밤, 각자만의 꿈 Let us shine,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O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곳에서, We shinin’,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숨을 쉬어,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에,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린 우리대로 빛나,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리 그 자체로 빛나, Tonight

 

 

https://youtu.be/cWWBQ_oyVYU

 

  1. *저녁노을* 2021.02.02 06:19 신고

    정말..특이하게 부르더라구요.
    늘 응원하는 분입니다.ㅎㅎ

    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21.02.02 06:35 신고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죽을듯이 아파서...
      댓글 남겨주시면 반드시 방문드릴게요.

  2. 참교육 2021.02.02 07:12 신고

    이 친구들 이런 아이디어 그리고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참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민주주의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 중 한 명인 노무현 대통령이 지배엘리트로부터 집요하고 비열한 공격을 당한 이유를 다루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공격받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배엘리트의 열등감은 끝을 모를 정도로 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은 그런 와중에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에 진입시킬 수 있도록 모든 분야의 기틀을 튼튼히 한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를 중심으로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에 대해

  1. 택시 2019.03.09 16:19

    선생님 덕분에 막연하게 들어오던 전설의 소문처럼 느껴졌는데 듣고 있는 순간 못지켜 줘서 미안함에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부디 건강 되찾아서 이젠 지킬수 있는 깨우침의 설파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2. 문재앙 2019.03.29 02:54

    지금 정치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도 노무현 찬양하는 인간이 있다는 게 놀랍군요. 노무현이 걷어 찬 사다리에 깔려죽은 사람 많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기득권이라서 그럴까요? 기득권이면 사다리를 탈 일도 없겠죠.

    • 일베충OUT 2019.04.02 01:15

      이런 일베충

    • Out 2019.04.18 12:06

      아이디좀 보게.. 와서 멀쩡한 척은 다하네

  3. 이상호 2019.04.03 11:40

    블랙리스트가 돌아도, 거기에 자신이 포함되도, 조리돌림이 무서워 고굽척...트윗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비겁자.......

  4. 대한인 2019.09.07 20:25

    2019년 추석명절 천지개벽으로 인간재창조
    1. 남ㆍ북한의 한민족을 중심한 666섭리의 결실은 2019년 추석명절에 천지개벽으로 성사
    2. 작금의 시대에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국가원수들의 전생(前生)과 직관된 사명해설
    출처:모정주의사상원(母情主義思想院, www.mojung.net)
    ※ 본 게시물이 방명록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 삭제하셔도 무방하며 사전 양해 없이 글 올린 점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땅의 기레기들은 최근 며칠 동안 미세먼지가 심각한 이유를 제대로 따진 후 보도해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씌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포 마케팅과 기레기 짓거리를 비판했습니다.

미세먼지 문제의 근원을 살펴봤고,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해결책을 다루었습니다. 



미세먼지로 문재인 대통령 공격하는 기레기들의 비열한 광기 



  1. 별까기 2019.03.07 12:00

    건강도 잘 챙기시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2. 스마일 2019.03.07 14:45

    시민들이 변하지 않는한 기득권자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더욱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죠.
    노짱과 같이 문프의 정의는 그들에게 최대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에 그들은 사력을 다해 끌어내릴려고 할 것입니다.
    일베와 태극기부대와 같은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이들은 이미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살고 있기에 그 어떤 논리로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나 이것 또한 하루아침에 각성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의 반복인듯 합니다.
    신세대들이라도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자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올가미를 벗어버려야만 미래세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깨어있는 지성인들이 목소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늙은도령님의 말씀이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9.03.08 04:07 신고

      지치지 말고 노력해야죠.
      민주주의는 시민의 수준에 따라 전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기득권자의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그런 날을 기대합니다.

  3. 택시 2019.03.09 18:37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만...과거엔 거의 모두가 가난 했기에 품팔이를 하더라도 집에있는 세끼들까지 오라고 해서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진자가 인권비를 덜 주기 위해 외노자까지 끌어 드리는 세상이 되었죠...힘들고 어려운 일을 할수록 세게 줘야 사교육비도 경쟁도 사라질텐데...모두가 이해관계에만 혈안이 되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하고있으니까요..미세먼지 또한 내가 만들어낸 무덤으로 자처를 한 결과물일텐데요
    선생님 견해처럼 각자 스스로 미세먼지를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싯점인것 같습니다

  4. 티트리 2019.03.13 20:18

    방송 너무 잘 들었어요. 정말 유익하고 좋은 방송인데 아직은 홍보가 많이 안됐나 봅니다. 그래도 좋은 방송이니 앞으로 번창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


건강이 악화돼 어떤 글도, 방송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건강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은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유를 미국의 정치상황을 통해 접근해봤습니다. 미국 최초의 비주류, 포퓰리스트 대통령인 트럼프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 미국 주류 지배엘리트의 당면 과제입니다. 그들은 트럼프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막으려 합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다룬 방송입니다.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유

  1. 택시 2019.03.09 17:17

    그렇군요..악의축은..실질적으로 우리의 우방인 미쿡이군요...일본이 대한민국을 잡아 먹고 있을때 미쿡과 소련이 개입하여 북한 남한으로 갈라졌듯이 ...힘없으면 당하듯 ...자주국방 중요하네요



기레기로 회자되는 언론의 타락을 기술적으로 다루어봤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기술의 특성 때문에 언론이 전하는 정보와 뉴스, 콘텐츠 등이 오락화하고 갈수록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되는지 다루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여줘야 할 언론이 민주주의를 망치는 이유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왜 탁월한 지도자인지 다루었고, 이재명의 반민주적 성향도 다루었습니다.



페미니즘을 망치고 있는 워마드나 메갈의 문제점도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에 빠져 위대한 인권운동이자 양성평등과 정치철학의 수준을 높여온 페미니즘을 망치고 있는지도 다루었습니다. 기술을 중심으로 접근하면서도 사회심리학이나 진화심리학적 분석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뇌과학적 접근도 다루었고요. 유튜브방송의 등장까지 갈수록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지는 문제를 기술의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방송 길이 너무 길지만 끝까지 들으시면 많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원 부탁드립니다. 



언론이 타락하는 이유에 대한 기술적 접근


  1. 티트리 2019.02.18 15:48

    방송 잘 들었습니다.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두번세번 반복해서 들어야 겠습니다. 이런 교양있고 지적인 방송을 기다렸어요. 방송 감사합니다

  2. 앨리스 2019.02.21 21:37

    와~~~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도덕적 가치 판단을 내리게 해주셨어요 진리는 어렵지 않고 간결하군요!
    빨리 회복하셔서 잠깐 언급하신 '시베리아~~'이야기도 해주세요!!^^!!
    근데 자꾸 방송이 끊어져서 듣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ㅜㅜ


제가 유튜브방송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목적을 다룬 첫 번째 영상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깨어있는 매순간이 고통과 미열의 연속이어서 자살만 생각하던 제가 수많은 책을 읽고 깊은 성찰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와 노력을 담았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책들을 읽었고 거기서 많은 것들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나누어드리려 합니다.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춘 시민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더욱 좋아지고, 민주주의는 더 높은 단계로 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나라와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이 존엄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으며,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지 않은 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도움없이도 넘칠 만큼 풍요로운 삶을 사는 상류층과는 달리 중하위층의 국민들은 정부와 법률의 도움이 없으면 존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존엄한 삶을 영위하려면 지적으로 무장해 나라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유튜브방송에 뛰어든 이유와 목적을 다룬 첫 번째 영상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방송을 시작한 이유와 목적 


<늙은도령의 세상보기>의 첫 번째 녹화 예고편입니다. 전체 영상 중 일부를 재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4분 정도로 압축한 예고편을 먼저 올립니다. 전체 방송은 금요일 쯤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재촬영을 하는데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더 좋은 콘텐츠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방송을 하는 이유와 목표를 다룬 첫 녹화의 예고편이니 부담없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문프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추세가 더욱 빨라질 수 있도록, 60% 이상을 항상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 첫 번째 녹화 예고편 클릭하시면 영상으로 넘어갑니다.

  1. 슈나우져 2019.02.12 17:13

    목소리 음성이 부더럽고 좋네요.
    본방이 기대 됩니다.

    자막에 오타가 조금 보이네요^^

  2. 와니 2019.02.12 20:10 신고

    본방 기대하겠습니다~ 구독 꾸~욱!

  3. 스마일 2019.02.13 08:58

    헛똑똑이에게 속지 않도록 많은 정보 부탁드립니다.
    방송이 처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차분하게 해 주시는군요 아무래도 체질이신듯^^
    확정편향과 집단극단화는 정보부족과 주입식교육의 부작용이기도 한 듯합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끼리끼리 모여 울타리를 치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죠.
    우물안의 개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기에 다른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으며 이견을 배척하고 급기야 자신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가짜뉴스를 스스럼없이 퍼뜨리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하신 노짱의 말씀이 새롭습니다.
    건강한 방송을 기대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9.02.13 09:47 신고

      네, 사이버세상이 되면서 너무 혼탁해졌습니다.
      이제는 자정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고요.
      양질의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하고, 적절한 규제책도 나와야 합니다.
      교육이 중요해졌고, 도덕이나 윤리, 철학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됩니다.
      우리는 너무 기술의존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4. 2019.02.17 04:10

    비밀댓글입니다

  5. 空空(공공) 2019.02.18 11:40 신고

    음량이 좀 약한듯 보입니다.
    유튜브 방송 개설 축하 드립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첫 번째 방송이 올라갈 <늙은도령의 세상보기>의 인트로 영상입니다. 첫 번째 녹화의 티저영상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는 지식을 나눠드리는 방송과 지난 12년 동안 매일 같이 써왔던 글을 영상으로 대체하는 방송, 이렇게 두 개의 방송을 할 생각입니다. 꾸준한 방송이 되도록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분을 찾아뵐 것이며, 방송 분량이 쌓이면 일종의 지식도서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을 나눠드리는 방송은 제가 읽고 성찰한 것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드릴 것이며, 매주 1~2개의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첫 번째 녹화분에서 제가 방송을 하게 된 이유와 목표,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20분 정도의 풀영상에서는 어떤 사안이나 지식에 대해 통섭적 접근을 보여줄 것입니다. 5~10분 정도의 지식도서관 영상은 풀영상에서 다룬 것들 중 보다 상세한 접근이 필요한 지식들을 다룰 것입니다. 이런 영상들이 쌓이면 지식도서관이 되겠지요. 

 

 

가능하면 매일 업로드하려는 실시간 방송은 지난 12년 동안 글쓰기를 대신할 것입니다. 몇 번의 연습을 거쳐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라이브방송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지식 방송이 이념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라이브방송은 영원한 노빠이자 문파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유시민 이사장이 다루지 못하는 것들을 제가 다룰 생각입니다. 보다 폭넓고 쉽게 풀어낼 것이며, 노통의 재평가와 문프의 성공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링크는 <늙은도령의 세상보기>의 인트로 영상입니다. 스튜디오에 책도 옮기고 방송 장비도 모두 다 갖추었기 때문에 인트로영상을 이제 공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며칠 늦어졌지만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질의 콘텐츠로 찾아뵙기 위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보시고 감상평 남겨주십시오. 구독도 꾹 눌러주시고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는 다 담을 수 없었던 수많은 지식과 정보, 논평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 클릭하시면 유튜브로 넘어갑니다.

 

  1. 별까기 2019.02.12 08:11

    방송 기대됩니다.^^

  2. 봄빛 2019.02.15 17:17

    첫방송 잘봤습니다.
    음량이 작아서 가까이대고
    들었습니다.
    성원을 보냅니다.

  3. 태봉 2019.03.28 12:51

    님의 방송을 들으니 경공모가 생각났습니다 확증 편향과 집단 극단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님의 방송을 들으니 가슴이 설레네요 도령님 끝까지 건강하시고 홧팅요~~^^

 

늙은도령으로 살아온 지난 13년과 '알고나 죽자'는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시작한 공부가 20년에 이른 후에야, 방송을 위한 스튜디오 계약을 끝냈습니다. 구정 연휴 동안 방송을 하기 위한 모든 작업을 마칠 것입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방송 모두 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입니다. 타이틀롤은 만들었고, 첫 번째 방송은 구정연휴 직후(1~2일 정도)에 업로드하겠습니다. 방송에서 다룰 내용은 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공부하고 경험하고 성찰한 모든 것들입니다. 스튜디오가 완성되면 그 동안 읽은 책 중에 500권 정도를 옮길 생각입니다. 책 선정은 끝냈고, 방송으로 제공할 모든 콘텐츠의 원천으로 쓰일 것입니다. 

 

 

 

 

구입한 책 중에 도움이 되지 않은 300여 권을 팔아 중고도서 구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00권 정도를 팔아 30권의 중고도서를 구입했습니다. 사업 실패 후 자살만 생각하던 시절에 선친의 유산인 1,500여 권의 책들을 모두 버렸는데 그중에서 꼭 필요한 책들을 중고도서로 구입할 생각입니다. 이 때문에 집 근체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살이 빠지고 건강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신념 때문에 글을 써왔는데 방송에서도 이런 신념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하면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기 때문에 다 포기한 상태였는데, 그런 가능성이 제로라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근거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방송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할 인공지능이 나올 것입니다. 특이점주의자들이 정신과 의식, 마음처럼 편향이 작용하는 영역은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머신 러닝, 딥러닝, 마스터알고리즘 등이 아무리 발전해도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구루집단에 속한 프로그래머로 10년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수학 천재임)와 똑같은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음에 기뻤습니다. 건강도 좋아졌으니 방송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공부하느라 대단히 느렸지만 대신 다양한 분야를 편견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념적 편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이념과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습니다. 지식을 나누는 방송에서는 다양한 이념과 진영논리를 모두 다 알려드림으로써 시청자 모두가 나름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과학과 기술, 문학(특히 고전), 아이돌 소식처럼 편향이 없는 분야는 최대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방송을 하면서도 공부는 계속될 것이기에 구독자들이 원하는 분야라면 공부를 해서라도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적은 돈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집에서 너무 먼 곳에 스튜디오를 차리는 바람에 다양하 방송을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빨리 집 근처로 스튜디오를 옮겨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식을 나눠드리는 방송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에 일조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평가를 위한 두 개의 방송을 추가할 것입니다. 제 건강이 허라가는 선에서 이루어질 두 개의 방송 중 하나는 그 주의 핫이슈를 다룰 것이고, 나머지는 언론 비평에 할애할 것입니다.   

 

 

제가 집필 중인 책에서 '지구온난화와 인공지능의 폭주, 민주주의 위기'라는 3개의 절대위기를 다루게 된 것도 그때그때의 핫이슈를 기레기로 대변되는 이땅의 언론들의 왜곡과 호도가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종으로써 인류는 지금보다 현명해지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으며, 미칠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3개의 절대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방송으로는 모든 것을 잃고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형태의 자살만 생각하던 제가 어떻게 해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솔직하고 재미있게 풀어냄으로써 희망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할 수 있었다면 어떤 누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습니다. 조지프 콘래드의 말처럼,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99%의 압도적인 절망을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만 그 1%의 희망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시간 정도의 풀영상과 10~20분으로 압축한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현실정치와 언론 비평을 다룰 방송은 풀영상만 올릴 것입니다. 제가 이런 방송들을 풀어놓을 콘텐츠의 질이 좋다면 많은 성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방송이 궤도에 오르면 정치와 경제, 사회, 철학, 문화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지식을 다룰 유료방송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금까지 써온 글보다 10배 이상의 지식과 재미를 전해드릴 것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많은 성원과 구독을 부탁드리며, 설연휴 잘 보내시고 첫 번째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페이스 2019.02.01 23:2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항상 건강하시구요
    팟캐 기대하겠습니다.

  2. 2019.02.02 00:07

    비밀댓글입니다

  3. 마고성 2019.02.02 01:42

    기대하겠습니다 ㆍ
    우리모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더 밝은 내일을 향해~!
    행복한 설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ㆍ

    • 늙은도령 2019.02.02 02:57 신고

      님도 설 명절 잘 보내세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암스테르담 2019.02.02 02:30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5. 암스테르담 2019.02.02 02:31

    축하드립니다 ㅎ

  6. Mind Hunter 2019.02.02 08:11 신고

    기대됩니다. 꼭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9.02.02 11:13 신고

      매주 방송을 하기 때문에 구독하시면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기레기처치 2019.02.02 08:28

    도령님 글과 방송 감사해요 설명절 잘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혹시 나중에라도 시간이 되시면 대통령 노무현의 파격적인 정책등에 대해서도 영상으로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지금 문재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과 북미대화 운전자에 큰 영향을 끼치는게 노무현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시도와 한미fta체결이라고 보고 잇습니다

    당시에는 몰랏지만 돌이켜보니 부동산이득에 환장한 수도권 수구진영 그리고 묻지마 반미외친 진보진영 모두의 금기에 도전햇던 진짜 대통령을 떠나 인간 노무현은 개혁과 파격 그 자체였던거 같아요 정말 그정도의 태산같은 인물을 당시에는 몰랏습니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도 단순히 미국과의 동맹교류를 넘어서서 한반도 위기 관리 내지 북폭전쟁예방(개성공단 제품이 fta에 포함되는지요?) 등의 관점으로 볼수 잇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적이 잇는데 나름 수긍이 갓엇거든요

    • 늙은도령 2019.02.02 11:15 신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평가를 꼭 방송할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편의 방송에서 계속해서 다룰 것입니다.
      노통은 세계 최고의 대통령이었습니다.

  8. 2019.02.03 00:18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9.02.03 12:32 신고

      감사합니다.
      글만 읽어도 벌써 배가 부르네요^^
      좋은 콘텐츠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볼게요.

  9. 와니 2019.02.03 23:40 신고

    스마트폰으로 좀 더 손쉽게 뵐수 있게된다니,
    자주 소식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됩니다.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늙은도령 2019.02.04 19:24 신고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방송으로 찾아뵐게요.

  10. 도미닉 2019.02.05 16:51

    애독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네요! 채널을 찾기 힘든데 링크도 올려주시면 찾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9.02.07 02:47 신고

      팟빵과 유튜브에서 '늙은도령의 세상보기'를 검색하면 됩니다.
      이번 주 내로 타이틀롤 올리고, 티저영상 올릴게요.

  11. 空空(공공) 2019.02.07 08:27 신고

    성원드립니다.
    건강만은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12. 무예인 2019.02.08 18:29 신고

    기대 하겠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셔요

 

소속사 FNC에 족히 수백억 이상을 벌어주었을 설현이 노래 한 곡을 부른 후 무대에서 실신했다. 당시의 영상을 공개한 팬과 소속사의 거짓 해명(지랄 같기로 치면 최고라 할 수 있는 제일기획이 행사를 맡았다)을 밝혀낸 설현(또는 AOA)의 팬들에 따르면 감기몸살로 힘들어 했던 설현의 창백한 안색으로 볼 때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무리인 상태였다고 한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살인적인 다이어트로 건강 악화가 분명해보이는 설현은 영하 7도의 혹한에 핫팬츠와 배꼽티만 입고 무대에 올라야 했다. 

 

 

 

 

노래 한 곡만 불렀을 뿐인데, 설현은 계속해서 올라오는 구토와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으며 동료의 부축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동영상을 보면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탈진된 상태였다. 거듭 말하지만 설현은 단 한 곡만 불렀을 뿐이다.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닌 휴식이 절실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AOA의 리더였던 초아도 소속사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비인격적 대우를 견딜 수 없어 그룹을 탈퇴했는데, FNC에 대박을 안겨준 설현까지 무대 위에서 쓰러지도록 만들었다. FNC와 에픽게임즈 코리아가 뭐라고 해명을 하던, 설현이 소속사의 강요에 어떤 말을 남겼어도 건강했던 그녀가 무대에서 실신할 정도로 혹사당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거래가 불가능한 자본과 노동, 토지를 거래 가능하게 만들어 더 이상 이익을 낼 수 없을 때까지 착취하고 파괴하는 자기조절시장'과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개념화한 '신자유주의 이성'은 자연과 토지는 물론 인간까지 이익극대화를 위한 투자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임금을 주고 노동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투자 대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원자재나 물품, 도구로 여길 뿐이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이자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돈벌기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기획사의 행태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FNC는 아끼고 보살펴도 모자랄 설현(또는 AOA)을 혹사시켜 투자 대비 수백 수천배의 이익을 챙겼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설현(또는 AOA)을 돌릴 수 있을 때까지 돌려서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설현(또는 AOA 멤버)과의 계약이 끝나기 전에, 살인적인 스케줄과 살인적인 다이어트로 건강 악화를 넘어 가임의 가능성조차 잃어버린다 해도 끊임없이 무대에 올리고 최대한 벗겨 흡혈귀처럼 이익을 끌어내고 쓸어담을 뿐이다. FNC의 탐욕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수천 배는 넘겼을 설현(또는 AOA)에게는 인권과 기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권리에 불과하다.

 

 

필자가 통신사업을 할 때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두고 광고대행사와 함께 수많은 연예기획사를 상대로 영업을 했었는데, 그때 보았던 악랄한 노동 착취와 폭행, 폭언과 감금 같은 인권과 인격 파괴의 후진적 행위가 거의 20년이 흘렀음에도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됐을 수도 있음을 설현의 실신이 말해준다. 유럽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보이그룹(듀란듀란이 대표적)의 활동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이유가 청소년의 노동 착취를 막고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었고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이었다. '미래세대의 권리가 현재의 욕망에 우선한다'는 어른들의 공통된 합의가 우리의 아이돌그룹처럼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보이그룹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잔혹한 신자유주의가 유럽을 정복한 지금에도 이런 사회적 합의는 (무너지기 직전이지만 어렵게나마) 유지되고 있다. (너무 높은 인기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대견스러우면서도 걱정을 떨칠 수 없는) BTS가 비틀즈의 신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전까지는 K-POP에 열광하는 밀레니엄 세대와는 달리 부모 세대는 K-POP에 부정적이었다. 

 

 

 

 

초아의 탈퇴에 이어 설현의 실신까지 초래한 FNC의 노동 착취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문체부는 설현(또는 AOA 멤버)의 전속계약에 노예계약적 요소가 있는지, 스케줄이 살인적인지, 그 과정에서 인권과 기본권이 침해받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범죄에 해당하는 소속사의 폭행과 강압, 착취가 있었다면 검찰 고발도 진행해야 한다. 설현 같은 특급스타가 이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이라면 그녀보다 인지도와 수익성이 떨어지는 연예인과 연습생들이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조사하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연예기획사의 폭행과 감금, 노동 착취, 청소년 인권과 학습권 침해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파악하고 시정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초아의 탈퇴와 설현의 실신에서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듯이, 착취의 근원인 노예계약 관행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파악해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도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연습생을 포함해 소속연예인의 인권과 기본권을 무시하기 일쑤인 연예기획사의 후진적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디지털 세대들이 세상의 주역인 21세기는 소프트파워로 회자되는 대중문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시대다. 음악과 영화, 드라마, CF 등에서 종횡무진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설현과 AOA 멤버들은 소속사의 상품이 아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기쁨, 행복을 선사하는 설현(과 AOA 멤버)이라는 스타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는 보물과 같은 존재다. 인간으로써도 어른으로써도, 심지어 사업가로써도 FNC 오너와 실무진의 악랄한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행위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을 오래 보는 것이며, 발전을 지켜보고 성공을 기원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도전하는 무대가 노동 착취의 현장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자 스타로 발전하고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이끌 수 있는 직업의 장이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작은 차이의 재능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승자독식의 정글인데, 그런 특성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청소년들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노동 착취를 만연하게 만든다.

 

 

이것을 완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노예 계약의 근원인 표준계약서가 근로기준법을 초월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며, 이익 배분의 방식을 월급으로 돌리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기획사가 소속연예인의 활동에 따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월급을 올리는 것과 함께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연습생에게도 일자리 창출의 개념으로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고,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해 그들만의 콘텐츠를 별도의 플랫폼에 올리는 것도 고려하면 어떨까? 그곳에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광고주들이 그들의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팬들은 미래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아이돌의 연습생 시절부터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으니, 데뷔까지의 길고 힘겨운 시간들로 해서 연습생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닐까? 작은 재능의 차이가 극복하기 힘든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향한 경쟁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나만의 생각이고, 상생과 공존의 비즈니스 모델이라 더욱 가다듬어야 하지만 설현의 실신처럼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단 하나의 변함없는 기준은 '사람이 먼저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멤버 각자의 잠재력이 예측불가능할 정도인 블랙핑크와 그들에 못지않은 가능성을 지닌 프리스틴(I.O.I의 주결경과 임나영이 멤버로 있다!)처럼 어마어마한 스타성과 재능을 가진 아이돌그룹을 마냥 놀리고 있는 소속사도 비판받아야 한다. 소속사의 무능과 무책임, 무계획 때문에 10대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아이들의 노력과 가능성을 사장시키고 있는 것도 노동 착취에 버금가는 부도덕한 행위다. 소속사의 능력이 안 되면 아이들을 풀어주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그들의 젊은날은 하루하루가 억만금에 비교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팬과 그들 자신 모두에게. 공유할 추억과 스토리가 없다면 스타 탄생의 성공도 없다.  

  1. 뉴페이스 2018.12.19 21:20

    우와!!!
    도령님께서 이 분야의 글을 쓰는 건 처음 봅니다.
    왠만한 연예부 기자보다 훨씬 글을 잘 쓰시네요

    계약 문제는 극복되면 좋겠지만.. 이것 없이는 3대 기획사가 아닌 다른 기획사가 성공한 아이돌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사실 뭐 3대 기획사도 얼마 전까진 크게 다르지 않았죠. Sm의 동방,슈주,소시만 봐도...) 우리나라는 가수가 직접 이익을 얻는 음반 판매가 적고, 음원 판매가 활발한 나라니까요. 좀 더 가수가 이익을 가져가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8.12.20 01:30 신고

      그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창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윈-윈의 원리로 모색하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대박을 만들겠다는 것보다 하다 보니 대박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2. 영문계약서 2019.05.07 15:27

    계약문제가 진짜 아이돌들한테는 발목을 잡는거군요
    어휴..오늘 뭐 이런거 찾아보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부당하네요..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ㅡ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인용




어제 JTBC의 오락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서는 스티븐 호킹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테슬라‧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넘는 정보기술 기업가와 로봇공학 연구가들이 ‘국제 인공지능 컨퍼런스(IJCAI)’에서 공개한 서신의 경고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이 서한에는 인공지능이 ‘킬러 로봇’처럼 군사기술에 적용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인류의 멸종도 가능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삐 풀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종말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는 비정상회담 출연진들도 숙고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관한 한 최고의 선두에 있는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이전에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우주와 지구, 인류가 특이점의 빅뱅에서 나왔다면, 커즈와일의 주장은 급진적인 것을 넘어 섬뜩하기 그지없습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프로그래머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이론이 발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인간보다 우수한 능력을 지닌 전반인공지능(GAI)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리처드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인류를 대체할 지구의 지배자가 인공지능 컴퓨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이전의 경고들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준 DDT(유대인을 학살한 화학가스와 미군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대량으로 살포한 고엽제와 네이팜탄도 DDT의 일종)가 실제로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그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5번째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등은 총체적 종말을 경고합니다.



이에 비해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총체적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 즉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주인공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표였던 진화의 과정이었던, 지구의 지배자가 인간에서 인공지능 로봇으로 바뀌는 것이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란 뜻입니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의 총아인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창조자인 인류를 친구이자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이 도래합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 류의 세계관이라면 지구의 다음번 주인이 인공지능 로봇이 된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인간이란 종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종말론도 신을 닮은 유일한 창조물인 인간이란 존재가 유한하다는 것에서만 유효한데,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선 부활이란 의미도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국익을 보호하고 유명인사의 죽음을 막기 위해 딜리트한 자료를 복구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거장 그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은 <인터스텔라>의 낙관적 전망보다 스탠리 큐브릭이 메가폰을 잡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인공지능의 특이점입니다. 인류와 환경을 종말로 몰아붙이는 시장경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비정상회담의 토론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는 진보의 낙관론에 기반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법’이라는 머피의 법칙을 이론물리학적(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인류원리, 초대칭성, 블랙홀, 웜홀, 시공간 왜곡 등이 총망라된)으로 풀어간 <인터스텔라>보다는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경고가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하랄트 발처가 《기후전쟁》에서 말한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식수 고갈, 대홍수에 의한 파괴,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에 의한 오염, 거대한 쓰레기더미, 팽창하는 유전개발에 의한 환경파괴 등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분쟁상황 자체가 가히 파국적이다. 여기에는 기후변화와 전쟁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현재의 수단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P.S. 필자가 연재 중이지만 출판하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퇴고해야 하는 '근현대사 비판'의 핵심주제가 과학기술과 시장경제 비판입니다. 인공지능은 핵폭탄을 넘어 이 두 가지가 완벽히 결합한 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면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인데, 이런 속도라면 지구온난화의 급진화보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를 대체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空空(공공) 2015.08.11 08:39 신고

    인공지능이 군사기술에 실제로 적용되면 안된다는 협약이
    잇어야됩니다. 핵처럼..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날이
    '멀지 않을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6 신고

      인공지능 로봇은 전쟁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자리를 말살시킬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공지능 로봇은 더욱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1 10:49 신고

    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과학이 인류의 미래를 결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8 신고

      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일부만이 큰 돈을 벌겠지요.

  3. 耽讀 2015.08.11 13:26 신고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비행기를 만들면서 추락도 함께 생겼다"고 했습니다. 최첨단 과학이 발전하면 할 수록 인류문명은 패망은 빨리질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9 신고

      아마 프로이트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가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탐욕이 곁들면 무조건 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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