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명해지는 성장통일 수밖에 없지만, 잔혹한 시장과 자본의 논리 앞에서 이승윤의 천재성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는 무려 11집이나 낸 가수임에도 남의 노래나 부르며 이런저런 오락 프로에 끌려다니며 이승윤 특유의 색깔이 옅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뜻에서 경제학은 이런 모순된 상황을 기회비용이라고 치부해버립니다. 노래보다 이름이 조금 앞에 있는 것이 필요한 시절의 이승윤씨를 생각하면 이런 불평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최소한 그의 자작곡이라도 부를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승윤 같은 가수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도 하게 되네요. 냉혹한 시장에 들어선 이승윤, 슬기롭게 해쳐나가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적 국정운용에 대해서도 말씀드렸고요. 감사합니다.  

 

 

 

 

 

 

https://youtu.be/1DW5D1UGCpg

  1. 空空(공공) 2021.03.10 06:34 신고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 조아하자 2021.03.10 08:45 신고

    ㅠㅠ... 쓰레기 기획사 너무 많죠... 제가 좋아하는 가수님은 DSP였는데, 거지같은 DSP에서 자기 역량을 다 펼쳐 보이지 못하고 결국 계약기간이 끝나더군요. 근데 그 계약기간 끝나고 다른 기획사 간다고 또 무조건 잘되는 것도 아니라는게 함정... 그냥 진짜 쓰레기랑 좀 덜 쓰레기가 있을 뿐이지, 가요계 바닥에서 좋은 기획사는 드물더군요. ㅠ 연습실조차 없는 X같은 기획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익배분은 제대로 했는지 그동안 돈은 많이 번 것 같던데, 뒤늦게 차린 1인기획사가 잘되길 바랄 뿐입니다. ㅠㅠ

    • 늙은도령 2021.03.11 05:24 신고

      쓰레기 기획사 엄청 많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고요. 그 때문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지요.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합니다. 구멍가게 수준의 것들이 하도 많아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3. 참교육 2021.03.10 09:11 신고

    뽕짝나라... 코로나 때문에 온통 난리더군요 사꾸라에 뽕짝까지...ㅎ

  4. 봄여름가을겨울 2021.03.12 23:08

    선생님, 혹시 이 가수와 가족 관계인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가수를 소개하는 것은 좋으나 ....

출처 : 구글이미지

 

나꼼수를 거치면 타락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리얼미터가, 기레기 통신의 제왕 연합뉴스를 제치고 기레기 통신으로 등극한 YTN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정의당 당원들이 윤석렬의 정계 진출에 찬성하는 비율이 52.4%로 반대한다는 비율 28.0%를 압도한답니다. 진보 진영에서 보수 진영으로 옮겨감에 따라 정당에서 정치동아리로 전락한 정의당의 현실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결과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마저 압도한 것입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정의당의 변신은 듣보잡의 본성을 숨기는데 실패한 진중권과 홍세화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변신이 아닌 변태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 이후, 류호정과 장혜영 등이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후, 정의당은 '정의'를 내다버린 채 그 자리에 '적의'만 가득채운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정의당이라고 쓰고 '적의당'이라고 읽습니다. 옳은 것의 대표적 선수인 '정의'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채, 복수의 정념과 사사로운 분노에 사로잡힌 것을 '적의'라고 하는데 정의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바로 그러합니다. 위대한 페미니즘을 복수와 폭력으로 물들이고 있는 메갈이나 나치페미처럼 정의당 당원들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에 실망했다는 이유로 윤석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정치적 실망이 정당의 정체성과 정치적 신념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정의당 당원들에게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모든 것을 내다버린 이런 전복적 변화는 변화의 차원을 넘어 변태의 차원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실망과 적의 사이에는 태평양이 들어갈 만큼 넓은데 정의당 당원들에게는 옹달샘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가 정의당이라고 쓰고 적의당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윤석렬은 국짐이 아닌 정의당의 대선후보로 나올 생각이었을까요? 제 궁금함을 아래에 링크한 영상에 담았습니다, 제기랄!!!

 

 

 

https://youtu.be/3ktqUbU2X2U

  1. 참교육 2021.03.09 06:33 신고

    미쳤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실이라면 해야지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21.03.09 20:35 신고

      저도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뉴스를 보고나서도 이걸 믿어야 하나.. 했으니까요.

  2. 空空(공공) 2021.03.09 06:35 신고

    점점 더 정의당에 대해 실망입니다

    • 늙은도령 2021.03.09 20:38 신고

      완전히 망가졌어요.
      원래 정의당 당원들이 다 물러나고 남은 얘들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3. 여강여호 2021.03.09 07:32 신고

    아무리 언론이 일방적이라지만...
    윤석렬이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게...
    그의 선택적 공정과 정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21.03.09 20:38 신고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 후보라니.. 에고 국정원장 출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네요.

 

 

노골적으로 보수 진영의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검찰총장직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윤석렬의 정치행위에 검사 나부랭이들의 침묵이 위선적이고 비열하기까지 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그렇게 주장했던 검찰이 자신의 보스였던 윤석렬의 노골적인 정치행위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정치적 독립이란 그때그때 다른 엿장수 맘대로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의 성골이자 진골은 특수부와 공안부였습니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용공·간첩사건 조작하기에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공안부는 역사에서 퇴장했지만, 그들과 쌍벽을 이루던 특수부는 명패만 바꿔달며 대대손손 검찰을 장악해왔습니다. 그 정점에 서있던 자가 윤석렬이며,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검찰 개혁이 실패로 끝났던 이유가 특수부의 막강한 비토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정부도 조중동을 비롯한 기레기의 비호하에 있는 특수부의 권력을 넘지 못했고, 신성불멸가족이란 검찰의 신화적 특권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특수부의 화신이 윤석렬이었고, 이른바 '검란'이라는 반동쿠데타를 통해 모든 정부의 검찰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이들의 권력은 시퍼렇게 살아있었습니다.     

 

 

헌데 현명한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후, 민주당에 180석 가까운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숙원의 검찰 개혁이 가능하게 되자, 윤석렬이 대선후보가 돼 검찰 개혁을 좌초시키려 합니다. 윤석렬의 먹튀는 개혁을 막으려는 검찰 전체의 염원이 담긴 정치행위여서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검사라는 종족의 정치적 위선과 반헌법성. 반민주성이 그들의 침묵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윤석렬의 정치적 먹튀이고, 일치단결한 검사들의 침묵입니다.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과 절대성은 이것으로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도덕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로 휘어지게 돼있습니다.'라는 명언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하루하루입니다. 시간 조절은 필요할지언정 기소와 수사의 분리는 시대정신의 핵심입니다.

 

 

https://youtu.be/Biif42kDh3o

  1. 空空(공공) 2021.03.09 06:34 신고

    정치 검사 제 버릇 어디 안 갑니다..

 

 

법과 제도 면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의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오로지 모든 성적 지향성을 인정해야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저질에 죄인이라는 정의당 류 페미니스트들이 위대한 페미니즘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폭력적인 행태는 여성들마저 페미니즘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만들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양성평등과 유리천장을 무너뜨리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숨막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이 마치 시대정신을 모두 독점한 듯한 김재련과 정의당 류의 근본없는 페미니스트들은 '2차 피해' '2차 개해'라는 단어 하나만 쓰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는 그들의 파시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행태, 특히 언어 사용은 양성평등을 위한 더 큰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들만의 경험만 공유하고 그것이 모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KBS의 여기자들의 도움하에 페미니즘을 죽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지극히 개인적인 극소수의 경험을 모아 전체 여성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여성 모두가 피해자라는 이들의 주장은 전체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실제 통계상으로도 드러나는 여성인권 향상은 모두 다 묻어버린 채, 남성혐오를 넘어 여성우월주의적인 행태까지 보여주는 이들의 행태와 언어 사용은 수백 년에 걸친 앞선 페미니스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페미니즘 지식인의 먹물적인 언어 사용과 정치·언론권력의 일부를 선취하는데 성공한 일부의 막가파식 페미니즘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깁니다. 먹물 류의 언어를 사용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모든 노력을 '2차 피해'나 '2차 가해'라는 단어 하나만 동원하면 모든 이를 침묵시킬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행태나 인식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원한과 복수의 무한반복, 스스로 극복하는 인간적 성숙은 없는..

 

 

에효, 말해야 뭐하겠습니까? 욕만 먹을 뿐, 자신의 탄생과 어머님의 삶마저 무력화시키고 잘못된 것을 넘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1. 空空(공공) 2021.03.08 07:20 신고

    몰락해 간다는 표현이 맞는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21.03.08 23:31 신고

      이상한 순위제 때문에 정의당의 좋은 후보들이 밑으로 내려가고 유호정과 장혜영이 위로 올라가 일어난 일입니다.
      좋은 인물들이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것이지요.

 

 

180석 발언 이후 대단히 위축된 유시민 이사장의 <알릴레오 북스>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유시민 이사장은, 그 빌어먹을 놈의 서울대 출신 중에서 가장 사람다운 냄새가 나는 상당 수준의 천재입니다. 젊었을 때의 유시민을 잘 모르지만, 그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청년 유시민의 천재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글의 곳곳에 서 터져나오는 그의 천재성을 지금의 유시민과 비교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괴테의 친화력>과 <번역가의 과제>,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등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듯이 원어를 모른다 해서 대가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으로 자리매김시킨 유시민 이사장의 자기변명이 원어로 석학의 책들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변명이 정당성을 갖는다면 어떤 누구도 자신의 언어에서만 대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돼야 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지성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예들로 넘쳐납니다. 유시민 이사장이 좀더 일찍 발터 벤야민의 다양한 비평서들을 접했더라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푸코에 대해 얼마나 공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벤야민과 푸코에 대한 공부가 깊었더라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다독했다면 지식소매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만큼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유시민이었습니다. 

 

 

<알릴레오 북스>를 보면 한없이 위축된,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 두 종류의 유시민이 갈등하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0석 발언(누구도 할 수 있었던 발언이었음에도 유시민이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과 검찰의 노무현재단 계좌 사찰 발언(유튜브에서의 대성공이 불러온 확증편향의 불행한 사례) 때문에 발생하게 된 현재의 상황은 어이없는 모순이되, 대단히 폭력적인 현실의 반영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래에 링크한 영상을 통해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jQ3G-miOatE

  1. 空空(공공) 2021.03.08 07:19 신고

    알렐리오 북스는 생소하군요
    찾아 봐야겠습니다.

 

 

1995년 여름

 

 

이 놈의 집구석/ 넌더리가 난다고 했던/ 주말 오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ㅡ 회사에 다니던, 개인적인 일을 하던 주말 오후는 가족이 모일 시간일 터, 이때 부모님이 언제나 다툼을 벌인다. 힘든 시절의 힘든 상황의 힘든 가정의 전형적인 특징. 그런데 이번주 말 오후에는 부모님이 싸우지 않았다. 그것은 싸움을 여력도 없거나,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없거나, 이제 남은 것은 결단을 내리는 일만 남은 폭풍전야 같은 경우일 수도 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끝나기만 기다렸다/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귀를 막았다 ㅡ 오후를 무사히 넘기는 듯했으나 밤에 들어 부모님이 싸움에 돌입한 것 같다. 늘 그렇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끝없이 이어지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이며 언제나 어머님에게 불리한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미님이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는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해서

 

그 해 여름 어머닌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해서 이룬 게 거의 없었다 ㅡ 어미님은 붕괴 직전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안 일이던, 다른 일이던 그것에 지니칠 정도로 매진함으로써 하루하룰 겨우겨우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계속해서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룬 게 거의 없는 역설, 그러나 당연한 역설에 빠질 뿐이었다.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난/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했다 ㅡ 슬픔이란 그 바닥까지 가야 반등을 치거나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되는 경우란 그런 경우밖에 없다. 슬픔이 일상화된 삶, 그래서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함으로써 그 슬픔이 슬픔으로써 더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탈진하면 슬픔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을까.  

 

나는 동급생들과/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녔다/ ㅡ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어린 나이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동급생들과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니는 것일뿐,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없는 도시에서 그저 아파트 단지만 미친듯이 뛰어다닐 뿐.  

 

자전거를 훔쳐 타고/ 슬프다 슬펐다 언덕을 오르 내렸다/ 페달을 쉬지않고 밟았다 ㅡ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니다 지쳐서, 삶과 세상, 아버지에 대한 욱한 마음에 자전거를 훔쳐 타고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다. 슬퍼서, 너무나 슬퍼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자신의 삶이, 가족의 삶이, 이 빌어놈을 세상이....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며 언덕을 오르내렸다.    


옳다고 믿었던 건 옳지 않은 것 뿐이었다/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난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했다 ㅡ 옳다고 믿었던 건,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뉴스에서건 책에서건 그때까지의 미숙한 경험에 의해서건 옳다고 믿게 만들어준 모든 것들이 옳지 않다는 것일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수없는 싸움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아니라면. 부모님이 매일같이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모님이 이렇게 매일같이 싸워야 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더욱더..

 

어머니도 한 때는 무용수였다/ 난 종종 무대에서 춤 추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ㅡ 어머님은 전업주부가 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접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그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어머님은 꿈을 포기하고 가정을 택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이란, 그래서 난 어머님이 무디에서 춤추는 것을 종종 떠올리곤 했었다. 그렇게해서라도 어머님의 슬픔을 함께 하고 싶어서. 어머님을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너무나 불쌍해보여서.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팔과 다리를 길게 뻗었고/ 나는 시시한 이야길 지어낸 셈이다 ㅡ 내 상상 속의 어머님은 이사도록 던컨처럼 땀을 뻘뻘 흘르며 팔과 다리를 아름답고 힘차고 우아하게 뻗었다. 상상속의 어머님은 검은백조가 아닌 하얀백조였다. 그러나 어머님의 현실이란, 너무 일해서 거의 이룬 것이 없는 어머님의 하루하루란.. 결국 나는 시시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에 불과했다. 자기만족적 상상이던, 자기기만적 상상이던, 자기도피적 상상이던,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한 대리적인 꿈이었던..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난/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했다 

 

 

 

https://youtu.be/EukV0oxGp1c  

 

 

https://youtu.be/Cm_pEKLf4-g

  1. 참교육 2021.03.06 07:17 신고

    자본주의가 만든 비극입니다 .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2. 영국사는 크리스 2021.03.07 05:49 신고

    저는 마지막 문장이 슬프네요. 슬픔을 슬프다고 말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때가 있더라구요.

 

출처 : 구글이미지

 

어물전 망신

 

 

뜬 구름 잡는데/ 원래 떠 있는데/ ㅡ 수많은 청춘과 사람들이 뜬 구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래서 원래 그렇게 뜬 구름들이 떠있는 것인데, 넘칠 만큼 떠돌아다니는데 

 

 

난 감히 구름 한 점 보태기 위해 뻐끔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전부 다 시킨대/나도 뜬 구름 잡기 위해 구름 한 점을 보태기 위해 노력 중인데, 수면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산소를 좀 얻고, 뜬 구름 같은 기회가 넘쳐난다고 하는 세상을 향해 뻐끔대는 것인데, 나의 꿈과 희망을 펼쳐보려 하는 것인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전부 다 시킨대니, 나는 뭐가돼? 나 말고도 수많은 청춘들은? 뜬 구름이라도 잡으려고 죽을 만큼 노력하고 절규하는 그밖의 모든 분들은? 

 

 

멋대로 가둬놨던 건어물 좀 넘기고선/ 사람 구실이 대관절 뭔지 말해봐/그저 사람이라는 구실이 필요한 건 잘 알아/ ㅡ 마치 진화론을 말하는 듯, 꼴뚜기의 운명은 인간의 입속으로, 그중 일부는 건어물이 돼 어물전을 조금 넘어설 수도 있는데, 그런 청춘들이 부지기수로 널려있는데, 청춘들과 경쟁하는 수많은 세대들이 널려있는데, 이런 필사적인 노력들이 뜬 구름 잡기고, 어물전 망신이라고?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 구실이 뭐야?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해줘, 대관절 그게 뭔지 말해봐! 그래야 그것에 맞춰 노력이라도 하지 않겠어? 우리를 어물전에 가더놓고 필요할 때마다 건어물로 만들어버리는, 다시 말해 임시직이던, 일용직이던, 알바던 그런 형태로 이용해먹고 버리면 그만인 거야?  

 

 

구름 한 점이나 뻐끔이 어물전 밖으로 머릴 빼꼼이/ 구름 한 점이나 연거푸 뻐끔이 구실은 퍽이나 빼곡히/ ㅡ 골뚜기가 머리를 빼꼼이는 것, 다시 말해 뜬 구름 한 점이 뻐끔이 머리를 내미는 것을 말함.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뜬 구름 잡기인 , 그런 것이라도 해야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청춘이지만,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 연거푸 세상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는데, 어물전 망신이라며 사람 구실이나 하는 틀에 박힌 기성세대의 레포토리가 빼곡히 쏟아져나와 빼곰한 청춘의 시도마저 죽어버리는 거야?    

 

 

날 대변하지마 어차피 넌 내가 아니잖아/오늘 먹은 음식말고 누구도 그리 못해/ ㅡ 이 부분에서 이승윤의 반항적 심리 표현이 극에 달한다. 난 사람이지 꼴뚜기와 비교될 수 없어. 난 존엄한, 꿈꾸는 그런 사람이니까, 날 꼴뚜기 취급하며 어물전 망신이라고 하지마. 승윤의 분노는 자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꼴뚜기에게 자신을 대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신이 꼴뚜기로 대치되면 결국 꼴뚜기 정도의 인간이 되는 것이니까. 언어철학을 보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언어는 그 사람을 표상한다고 했으니까. 오늘 내가 먹은 음식말고, 나를 위해 생을 다한 음식들 말고 누구도 나를 대변할 수 없어. 난 존엄한 인간이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해. 난 꼴뚜기가 아니야. 내 꿈은 뜬 구름도 아니고, 내가 노력하는 것은 어물전 망신도 아닌 거야.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개처럼 벌어 짐승처럼 써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전공이 뭐야 제발 내게 좀 묻지마/ 내 전문 분야는 아직은 젊음일 뿐야/ ㅡ 어물전 망신이나 시키는 꼴뚜기로 만들기 위해 내 전공이 뭐냐고 묻지마. 학벌이나 학과 같은 그런 것으로 나를 평가하지마. 내 전문 분야는 아직은 젊음일 뿐이야. 난 무엇도 꿈꿀 수 있고, 무엇에도 도전할 수 있는 젊은이고, 그 젊음만의 특권을 사용하지도 못했어. 난 꼴뚜기도 아니고 뜬 구름 잡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물전을 망신시키는 어물전 소속의 어족이나 건어물도 아니야.

 

 

구름 한점이나 뻐끔이 어물전 밖으로 머릴 빼꼼이/ 구름 한 점이나 연거푸 뻐끔이 젊음은 퍽이나 빼곡히/ 

 

 

어물전의 자랑 따윈 되기 싫어/ 구름을 커피로 물들이고 싶어/ ㅡ 어물전 망신도 싫지만 그렇다고 어물전 자랑도 되기도 싫어. 난 어물전 소속도 아니고,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될 테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노래야. 뜬 구름이 아닌 아름다운 꿈인, 멋있는 자유인, 맛있는 노래인 구름을 향기로운 커피로 물들이고 싶은 그런 가수가 되고 싶은 거야. 난 아름다운 단어와 화음, 리듬, 꿈과 희망으로 어우러진 노래를 부르고 싶어, 마치 커피에 물든 구름 같은 노래.

 

 

구실을 찾을 실을 거는데/ 전부터 먼저 내 허실인가/ ㅡ 그 꿈을 위해 구실을 찾았던 것인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기 때문에 실은 거는 것인데, 지금까지 꼴투기로 취급받고 머리를 빼꼼이 내미는 것이 어물전 망신이라고 하니 전부터 그것도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일까? 내가 찾은 실이 튼실한 것이 아니라 허실이라도 되는 것이었을까? 이렇게 죽을 만큼 노력하는데도 아무런 울림이 없잖아..  

 

구름 한 점이나 뻐끔이 어물전 밖으로 머릴 빼꼼이/ 구름 한점이나 연거푸 뻐끔이/ 

 

구실은 퍽이나/ ㅡ 변명이라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

 

구름 한점이나 뻐끔이 어물전 밖으로 머릴 빼꼼이/ 구름 한점이나 연거푸 뻐끔이/ 

 

젊음은 퍽이나 빼곡히/ ㅡ 헬조선에라도 갇힌 듯한 이 젊음은 퍽이나 빼꼭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https://youtu.be/GOSGVbVsk0c

  1. 참교육 2021.03.05 07:27 신고

    오늘 글은 좀 어렵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청와대의 반응ㅡ곧 문재인 대통령의 뜻ㅡ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네요. 그동안 윤석렬을 검찰총장까지 올려준 원죄ㅡ사람은 사람에 대해 속을 수 있다ㅡ때문에 당장 잘라도 모자랄 윤석렬의 임기를 치켜주려 했으나 자신의 나가겠다고 하니 추호도 기다려줄 이유가 없지요. 신한수 민정수석의 사의까지 처리한 것으로 볼 때 이번에는 확실하게 검찰을 손보겠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용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반발이 있던 말던, 검찰 개혁 속도는 대단히 빨라질 것 같습니다. 170여 석의 민주당과 당정청회의를 활성화해 중수청 법안을 강행할 수도 있습니다. 속도조절을 바랐던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원칙을 건드리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기에 결심을 굳힌 것일 수 있습니다. 민정수석, 즉 비서인 자가 지랄을 떨고, 그것이 실패하자 윤석렬이 나선 것이고, 그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한참은 넘은 것입니다.   

 

 

국짐은 오세훈이 서울시장후보가 됐지만 윤석렬에 묻혀 곤혼스러울 테고요.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서라면, 레임덕에 하루라도 빨리 빠뜨리기 위해서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백신음모론과 불신까지 조장한 국짐으로써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막강한 대선후보가 생긴 것이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유명한 윤석렬이니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정보를 윤석렬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공직자 비밀유지법에 걸리기 때문에 검찰의 직간접 후원을 받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윤석렬의 사의는 그의 졸개들의 줄 사의로 이어질 터, 검찰 내부에 자신의 편은 없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대선후보 출마도 만만치 않을 수 있습니다. 윤석렬의 사의와 처리, 새로운 민정수석 임명 등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김종인도 오줌을 질질 흘리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겠지요.

 

 

남아있는 문제는 표퓰리스트이자 기회주의자인 이재명이 이번 논란에 뒤늦게 끼어들어 숟가락을 얹을 때, 민주당 내 친이재명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그것이 남아있습니다. 이재명이라는 폭탄은 민주당이 감당해야 할 최대의 난제인데, 그것을 제대로 풀어갈지 지켜보면 민주당을 계속 밀어줄지, 아니면 민주당을 버려야 할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과거의 나쁜 관행을 버리지 못한 LH직원들 때문에 대대적인 수사가 이루어질 때 부동산투기 세력들도 벌벌 떨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민주주의가 한 단계로 올라서고 세계가 우러러 보는 최고의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기레기라는 영원한 골치거리가 있지만, 이들을 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율이 그들의 양아치 짓거리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국정원 사찰 문제까지 오픈되면 대한민국의 특권층과 지배엘리트들이 구축해 위력을 발휘해온 '그들만의 리그'에도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아무튼 하룻밤 사이에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네요. 문재인 대통령, 하고 싶은 것 임기 끝날까지 다해!!!!

 

  1. 空空(공공) 2021.03.05 06:27 신고

    사퇴 싯점의 의도가 좀 음흉합니다
    정치인 윤석렬..황교안 뒤를 이을듯

 

대한민국의 검찰 역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총장인 윤석렬이 임기를 4개월 앞두고서 정치본색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렬의 이런 정치 성향을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못박음으로써 정치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는데, 민주당의 강경파ㅡ이재명과 친한 놈들ㅡ가 정권재창출을 위해 서두르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민주당 강경파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속하는 조직의 수장이라는 놈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검수완박이나 부패완판 운운하며 항명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쿠데타의 전형입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기에 이런 것이 가능한데 사실상의 검찰쿠데타인 윤석렬의 항명을 바로잡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밑에 링크한 두 개의 영상은 이런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항명이 가능하게 된 대한민국 역사와 그와 함께한 세계사를 거칠게나마 다루었습니다. 과학과 철학의 역사까지 포함해 윤석렬이라는 또라이와 정치검찰의 조직이기주의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근현대사를 꿰뚫어보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정치검찰의 탄생과 조직이기주의를 연원부터 파헤치며 하나하나 반박해봤습니다, 윤짜장의 미친 헛소리를!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토착왜국와 친일파들의 득세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지독히 열불이 나는 상황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정치검찰의 조직이기주의를 박살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 촛불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만 문파를 물로 보는 것이 아니면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할 수 없지요, 제기랄!!!

 

 

https://youtu.be/eRoqG668j9g  

 

 

https://youtu.be/p93w7QC-a5g

  1. 참교육 2021.03.04 10:15 신고

    윤석렬 참 대단합니다.
    결국 낙동강 오리알이 될게 뻔한데...
    앞을 내다 볼 줄 모르네요..ㅋ

    • 늙은도령 2021.03.04 20:01 신고

      그렇게 보내버려야지 민주검찰이 가능해집니다. 법앞의 평등, 죽기 전에 보고 싶네요.

  2. 空空(공공) 2021.03.05 06:26 신고

    이번 정부의 대표적인 잘못된 인사입니다
    전 처음 중앙지검장 임명할때부터 이건아니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김연경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위치에 오른 몇 명 안 되는 선수 중 하나.

김연아와 박인비처럼 한 분야에서 완벽한 1위에 오른 유삼무사한 선수.

최근에 현역에 복귀한 소렌스탐이나 김연아 이전의 최고 선수였던 카타리나 비트, 미셀 콴처럼 최고의 위치에 오른 선수.

김세진이 대학생 시절 세계대회에서 딱 한 번 공격종합 1위에 오른 적이 유일함.

손흥민조차도 최고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도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님. 

미국에서 올해 확실한 것은 세금과 죽음, 그리고 매덕스가 15승을 거두는 것. 

 

 

이에 비해 이다영과 이재영은 최고도 아니거니와 과대평가된 선수.

이재영은 리시브가 너무 안 좋은 반쪽 선수.

공격도 '날으는 작은 새' 장윤희와 비교할 때 한두 수 아래.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면 배구는 세터 놀음,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의 세터들이 많았으나 이다영은 그들에 비해 키가 크다는 것을 빼면 모든 면에서 떨어짐.

태국이 부상한 이유도 무사라라는 세계적 수준의 세터가 나왔기 때문. 

 

 

박미희 감독은 코트의 여우라는 소리를 들었던 대선수.

170대 신장으로 팀과 국가대표 센터를 맡아 한국여자배구를 아시아 최강과 세계3~5위권으로 끌어올렸던 대단히 영리한 선수.

한국여자배구 역사에서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

쌍둥이자매의 부모보다 더 훌륭한 선수였음.

박미희 감독이 쌍둥이자매의 어머니에게 휘둘렸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

 

 

이런 상황에서 쌍둥이자매가 자신의 과거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수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흥국생명으로 돌아온 김연경 머리 위에 앉으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아주 잘못된 자세.

부모의 잘못된 교육(능력주의 담론)과 주류 미디어의 잘못된 인기몰이(외모지상주의)가 만든 최악의 결과. 

이다영과 이재영의 외모 칭찬에 정신없던 유튜버들과 팬들의 잘못도 한몫.

선수는 코드에서의 실력으로 평가돼야 함에도 그밖의 요인이 작용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연봉을 받아냈기에 쌍둥이자매의 삐뚤어진 가치관이 정립된 것.

 

 

2019년의 미국의 입시부정,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명문대에 입시브로커를 통해 자신의 자식들을 입학시킨 사건. 

총 33명(드러난 것만)을 입학시키는 과정에서 2,500만 달러를 챙긴 싱어라는 입시브로커가 SAT, ACT 감독관에 돈을 찔러주고 답안지를 바꾸고 기록을 조작해 운동부 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집어넣었음.

능력주의 담론이 불러온 초대형 입시부정.

부와 권력, 기회 등을 대물림할 수 있는 시대에서 주위의 욕을 먹지 않고 모든 것을 세습하고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승자독식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격증이 명문대 출신이라는 명패.

명문대 출신이면 그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무한대의 돈과 권력, 기회를 독점해도 된다는 능력주의 담론이 이런 입시부정을 만들었음.

싱어는 정문(실력)과 뒷문(기여입학제, 동문 우대 등)을 통해 들어갈 수 없는 학생들을 옆문(불법, 불공정, 비도덕)을 뚫어내는데 성공했던 것. 

 

 

이다영, 이재영 자매 논란의 본질은 학폭과 침묵의 카르텔이 아니라 쌍둥이자매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갖도록 만든 모든 것들에 있음.      

  1. 空空(공공) 2021.03.03 07:45 신고

    본질을 피해가는 이상한 길로 지금 접어 들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전범기업 미쓰비스의 탄생과 성장, 렘지어 교수의 막장 논문으로 인한 몰락의 서곡 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메이지유신에서 시작된 일본의 성공신화가 어떻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는지, 반면에 일본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세계와의 경쟁에서 무너지지 않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도 짧게 다루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재벌들이 외국에 대한 후원금과 지원금, 원조 등으로 친일파를 양산해온 일본 신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으로써의 렘지어 논문의 후폭풍도 다루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조용히 있을 수많은 학자들이 들고일어나 렘지어를 논반하고 비판하는 현상의 기저에 깔린 것도 다루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부 진영과 언론들만 비난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대체불가능한 유시민의 장단점도 다루었습니다. 일본과 독일의 차이도 다루었고, 메이지유신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현대사를 아주 짧게 다루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사도 아주 짧게 다루었고요. 숨겨진 전범기업, 브릿지스톤도 짧게 다루었습니다. 두서없지만 아주 거칠게나마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루었습니다. 

 

 

 

https://youtu.be/E1HBq9gYwb8

 

  1. 空空(공공) 2021.03.02 07:27 신고

    본문에 영상을 바로 볼수 있도록 링크 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2. 참교육 2021.03.02 07:37 신고

    하버드대학교수라고 해도 다같은 교수가 아닌가 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교수와 이 램지어라는 작자...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유튜브 잘 보겠습니다.

 

 

<아는 형님>에 나온 싱어게인 빅4, 즐거운 하루를 보낸 이후, 이승윤은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아는형님>에서 게임으로 넘어간 이후의 이승윤의 표정을 집중해서 봤는데, 그는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채 강호동과 이수근, 김희철, 서장훈 등처럼 아형 멤버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곤 했습니다. 다양한 재주를 가진 이승윤이지만 시청자를 위한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전념하는 아형 멤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승윤은 녹화를 마친 소감을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라는 말로 압축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성찰이었고 이승윤다운 감상평이었습니다.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이승윤 자작곡 가사를 살펴보면 자신이 가진 재능 대비 어떤 결실도 맺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고뇌가 진득히 베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과 동떨어져 실패를 거듭하는 천재들이 흔히 가질 수밖에 없는 분노와 비슷한 감정입니다. 

 

 

 

성공을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세상의 성공 기준에 마추면서까지 성공을 추구해야 하는지, 숱한 갈등의 산물이 이승윤 자작곡에 담겨있는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란 단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모든 분에 퍼져있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 많은 아웃사이더들은 자신의 신념과 세상의 성공 기준의 차이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들인 벤야민과 고흐, 니체, 카프카, 카잔스키, 로렌스 등이 그랬습니다.

 

 

이승윤이라고 해서 그들과 다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 도전으로 싱어게인에 도전했고,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해 우승까지 했습니다. 아웃사이더에서 최고의 인사이더가 된 것인데, 하룻밤 자고나니 유명인 된 자신의 변화와 위상에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코로나19 펜데믹 때문에 달라진 자신의 위상에 대해 피부에 와닿는 것이 적었겠지만 기획사는 물론 수많은 펜카페가 생기고, 잠시도 쉴 수 없는 일정에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패자에서 모두가 떠받드는 승자로 바뀐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자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의 폭증에 실감이 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영웅수집가'를 쓰던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즐기기도 힘들 지경이기에 다른 생각을 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는 형님>에 출연했고, 모든 것이 약속된 입학식은 아형 멤버들의 예상할 수 없었던 에드립에 놀라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을 것이고요. 그런 감정 상태에서,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게임에 들어섰는데, 특정한 대본도 없는 상황에서 아형 멤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노력과 순발력, 재치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한 편의 예능을 찍기 위해 그들이 쏟아내는 노력과 재능의 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승윤이 본 것은 싱어게인 제작을 위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피와 땀을 흘린 제작진과 스탭에게서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을 테고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이승윤의 표정을 보면 다른 출연진과는 달리 게임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특한 그가 예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의외의 상황들이 벌어지고, 그것을 어떻게든 대처해내거나 다시 찍고 또 찍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승윤이 녹화를 끝낸 다음에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깨달음이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조직이, 공장이,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현장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에는 어떤 이들의 땀과 피들이 담겨있는지, 무엇이 숨겨져있고 무엇이 드러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부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일베처럼 키보드 앞에서 욕설과 저주를 퍼부기에만 급급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분들은 그런 욕설과 저주를 퍼부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이런 키보드워리어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제일 먼저 맞으라고 하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정치인들과 똑같은 자들이 여기저기서 악령처럼 출몰합니다. 통치자인 대통령도 피통치자인 국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인데, 선거 승리와 자신의 재선을 위해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자들이 큰소리를 칩니다. 

 

 

누구라도 먼저 백신을 맞고 싶을진데, 대통령에게 먼저 맞으라는 백신음모론이나 부추기는 자들은 천벌에 천벌을, 거기에 또다시 천벌을 더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능지처참형이 가능한 세상이라면 광화문 4거리에서 능지처참형에 처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정은경 본부장처럼 백신 민주주의를 실현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정치적 이득만 얻으려는 악마와 다름없는 자들이 키보드워리어와 함께 백신 불신만 키웁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자들에 비하면, 아형 멤버에게 존경을 표한 이승윤의 영혼은 왜 우리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지 말해줍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 내 노력과 재능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과 재능도 똑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장려하는 행동규범이며, 깨어있는 시민의 본질이고, 상생과 공존의 세상을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입니다. 

 

 

'싱어게인 탑4'가 출연한 <아는 형님>은 이승윤의 마지막 멘트로 최고의 오락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었고, 또다시 보게 됩니다. 승윤씨, 당신 때문에 밀린 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책임지세요, 더 멋진 노래와 재담, 퍼포먼스로!!!   

 

  1. 空空(공공) 2021.03.01 15:26 신고

    싱어게인 TOP4가 아는 형님에 나왔었군요.
    재방송으로 한번 봐야겠습니다^^

 

 

무얼 훔치지

 

생각을 정돈하려다/ 마음을 어지럽혔나 봐/ 대충 이불로 덮어 놓고/ 방 문을 닫았어 ㅡ 여기서 생각은 다양한 것이 가능하겠으나 가사 전체를 보면 음악을 관둘까 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방구석 음악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11집에 이르는 음반으로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무명에 머문 이유과 현실의 압박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마음만 어지러웠을 뿐,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멈추고 잠을 자기 위해 대충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방 문을 닫았다. 여기서 방문은 생각을 멈추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과의 단절이나 여러 가지 시도를 멈추는 것을 의미하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완전한 단절을 뜻한다.

 

선반에 숨겨 놓았던/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읽으려다 그냥 말았어/ 거의 외웠으니까 ㅡ 상징으로서의 선반에 숨겨 놓았던, 대부분 선반에 무엇인가 넣어두기 때문에 기거서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희망이 필요한 사람, 그 작은 희망 때문에 행동에 옮긴 사람, 헌데 결과란 늘 똑같이 별 거 없는 사람, 그들에게는 수많은 후회들로 넘친다. 내 꿈이 지나친 것일까, 세상에서 받아주기 힘든 꿈일까, 내 능력을 넘어선 꿈일까,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 꿈은 꿈일 뿐이니까. 아니야, 어쩌면 노력이 부적해서 일 수도 있어. 보다 일찍,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더 노력했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야, 난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어, 운이 없었을 뿐이야.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게 문제지 난 문제업어. 난 배아픈 가수지만 그건 실력이 넘치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정말 전력을 다해, 만족하지 않으려 늘 배아픈 거야.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리듬, 더 좋은 노래를 위해 그랬던 거야. 헌데 이게 뭐지. 난 여전히 방구석 음악인이야... 이런 수없이 되풀이 했던 그래서 거의 외워버린 후회들, 그것들을 아무리 많이 꺼내서 읽어봤자 똑같은 것들이 계속될 뿐이야.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으면 외울 정도일까? 승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말해주는 것, 그래서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시도해보겠다고 결심했던 것. 죽는 것보다 싫은 음악을 포기하고 보통의 삶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그래서 자신의 하늘은 늘 낡았어. 이런 후회로, 분노로, 절망으로 하늘을 보니 낡은 미소만 보였겠지, 너무 한 거 아니야? 나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 밝은 미소로 하늘을 볼 수 없을 터, 좀더 밝은 미소를 건넸으면 달라졌을까?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하늘은 녹슬어 있는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럴까? 방구석에서 보는 하늘은 미세먼지와 각종 오염물질에 물들어 녹슬어 있는 황혼녘의 어스름일까?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그럼 난 무얼 훔치지 ㅡ 노을마저도 점점 어둠에 밀려가네. 급한 마음이 언덕으로 달려가보지만 노을은 그만큼 멀찍이 멀어지고, 그래서 내게 희망을 주어야 할 태양은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떨어져 있지. 그럼 날 무엇을 훔치지. 태양의 신으로부터 무언가 행운이 상징이라도 훔쳐야 할 텐데, 무언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무엇이라도 희망의 이름으로 훔치기라도 해야 할 텐데, 모두 다 멀어져 가기만 하니 난 무얼 훔치지, 빛이 희망이라면 태양만이 나에게 또다른 기회라도 줄 텐데, 왜 멀어져만 가는 거야. 


텅 빈 하루를 채우다/ 잠은 가루가 됐나 봐/ 쓸어 안아 누워 있다가/ 그냥 불어 버렸어 ㅡ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민스러운 생각만으로 가득한, 그래서 일상의 삶이란 하나도 하지 못한 텅빈 하루를 고민으로, 절망으로 채우다, 그렇게 뒤척걷리다 보니 잠은 가루처럼 아주 잘게 조각난 가루 수준까지 됐나 봐, 다 타버린 재처럼 가루가 됐나 봐, 그것을 목숨처럼 쓸어안아 누워 있다가, 바람에 놓아줄 수 없어서, 이것마저 놓아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아서, 그래서 쓸어안고 있었지만 그냥 불어 버렸어. 너를 내 꿈과 희망에서 날려 버렸어. 보내 버렸어.

 

옷장에 숨겨 놓았던/ 꿈들을 몇 벌 꺼내서/ 입으려다 그냥 말았어/ 어울리지 않잖아 ㅡ 이번에는 선반이 아닌 옷장에 숨겨 놓았던 무대 의상들을, 그래서 꿈일 수밖에 없는 옷들을 몇 벌 꺼내서 입어보려다, 가루를 날려 버린 후 미련이 남아서 입어보려고 했지만 그냥 입지 않았어, 그건 무대의상인데, 아무것도 아닌 방구석 음악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잖아. 그건 꿈일뿐, 현실이 아니잖아.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똑같다.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난 무얼 훔치지 ㅡ 앞과는 달리 이 절에서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것이 들어있다. 무엇인가 했다. 김이나 이전의 별밤에 자신의 노래를 신청한 것을 말할까?

 

조바심에 저 바람에/ 주파수를 훔쳐 봐도/ 모래 가루만 날리고/ 밤을 어지르지 ㅡ 2020년 12월 31일이 다가와서, 팬들이 늘지 않아서,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어서, 신청곡 사연마저도 채택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에, 밖으로는 바람만 무성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밤의 주파수를 훔치려고 했던 것이 혹시나 성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별밤 시청자들이 내 노래를 듣고 진행자가 좋은 감상평을 해주면 뭔가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채택되지 않았어. (채택됐나요? 네, 제가 확인하라고요? 어떻게? 팬카페에 가면 있을 거 아니야? 덕질한다며? 네, 알아볼게요. 채택됐는데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더 절망했을 텐데...) 결국 모래 가루만 날렸어, 그 때문에 밤만 어지러울 뿐, 모래만 휘날리는 죽음 같은 어둠 속이야.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이제 그만 할래 ㅡ 마지막에 아,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할래. 음악 포기할래. 내 나이도 있고, 이젠 뭔가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지. 내 음악인생은 실패야. 처참한 실패야. 이제 그만 할래. 힘들어. 넘 지쳤어. 

 

날짜들보다 오래 된/ 발자국처럼 노래가/ 신발 아래서 들려 와 ㅡ 수많은 시도를 했던 지난 10여년의 날짜들보다 더욱 오래된 이제는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발자국처럼, 그렇게 가루로 부셔 날려버려도 나의 노래는 저 죽음 같은 지옥에서라도 기어올라와 내 귀속으로 들여 와, 내 무너지는 마음 속에서 울려,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마, 우리 한 번만 더 해 봐, 한 번 더 도전해 봐, 포기하지마, 포기하면 모든 게 다 끝나. 포기하지 마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ㅡ 너무 힘들어, 너무 지셔서, 마음에는 상처 뿐인데, 그래서 포기하려 했는데, 이 낡은대로 낡아진, 무너지고 무너질대로 무너진 마음에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나에게 꿈을 줘,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게 해줘. 힘을 줘, 에너지를 줘, 돈을 줘... 아, 이건 아니구나. 아, 분위기 잡고 잘 갔는데.... 아무트 노래는 밝은 미소를 내게 건네 와, 고맙게도, 질기게도, 그 빌어먹을 쥐꼬리만한 희망의 이름으로.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난 눈물을 훔치지 ㅡ 너라는 놈은, 너라는 나의 꿈은, 너라는 나의 얘기는, 너라는 나의 모든 삶은, 너라는 노래는 왜 녹슬지 않는지, 이렇게 힘들고 좌절하고 외면받고 상처받고 쓰러져봤음에도 언제나 밝은 미소처럼 나를 일으켜세우는 것이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이지?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

 

 

최근에 들어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기 위한 짓거리들이 청와대와 여당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기 위한 이들의 헛짓거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기레기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과 신현수 민정수석 간에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와 그것에 대한 유영민 비서실장의 발언, 그의 발언에 제동을 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단의 해프닝은 무엇이 진실이던 간에 기레기와 야당(국짐은 물론 정당에서 정치동아리로 전락한 정의당 포함)들의 먹거리로 자리잡은 모양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림없이 지지하는 저로써는 대단히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지만, 이재명을 미래권력으로 밀어주고 있는 민주당 꼴통들에 의한 대통령 흔들기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어서 답답한 노릇이네요. 단임제 대통령제 하의 권력의 역사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미래권력으로 갈아탄 여당 내부로부터의 반발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문프의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언제까지 어디까지 박살낼까와 적정선의 국가채무를 둘러싼 무차별 기본소득에 대한 공방이 이런 혼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검찰 언제까지 어디까지 박살낼까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지만 무차별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가채무와 관련된 무차별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세계적 경제석학 만큼은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재부가 엠바고를 요청한 사안을 단독보도한 MBC의 엠병신 짓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과 연동시켜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엠병신은, 당정청이 힘들게 합의에 이른 4차재난지원금 규모를 보도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짓거리를 자행했습니다. 국가부채의 적정선에 대한 경험적이고 학문적인 합의가 없는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엠병신의 엠바고 파기는 기본소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시급한지 말해줍니다. 

 

 

무차별 기본소득은 정부 차원이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 차원에서 이루어진 실험은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앨라스카처럼 지역 차원에서 성공한 예도 특수한 경우여서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나온 기본소득 개념을 이어받은 조지스트들의 주장도 변방의 소리일 뿐입니다.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의 전반부에서 제시한 경제학과 극단의 혼란과 불평등에 빠진 19세기의 미국이란 조건이 전제될 때만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무차별 기본소득이 극적으로 되살아난 것은 제레미 러프킨처럼 구글이나 페이스북 소속의 인공지능 특이점주의자들의 뻥튀기에 놀아난 미래학자들ㅡ기본소득에 반대하지만 그외에는 똑같다는 데서 유발 하라리로 포함된다ㅡ이 유사마르크스주의적 접근으로 공동묘지로 되돌아간 기본소득을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불평등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인정한 채 하위 99.99%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줘 불평없는 노예처럼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마지막에 보면 빅데이타 기반의 인공지능과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낼 유전공학 및 나노공학이란 과학기술의 수렴현상을 한 장으로 요약한 뒤, 이 두 가지를 독점할 극소수의 거인들이 모든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무용지물처럼 버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에서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제시하지만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에 너무 나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구글을 둘러본 후, 그들의 능력에 화들짝 놀란 제레미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출판한 것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에릭 드렉슬러의 <창조의 엔진>과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등등이 출판된 이후, 일단의 철학자와 물리학자, 허리우드 영화제작자들까지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 영화제작자 등이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의 종말을 떠들어대면서 부의 극단적 독점과 그런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대안으로 무차별 기본소득을 공동묘지에서 불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한달에 300만원 가까이 주겠다는 무차별 기본소득은 얼핏 들으면 이보다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엇에 써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닥 하고, 그래서 혁명도 필요없고 남의 눈치도 볼 것이 없기 때문에 닐리니맘보로 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표퓰리즘의 전형인 무차별 기본소득은 극단적 표퓰리스트인 이재명에게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로 보였을 것입니다. 세월호참사를 더 이상 우려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차별 기본소득은 하늘이 준 선물 같았겠지요.

 

 

 

헌데 모든 국민에게 매달 300만원 정도를 준다는 것은 80%대 이상의 초누진세가 아니면 기존의 복지를 대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액수를 수만 원 대로 떨어뜨졌습니다. 그건 기본소득이 아닌 기본용돈에 다름없지만 엠병신과 모든 진보매체와 유튜버들이 밀어주고, 운이 좋게도 코로나19까지 장기화됐으니 용돈 수준이라도 떠들어댈 수 있었지요. 온갖 문제점이 밝혀지자 이제야 증세를 들고나왔지만 보편적 증세라고 합니다.

 

 

미쳐도 한참 미치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판에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용돈을 나눠주겠다니.. 이럴 경우 정규직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부자들은 부와 권력, 기회의 독점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제가 싱어게인 우승자인 이승윤에 대한 폭발적 인기ㅡ기존의 아이돌에게 쏟아지는 조공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ㅡ에 대해 '이승윤 현상'이라고 이름지은 이유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승윤의 공연이 아닌 가사와 인터뷰 같은 것만 해설하는 이유도 그때에는 명증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그때에는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승윤에 대한 여러가지 접근과 해석을 통해 나름의 욕망을 투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대중가수로서의 이슝윤과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써의 이승윤을 구별할 필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가수로서의 이승윤과 윤리·도덕적 실천가로서의 이승윤을 하나로 등치시키는 것에 내포된 위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이승윤이 시대의 부조리와 청춘의 절망, 좌절, 분노, 희망, 행복 등을 노래한다고 해서 그가 성직자나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음악활동으로부터 모범적인 삶을 이끌어내거나 그렇게 포장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욕망의 투사이며, 침해불가능한 권리이지만, 발터 벤야민이 <괴테의 친화력>에서 보여준 것처럼, 윤리와 도덕, 종교로 이승윤의 노래와 무대를 채색하면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질식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패자부활전의 성격이 강한 싱어게인에서, 치릿치릿뱅뱅을 열창할 때의 이승윤에게 빠져든 것은, 그가 어떤 계획 하에 무대를 구성하고 보여줌으로써 최고의 반응을 끌어내려 했는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30호로 불려야 하는 한 청년이 온갖 설움과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심사위원을 향해, 시청자를 향해 마음껏 놀아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무대를 넘어 화면까지 찢어버리는 그의 폭발력은 구속되지 않는 영혼의 자유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를 통해 통렬하게 비틀어버린 상류층의 고급문화이던 하층민의 대중문화이던 중요한 것은 한바탕 놀아보는 자유로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었지요. 감정의 배설이라고 해도 뭐, 문제될 것 있습니까? 검열이라도 하시게요? 치릿치릿뱅뱅을 부를 때의 이승윤이 무엇을 생각하고 목표했던 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좋았고, 빠져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의 덕질이 다른 이들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행복이란 나와 상관없는 세상의 것이며, 결국은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라는 숙명적인 비관론을 또다른 나의 자아로 여기며 살았던 저에게, 그 순간의 이승윤이란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구원의 약속과도 같은 짧은 망각이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과의 소캐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승윤을 보는 것이 좋았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래의 시는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는 죄의식에 힘들어했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이후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저를 보며 자책하시던, 가족들에게는 너무 고마운 착한 치매로 돌아가시기 전에야 저를 의지할 수 있었던 어머님에게 바치는 시이기도 합니다. 수천 권의 책으로 중무장한 저의 성찰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지만, 그 표면에는 온갖 상처들로 가득합니다. 

 

 

'방구석 음악인'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이승윤의 영혼에도 영롱한 보석처럼 단단해진 성찰이 자리하고 있을 터, 그 표면에도 많은 상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눈에 들어왔고, 이제야 상처에 화석처럼 붙어있던 딱지들을 하나둘씩 떼고 있는 저처럼, 그 역시 상처들이 화석처럼 굳어지기 전에 떼어내기를 바랐습니다. 무한의 가능성을 향해 날아오르되,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자유로운 비상을 최대한 오래하기를 바랍니다. 

 

 

 

봄나들이

 

 

 

더듬어 읽는 한 줄의 글에

어머님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바람에 걸어논 슬픔

하나의 목련과

하나의 진달래, 나의 봄은 늘

손끝으로 오고

느낌이 햇살 같아서

마음을 풀어 놓았다

언젠간 하늘도 만져 보리라

지금 같은지

이렇게 더듬는 봄나들이

어머님의 눈물은 무슨 색인지

  1. 2021.02.24 06:11

    비밀댓글입니다

  2. 空空(공공) 2021.02.24 06:11 신고

    이승윤 ..자유로운 영혼이죠^^

  3. 참교육 2021.02.24 09:33 신고

    선생님도 싱어게인 보시는군요. 인터넷에 난리더군요. 저본의 장난이 너무 심합니다.

    • 늙은도령 2021.02.24 20:08 신고

      저는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승윤은 시대의 문제와 인간의 실존,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 사랑에 대한 사랑..
      그런 것들을 가진 정말 괜찮은 사람입니다.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몇 년 간 힘들어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하는 등 그의 인간적인 면, 사회적 약자들을 어루만지는 시적 표현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만 세상을 바꿀 수 있지요.

  4. 여강여호 2021.02.24 10:17 신고

    덕분에 이승윤이라는 가수를 검색해봤습니다...tv를 거의 아본 탓에...ㅎㅎ ..암튼 관련글 앞으로 유심히 읽어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21.02.24 20:11 신고

      인간과 시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진 멋진 청년입니다.

 

 

이승윤 자작곡 가사에 대한 주해를 중심으로 한 저의 접근들은 몇 가지 전제하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방구석 음악인의 결과물 중 하나인 가사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승윤이 보여준 무대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퍼포먼스 전체에 대해서만 가사 해설과 연동해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출처가 있는 그의 말과 글을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승윤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대와 욕망, 믿음, 성공, 사랑 등을 투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부모와 형제, 지인들의 사랑과 응원, 격려, 믿음 속에서 착실하게 성장했다며 완성된 성인처럼 보는 기독교적 접근이 저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승윤씨의 성장기를 알 수 없는 저로써는 TV와 인터넷 공간에서 얻는 한정된 정보들로써 가사 해설과 그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전해주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벤야민이 보여주었던 방식의 고차원적 비평은 얼마되지 않지만 너무나 고마운 저의 독자분들이 고차원적 비평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기초지식이 탄탄해졌다고 판단됐을 때 진행할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승윤씨의 말과 행동, 글, 공연 등을 통해 심층적이고 다면적으로, 때로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 수단들을 동원해서 다층적이고 종합적으로 하고 있는 분석들을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등장했을 때의 전율과 임팩트에 비견될 만한 무대를 보여준 승윤씨의 치릿치릿뱅뱅이 철저하게 준비된 연출의 결과물이며, 다음 라운드에서 살짝살짝 보여준 살인적인 미소도 자신의 공연을 극대화하기 위해 준비해온 장치들의 하나였다는 것, 여러 번이나 흘린 눈물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다 진실일 수 없으며 계산된 멘트들이라는 것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비평은 대상을 씹어먹을 정도로 파고들어야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승윤씨에 대한 칭찬과 찬양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태지와 이승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맛보기로 해보고 두 천재의 합동공연을 기대하며 이번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디스토로에서 운영 중인 저의 2번째 블로그의 누적 뷰가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온갖 병과 개인적 사정 때문에 수없이 중단했다, 겨우겨우 이어지곤 했던 블로그 활동이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그동안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님들 덕분에 두 번의 암도 극복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어머님에 대한 형의상학적 죄의식과 시도때도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을 상당 부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해야 하겠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을 이루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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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연주자로 그룹활동. 락에 전념했으나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함. 그러나 유재하처럼 그룹활동을 통해 시대를 뒤집어버릴 실력을 키울 수 있었음. 자신의 음색을 고려하고, 대중가요의 시대적 상황과 가능성으로써의 미래상을 예측해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데뷔하기에 이르렀음. 호불호가 뚜렷했고 평가조차 별로였던 데뷔평을 완벽하게 전복시켜버린 폭발적인 대중의 환호는 서태지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을 정도.

 

 

처음에는 그것을 즐겼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자신을 짓눌러 옴. 당시에는 기획사 체제가 자리잡기 전이라 방송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차기 앨범 작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음. 그런 관행에 맞서 방송 활동과 음반 작업 기간을 나눠, 방송국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성공. 이것이 그가 내놓은 4개의 앨범과 함께 서태지가 거둔 업적 중 최고. 

 

 

 

최소한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는 당시의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만큼 감당하기 힘든 팬들과 대중의 요구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음. 개방적이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과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추구까지 겹쳐, 자신의 신비화가 하늘을 관통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은퇴를 함으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의 현재진행형에 종지부를 찍음. 그후 오랫동안 침묵한 뒤 자신이 추구하는 노래세계로 되돌아옴. 명성의 상당 부분은 잃었으나 대중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음.

 

 

이에 비해 이승윤은 짧지 않은 당양한 시도들을 했고,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경험들을 축적한 상태에서 대중과의 소개팅에 나왔음. 각종 오디션에 나간 이전의 승윤과 다른 점은 최후의 도전이었다는 점. 실패했을 경우 '방구석 음악인'으로서의 삶도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는 점.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성공했기에 실패했을 때의 선택을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 

 

 

이것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승윤씨가 서태지와 다른 점은 11장의 엘범과 거기에 실린 수많은 자작곡들이 있다는 것. 그중에서 상당 부분은, 아니 거의 대부분을 새롭게 가다듬어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태지가 받았을 중압감에 힘들어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더욱더 그럴 것임. 승윤씨가 가장 많은 폭발력을 보여준 치릿치릿뱅뱅보다 소우주에 더욱 많은 점수를 준 것도 그런 폭발력은 생애를 통틀어도 몇 번 나올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면 더 이상의 뮤지션 활동은 불가능.

 

 

승윤씨가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고, 서태지 수준의 인기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의 결과가 이승윤으로 남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나왔음. 서태지는 어렸고, 그를 도와줄 멘토도 없었지만, 승윤은 지금까지의 실패와 좌절, 고뇌 등으로 단련됐으며, 지금의 인기는 낯설지만 충분히 즐길 만큼의 경험치는 가지고 있음.

 

 

알라리 깡숑 멤버들도 있고,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홍일과 이무진과의 우정도 있으며, 김이나나 유희열처럼 그의 재능을 아끼고 함께해줄 이들이 많다는 것도 서태지와 다름. 음악부터 외모까지,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태지는 디지털 시대의 여명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가는 계량화가 불가능할 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지만, 이승윤은 디지털 시대의 정점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유리한 지점에 있다. 

 

 

틀을 깨는 가수라는 틀을 경계하고, 자신이 그 자체로 장르가 되는 것도 경계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작곡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있음. 나이 또한 결코 작지 않기에 즐기되 중독될 만큼까지 나가지는 않을 것임. 그렇다해도 팬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두 사람의 합동공연이리라!! 

  1. 空空(공공) 2021.02.25 06:55 신고

    싱어게인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것이 "반짝이"가
    안 되었으면 합니다.
    온라인 투표가 많앗던게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은 서태지니 BTS에 비견할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좀 지켜 봐야겠네요

 

 

의사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부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의 ㅡ 의학적으로

사 ㅡ 사망한 자들

 

또는 

 

의 ㅡ 의도적으로 

사 ㅡ 사팔된 자들

 

또는

 

의 ㅡ 의뭉스럽게

사 ㅡ 사정한 자들 

 

또는

 

의 ㅡ 의기투합해

사 ㅡ 사고친 자들

 

또는 

 

의 ㅡ 의무적으로

사 ㅡ 사기친 자들

 

또는

 

의 ㅡ 의롭지 않게

사 ㅡ 사육된 자들

 

이밖에도 수없이 많으나 이하생략, 끝!

  1. 여강여호 2021.02.23 04:48 신고

    대놓고 특권을 요구하는 집단은 또 처음 봅니다..

    • 늙은도령 2021.02.23 16:45 신고

      한 발 물러섰던데 이 기회에 박살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짓거리를 못하도록...

  2. 참교육 2021.02.23 06:17 신고

    마이클 샌델교수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에서 승자의 교만을 지적했는데.... 겸손부터 좀 배워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21.02.23 16:47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교만과 오만이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기에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고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저는 진보좌파의 각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엘리트주의에서 제발 탈피했으면 해요.

  3. 空空(공공) 2021.02.23 11:05 신고

    지난 글 읽다가 댓글 보고 들어 왔는데 요즘 글 올리시는군요
    전 유튜브 하시는줄 알았습니다.ㅎ

    의학적으로 사망한자들이 제일 와 닿네요.ㅋ
    최대지 같은 사람이 회장이니...

    • 늙은도령 2021.02.23 16:48 신고

      어머님 돌아가신 이후 너무 힘들어 무엇이든 탈출구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유튜브에 매달렸지요.
      블로그도 함께 하면서...

  4. 같이 잘살자 2021.02.25 22:46

    의사라고 쓰고
    사짜라고 읽는다

 

 

흩어진 꿈을 모아

 

이 노래는 승윤씨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해설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승윤씨가 아무리 조숙하도 해도 고등학생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시의 상황, 개인적 경험, 진학문제, 가정환경 등등을 유추해서 가사를 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고등학생 특유의 세계관이나 감수성을 고려하되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오직 어둠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리나요 이 작은 외침이 ㅡ 만일 승윤씨 이 노래를 고3때 작곡한 것이라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당시의 세상이란 대공황을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어서 들려오는 얘기란 어둠뿐이었을 것입니다.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암울한 전망만 번성했을 때니 사방천지를 채운 것은 한탄뿐이었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승윤씨라고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귀기울여  들어줘요, 절망 속에 흘린 눈물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ㅡ 그러니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귀기울여 둘어주세요. 모두가 한탄을 쏟아내며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과 각자도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만 말고, 그런 최악의 절망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물까지 포함해 강을 이룰 듯한 눈물들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다시 말해 절망의 눈물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단서로서 아름답게 빛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절망과 한탄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특유의 탄력성과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설 때, 이를 테면 절망과 한탄의 노예가 될 수 없는 우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세계 어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ㅡ 어른의 잘못으로 아무 책임도 없는 자신과 같은 또래들의 꿈들이 조각조각 찢어지며 이리저리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조작들을 하나하나 모아 희망이라고 불러요.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절망하고 한탄하며 포기기에는 우리의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희망마저 포기하기에는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을 절망과 한탄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테니까.

 

이 세상엔 오직 절망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렸나요 내 작은 외침이 ㅡ 절망과 한탄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지만 들리지 않았나요. 나와 또래의 아이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미래세대인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희망의 노래들을 듣기라도 했나요? 들리기라도 했나요?

 

다시 들어봐쥐요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아름다운 노랠 할 때 ㅡ 예전처럼, 1~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들어봐줘요. 어렸을 때부터 썼기 때문에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희망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눈물의 이름으로 노래를 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이, 어쩌면 더 어린아이들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우리까지 절망과 한탄에 휩쓸리거나 굴복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어리고, 남은 시간들이 너무 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위해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희망이라고

 

 

 

 

 

번역가들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동그란 마음 ㅡ 기존의 관념, 관점, 체제, 세계관 등에 갇혀있는 개별 개인들의 마음을 표현, 난 동그란 것을 말하려 하는데 왜 네모난 모양으로 말해야 하는 거지? 그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난 갇히기 싫어.   

 

언제나 알아주기란 힘들지 ㅡ 그래서 모든 글을, 또는 나처럼 각각의 글을 네모난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동그란, 기존의 관점에서 자유롭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네 동그란 마음을 알아주기란 힘들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아주겠어.  

 

뚜렷한 글씨 안에 갇힌 투명한 말 ㅡ 나의 마음을 분명하게 담아낸 글이지만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어 뚜렷하게 보여지는 글씨(글자의 여러 종류 표현)에 갇혀버린 표현들. 투명인간처럼 취급되는 내 마음, 그래서 투명해진 나의 말, 또는 가사, 노래에 담아낸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 마음들. 

 

언제나 보여 주기란 어렵지 ㅡ 어려운 것 같아. 기성의 틀 안에서, 정해진 규범 속에서 나만의 얘기와 마음, 노래를 보여주고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늘 어려워. 나의 마음을 가장 나답게 담아낸 말로 타인과 소통하기란 참 힘들어. 난 그래서 유명하지 않아. 방구석 음악인이야. 

 

우린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들 ㅡ 나는 내 마음을 글로 표현했고, 노래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기존의 해석틀로는 번역이 안돼, 난 내 마음을 전하는 작가이고 싶지만 번역조차 되지 않은, 그래서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에 불과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난 인정의 기준인 검증을 받지도 못했기에 창작자나 작가아 아닌 내 마음을 전달하려면 기존의 틀로 번역해야 하지만, 검증받지 못했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    

 

여긴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이지 ㅡ 이중적 의미,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것을 뜻할 수도 있고, 기존의 틀이 아니면 타인에 의해 해석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래서 나만의 언어로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나의 창작물은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로 격하될 수밖에 없어. 괴테의 삶을 신화화한 뒤, 그것을 독점(선취)함으로써 괴테의 작품 해석까지 독차지하려 했던 군돌프의 <괴테>를 통렬하게 비판한 발터 벤야민의 <괴테의 친화력>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너의 이야기를, 타인의 이야기를, 나와 다른 말과 해석도구를 사용하는 기성세대의 작품과 말, 마음과 노래들을 나의 시각과 관점,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어. 그렇게 나의 마음을 담아낸 내 말과 노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이해 받고 싶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내 마음은 이거였었어. 이해해주면 안될까? 이해받고 싶어.  

 

조그만 불빛 아래 숨긴 커다란 밤 ㅡ 작은 월세방, 작은 탁상 앞에 앉아, 그 작은 공간을 빛추는 불빛 아래, 수많은 상상과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커다란 공간으로써의 나의 밤. 쓸쓸하고 외로운, 인정 받지 못하는 한 명의 청춘인 나, 방구석 음악인. 문밖으로 나가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지만... 

 

언제나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ㅡ 나의 욕망을, 내 희망을, 내 바람을, 너와 타인의 욕망을, 희망을, 바람을 모른 척하기란 쉽지 않아. 내가 나에게, 네가 너에게,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그렇게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과감한 걸음 아래 숨긴 가난한 발 ㅡ 그래서 문을 나섰어. 난 2020년 12월 31일까지 방구석 음악인이 아닌 30호 무명가수가 아닌 음악보다 이름이 조금은 앞서기를 바라는 이승윤이 여기있다고 말하기 위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헌데 걸음은 과감해 보이지만 나의 현실이란, 나의 초라한 월세방이란, 나의 월수입이란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 난 가난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언제나 보이지 않기란 어렵지 ㅡ  나의 이런 가난함을 숨기기란 힘들지. 나의 마음을 담은 말과 노래, 얘기들을 숨기고만 살 수 없듯이, 그것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음도 드러내 보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 인디나 마이너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이중의 갈등. 모순적 이율배반. 아웃사이더 특유의 사유.  

 

우린 진실 할 수 없는 반역가들 ㅡ 나를 나로써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네모난 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데, 내가 말하고 노래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쓰고 말하고 노래해, 그러면서도 노래보다 이름이 조금 앞에 있는 성공을 갈망해.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너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인디와 마이너들은 일종의 반역가야. 기성체제의 성공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이지만, 쓰고 말하고 노래하니 반역가이기도 하지.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서성이지 ㅡ 우리끼리,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무대에서, 서로를 위해, 그렇게라도 작은 생태계라도 유지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그 작은 시장규모 때문에 스스로를 거역하며, 많은 무대를 양보하며, 알려지고 싶은 욕망과 희망을 거역하며, 난 그렇게 서성이지. 넌 그렇게 서성이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서성이고 있지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경계선 상의 우리를 넘어 그밖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의 이승윤이 진득히 묻어있고,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동료와 친구들의 마음이, 갈등이, 현실이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따져 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질병이 창궐할 테니까요.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ㅡ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테네시 주 멤피스 연설 중에서 

 

 

출처 : 네이버이미지 

 

 

이번에는 의사협회로 대표되는 의사라는 작자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똑같은 폭력을 일삼았던 전국의 전공의와 의대생에 이어 그들의 스승이자 선배, 동료인 의사들이 오직 국가에 의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는 독점적 자격증을 흔들며 대국민 폭력을 자행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인간이 짐승으로 퇴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역진화의 증인들이 지랄의 페러이드를 벌일 모양입니다. 

 

 

이반 일리치가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경고한 것처럼, 최대집으로 대표되는 이땅의 의사들은 국가가 공인해주지 않으면 절대 독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자격증을 내세워 그들만의 천국에 정당한 제한을 가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개거품을 물며 멍멍거립니다. 그 지랄맞은 자격증을 앞세워 신성불멸의 예외주의를 외치는 이들의 후안무치와 파렴치함은 살인과 강간 같은 강력범죄와 의료행위는 구별된다는 주장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편적 도덕과 최소한의 의사윤리마저 내다버리는 이들의 대국민협박은 위에 인용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만으로도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 담론의 폐해를 쉬운 언어와 통합적으로 다루는데 성공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보면 의사협회라는 정치경제적 이익집단에 소속된 의사들의 공공연한 대국민협박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사라는 전문직을 돈과 명성을 위한 성공과 능력의 증거로만 인식하는 이들의 삐뚤어진 의식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화'가 절대다수의 패자를 넘어 소수의 승자에게까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주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좌우와 중도,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지난 신자유주의 50년 동안 신의 섭리는 극소수의 승자와 강자와 함께한다며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넘어 모든 패자들에게 굴욕과 멸시, 절망과 책임까지 퍼부어버린 일방통행의 결과물입니다. 

 

 

의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국가가 인정해주기 때문에 독점권을 가지게 된 전문자격증ㅡ자신의 능력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행운과 도움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되는ㅡ을 따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 내세워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는 공갈협박을 자행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예외주의보다 더욱 파렴치한 이들의 백신 접종 중단, 총파업 운운은 그들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말해줍니다. 

 

 

최대집과 의사협회 간부들의 대국민협박을 보면 인간이 짐승으로 퇴화하는 역진화가 가능하다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들을 보는 듯합니다. 도덕과 윤리를 밥말아드신 이들은 "노력과 재능의 힘으로 능력 경쟁에서 앞서 가는 사람은 그 경쟁의 그림자에 가려 있는 요소들 덕을 보고 있다"는 마이클 샌델의 지적을 되새겨야 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특히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나와 이웃들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 노동자가 이들보다 사회적 기여가 떨어지지 않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1. 여강여호 2021.02.22 05:47 신고

    어이가 없더군요..어떻게 대놓고 특권을 요구할수 있는지...우리사회 기득권..참 무섭습니다..

  2. 참교육 2021.02.22 07:26 신고

    국민의 세금으로 길러낸 의사들이 그 한 의술을 국민협박용으로 써 먹는군요. 죄대집부터 의사면허 박탈해야겠습니다.

  3. 空空(공공) 2021.02.27 08:24 신고

    거기에 국민의 암들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승윤은 음악인생의 마지막 도전에서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아니 처음으로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이렇듯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승윤이 싱어게인이라는 최후의 도전무대가 없었다면, 아니 몇 개월이라도 늦게 시작했다면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런 삶의 우연성, 뜻하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행운, 간절하게 원했을 때는 오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모든 것을 풀어놓을 때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이승윤의 최종우승과 현재의 신드룸이 말해줍니다. 이땅의 모든 청춘이 이런 행운을 잡을 수 없지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어디선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입니다. 감사합니다.

 

*********

 

남의 도움으로 창작자로 사는 것, 이기적인 짓이 아닐까?

오디션에 맞지 않는 가수라고 생각, 그러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음악을 취미로 하면 못견딜 것,

'무영가수 모여'라는 컨셉의 싱어게인이 마지막 도전, 매 라운드마다 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음.

잘하면 2라운드, 정말 운이 좋으면 3라운드까지.

무엇보다도 가사가 중요했음.

나를 말해줄 수 있는 노래 선택. 우승까지의 경연 중 가장 신경썼던 것은 '소우주',

치릿치릿뱅뱅에서 보여준 것처럼 파격은 장르가 아니어서 자신의 색깔을 담아 예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곡이 '소우주', 자신의 이미지가 파격이 될 수 없으니까.

'너 그렇게 살거야'라고 야단맞은 후 대학가요제 출전,

1집 음원이 사라진 것은 변명처럼 음악을 할 때라 완성도가 떨어지고, 너무나 아끼던 노래들이며, 싱어게인에서 웃긴 캐릭터로 5분이라도 나오게 하려고 '허니' 부르기 전에 음원을 내려달라고 부탁,

 

 

가장 신경쓰는 것은 가사, 생각날 때마다 메모, 그것들이 쌓여 가사로 승화,  

자신은 정석이 아님, 모든 것이 비정석,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 부담, 이승윤으로 사는 것도 힘들어, 이무진 여전히 부러워, 이적과 힙합이란 장르에서 가장 많은 영향받았음.

무명의 남성 싱어송라이터는 이적을 대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쪼잔뱅이라서 부르지 않았으나, 최종전에서 물을 부른 것은 존경의 마음이자 자신의 선택,

2017년부터 모든 시간이 힘들었음, 귀차니즘과 유명세 희망은 모순을 탈피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명세가 필요한데 이것저것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싱어게인을 마지막으로 모순의 동행을 끝내자고 결론내림, 싱어게인에 고마운 것은 가사만 잘쓴다고 생각했지 편곡은 대충했는데, 편곡에 집중하도록, 그래서 편곡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

대중적 가사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선호, 호불호의 차이를 부르지만 어쩔 수 없음.

락 좋아하지만 어떤 게 얼터너티브, 펑크, 하드 등 장르 구별 못함,

트로트와 정통 발라드 피지컬적으로 불가능,

슬픔에 민감, 제 감정이나 실패를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일희일비 안했음.

싱어게인 덕분에 나의 일희일비에 눈물, 감정 표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음, 남의 슬픔에 우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나의 일로 울어봄,

다작쟁이에 자신의 한계를 규정했으나 이제부터는 어떻게 노래할지 고민해야,

이름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명곡을 쓰는 것이 목표,

'새벽이 들려준 마음' 많이 아낌.

상금, 연금처럼 오래오래 쓸 것,       

 

  

 

 

오늘도

커튼이 가려 놓은 창 밖의 하루를 거뜬히 감당 해 내기를 기도해요 ㅡ 방구석 음악인으로써 나와 세상은 창문 커튼에 의해 분리됐다. 커튼은 상징, 정말의 나와 잘나가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 축제에 함께하지 못하는 실패한 자의 답답하고 힘든 작은 공간. 월세를 제때 내기에도 힘겨운 나의 하루하루. 난, 기도해야 방구석이 아닌 커튼 밖의 세상에 하루를 거뜬히 감당해낼 수 있는 날을.

 

어떤 이는 오늘도 창백한 얼굴로 터뜨리지 못한 분노를 삼키네요 ㅡ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아니 능력이 모자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은커녕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데,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는 꿈도 꾸지 못해요. 1%도 안되는 희망의 이름으로 압도적인 절망을 버텨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삼키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부와 권력은 물론 기회마저 독점한 자들은 더 갖지 못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지만 하루하루 넘기기도 힘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죠.

 

삼켜야만 할 일 투성이인 오늘 하룰테죠 ㅡ 비정규직의 불안정성, 낮은 시급, 멸시하는 시선들, 차별의 일상화, 연예도 결혼도 내집 마련도 모두 다 포기한 세대로써 아무리 노오오오력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일은 넘칠 만큼 많은데, 쥐꼬리만한 일당,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오늘의 법벌이를 위해 하루에도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다쳐야만 끝이 나는 하루 일수도 있겠죠 ㅡ 먹고살기 위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파견나간 현장의 구석진 곳에서 컵라면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지만, 상시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열악한 작업환경,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고를 당해야, 때로는 목숨까지 잃어야 저임금 작업이 끝나는 그런 청춘들도 있겠지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울지 말아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울지 않으면 어떻게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겠어요. 다쳤으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울어요. 세상에 말해요,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으니 잡아달라고. 누구라도, 어느 누구라도. 

 

달이 등장 했지만 아직도 하루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깰 짓눌러요 ㅡ 쥐꼬리만한 시급이라도 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달이 뜰 때까지 투잡, 쓰리잡도 뛰는데, 남들은 편히 쉬어야 할 이 시간에도 나는 쉴 수 없어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깨를 짓누르는 저임금 노동이 너무너무 힘들어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픈 것밖에 없어서, 그럼에도 치료도 받지 못하는 청춘이에요.    

 

말이 그저 하고픈지 할 말이 있는지 잠이 와도 쉽사리 잠들지 못해요 ㅡ 하루하루가 이러한데 누구라도 잡고 나의 절망과 현실에 대해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저 들어만줘도 마음이 조금은 풀릴 텐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죽을 만큼 피로한데, 피로가 쌓여 이제는 일상화됐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요. 잠들지 못해요.  

 

삼키다 너무 힘이 들면 토해 낼 때가 있겠죠 ㅡ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히는 분노와 절망의 양이 임계점을 돌파하면 토해낼 때도 있겠죠. 내가 나를 갉아먹는 이런 마음앓이가 더 이상 담아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비명처럼 토해낼 때도 있겠지요. 토해내고 싶어요, 우리 이렇게 여기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그러나 토 해낸 자리는 내가 치워야 할테죠 울지는 말아요 ㅡ 토해낸들 이 냉정하고 잔혹한 세상이 답해주지는 않겠지요. 결국 힘겹게 토해낸 감정의 배설은, 그 청춘의 절규는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하기에 토해낸 것은 내가 치워야 하는 것이 현실의 반복이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 빌어먹을 1%이 희망을 믿고 울지는 말아요. 우는 것까지 하면 너무 초라하고 슬프고 참담하잖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아니, 아니, 울어요. 울어도 되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청춘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연속이니까.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화가 되어 버릴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ㅡ 참으로 처절한 부분. 순간순간 매일매일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회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절망과 체념, 굴종이 내면화돼 완벽한 절망속에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그런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왜, 희망은 모든 악한 것들이 담겨있던 판도라상자에 있었을까? 희망은 원래 악한 것이었던가요? 그래서 판도라상자의 맨 밑바닥에 있었던가요? 탈출도 못할 만큼 그렇게 악한 것이었던가요?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ㅡ 그런 희망을 믿어도 될까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람사는 세상을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믿어 보기로 해요 ㅡ 우리 무너지지 말고 좌절해서 방구석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요. 커튼 뒤에 숨어서 세상과 단절하지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지만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니까. 믿어 보기로 해요. 믿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살아야, 살아서 패자부활전의 기회라도 잡아야요. 그런 기회가 기적처럼 올지도 모르잖아요.  




 

어제 풍림의 특수주사기가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노통과 잠시 일했고, 문프를 도왔다는 인연으로 민정수석에 임명된 어떤 인물이 임명 2개월도 안돼 사의를 표했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ㅡ문프의 레임덕을 최대한 앞당기지 못해 미치고 환장할 지경에 처한 조중동과 대통령에 병에 걸린 이재명을 밀어주면 뭐라고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진보매체에게는 대단히 중요한ㅡ뉴스에 묻혀 뒤로 밀렸지만. 

 

 

풍림이라는 기술 위주의 중소업체가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 LG화학에 이어 두 번째인 석유화학기업 롯데케미칼의 도움을 받아 성공신화의 깃발을 올렸으니 세간의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매일같이 재벌 및 대기업과의 상생과 공존을 떠들어대던 진보매체는 악착같이 외면했고, 재벌의 똥구멍만 빨아먹는 조중동과 그 아류들은 마지못해 보도했지만, 천만 문파의 입소문을 타고 풍림과 삼성전자, 롯데케미컬의 상생협력 모델은 대한민국 경제생태계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킨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풍림의 주력사업은 구멍가게 수준도 안되고, 계열사와 업종이 겹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세계로부터 가장 많은 플라스틱 제품들을 납품받고 있는 삼성전자는 풍림이 넘기 힘든 최대 난관을 최소 두 개 이상이나 뚫어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특수주사기를 위한 고품질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를 소개시켜준 것입니다. 미국 FDA 승인을 최단기간 내에 받아준 것도 삼성전자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특수주사기에 들어갈 플라스틱 자재를 개발, 제공해주었습니다. 모든 플라스틱 업체의 최대 목표는 유리에 버금갈 정도의 투명성을, 유리와 비슷한 가격에 보급할 수 있는 것인데, 현존하는 플라스틱 원자재 중 가장 투명성이 높은 PP는 롯데케미칼의 주요 품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풍림의 특수주사기 양산이 가능했습니다. 풍림의 규모와 연구력, 자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 두 초일류기업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런 상생모델은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숙원이었고, 임기 중 씨앗이 뿌려졌고, 민관합동으로 작성한 '비전2030'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내놓았지요. 일종의 청사진인 '비전2030'은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으로 상당 부분 퇴출되고, 그 이상으로 지연됐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화려하지 않지만 내실있게 살아났습니다. 사드 배치와 미중무역전쟁에 따른 원치 않은 중국과의 갈등, 아베라는 천하의 또라이가 터뜨린 한일무역전쟁, 지구온난화에 따른 초장기장마, 전세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간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초대형 외부충격들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상생협력 모델은 청와대와 중소기업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던 것이지요. 

 

 

많은 국민들이, KBS와 MBC를 필두로, 한경오로 대표되는 진보매체와 구좌파적 진보매체 프레시안,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나꼼수 멤버들과 이동형으로 대표되는 그 아류들, 그들의 똘마니를 자처하는 진보스피커들 때문에 대한민국의 재벌들이 옛날처럼 기술기업 사냥이나 하는 악마로 인식됐지만, 그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그런 못된 습관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기업사냥꾼들은 IT의 7대 공룡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경우 1주일에 하나 이상의 회사를, 특히 명시적인 것을 넘어 잠재적인 경쟁자까지 모조리 사들이는 기업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선진국들이 경계대상 1호로 여기는 한국의 재벌들을 예전과 같이 바라본다면 세상을 몰라도 한참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까지 보장할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그런 기업사냥이란 꿈도 꾸지 못하는 과거의 퇴물로 악습의 박물관에 처박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이낙연 전 총리, 홍남기 기재부장관이 주도하고 전현직 중소기업부 장관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중 하나가 풍림의 특수주사기 성공신화입니다. 문프의 동정을 보도하는 KTV의 문워크를 보면 이런 동반성장, 상생모델의 실제 사례들이 즐비하게 나옵니다. 일본이란 절대강자를 밀어내는데 성공한 것도, 기레기들이 철저하게 외면한, 그래서 노통의 '비전2030'과 비슷한 처지로 내몰린 '그린뉴딜정책'을 보면 풍림의 성공이 시작일 뿐, 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이 나라를 망치지도 않고, 오만불손하고 정치적이기로치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양아치들의 집단인 윤석렬의 검찰만 빨아주는 것입니다. 조국과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검언유착의 파렴치한 기득권 지키기가 한국경제의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는 증거로써의 풍림의 특수주사기 성공신화를 민정수석 파동으로 묻어버린 것이지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부여해준, 다시 말해 국민이 위탁한 권력을 모두 다 수중에 넣은 검찰과 살아있는 권력만 물어뜯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엘리트주의 언론들이 담합하면 어떤 대통령과 정부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국민과 대통령, 시민과 정부 사이에 자리한 채 거의 모든 것들을 왜곡하고 조작하고 선동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 엘리트 수중에서 국민의 삶속으로 내려오지 못합니다.           

 

 

풍림과 삼성전자, 롯데케미칼의 상생모델의 성공신화는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모두 다 기뻐하고 칭찬해도 모자랄 판인데,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미미한 영향력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이 북한의 대남침략처럼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져 국민의 눈과 귀를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국민을 선동과 상징조작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검찰과 언론의 검언유착은 촛불혁명의 염원이었던 '이게 나라다!'라는 시대정신을 무력화시켜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립니다. 

 

 

풍림의 성공신화를 이끌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런 상생과 공존의 상생모델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모범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남은 문제는 앞으로도 이땅에서 살아가고 태어나 또다른 성공신화를 만들어갈 미래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희망적인,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모토는 같습니다, 미래세대의 희망이 현세대의 욕망에 우선한다!!  

 

 

P.S. 저의 형이 개발책임자로 국산화에 성공했던,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고, 유리병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각종 화학작용을 막아내고, 기존의 외국 링거팩에 비해 강도도 높이는데 성공한 국산 링거팩은 이런 상생모델의 도움을 받지 못해 기술 일체와 연구원 상당수가 중국에 팔려갔습니다. 복잡다난했던 내부사정까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국내에서의 사업화가 불발되면서 중국만 좋은 일이 되버렸지요.

 

 

식품에 적용되는 플라스틱 코팅과 무균살균포장 기술로 이루어진 햇반 용기도 형의 주도하에 만들었지만, 국산화에 성공한 링거팩은 중국의 100대 기술로 넘어가 그곳에서 자리잡는 불운을 겪었지요. 풍림의 특수주사기에 대한 내용이 너무 길어져 예전에 썼던 글을 링크로 걸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blog.daum.net/do-justice/241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자매의 학폭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딸들의 성공이 자신에게 달렸다는 듯했던 어머니의 문제까지 거론되더군요. 배구계는 물론 스포츠계 전반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침묵의 카르텔'까지 비판하는 것도 스포츠계에 만연한 학폭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당연한 사실확인이고 그에 따른 비판이기에 어떤 문제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본질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공만 하면 장땡이라는 극단적 능력주의 담론이 일상화된 세상이 어떻게 구축됐는지에 대해서는 일체의 성찰이 없습니다. 언제부터 모든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능력과 무능력으로 돌려질 수 있게 됐는지, 그래서 성공한 자는 천문학적 연봉을 받아도 당연한 것이고, 실패한 자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도록 강요받는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장악한 자유주의 50년의 능력주의 담론은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만이 아니라, 로버트 퍼트남의 <우리아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연구와 저작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음에도 정치인과 언론, 교수와 지식인은 이에 침묵합니다. 영국에서는 대처,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처음 꺼내든 능력주의 담론은 블레어와 클린턴 부부, 슈뢰더 독일총리 등의 중도좌파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를 거쳐 오마바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성공에는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기에 실패에는 가혹한 책임을 떠넘길 수 있지요.

 

 

환경과 지위, 행운, 불평등, 양극화도 실력이라는 능력주의 담론은,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거의 대부분 개인의 능력밖에서 결정되기 일쑤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40~70년대까지의 복지국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이런 능력주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처럼 내재화된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언론과 방송사의 기자들이 이런 능력주의 담론의 신봉자들이고 수혜자들입니다. 

 

 

 

그들의 싸구려 우월의식도 이것에 기인하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슈퍼스타 연봉도 이런 식으로 정당화됩니다. 심지어는 이런 능력주의 담론이 페미니즘에도 스며들어 남성경멸 및 여성우월주의로 포장되는 경향도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쌍둥이자매를 공격하기 위해 김연경 선수를 끌어들이는 작태들도 능력주의 담론이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김연경을 앞세우는 배후에는 '능력으로만 따지면 너희들은 깜도 안돼'라는 왜곡된 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나의 이익과 행복을 헤치는 것은 모두가 악이라는 'Big me' 시대는 어린 시절의 피해가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변질되기 일쑤입니다. 용서와 극복, 망각이라는 위대한 인격 성장과 진화의 축복도 복수를 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회의 가혹한 처벌 담론은 모든 것이 극단화되는 디지털시대의 성공주의 담론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도보다 아프게'의 이승윤처럼, 김연경은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유족을 찾고, 터기에서의 시합 중에는 노란 팔찌를 차고 나간 시합도 있었습니다. 이승윤을 비롯한 싱어게인 스타들의 살인적인 스케줄도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JTBC의 덕이니 감내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JTBC는 그런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 담론의 노골적인 변형이지요. JTBC는 시청률에 따른 광고 수주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는데, 그 이상의 독식도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지요. 

 

 

로버터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 사회>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등등을 보면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는 물론, 스포츠와 연예계의 슈퍼스타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싹쓸이할 수 있는 이유들이 자세히 나옵니다. 이들의 분석이 지목하는 공통지점에 지난 50년 동안 좌우와 보수진보 모두의 능력주의 찬양 담론과 성공 및 번영의 복음, 신의 섭리로 포장된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연경과 이승윤의 차이는 노력과 운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써의 천재성이 성공의 정점과 성공의 출발점에 있다는 것이지요. 김연경은 모든 검증을 거친 자타공인 세계 최고선수이고, 이승윤은 숱한 검증을 통과해야 하지만, 둘의 선한 정신과 착한 마음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와 절제, 타자들을 위한 자기희생 등은 성공이 오직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는 성숙된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생과 상생의 실천입니다.   

 

 

김연경이 후배들을 위해 연봉(이것도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을 대폭 삭감했고, 여자배구대표팀이 남자배구대표팀에 비해 차별받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총대를 매는 등 슈퍼스타 이상의 그 무엇이었습니다. 싱어게인에서 1등한 이승윤도 살인적인 스케줄 중에서도 인디밴드들을 소개하고 무명의 가수들을 알리는데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연경과 이승윤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 그들을 그렇게 키운 어머니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장의 성적을 위해 슈퍼스타 위주의 행정만 고집해온 '침묵의 카르텔'을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김연경을 끌어들이는 것은 김연경을 죽이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김연경이 한국으로 돌아은 것은 한국여자배구의 발전과 더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며, 외국에서 뛰는 자신을 변함없이 응원해준 팬들과 국민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함이지 쌍둥이 자매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1. 여강여호 2021.02.18 17:23 신고

    스포츠계에 만연한 고질적인 폭력에 대한 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단순히 가해자 처벌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데 말이죠.

    • 늙은도령 2021.02.18 18:09 신고

      네, 늘 그렇지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땜질하지요.
      방송사들이 더 문제에요.

  2. 참교육 2021.02.19 07:33 신고

    인면수심...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가를 경재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참으로 기막힌 현실입니다.
    가정폭력만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와 직장 사회, 국가 자본의 폭력은 또 어떤가요?

    • 늙은도령 2021.02.19 15:49 신고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면 근원적 문제를 바로잡는데 집중했으면 합니다.

  3. 영국사는 크리스 2021.02.20 04:33 신고

    동감합니다.
    김연경은 조용히 놔 두고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말이죠.

  4. *저녁노을* 2021.02.20 05:10 신고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것 같아요.ㅠ.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5. 2021.02.20 09:09

    비밀댓글입니다

<p>

허튼소리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직설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기 일쑤다. 사랑 고백은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허튼소리로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사랑에 능숙한 것도 수줍어하는 청춘 승윤에게는 힘들기만 했나 보다.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ㅡ 그녀 앞에 서면 난 얼어버려. 머리가 하해지면 말을 잃어버리기 일쑤야.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ㅡ 말을 잃어버리는 만큼 심장은 벌렁벌렁, 쿵쾅쿵쾅. 허튼소리가 아닌 내 심장박동을 들어줘!!!! 

 

옅은 채색은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승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그 고백이란 화려한 말로 이루어진 채색이 아니라설레임과 부끄러움을 간직한 옅은 채색이었을지도. 나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지만 투명에 가까울 만큼 한결같으니까.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너의 앞에서 허튼소리만 했듯이, 내 사랑을 화려한 말로 채색해서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도 못해.   

실은 내 물감통에는 단색뿐이었는데 ㅡ 시적 표현이나 멋진 은유와는 달리 사랑에 대한 내 말들은 화려할 수 없는 단색일 뿐이야. 화려한 말은, 그런 채색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하겠어.  

신기하게 총 천연색 섬이 그려지더라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대한 내 사랑을 그려보기라도 하면 언제나 총연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섬이 되기만 해.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ㅡ 잠에 들었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뭐야? 혹시 네가 나를 부른 거니? 허튼소리와 옅은 단색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내 사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이니. 아니면 꿈을 꾸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ㅡ 혹시 몰라 나는,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는 실눈을 뜨고, 마치 꿈꾸는 것이라고 둘러대려고 잠꼬대를, 아니 잠꼬대인양 말할 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ㅡ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어쩌면 열병 같은 사랑앓이가 밤이라고 하면, 그런 어둠속에서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ㅡ 넌 떠오르는 태양처럼 동그랗게 빛나는 아침이었어. 어둠이 아닌 빛나는 사랑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ㅡ 마찬가지로 너만 바라 보는 내가 망원경 같기만 했을 때도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 넌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자리만 같았어. 칠흑 같은 창공에서 가장 빛나는 그런 별자리. 이후 반복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ㅡㅡㅡㅡ

 

승윤씨의 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지만, 제가 승윤씨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썼던 시 한 편을 읽어드릴게요. 시는 커뮤너티에 올릴게요. 

 

 

 

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4)                                                

 

 

편지를 씁니다                                  

봄비 그친 후 첫 햇살로

당신 이름을 쓰고

당신 닮은 목련의 향기들로 인사를 하고

4월 바람 속 온기들만 모아서

첫 줄을 씁니다

 

다음 한 줄은 5월의 나무들에 기대어

물오른 초록들을 빌리렵니다

봄볕에 하나 씩 익어가는 딸기의 당분으로

내 떨림을 적으렵니다

 

지금 방안엔 숱한 꽃들과 바람

잎새들로 넘쳐 있는데 

4번째 줄에서 멈춰 있는 말들이

당신 모습만큼 아름답지 못해서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소개돼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둔 <승리호>는 엔딩크레딧에서 제작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SF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 배우의 연기력, 스토리, 다양한 CG, 과학적 상상력, 음악과 더빙 등 SF영화 평가에 동원될 수 있는 모든 잣대를 제처두고, 한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SF영화라는 점에서 <승리호>의 진가는 단연코 수백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최대투자자가 중국의 텐센트인 것과는 상관없이, 인공지능처럼 3D기술에서도 미국을 다 따라잡은 중국측 전문가들이 10여 명 정도 참여한 것을 빼면 모든 작업이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철저하게 헐리우드의 흥행방정식을 따라한 <승리호>는 모든 작업을 한국인이 맡았다는 데에서 제작의도를 추론하기가 쉬웠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언어를 사용한 것까지, 전세계 시장을 겨냥한 한국 최초의 SF영화 <승리호>의 진가는 자부심과 희망의 원천으로써 엔딩크래딧에 온전히 담겨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평생을 영화광으로 살아온 저로써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매트릭스>라는 불멸의 명작을 필두로 <스타트랙>. <스타워즈>, <에일리언>, <토탈리콜>, <블레이드러너>, <엘리시움>, <인터스텔라>, <마스> , 마블과 소니의 숱한 SF 영화 등등 몇날 며칠을 세워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봇다리를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승리호>에서 이런 영화들의 숱한 장면들이 오마쥬되는 것을 찾기란 누워서 떡먹기였습니다. 

 

 

헌데 헐리우드 평균제작비의 1/100 정도에 불과한 투자만으로 위에 열거한 영화들의 명장면들이 모조리 오마쥬될 수 있었습니다. 수백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그동안의 고민이 모두 다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아시아의 4마리 용을 넘어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모든 선진국의 모범이 될만한 국가로 발돋음한 성공신화가 계속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걱정했던 것은 수출 위주의 제조업 신화를 넘어설 수 있는 후발산업을 찾기 힘든다는 것이었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에서 미국과 중국의 7대 공룡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한민국의 성공신화가 종착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지요. 1차산업화세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그들보다 더 뛰어난 2차산업화세대를 이을 다음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이 <승리호>의 엔딩크래딧에서 완전히 해소됐습니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던 제조업 신화가 산산조작난 일본이, 에니메이션 최강국이자 거대한 자체시장을 가진 일본이 후세대들의 능력 저하로 추락을 거듭하는 것과는 달리, 무거운 경제에서 가벼운 경제로 진입한 21세기에도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는 계속돌 수 있음을 <승리호>가 보여주었습니다. 1. 2차 산업세력보다 더 뛰어난 미래세대들이 협소한 자체시장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실력자들로 성장한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지요.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도 우리의 미래세대들은, 능력 대비 형편없는 임금으로 하청업체의 직원처럼 각국으로 흩어지고 그곳에서 일해야 했지만, 정부와 자본의 투자 규모가 늘어나기만 한다면 K-pop처럼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승리호>의 흥행대박은 낮은 연봉을 받고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던 해당 분야의 종사들이 더이상 작은 연봉이 아니라 몇 배나 되는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자칭 경제전문가라 하는 자들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재구성, 재편성해야 한다고 뜬구름잡는 얘기만 떠들어대는 동안,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은 우리의 미래세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보다 뛰어난 한국인의 창조력과 돌파력은 인공지능를 앞세운 7대공룡과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래세대의 희망보다 현재세대의 욕망이 우선한다'는 기성세대의 옹절함에 굴하지 않은 그들의 승리는 위대함이라는 단어에 담아내기에는 너마나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반강제로 독일이나 중동에라도 가야 했던 1차 산업화세대와 이들의 피와 땀 덕분에 국내에서 일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2차 산업화세대와는 달리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최악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스스로 시장을 창조하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승리호>의 주역들로 엔딩크레딧을 가득채운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정부와 자본이 투자를 늘려야 하는 시장이 어디인지 명증하게 말해줍니다. 

  1. *저녁노을* 2021.02.18 07:03 신고

    승리호..보고 싶어집니다.
    리뷰..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21.02.18 20:41 신고

      꼭 보세요, 우리나라의 SF영화 제작 역량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답니다.
      우리의 미래세대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었더라고요.

  2. 참교육 2021.02.18 07:25 신고

    정말 한번 보고 싶네요

  3. 여강여호 2021.02.19 12:59 신고

    기사로만 읽었는데...한번 보고 싶습니다.

 

날아가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ㅡ 떠나자, 그냥 즐기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어. 난 노래를 넌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만 추면 되니까. 그곳이 도시의 한 가운데라고 해도.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 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ㅡ 휴식처럼 다가온 도시의 물안개 위로 살포시 걸을 거야. 그러나 높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낮지 않게.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만큼의 그런 높이로 걸어갈 거야.  

컨크리트 건물들을 보다 보면/ 나도 시멘트가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도시라는 곳, 컨트리트로 지워진 건물들, 마천루로 가득한 곳, 이곳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도 건물의 재료인 시멘트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나 또한 이놈의 꽉믹힌 세상에 매몰될 것 같아.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가면 뒤의 얼굴을 마주 하면/ 석고상이 무표정하게 날 노려 봐 ㅡ 수많은 충돌하는 이익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란 남을 속이기 위한 가면과도 같아. 그들과 얽히다 보면 무표정한 석고상이, 곧 생명도 없는 석고상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도시의 사람들이 저놈들 뭐하는 거야, 제 정신이야, 하며 노려보는 것 같아.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ㅡ 도시의 현실에서 소맷자락 속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다 가져와, 난 노래할게 넌 마음껏 춤춰추면 돼. 즐기자고, 마음껏!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ㅡ 조용한 호수에 돌맹이 하나를 던지면 그곳으로부터 물결이 퍼져나가듯, 그렇게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회색빛 도시의 한가운데 청춘과 같은 색인 파란 호수를 만들어보자. 난 노래하고 넌 흥겹게 춤만 추면 돼.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나는 카페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인데,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맘껏 노래하고 춤을 추니까 잠도 오지 않아.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출 수 있어.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카페인이 된 것처럼. 

낮이 섞인 밤들을 마주 하면/ 잠은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ㅡ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 낮이 섞인 밤들이란 낮부터 시작해 밤까지 계속된 고민과 좌절의 연속일 수도 있고, 낮에 꾸었던 꿈인,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물결처럼 노래하고 춤출 꿈일 수도 있다. 낮에 꾸는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그것이 천장에 아른거리니, 그래서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잠들 수 없는 것.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들려주고 싶으었던 

 

꿈을 꾸는 나의 미소 위에다/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향기로운 노래로 피어날까/ 이렇게 이렇게 ㅡ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가사, 그저 상상하면 돼. 생각만해도 달콤한 미소가 나오는데, 거기에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그런 기분 좋은 설레임들이 향기로운 노래는 피어날 수 있을까, 마치 아름다운 장미처럼, 그댈 향한 내 마음처럼, 이렇게 이렇게 

나의 노래 속에 놓인 길 따윈/ 못 다 핀 꽃이 뒤덮힌 어지러운 꿈/ 너에게로 뻗어가기만 하면 돼/ 그렇게 그렇게 ㅡ 사랑하는 너를 향해 가고 있지만, 노래 속에 놓여있는 그 길이란 아직 다 피지 못한 꼿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어지러운 꿈 같아.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지만 걸음보다, 노래보다 빠르게 너로 향해 가는 걸음이란 너무 어지러워 방향을 잡기도 힘들지만, 너에게로 향하는 길이면 돼. 내가 노래 속에 만들어놓은 길이 너라는 목표를 향해 이르기만 하며 돼, 그렇게 그렇게

 

엉켜있는 가시 넝쿨들이 많긴 해/ 뒤 얽혀 있는 가사들을 꺼내야 해 ㅡ 꽃들이 장미라면 가시 넝클들이 많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의 가시 넝쿨에 뒤죽박죽이 된, 또는 너에게 내 마음을 노래로 보내려면 가시 덩쿨에 뒤얽혀 있는 가사들을 어지러운 내 머리속에서 꺼내야 해. 노래는 그런 다음에야 완성될 테니.

 

그리고 불러야 해 네가 들을 수 있도록 ㅡ 전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열병처럼 나를 잡아먹는 짝사랑처럼

그댈 위한 장미야/ 검은 흙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그댈 위한 향기야/ 떠는 기타 줄에 휘감아 ㅡ 내 노래란 그댈 위한 장미야. 내 불타는 마음이야. 검은 흙속의 장미처럼, 그 향기처럼 홀로 속삭였어. 노랠 불러봤어. 

그댈 위한 밤이야/ 붉은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ㅡ 내가 그댈 위해 부르는 이 노래로 가득한 밤이야, 내 사랑이 모든 밤을 채웠어. 장미처럼 붉은 꿈속에서, 너에게로 가는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너만 들을 수 있게 홀로 속삭였어, 달콤하게. 

그댈 위한 마음이야/ 네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ㅡ 이 노래는 홀로 속삭인, 장미의 향기처럼 달콤한 이 노래는 그댈 위한 나의 마음이야, 내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사랑고백이야,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수줍은 별들이/ 눈부신 태양이/ 끝없이 빛나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였을까/ ㅡ 빅뱅이 필연이었을까, 말씀에 의한 창조가 필연이었을까? 수줍은 별들이, 눈부신 태양이 끝없이 빛나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지였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으리라. 별들 중 항성은 스스로 빛나고 항성 중 하나인 태양도 수소핵융합을 통해 빛을 방출하는데, 그렇게 조금씩 죽어가는데 그것마저 그들의 의지였을까, 만물을 창조한 4개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에 불과할까, 신이 인간을 죽음과 불행, 고통과 질병 등으로 몰아내는 대신 선물처럼 던져준 자유의지처럼 스스로를 태워서 빛을 내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몰아치는 태풍이/ 분노하는 화산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야 함은 그들의 선택이었을까/ ㅡ 지구에서 벌어지는, 또는 수소핵융합에 의한 폭발로 발생한 태양폭풍이 수십만 km의 높이까지 치솟는 것을 말할 수도 있다. 이때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플라스마 입자를 방출ㅡ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과 행성을 만들어낸 입자 결합을 통해 거대한 항성과 행성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ㅡ되는데, 지구의 모든 전자기기를 수백만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의 자기장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핵융합의 폭발로 인해 수소로 이루어진 태양의 기체덩어리는 액체금속 형태의 헬륨(전자가 두 개)으로 전환되면서 조금씩 수축된다. 그렇게 120년 정도가 지나면 백색위성을 거쳐 초신성으로 수축, 붕괴하며 그때 발행된 에너지 폭발로 장엄한 최후를 맞는다. 이것을 발견한 인도의 물리학자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 쉽게 설명돼 있다. 승윤씨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던 태풍과 화산 폭발의 피해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들과 그들의 유족들이 흘릴 눈물이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불행한 희생양에 해당할까?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품어야 할 것들이 넘쳐나/ ㅡ 우주를 관찰하고 분석한 연구의 결과물인 지식이 우주보다 클 수는 없고, 아직도 찾아내거나 밝혀지지 않고 있는 암흑물질과 반입자, 신의 물질로 알려진 힉스입자, 양자요동에 의한 중력의 정체, 완전한 진공을 허용하지 않은 소립자들처럼 품어야 할 것들로 넘쳐날 수밖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누가 아닌지조차 다 알지 못하는데/ 내가 너에게 그은 상처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 흘리는 눈물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ㅡ 이 부분의 해석이 매우 어렵다. '나는 누구인가'와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너무 누구인가?라는 승윤의 자아와 타자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생생하게 묻어나는 가사다. 이 부분은 또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떠오릴 수도 있지만, 승윤이 사서삼경을 외울 정도라 했으니 장자의 호접지몽이 연상될 수도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호접지몽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지난 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버렸더니 나는 나비가 아니고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놀랐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누가 아닌지조차 다 알지 못하는데 

 

머리맡에 둔 책들은 끝없이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ㅡ 장자가 포함된 사서삼경일 수도 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일 수도 있다. 그밖에도 열거할 책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승윤이 원한 것은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의 신비이거나, 태풍 및 화산의 피해자가 흘린 눈물들에 담긴 사연들일 수도 있다.

 

우 뭘 알고 싶은 건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 눈물로 하나를 알게 되면/ 열개를 모르게 되는 것 같아/ ㅡ 승윤의 우주에 대한 지식과 자연현상의 희생양인 피해자의 눈물에 담겨있는 사연들일 수도 있다. 피해자의 눈물에 얽힌 사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사연 하나를 알게 되면 그런 일방적이고 속수무책인 피해들이 창조론과 진화론, 우주론적 지식으로는 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만물의 이론이 완성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기는 할까?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누가 아닌지조차 다 알지 못하는데 수줍은 별들이 눈부신 태양이 끝없이 빛나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였을까 그들의 선택이었을까 그들의 의지였을까 그들의 선택이었을까, 승윤은 하나의 지식을 알게 될 때마다 열 개의 의문이 밀려든다. 

 

 

 

https://youtu.be/_h2I_BHoOZc

 

  1. *저녁노을* 2021.02.17 06:55 신고

    뭔가...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이승윤이었어요.
    대승하길 바라는 맘..

    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21.02.18 05:41 신고

      이승윤 현상을 한 단계 높은 버전에서 다루는 것을 참고 있어요. 보통 청년이 아닌데 때론 위태로워 보일 때도 있어.

 

 

삼권분립이 헌법에 명시돼 있고, 법관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1심재판부의 무죄 선고 논리의 허약함과 제멋대로의 비약,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죄를 묻는 지랄발광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저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사법부에 개차반 같은 판사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기에 그들의 모자람을 입에 올리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1심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유가족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기사화하는 진보매체들의 저열함에는 분노를 참기 힘듭니다. 

 

 

이승윤의 '교재를 펼쳐 봐'를 다룬 영상에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자행한 비극에 대한 청년 이승윤의 치열한 고뇌와 번민, 절망은 '기도보다 아프게'에서 가장 슬프고도 먹먹하게 휘청거립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라고 치부하는 자들이 널려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세기 메시추세스 주에서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였던 시어도어 파커 목사의 설교를 인용'해 '도덕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이 나라의 일부 판사들은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을 아예 장님으로 만들어야 만족할 모양입니다.   

 

 

저는 밤을 세워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듣고 들으렵니다. 흔히 지미 핸드릭스와 제프 백과 3대 기타리스트로 회자되는 에릭 크립튼이 자신의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낸 후 작곡했다는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들어보렵니다. 이승윤도 기타를 연습하고 작곡과 작사를 하며 수없이 들었으리라 추측하면서.   

   

  1. 여강여호 2021.02.16 07:03 신고

    제멋대로 사법부...디케의 저울과 검, 가린 눈이 기득권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교재를 펼쳐 봐>

 

 

탕, 탕, 탕.. 수차례 총성이 울렸고/ 난 잠에서 깨었어/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수업중이었어/ ㅡ 버지니아 공대를 다니던 한국계 미국인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승윤은 강의실에서 꿈뻑꿈뻑 졸다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아니면 지난 새벽에 타진된 충격적인 사건에 꼬박 밤을 지샜는지도 모른다. 탕,탕,탕.. 노래의 도입부가 충격의 정도와 인간이란 존재의 사악함에 대한 불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어제의 총기난사 사건은 오늘의 소재가 되었고/ 교수는 말했지 좋은 교재가 될 거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 거야/ ㅡ 악몽에 시달리며 강의실에서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해당 사건을 얘기한다. 당연하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헌데 교수라는 작자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메뉴얼로써의 교재가 필요하단다. 아니면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전문적인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사건들과 이번의 사건만으로는 교재를 만들기에는 사례가 부족하다고 말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교수라고 지칭되는 자들의 머거리를 위해 더 많은 죽음이, 더 많은 희생이,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하다고 대학생 시절의 승윤씨는 분노했던 것 같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한 최대 이익단체이자 압력단체인 전미총기협회회장, 찰톤 헤스톤의 말과 그의 이력에 대해 설명할 것, '총기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사용자의 손가락에 책임이 있다'는 궤변과 함께. 그의 논리가 진실이 되려면 핵폭탄이 사용되도 책임은 발사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있을 뿐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마지노선, <역마차>의 존 웨인과 <람보>의 실베스타 스텔론,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의 주인공들로 이어지는 미국의 제국적 팽창과 근육질 외교의 할리우드식 변명들. 국제연합 등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 예방적 차원의 선제 공격 등등등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탄식은 생에 스미기도 전 활자가 돼 있어/   ㅡ 어이없는 희생,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총기보다 못한 목숨, 계속해서 벌어지는 비극,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로 만들어진 교재를 펼쳐봐, 아픔과 피로 적어넣은 이름들이 적혀있는 교재를 펼쳐봐, 총기소유 자유가 초래한 정치경제적 결정이 초래한 비극들이 활자화돼 일체의 슬픔과 분노, 연민이 박제화된 그런 교재가 출판되고 대학의 강의로 쓰이는 그날, 그 순간을 위해. 교수들이란 작자들이 반인륜적 행태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이 없는 인간은 모든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다. 스탈린,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가 된다'는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음.   

 

 

 

 

뼛속에 말을 심은 누군가 낭독해/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할지/ 눈물을 닦고 귀를 닫고/ 마음대로 치유하고 감사해/ ㅡ 인간의 죽음까지 상업화하고 자신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자란 뼛속에 타인의 비극을 새겨놓을 만큼 자인한 자, 그 누군가 활자화된 죽음들을 낭독한다. 또는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읽으라고 했을 수도. 만일 교수나 학생이 신학교 소속이라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있어야 우리가 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총격사건의 범인처럼 사악한 자들을 몰아낼 수 있으며, 이런 사건들이 즐비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 그런 믿음과 신앙에 들 수 있을지! 승윤은 처절하게 절규한다, 눈을 닦고 귀를 닫고, 그래서 진실에서 멀어짐으로 해서, 성전과 학문의 전당에 기어들어와,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마음대로 치유하고, 그런 나라에서, 그런 범죄에 당하지 않은 신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해야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거야/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사실은 나도 똑같아 노랫말을 짓는다는 것은/ 너의 비극을 식탁에 꺼내놔줄래/ 내가 멋지게 위로해줘볼게/ ㅡ 대학생 시절의, 또는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승윤은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할 때와 똑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나도 똑같은 놈이 아닌가? 이런 참혹한 비극을 노랫말로 짓고 있으니. 우리는 말한다, '용서하지만 기억할게'라고. 이런 무책임과 회피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기억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가지 마 그냥 덮어두자/ 탕, 탕, 탕.. ㅡ 승윤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는다, 가지 마! 라고,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지고 노랫말을 쓰는 자기나, 교재가 필요하다며 더 많은 비극을 요구하는 교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죄의식 때문에.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소리들, 탕! 탕! 탕! 

 

 

www.youtube.com/watch?v=vK692D_udmU

 

  1. 하하호호 2021.02.16 12:55

    잘 보고 갑니다~~~

 

앞의 글과 영상의 후반부입니다. '공정으로써의 정의'가 아닌 '공정한 정의'로 포장된 능력주의 담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파고든 마이클 센델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만, 문화비평으로써 제가 제일 좋아하고 흠모하고 안타까워하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평론'의 접근방식도 차용했습니다.

 

 

'패자에게 책임을 넘어 굴욕까지 받아들이라는 교만한 능력주의 엘리트의 위선과 무능함'에 대한 이승윤과 이무진의 통쾌한 반격, 싱어게인의 기획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이 대가의 면목을 보인 <공정하다는 착각>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도덕을 상실한 시대의 맨얼굴'을 종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대가다운 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kF0UlUhpP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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