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세본 적이 없는데, 최근 40년만에 세상으로 나가면 온갖 수모를 당하는 중에 이런 글들을 쓰다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수를 세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정도면 셀 수 있을 테니.. 합산해보자!!

     가운데가 국민의힘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왼쪽 맨끝이 장동범 한국장애인단체 사무총장, 전 장애인신문 편집국장 

나의 할아버지 격인 신승남 전 검찰총장
위대한 발터 벤야민
진정한 민주주의 지도자

 

 

벌써 몇 주째 TBC에서 방송 중인 함춘호 대성고등학교 동기동창하고 통화 좀 하려고 했더니, 고객센터 차원에서 저를 뱅뱅 돌리네요. 이건 농협카드도 마찬가지고, LGu+, 삼성전자, 이마트, 카카오 등도 모두 다 똑같은 현상이었습니다. 

 

 

이놈들이 나오미 켈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이나 <쇼크독트린>, <No로도 부족하다>, <이게 모든 것을 바꾼다> 등등을 읽기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양치지 조폭집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거리인지?!!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 <유동하는 공포>,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모두스 비벤비>등등의 명저들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개 양아치들이 입만 살아서... 

 

 

강준만, 너, '커뮤니케이션북스'와 많이 거래하지? 그러면 <미디어집중과 가난한 민주주의> 등등 구글과 네이버, 다음 등에도 나오지 않는 수많은 책들은 읽지 않았니? 

<싸가지없는 진보>나 뭐, '해장국언론'이라고?

너, 쪽팔려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점 없겠니?' 

 

 

김어준, 이진우, 안민석, 진선미... 너희들 최순실과 삼성전자와의 관계 밝히겠다고 프랑크푸르트에 갔었지. 그때 점심값 내준 사람이 내 동생이다. 삼성케미칼 유럽법인장 말이다, 이 년놈들아!

메시지가 중요하니 메신저 때리려 혈안이 나겠지?

 

 

난, 결혼도 안하고, 7월13일이면 환갑이니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러니 내가 죽던지 니들이 나를 찾아와 무릎 꿇고 잘못을 빌던지, 둘 중의 하나는 하자, 알겠지? 

 

 

아니, 교보문고에 가면 안 나오고, 또는 쉽게 찾을 수 없고, 예스24에 가면 나오는데 책의 표지부터 다른 책들이 너무 많네. 이제는 검색해 찾기도 힘드네.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 <죽도록즐기기>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이기적 유전자>, <업스트림>, <블랙스완> 등등등 ...

더 이상 못하겠다.

5,000 여권의 책들을 어떻게 여기다 올려!!

됐다, 됐어. 

 

 

이것 혹시 만 권도 넘나?

나도 모르겠다.

시집까지 치면 몇 만권도 넘는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네.  

 

 

한국장애인단체 총연맹, 사무총장 김동범씨.. 장애인신문사에 이어 이번에는 제 전화도 안받습니까?

그러지 마시지요. 

삼촌의 제안도 보내지 못하고 있으니 저와 일하시던지 그만두시죠.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부터 하고 떠들어, 이재명 이 미친 놈아! 

부모와 형제자매의 목숨을 빌미로 대통령이 되고자 해!!!

 

 

유시민, 너도 너의 누나, 유시춘 원장에게 더 이상 쪽팔림 주지 말고 당장 노무현재단 이사장직 사퇴해!

내가 자동차가 수리되면 노무현재단 방문하니 죽은듯이 기다리고!!

서부경찰서

 

 

박재범 도로순찰경찰, 너니?

내 차에서 차키를 빼낸 놈, 너니?

이 모든 것을 수수방관하고 나만 위협한 서부경찰서 놈들이냐?

 

 

당장 내 스마트폰 가져와!!

지금으로부터 3시간 준다.

안 그러면 너 옷 벗을 수밖에 없어.

감옥도 갈거고!!

니들이 공권력이냐?

야만공권력이지!

니들이 조폭과 뭐가 다르냐?

장애인 59세가 그렇게도 우습더냐?

 

 

서부경찰서와 은평경찰서 서장, 당장 달려오라니까. 국민과 장애인을 좃으로 아는 이 C8놈아!!!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운운하며 나를 취재하려 오는 모든 신문과 방송국 기자 놈들, 취재하려면 관등성명부터 밝히고 전하해. 

 

 

그렇지 않으며 니들도 모두 죽는다!!

 

 

손석희, 고 성완종 회장 녹취록을 검찰로부터 뺏을 그런 짓거리 할거면 JTBC기자들 얼씬 거리지도 말라 그러고, 알았냐 이 양아치 새끼야!!! 

조중동 기자들, 내 주변에 얼씬거리면 니들도 죽는다.

 

 

서부경찰서와 은평경찰서, 니들 중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보계 형사들 시켜 나를 미행하고 사찰하면 당장 죽는다! 

대한민국이 박정희 유신독재로 회귀했니?

국민이 좇같이 보이지?

 

 

김어준,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죽는다, 너도!

유시민, 너도 당장 노무현재단 이사장직 내려오지 않으면 죽는다.

민주화운동이 무슨 무공훈장이라도 되는 줄 아냐?

알량한 글재주로 까불지 말고 은퇴해 한심한 글이나 쓰다 죽어! 

 

 

경제와 복지전문가, 천재... 야,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나는 이때의 장면을 이렇게 봤는데 이 또한 거짓같구려. 천하의 개자식 이명박!
이것도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지?

 

 

문재인 대통령, 59세 장애인인 내가 은평경찰서와 서부경찰소, emaet, 연대의대 등에서 겪은 일을 알려드리리다. 시간되면 청와대에서 나와 마포와 홍제견인보관서도 가보시고,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한국장애인단체 총연맹도 함께 가보시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도 함께 의전이 특기인 공무원의 지랄 같은 방식도 이어가시고, 박범계 법무부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검사 나부랑이와 SH공사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것부터 살펴보시오. 

 

 

대권은 무슨 얼어죽을 대권! 연대를 나온 59세 장애인도 병신 취급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과 서울시에서 대가리 노릇이나 하며 창피하지도 않나? 내 고모와 고모부가 여성운동연합의 대부였고, 이명박 개자식의 하늘같은 선배였으며, 동아일보 해직기사 출신이고 최시중 같은 나부랑이가 그 밑에서 지랄 같은 짓거리를 했을 때의 고 이인철씨니 그분에게도 쪽팔리지 않소?

 

 

남인순 의원, 신자 용자 자자 쓰는 내 고모 밑에서 자라고 나와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선생님 선생님 하던 시절이 이젠 우습다 이거지? 황해도 해주에 있을 때 우리집안과 안창호 선생, 명성왕후 집안과 친했고, 명성황후의 언니나 동생, 사촌이었던 친할머니 같았던 민씨 할머니나 뵈러 하늘나라에나 가야겠소이다. 부친과 모친을 만나면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이나 추면서.   

 

 

내가 마흔살 때 사랑스러운 두 제자와 찍은 사진. 구글을 치는 관련 검색만 37,900건이 0.37초만에 검색되네. 유시민 같은 사기꾼이나 이문열 같은 글재주만 가진 꼴통과 달리 나는 5,000여권에 이르는 모든 분야의 책들을 정독과 완독, 다독을 했으니, 시간 나실 때, 티스토리에 있는 <늙은도령의 세상보기>와 같은 이름의 유튜브계정이나 보심이 어떠하실까? 

 

 

나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온 신현재라오 하오. 신사 수자 용자를 쓰는 선친과 이자 종자 선자 쓰는 모친을 독잡동 국립묘지에 안장해둔 자랑스러운 부모를 둔 다리병신이요. 평생을 소아마비로 살아온 나는 81년도 재수해서 연대에 입학했소이다. 

 

 

나는 신성재라는 훌륭한 동생과 위선적인 삶을 이어온 개차반 같은 형이 있소. 동생은 어제 삼성의료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받았고, 형에게까지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지 하면 안된다며 형이 세브란스 앞에서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수술타령이나 하고 있소이다. 

 

 

자신의 입으로는 햇반과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링커팩을 만들었다고 주장(대부분 사실)하는 형과 의절했고, 이제는 동생과도 의절해야 하는 판에 지난 몇달 사이 서부경찰소와 은평경찰소, emart, 연대의대 임상검사연구소 등에서 벌어진 일들을 말하고자 하오. 이 나라의 공무원과 경찰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고 장애인을 평생취급하며 법을 밥먹듯이 어기며 늙은 장애인을 병신취급하는지 알려 드리리다. 

 

 

먼저 서부와 은평경찰소에서 근무하는 경찰 나부랑이가 나를 경멸하고 빙빙 돌리며 법을 어기는 놈들은 나두고 나를 위압하며 죽이려는 듯이 행한 일들을 말하겠소. 동창이라는 변호사들은 일을 처리하는게 하나같이 등신 같았고, 그들 때문에 내가 길거리에서 세브란스와 이대서울병원에서 죽을 뻔한 얘기를 전하겠소. 

 

 

윤석렬, 이 미친 새끼는 조국 가족이나 박살내지 않나!!! 
조민양 힘내요!!

 

 

국가권익위의 처리도, 구글이 하는 짓거리도 이 나라와 전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악마같은 착취에 대해 모조리 까발리겠소. SH공사와 구산동 주민센터에서 벌어지는 일, 모든 거대조직의 콜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LGu+에서 벌이는 짓거리도 더해서 말하겠소. 

 

 

유시민과 이재명, 김어준 대국민사기질과 선동질도 낱낱이 밝힐 터이니 대한미국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장애인과 청년, 여성, 노인들에게 위험천만한하고 악질 같은 곳인지 말하드리리라. 박범계와 조선일보 기자라는 놈들이 펼치는 짓거리도 모조리 밝히겠소. 

 

 

나는 지난 59년을 돌아보면서ㅡ7월13일이면 환갑이오 모두를 용서하며 이 나라의 디지털 소외계층과 약자, 장애인, 노인들을 위한 포털을 구축해 피케티 교수가 온갖 통계와 계량경제학으로 밝힌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포탈을 구축할 생각이오. 그것을 위해 죽어라 뛰고 있는데 이땅의 공무원과 장애인을 정신병자 등신 취급하는 구산동 주민센터와 서부경찰소, 은평경찰소, 응암동 emart에서 벌어진 일부터 말하겠소이다.

 

 

서울의 지잘같은 상태와 배달원의 죽을 듯한 곡예비행, 좋은 차만 타면 장애인, 노인을 한심한 버러지처럼 서울의 지랄 같은 상태를 말해드리리다. 대통령이 돼 청와대 깊숙이 들어가 앉았으면 똑바로 일하고 임기를 마치시오, 문재인 대통령!!

 

 

장애인 나를 에스칼레이트에서 뒹굴게 만든 이마트, 그곳 직원들의 한심한 짓거리. 특히 삼성전자 갤럭시 매장. 대표이사가 나와서 사죄하라고 했더니 얘꿎은 직원과 나만 병신처럼 돌린 응암동 이마트. 용진아, 니 밑에 애들부터 단속해라.  

 

 

먼저 구산동 주민센터에서 벌어진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소. 난, 말단 공무원을 다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것보다 서부경찰소와 은평경찰소, 은평구 emart 수장, 대성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거대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전횽희와 그가 소개시켜준 검찰 출신 변호인 최변에 대해 먼저 말하겠소.

 

 

이 자식들이 내게 찾아와 무릎꿇고 빌지 않으면 모조리 박살내 능지처참에 들어가리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모범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았고, 장애인으로 누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는데 민중의 지팡이요, 공권력을 법과 제도에 따라서 행사해야 하는 서부와 은평경찰소 개자식들이 나에게 가한 위협과 개차반 같은 위법.

 

 

요즘 경찰이라는 놈들은 공무원법이나 경찰공무원법, 도로교통법 등은 안중에도 없으며, 장애인, 시민, 국민 무시와 위협부터 하는 조폭짓거리나 하는지 다음 글에서 밝히겠소. 뭐, 현행법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고 교통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에게 차를 빼라고 확성기나 틀어대고ㅡ그것도 내 면전에서ㅡ내 이름과 주민번호, 가족 상황을 말해도 병신, 또라이 취급을 하지 않나? 당신, 청와대에 들어가니 의전에 취했소, 노통을 팔아먹는 개자식들에 포위됐소이까?

 

 

어떤 국민도 통치자 밑에 있지 않으니,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다시 읽어보심이!!
마이클 샌덜의 최신작 <공정하다는 착각>
유시민의 알릴레오북스를 보면 뒤에 진열된 책 중의 하나

 

 

모레 국민권익위와 청와대 민원센터ㅡ우리 막네 삼촌이 청와대를 지켰소이다ㅡ를 방문할 테니, 서부와 은평경찰소가 내게 붙인 정보과 나부랑이와 내 기술과 사업계획을 외국으로 빼돌린 놈의 고발조차 못하게 만든 그들의 민낯부터 까발려드리리다. 단통법이 얼마나 개같은 것이며, 장애인주차법 등이 얼마나 지켜지지 않고, 단 돈 일원이라도 더 빼앗아 먹으려는 재벌들의 흡혈귀 같은 짓거리도 모조리 까발릴 것이요.

 

 

지금까지는 무시한 채 넘어왔지만 TBS와 농협카드, 구팡과 배민의 실체와 그들의 수익구조의 문제도 밝히겠소. 통신사의 이익구조와 emart, 카카오, 네이버 등의 지랄 같은 수익구조도 밝히겠소. 그들의 흡혈귀 짓거리 때문에 실제 도로상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아찔한 곡예와 경찰공무원법과 도로교통위반법들을 밥먹듯이 어기는 서울의 도로(인도, 차도, 자전거도로 총합) 상황을 말하겠소이다. 

 

 

고객센터와 홈페이지로 디지털 약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주거약자와 SH공사. 오세훈 이 턱돌이야, 정신차려!!! 연합뉴스 인용

 

 

SH공사가 하는 짓거리, 국립도서관과 중앙박물관이 약속과 말의 중요성을 개떡처럼 여기는 현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국가 기증을 우습게 여기는 행태들까지 모조리 까발릴 테니,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을시 문재인 정부와 죽는 날까지 싸울 것을 맹세하리다. 내가 본격적으로 움지기이기 전에 이 글에서 언급한 놈들과 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서부경찰소나 내 차 키를 뺏아는 척하며 가지고 갔을 수 있는 놈에게 경고부터 보내오.

 

 

마지막으로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차가 멈춰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홍은차량보관소, 마포차량보관소가 장애인과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증거들도 제출하겠소. 거의 모든 문자메시지와 MMS 서비스, 주정차단속시스템 같은 내 핵심기술과 사업계획들을 가져간 강동원이라는 사기꾼 청년에 대해서도 말하겠소.

 

 

정보과 형사들로 나를 상시 미행한 장본인들, 이곳이 아니면 서부경찰소. 노통의 공권력 행사는 없고 야만공권력만 판을 치더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고소고발을 들어가기 전에 서부경찰서장과 은평경찰서장, 응암동 emart 대표이사, 구광모 LG회장, 정용진 회장 등이 대국민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문재인 정부와 재벌들과 싸울 것이요. 삼성전자가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등쳐먹는지,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같은 자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며 노인과 청춘, 국민을 상대로 장난질을 치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지도 말씀드리리다.

 

 

이밖에도 지난 3달 동안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만, 형제라는 놈들과 조카라는 년놈들이 나를 대하는 자세도 그에 못지 않으니 창피하고 쪽팔려 당장이라도 자살하고 싶은 생각 뿐이오.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에 더 이상 똥칠하고 싶지 않다면 이 모든 것을 당장 다음주에라도 바로 잡으시오.

 

 

이번 글이 첫 번째요. 페미니즘도 모르는 것들이 페미니즘을 능멸하고, 이땅의 여성들 앞에서 큰소리나 치는 230대 남자의 데이트폭력이나 헬조선 놀이도 까발리려고 책을 집필 중이요. 디지털시대가 장애인, 노인, 청춘들을 어떻게 약탈해먹는지, 민중의 편에 서야 할 경찰들이 장애인인 나를 향해 무슨 짓거리를 벌였는지 모조리 까발리겠소. 

 

 

문재인, 당신이 노통처럼 나의 대통령으로 남아 영원히 기억되려면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과 국민권익위의 형편없는 대처까지 모조리 살펴보시오. 난 문재인재단 2만번째 회원으로써 당신과 한명숙 총리와 점심 만찬을 하기로 되있었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어머님을 두고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간암 투병 중이어서 노무현재단도 갈 수 없었던 얘기도 해 드리리다.  

 

 

민주화운동 팔아먹고 대국민사기질이나 치는 분열과 반페니즘의 상징 유시민, 섹스와 크루그먼 같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의 저자 유발 하라리, <초예측>의 공동저자 유발 하라리조차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다 했다. 이재명 때문에 이들의 반대가 공적으로 나온 것이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반대하는 온갖 공약으로 히틀러와 괴벨스 같은 짓거리를 하는 정치양아치 유시민과 이재명. 

                             

 

김동범 사무총장, 나는 독자적으로 가겠소. 당신이 얼마나 대가리 커진 자들과 일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당신도 아웃이오. 난 무소뿔처럼 홀로 가리다. 평생을 장애인 소아마비로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날들이 없었으면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서울이대병원과 세브란스 의대의 파렴치하고 비인간적 짓거리들까지 바로잡아주시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 그냥 성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나에게는 형제도 조카도 삼촌도 숙모들도 없소.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면 되고 난 죽을 때까지 홀로 가며 대한민국의 선진문화, 시민문화 정착을 위해 투쟁할 것이오?

 

 

오늘 일단 이 글로 접으리다. 내 스마트폰을 가져간 놈, 오늘 12시까지 가져오지 않으면 네놈이 나를 죽여서 입을 봉해야만 이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며 글을 마치겠소. 문재인 정부 치하의 서울시, 이런 개판도 개판이 없소. 40년만에 나라를 위해, 디지털 소외계층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땅의 공무원과 재벌, 통신사, 어머님의 생전 추억이 담긴 emart가 나를 병신 취급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소이다. 

 

 

내 회사 루팡이 만들었으나 LG전자 고 구본무 회장이 말아먹고 사기꾼 강동원에 의해 외국으로 빼돌려진 내 통신사업 프로그램 CD

 

 

스마트폰(지랄같은 삼성 갤럭시 21s)을 경찰 나부랑이가 가져가 충혼당에 안장돼 있는 우리 부모님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오. 민중의 지팔이라는 경찰이 59세 장애인을 상대로 어떤 짓거리를 벌여왔는지 더욱 키울 수 있게 됐으니! 강동원이라는 놈이 10년에 걸친 접근을 통해 내게서 빼내간 문자메시지 대량전송 장비와 프로그램 CD요. 자기가 최지만과 야구를 같이 했다면 필리핀과 중국 얘기를 끝없이 떠들어댔소. 지 어머니와!

 

 

국민을 개나 소 취급하는 국회의원 나부랑이들이, 자신이 역차별 특혜로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으면서도 2030세대 남성 운운하며 국민의당 대표나 하는 위선적인 이준석도 모조리 까발려 드리리다. 나를 죽여 입을 막아야 만이 당신들 모두가 이땅에서 살아갈 수 있소.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사라지겠다'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말이나 하면서 노통을 팔아먹는 짓거리 이제는 지겹고 구역질이 올라오니 나를 죽이던지, 나를 바로잡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권영진 같은 놈과 윤석렬 같은 버러지를 검찰총장에 앉히거나, 이해찬과 이재명, 유시민 같은 천하의 사기꾼이 판을 치는 나라를 만들었으니 모 모든 것이 당신과 집권여당의 책이이오. 대통령으로 쪽팔리지도 않소이까?

 

 

이곳에 영면에 들은 부친과 모친
오래된 사진이라 바뀌었지만 부친과 모친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오. 충혼당 119호
멀리있는 사이다가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것이라, 놓아드렸다.
노무현재단 2만번째 회원이라는 증거
고 이인철 동아일보 해직기자, 내 고무부님
이게 민주주의 대통령의 진짜 모습이지.

 

허스트나 퓰리처 등의 황색저널리즘을 박살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허친슨 위원회의 최종 결과보고서
유튜브 영상 첫 회를 찍고 간암이 두 번쩨로 재발해 딱 한 편만 촬영한 파주의 스튜디오.
내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119 구급충동으로 서울이대병원에 갔을 때 이런 상황이었고, 연대 세브란스에서는 이것보다 조금 나았소.
노통, 그림으로 그려보니 더 그립네요.
전주 이씨의 명문에서 신씨로 시집와 평생을 고생하신 나의 모친! 귀천 4일전의 모습. 내 삶의 전부!
내가 읽은 책의 1/100 정도나 될까? 9평 원룸으로 오느라 3,000여권의 책을 추가로 버려야 했다.
지우개 없이 그려서 대 실패한 이승윤이라는 청년가수.

 

 

글을 그치기 전에 국방부 직원의 실수로 하늘에서 통곡하시다 한 위대한 시민의 마지막 투쟁으로 지금은 웃고 계실 부친과 모친부터 박살난 자동차가 수리되고 나면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볼 생각이오. 대통령이 됐으면 똑바로 하시오, 문재인!!! 

 

 

최종적으로 밝히니 이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단 경찰과 공무원, 직원들이 다쳤다는 소리가 10년 후에라도 들리면 이재용과 구광모, 정용진이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만들 생각이오. 방송사와 언론 나부랑이들, 내 주변에 얼씬 거리고 방송이나 기사로 다룬다면 너희들도 죽어!!!!

 

 

페리클래스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근현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치지도자, 노통!!
교통개발원을 만들어 한국교통의 모든 것을 정립한 신부용 삼촌
구글을 쳐도 나오지 않는 한국여성민우회의 초대사무총장, 신자 용자 자자의 내 고모

 

 

P.S. 이재명, 니가 떠들은 공약들을 모두 다 단순계산해봐. 얼마의 필요한지? 박용진, 더 이상 노동자니 약자니 하면서 사기질 치지마! 이해찬 상황 노릇하려는 거 그만둬. 유시민, 너 정말 뻔뻔하고 타락할대로 타락했구나. 노무현재단 이사장직 당장 때려쳐! 노통의 자식, 노건호!! 남자로 태어난 아들놈이 뭐가 그리 두려워!! 

 

 

TBS, 이 개자식들아! 김어준과 나꼼수 아류들, 개총수니 뭐니 하는 정치브로커. 모두 다 방송을 접고 이 나라를 떠나든지 조용히 살아라! 그만큼 사기를 쳤으면 사람이 돼야지? 니들이 인간이냐!! 

 

 

내 스마트폰에 모든 증거가 있는데 기가우징으로 파괴시키고 있겠지? 서부경찰소 놈들아!!! 

 

 

이 사진은 어디서 왔는지 찾아 추가로 명기하겠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했지, "도덕이 없으면 인간은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ㅡ

피터 롤링의 <공정사회>

 

  1. 파이채굴러 2021.07.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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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김민석, 우상호,.. 죽고 싶은 거구나. 

EMART, 서부경찰서장, 벅쟈범(순경), 뮨재인, 박범계., 정용진, 신양재, 신성재.... 나 한테 전화하는 순간 니들은 다 죽나다. 난 형제도 조카도 없다. 형수라는 년도 제수라는 년도, 나한테 죽는다.

 

 

문재인, 너 청와대 들어앉으니 국민이 우습니? 국정원을 통해 나를 죽이지 않으면 유시민부터 이재명까지 모조리 죽는다. 대통령이면 쇼만 불이지 말고 날 죽이던지,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살아라. 

 

 

박범계, 전용희, 서울은평경찰서장, 이재용, 정용진, 나한테 와서 무플 꿇고 빌지 않으면 죽는다. LGu+ 구본무 너도 마잔차기다. 신성재를 자르던 신부용이나 신해진 숙모가 아닌 나를 죽이지 않으면 다 죽는다.

 

 

고 신수용씨 (은성무공훈장, 한국전쟁, 황해도 해주, 거창 신ㅡ 내 부친이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통곡하신다, 선친과 함께. 고 이종선 290324 - 2041825, 은평경찰서장, 서부경찰서장, 박범계, 전용희, 이정일 죽고 싶니. 송영규 너도 마찬가지다. 연락하면 죽는다.

 

 

 

 

 

 

아래의 영상을 보고 이해하면 제가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그가 말하길 "한 분야의 진정한 대가라면 자신의 할머니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조차 못했답니다. 

 

 

 

만일 제 영상을 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데니얼 데닛이나 스티븐 핑거 정도의 수준으로 추락하고요?

 

부디 100번 정도 집중하고 집중해서 돌려보고 또 돌려보며 시청하시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장기기억이 된답니다.

 

그게 바로 뇌에 '물리해부학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표현입니다.

 

영원히 잊지 않는 것으로 치매에 걸려도 가장 늦게 사라집니다. 

 

 

 

 

 

 

말씀드릴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로 7월말까지 어떤 글도 올리지 못합니다.

 

어제 올린 글도 비공개로 돌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단히 건강하지만 어떤 것도 과거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해해 주십시오.

 

모두를 용서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너무 커져버려서 이제부터는 결과로만 말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저를 아는 분들이라면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네이버 블로그 턴페이지에서 인용

 

 

10  진정한 생명의 나무는 하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생물은 유일하고 정확한 계통도를 갖는다...분지분류학에서는 생물을 그룹으로 나누는 궁극적인 기준을 유연관계가 가까운 정도, 다시 말하면 공통 조상의 상대적인 가까움에 두고 있다...모든 파충류의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은 일부 비 파충류, 즉 조류나 포유류의 조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떤 생물이 서로 아무런 유연관계도 없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생명이 탄생한 곳이 지구밖에 없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분지분류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계층적이다. 내가 계층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생물의 분류 체계는 끊임없이 분지를 계속 할 뿐 두 번 다시 수렴하는 일이 없는 가지를 가진 나무로 표현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직 진화가 전해 내려오는 모양이 계층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복이란 없다완전한 겹쳐짐이 발견된다. 포유류나 조류의 중간형으로 보이는 외관은 대부분 착각에 불과하다. 진화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런 식의 중간형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멸종된 동물을 고려에 넣은 순간, 어떠한 중간형도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이제 연속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중간형들과 싸워야만 한다. 현생 조류와 포유류 같은 현생 비조류 사이에 서 구별이 명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공통 조상으로 수렴되는 중간형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완전한 화석 기록이 없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다. 인간의 정신은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는 이름을 대단히 선호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화석 기록이 풍부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 중심적 사고(필요하다면 침팬지를 난도질할 수 있다는 사고) 때문에 이중 기준에 안주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사람과 침팬지의 중간형이 남김없이 사멸했다는 것뿐이다. 단속론자는 종을 실재하는 무엇으로 간주하고 그 자체가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에 을 진정한 실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속평형론자가 일반적인 개체 수준에서 나타나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비유되는 종 수준의 자연선택을 믿는 경향이 있다.

 

 

한때 생존했던 거의 대부분의 종이 멸종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새로운 종이 최소한 절멸하는 속도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새로 태어나서 결과적으로 그 구성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 종의 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종의 풀이 보충되거나 제거되는 것이 임의적인 과정이라면 이론적으로는 한 종에 대한 고차 수준의 자연선택 조건이 성립하게 된다. 어떤 종이 가지는 특징이 멸종이나 새로운 종을 태어나게 할 확률 중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가능성은 있다. 우리가 현재 세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종은, 그 종이 최초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종 분화하는데 필요한 종은, 그 종이 최초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종 분화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 또는 멸종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원한다면 그것을 자연선택의 한 형태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단계 선택에 가깝지 않을까?

 

 

종 선택이 복잡한 적응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복잡한 적응은 거의 대부분 종의 성질이 아니라 개체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종이 눈이나 심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주는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방식으로 종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주는 특성이어야 한다.

 

 

개체의 이익과 종의 이익이 대립할 때, 개체의 이익(단기적 이익)이 반드시 우선하지만, 종의 생존을 위해서는 개체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개체의 유전자가 종 선택에서는 환영을 받는다...진정한 종 수준의 특성으로서는 가장 극적인 예가 유성 생식 대 무성 생식이라는 번식 양식과 관련된 예일 것이다...무성적인 종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멸종하는 경향을 갖는 이유는 변화하는 환경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해 유성 생식을 하는 종이 멸종하지 않는 경향을 갖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종 선택은 오직 두 가지 특성, 즉 무성 생식과 유성 생식, 느린 속도의 진화와 빠른 속도의 진화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단순한 1단계 선택이다. 유성 생식의 도구인 생식 기관 및 생식 행동, 생식 세포의 분열을 위한 세포 내 기구, 이 모든 것들이 종 선택이 아닌 표면적인 저차원의 다윈식 누적 선택을 통해 하나로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유전자적 사전에서 나타나는 거의 완전한 문자 그대로의 보편성은 분류학자에게 있어서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다른 분자 정보를 사용하면, 완전한 동일성이 아니 다양한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의 단백질 분자는 하나의 문장, 즉 사전에 실려 있는 아미노산 단어의 사슬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장을 번역된 단백질로도 또는 원래의 DNA로도 읽을 수 있다. 모든 생물은 같은 사전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이 그 공통 사전을 사용해서 동일한 문장을 만드는 것을 결코 아니다. 이것이 여러 가지 다른 수준의 유연 관계를 해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백질 문장은 세부적으로는 다르지만 전체의 패턴으로서는 매우 흡사한 경우가 많다. 어떠한 두 생물에서도 같은 선조의 문장을 조금 손질한 수정판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날 만큼 충분히 유사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단백질과 DNA 문장이 아주 비슷하면 유연관계가 가깝고 그 문장이 다를수록 유연관계는 더 멀다...현대 분자생물학의 우수한 점은 두 동물이 정확히 어느 정도 다른가를 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어느 특정한 문자의 각 수정판 사이에서 몇 개의 몇 개의 단어가 다른가를 가지고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립론자들의 주장은 분자 수준에서 진행되는 진화적 변화의 대부분은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그 변화는 자연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무작위적이며, 따라서 우연히 운이 나쁜 경우를 제외한다면 분류학자를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렴이라는 도깨비는 없다는 뜻이 된다. 결국 모든 종류의 분자가 광범위한 동물군에 걸쳐 대략 거의 일정한 속도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교 가능한 분자의 숫자로부터 공통 선조가 살고 있던 때 이래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분자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분자 진화가 중립적이라면 서로 관계없는 두 동물이 우연히 단어 하나, 글자 하나까지 동일한 배열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수렴 진화는 특수한 종류의 우연의 일치이다. 이 우연의 일치에서 중요한 점은, 비록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두 번 계속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세 번 일어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점차 다른 단백질 분자의 숫자를 늘릴수록 우연의 일치는 거의 배제할 수 있게 된다. 

 

 

11  경쟁 이론들의 최후 

 

 

다윈주의의 설명에도 돌연변이라는 형태의 우연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우연은 여러 세대에 걸친 자연선택을 통해 한발 한발 누적적으로 여과된 것이다.

 

 

현대의 신라마르크주의자에게만 적용되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획득 형질의 유전이고, 다른 하나는 용불용의 원리이다. 용불용의 원리는 생물의 몸 중에서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 점차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번하게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쇠퇴할 것이다. 용불용의 윈리를 통해 동물들은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임무를 보다 잘 수행하게 되고 그 결과로서 생애 동안 차츰 능력이 향상될 수 있게 된다. 획득 형질의 유전과 용불용의 원리를 하나로 합치면 진화적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비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 이론의 장점은 누적적이라는 점에 있다...라마르크주의는 인간성의 개량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그런 식의 긍정적인 희망을 준 것 같다.

 

 

진실은 아니지만 가능한 이론과, 성공적이며 위대한 정통 과학 체계를 뒤집는다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만이 진실일 수 있는 이론 사이에는 여러 이론들의 연속체가 있다.

 

 

어느 특정 세포가 그 세포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에 의존해 행동하지 않고 그 세포 속에서 유전자의 부분 집합에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통해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몸의 세포가 모두 동일한 유전자 집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생 중의 어느 시점이든, 발생 중인 몸의 어느 장소든 극소수 유전자의 스위치밖에 껴지지 않을 것이다. 배아의 장소가 다르거나 발생시기가 틀리면 스위치가 켜지는 유전자의 부분 집합 역시 달라질 것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세포에, 어떤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질 지의 여부는 그 세포의 화학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또 화학적 조건은 배아의 해당 부분의 이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더욱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져 있을 때 그 유전자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정확하게 배아의 해당 장소에 효과를 미치는 무엇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발생 개시 후 제3주에 척추 기저부의 세포에서 수위치가 켜진 때와는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유전자가 미치는 효과란, 만약 그런 효과가 있다면, 단순히 유전자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배아 속에서 그 유전자의 국부적 환경을 이루고 있는 장소의 최근 역사와의 상호 작용에 따라 결정되는 유전자의 성질인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몸의 일부 사이에는 단순한 일대일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요리법에 들어 있는 설명과 케이크 조각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성립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청사진을 보고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요리법의 경우와 달리 그 과정이 가역적이라는 점이다...대장장이의 아들은 자기 부친의 노동의 결과로 단련된 근육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유전자가 청사진이 아니라 요리법이기 때문이다.

 

 

성체가 주사되고, 그 주사 결과의 기록이 유전자에 피드백되는 따위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굳은살이 박힌 좌표는 유전적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그에 대응하는 유전자가 변화할 수도 없다. 배 발생은 하나의 과정이고 기능하는 유전자는 모두 그것에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올바른 전진 방향으로 추진되면 그 결과로 성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가역적인 과정이다. 획득 형질의 유전은 단지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배 발생이 전성적이 아니라 후성적인 한, 어떤 생명 형태에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획득 형질의 거의 대부분은 손상이기 때문에 만약 획득 형질이 무차별적으로 유전된다면 진화가 일반적인 적응적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용불용의 원리의 큰 문제란 다른 문제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이 원리는 우리가 실제 동물이나 식물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단히 정교한 적응을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투박하다. 눈 등의 복잡한 기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하고 내부 조직 깊숙이 묻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눈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선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의 성공에 공헌하고, 나아가 그 개선을 낳은 유전자의 증식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 선택은 개선을 초래하는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 다윈주의는 생존에 성공적인 장치의 진화를 그 성공의 직접적인 귀결로 설명하고 있다. 설명과 설명이 되는 대상 사이의 연결 관계는 극히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이다.

 

 

라마르크설은 설명과 설명이 되는 대상 사이의 부정확하고 느슨한 연관 관계, 즉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 점차 커진다는 식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기관의 크기와 그 효과 사이의 상관 관계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령 그런 종류의 상관 관계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미약한 관계임이 분명하다. 다윈주의는 기관의 유효성과 그 효과의 상관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완벽한 상관 관계이다.

 

 

중립설에 따르면 진화는 무작위적이다. 하지만 적응적 개선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따라서 중립설은 적응적 복잡성을 설명할 수 없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다. 돌연변이가 진정한 의미에서 무작위적인 경우는 무작위적이라는 말을 몸의 개선되는 방향을 향한 일반적인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정의할 때에만 해당한다.

 

 

변이와 선택이 공동 작업을 한 결과 진화가 일어난다. 다윈주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변이의 방향은 개선을 향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다. 진화에서 개선을 향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선택을 통해서이다.

 

 

다윈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돌연변이가 적응적 개선의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편향되어 발생하는 경우란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모든 변화가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미래를 내다보고 그 동물에게 무엇이 유리한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라는 뜻이지. 절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유전자가 언제든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해도, 그 돌연변이로 인해 몸이 받는 결과는 배아 발생의 과정에 엄격하게 제한된다...날개라는 장치는 발생 과정이 그것을 허용할 때에만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엇도 마술처럼 날개를 돋게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배아의 발생 과정에 따라 형성될 수 있을 뿐이다. 가능한 진화 중 극소수만이 기존의 발생 과정 당시의 상황에 따라 실제로 현실화될 수 있다...유전자는 지칠 때까지 무수하게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지만, 배아 발생 과정이 그러한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한 포유류가 천사와 같은 날개를 돋게 할 수는 없다...배아의 발생 과정이 진화에 부여하는 제약을 무시할 수 없다.  

 

 

돌연변이는 이미 존재하는 배아 발생 과정에 변화를 더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지 않다. 아무리 자연선택에 유리한 변화라 할지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자연선택에 따라 가능한 변이는 실제 이미 존재하는 배아 발생의 과정을 통해 제약을 받는다.

 

 

무작위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어떤 메커니즘도 (온전하게 표현하자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돌연변이는 다른 모든 측면에서 무작위적이지 않지만 적응적 유리함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만 무작위적인 셈이다. 진화를 유리함이라는 측면에서 무작위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은 선택, 오직 자연선택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진화 경로 중에서 극소수가 현실에서 일어난 경로이다...자연선택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동물의 계통수 속에서 길을 선택해 소수의 생존 가능한 길만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이다...끊임없이 계통수 가지의 대부분을 쳐 내는 것이 자연선택 이론의 본질이다.

 

 

신화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인 존재의 사려 깊은 의도에 기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지 않는 첫 번째 측면은 다음과 같다. 돌연변이는 분명 물리적 사건에 따라 야기된다. 다시 말해서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돌연변이는 이른바 돌연변이원(간혹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위험하다.) 때문에 유발된다.

 

 

두 번째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생물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염색체 내의 모든 유전자 자리는 저마다 특정한 돌연변이율을 가지고 있다...염색체의 어느 부분은 높은 유전자 전환율을 가진 소위 핫 스폿이어서 국부적으로 극히 높은 돌연변이율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염색체상의 각 유전자 자리에서는, 그곳이 핫 스폿이든 아니든 간에, 특정 방향의 돌연변이가 그 역방향의 돌연변이에 비해 쉽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동시적인 현상을 일으키거나 혹은 인도된 진화라는 형태에서 이 장에서 고려되었던 다른 이론들에 돌연변이설이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결론) 생명의 본질은 거대한 척도에서 볼 때 통계적인 불가능성에 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모든 설명은 우연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설명은 분명 우연에 대한 반명제를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연에 대한 반명제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은 우연의 반명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우연이 될 것이다. 이러한 양극을 연결하는,  1단계에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이르는 연속체가 있다. 1단계 선택이란 순수한 우연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라는 것이다.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인 자연선택이야말로 생명이 가지는 복잡한 설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으며, 더욱이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 중에서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다.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 자연선택이야말로 우리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라는 것이 다윈주의에 토대를 둔 세계관의 주장이다. 느린 속도의 점진설을 부정하고 자연선택의 중심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진화론의 이설이 있다면 그런 변종들은 특정한 경우에는 사실일 수 있지만, 결코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이설들이 진화론의 핵심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의 힘은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해소하고 믿을 수 없고 기적처럼 보이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P.S.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그의 주저인 <이기적인 유전자>보다 더욱 철학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이 책을 반드시 구입해 읽기 바라는 마음에서, 또는 책장에라도 진열하시라고 주요 부분만 요약해 올렸습니다.

 

 

 

8  폭발과 나선  

  

 

다윈은 생존과 존재를 위한 투쟁(생존경쟁)을 가장 강조했지만, 존재와 생존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목적이란 바로 번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컷의 장식이 정적인 암컷의 선호도의 영향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하지만, 피셔는 암컷의 선호가 수컷의 장식과 보조를 같이하며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수컷은 암컷에 대해 매력적으로 보일 때 많은 것을 얻는다. 반면 암컷의 경우에는 확실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수컷에 대해 매력적으로 보여도 그다지 이득이 없다.

 

 

유전자자 몸 안에 있어도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암컷의 선호에 관해서는 유전자는 비록 암컷의 몸에서만 발현하지만 수컷의 몸에도 들어 있다. 따라서 수컷의 꼬리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비록 암컷의 몸에서 발현되지 않아도 암컷의 몸 속에 들어 있다...수컷이든 암컷이든 모든 개체는 수컷에게 특정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와 완전히 똑 같은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 양쪽을 모두 가질 가능성이 높다. 즉 수컷의 성질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 성질을 좋아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개체군 속에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연대해 있는 경향이 있다...교미가 가능한 여섯 마리의 수컷 중에서 단 한 마리의 수컷만이 큰 하렘을 차지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는 다수파에 속하는 암컷들이 좋아하는 방향을 추종해야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에너지나 비행 효율과 같은 실용적인 비용을 능가하고 남을 정도로 크다.

 

 

그렇다면 최초에 다수파 암컷들에게 그런 선호도가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암컷의 대다수가 실용적인 최적값보다 짧거나, 또는 실용상의 최적값과 일치하는 길이의 꼬리를 좋아하게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이 실용성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에 대한 답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실제로 많은 종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수컷이 긴 꼬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택될 때, 긴 꼬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만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 강한 연대 때문에 긴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도 함께 선택된다. 다시 말해 암컷이 특정 길이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유전자의) 복제를 선택하는 점이다. 이것은 자기 강화 과정의 본질적 요소이다. 한마디로 자동적으로 그들 자신을 유지시키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이 힘은 진화를 같은 방향으로 지속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근연 개체에 대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유전자가 자연선택에서 유리하게 되고, 그 이유는 오직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유전자의 복제가 그 개체의 몸에 존재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혈연관계라는 것은 유전자가 다른 개체의 몸에 있는 자신의 복제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단지 우연히 자신의 복제를 돕는 효과를 가지는 유전자가 어쩔 수 없이 개체군 가운데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가질 뿐이다.

 

 

선택의 불일치가 0이라는 것은 두 종류의 서로 대립하는 선택이 완전히 상쇄되어 진화적 변화가 멈추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계를 평형 상태라고 말한다.) 분명 선택의 불일치가 클수록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실용 선택의 인력에 저항해서 암컷이 행사하는 진화적 인력이 강해진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정 시점의 선택의 불일치의 절대값이 아니라 선택의 불일치가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따라서 세대 교체에 따라 불일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조건에서 개체군은 가장 가까운 평형점에 낙착할 것이다.(부의 피드백)

 

 

가령 그 결과가 행운이든 불행이든, 우연한 사건을 통해 수컷의 수가 어떤 주기성을 띠고 임의적으로 변동하면서 그 시스템이 자주 교란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실용 선택과 성 선택의 결합을 통해 개체군은 수많은 평형점 중에서 가장 가까운 한 점으로 반드시 복귀할 것이다. 어쩌면 그 점은 이전과 동일한 평형점이 아니라 평형점을 나타내는 직선에서 조금 위쪽이거나 또는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다른 점일 것이다. 따라서 개체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평형점의 직선을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현실에서는 직선이 한 점으로 축소되는 편이 경제적이다.

 

 

여러 가지 경향, 특히 실용적인 기술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은 경박한 유행과는 달리 거의 가치 판단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없이 개선으로 인정된다...인간 생활에는, 뚜렷한 경향을 나타내면서, 어떠한 명백한 의미에서도 그 경향이 개선과 연결되지 않는 측면이 많이 있다.

 

 

6억년 이전의 과거를 알려주는 화석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적다. 화석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백은 실제로 오직 한 세대에서 일어난 돌발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대돌연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돌연변이, 즉 큰 효과를 가지는 돌연변이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일어났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돌연변이가 특정한 종의 유전자 풀에 결합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 역으로 자연선택을 통해 항상 제거되는지의 여부이다.

대돌연변이의 잘 알려진 예로는 초파리의 촉각지가 있다. 이것은 DNA의 복사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의 돌연변이다.

 

 

어떤 식으로든 큰 폭의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상의 질이 향상될 가능성이 극히 작지만, 현미경 제작자나 사용자가 의도한 최소의 조정폭보다 미세한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개선될 확률은 거의 정확하게 2분의 1임은 거의 확실하다.

이제 움직임이 작으면 작을수록 향상이 이루어질 확률이 2분의 1이 되는 한편의 극단에 가까워지고, 움직임이 크면 클수록 향상이 이루어질 확률이 0이 되는 또 한편의 극단적인 경우에 가까워진다.

 

 

이 가정은 현미경이 비유에서 맡은 역할에서 비롯된다. 임의의 조정을 거치기 전의 현미경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물을 나타낸다. 또한 임의의 조정을 거치기 전의 현미경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물의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은 정상적인 부모를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점차 그 정도가 커지는 돌연변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돌연변이가 커짐에 따라 점점 이익이 적어지는 점에 도달하며, 반대로 계속 그 크기가 감소하는 돌연변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점차 돌연변이가 유리해질 수 있는 확률이 50퍼센트가 되는 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 그것들이 진화적 변화의 토대가 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돌연변이가 어느 정도  가에 대한 논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실제로 발생하는 돌연변이 중 일부는 확실히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더군다나 그 중 일부는 어떤 의미에서  돌연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진화 과정에 결합되었다는 것이 그 답이다.

 

 

도약 진화에 대한 반론으로써 복잡성 논의 DC8 개량형의 대돌연변이에 적용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관계되는 변화의 성질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전혀 대돌연변이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순진하게도 최종 산물인 성체만을 관찰하는 경우에만 대돌연변이로 보일 뿐이다. 배 발생의 과정을 살펴보면 배에 대한 명령에서 나타나는 아주 작은 변화가 성체가 되었을 때 외견상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미소돌연변이에 불과하다. 단속평형설은 가끔 도약 진화와 혼동을 일으킨다.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대한 다윈의 답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한 종이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생명의 계보를 나타내는 나무는 계속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이다. 이 말은 복수의 현생 종을 추적해 들어가면 단일한 선조 종에 닿게 됨을 뜻한다.

 

 

단일한 선조를 가진다고 생각되는 어떤 종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교잡이 가능하다. 어쨌든 많은 사람에게 단일 종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기에 종 분화가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자연선택의 영향이든 우연의 영향이든 두 대륙의 동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두 종이 서로 분리해서 완전히 다른 종이 되는 과정에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한두 마리의 뒤쥐가 산맥 너머 저지에 도착...시간이 경과하면서 한쪽 개체군의 유전적 조성에서 발생한 변화는 번식을 통해 그 개체군 전체에 퍼져 나가지만 다른 개체군에게는 확산되지 않는다. 그러한 변화 중 일부는 자연선택에 따라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어떤 원인에 의해 유전적 변화가 일어났든 그러한 변화는 번식을 통해 각각의 개체군 내부로 확산되고 두 개체군 사이에서는 절대 확산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두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분화되어 간다. 즉 점차 서로 다른 종이 되어 가는 것이다...몇몇은 그들의 선조 종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와 사촌의 자손들과 만난다면 그 유전적 구성이 완전히 분화된 상태여서 교잡이 불가능...잡종도 불임이 된다...자연선택은 양쪽 중 어느 한쪽의 개체가 상대의 종 또는 품종과 잡종을 만들려는 편애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준다. 이것으로 자연선택은 산맥이라는 우연성의 개입과 함께 시작된 생식 격리의 과정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종 분화는 완성된다. 이제 한때 같은 종이었던 두 종이 존재하고 이 두 종은 서로 교잡하지 않고 같은 지역에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선조 중에서 자손 종으로의 이행이 급작스럽고 변덕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단지 우리가 어떤 한 장소에서 나온 일련의 화석들을 관찰할 때 진화상의 모든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진행 중인 사건, 다른 지역으로부터 새로운 종이 도래하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윈은 화석의 불완전성 때문에 고민했지만, 일반적으로 진화는 우리가 대부분의 화석을 발견하는 곳과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의 이론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점진설의 주장은 각각의 세대가 이전 세대와 약간의 차이만을 가진다는 것이다...실제로 그들이나 그 밖의 단속론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결국 다윈의 주장이라고 가정되는 진화 속도가 일정하다는 신념이다...단속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급격한 진화도 지질학적인 기준으로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수만 년이나 수십만 년이 걸린다.

 

단속평형론자들은 진화에 있어서의 도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진화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단속론자들의 신념을 가장 정확하게 특징짓는다면 점진주의적이지만, 긴 기간의 평형 상태(진화적인 정체)가 빠르고 단계적인 변화들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단속된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물론 종래에 간과되었던 현상인 긴 정체기이다. 이 긴 정체기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설명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윈 『종의 기원』제4판의 구절  많은 종은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종이 변화하는 기간은 연수로 측정하기에는 무척 긴 기간이지만, 그 종이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기간에 비한다면 무척 짧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점진설 내에서도 (점진적인) 진화의 속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다양한 신념을 구분할 수 있다.

 

 

선택적 육종을 수 세대에 걸쳐 진행시킬 경우, 이용 가능한 유전적 변이를 모두 써 버리게 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변이가 바닥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날 대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우리가 선택적 육종을 할 때 항상 최초의 저항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 계통이 야생 상태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수 세대 동안 존속되어 왔다면,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방향으로 향한 자연선택압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종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그 상태(야생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개체가 변화하는 개체보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단속론자가 다른 다윈주의 학파와 다른 점은 오직 한 가지, 즉 정체기를 적극적인 힘을 가진 무엇으로, 단순한 진화적 변화의 결여가 아니라 진화적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저항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어쩌면 이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범한 오류의 핵심일 것이다...신의 창조는 도약이 최대한으로 이루어진 극단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점토에서 완전한 형태의 인간으로의 궁극적인 비약이다...다윈의 관점에서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의 핵심은 복잡한 적응의 존재를 기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결사적으로 다윈주의를 믿지 않으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진화 그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만, 흔히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인해 다윈주의가 가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경우이다. 그 중에는 자연선택이라는 사고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냉혹하고 비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선택을 임의성과 혼동한 나머지 자신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더 나아가 다윈주의를 인종차별주의와 그 밖의 동의할 수 없는 부대 의미들을 내포한 사회다윈주의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다.

 

 

세 번째 부류에는, 대중매체라고 그들 스스로 부르는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어쩌면 기자들은 신문 잡지의 좋은 기삿거리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이론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다윈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되어 체제가 정비된 이론이기 때문에 저널리스트들에게는 군침 도는 먹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평판 높은 학자가 현재의 다윈주의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비판의 암시를 토해 놓으면, 결과적으로 그 사실은 열심히 과장되어 완전히 균형을 잃을 만큼 부풀려지게 마련이다...과학자가 현재의 다윈주의의 미묘한 의미에 대해 품고 있는 약간의 의혹을 조심스럽게 속삭이면, 원래 자신이 한 말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이 왜곡되어 열심히 기다리고 있던 확성기에 의해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다.

 

 

6  생명 탄생의 기적 

 

 

기적은 그것이 어쨌든 일어난 사건이라면 단지 엄청난 우연과의 조우일 뿐이다. 사건들은 칼로 두부 자르듯 자연스러운 사건과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무한한 시간 또는 무한한 경우의 수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인들 불가능하랴?

 

 

창조주는 아마 매일매일 일어나는 진화 과정을 통제하지 않을 것이다. 창조주가 호랑이나 염소를 설계하거나 나무를 만들지는 않지만, 태초의 복제 기구와 복제자, DNA와 단백질을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모든 진화 과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가당착에 빠지는, 근거가 박약한 주장이다.

 

 

DNA와 단백질은 모두 부분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만 지탱할 수 있는 안정되고 우아한 아치의 두 기둥이다. 따라서 최게 어떤 받침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해야 하지, 그러지 않고 그것들이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 받침대는 초보적인 형태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그것의 성질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 받침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복제자를 기초로 한 것이어야 한다.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은 거의 대부분 흠이 있다. 그리고 일단 흠이 생기면 그 위에 새로 생기는 층에도 그 형태가 그대로 복사된다...결정 속 원자 수준에서 생긴 흠은 레이저 디스크 표면에 만들어진 흠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결정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 DNA로 만들어진다. DNA가 복제될 때 복제 효소와 같은 정교한 기구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에 그 결정에는 흠이 생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결정이 자라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층에서 복제된다. 결정이 자란 후에 몇 개의 조각으로 부러지면 그것들은 새로운 씨를 뿌리는 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부모 결정이 갖고 있는 흠의 형태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원시 지구에서 복제, 증식, 유전, 돌연변이를 보여 주는 광물 결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복제자가 자신의 복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질인 위력이라는 요소가 부족하다. (248~258p 참조)  

 

 

지구에서 스스로를 복제하는 미생물을 탄생시킨 몇 가지 혹은 대다수의 비생물적인 화학 반응과 과정이 지구 역사의 초기에 점토 광물의 표면이나 다른 무기 분자의 표면에 아주 근접한 곳에서 일어났다.(D.M.앤더슨)...케언스스미스는 점토 결정 복제자가 초기에 사용한 것이 단백질이나 당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RNA 같은 핵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RNA 같은 분자들은 음의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점토 입자를 끌어 모아 곁을 둘러싸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RNA나 그와 비슷한 분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분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광물 결정,  유전자 RNA(또는 비슷한 물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만들었다.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은 RNA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R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단 새로운 자기 복제 분자가 탄생하자 새로운 종류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복제자는 본래 찬조 출연자였지만 원래의 결정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그 역할을 넘겨 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DNA 암호를 완성하였다. 원래의 광물 복제자는 닳아빠진 주형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은 단일한 유전 체계와 단일한 생화학을 바탕으로 비교적 최근의 조상에서 진화해 나왔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는 현대의 상황이 또다시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로 넘어가는 문턱에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DNA 복제자는 자신을 위해 생존 기계(자기를 담고 있는 생물의 신체)를 만들었다. 그 장비의 일부로 신체는 컴퓨터, 즉 뇌를 진화시켰다. 뇌는 언어와 문화적 전통이라는 수단으로 다른 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문화적 전통이라는 그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생겨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새로운 복제자는 DNA가 아니고 점토 결정도 아니다. 그것은 뇌와 뇌를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건, 예컨대 책이나 컴퓨터 같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패턴들이다.

 

 

하지만 뇌, , 컴퓨터가 존재하면 이 새로운 복제자들은 뇌에서 뇌로, 뇌에서 책으로, 책에서 뇌로, 뇌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컴퓨터로서 번식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유전자와 구별하기 (meme)’이라 불렀다. 그것들은 번식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 즉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돌연변이 밈은 아마 내가 여기서 복제자의 위력이라고 부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번식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복제자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지는 진화(밈의 진화)는 현재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문화의 진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문화의 진화는 여러 면에서 DNA에 기초를 둔 진화보다 빠르다. 이것 때문에 또 다른 넘겨 받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주도권을 넘겨 받기 시작했다면 그것들은 장차 그들의 부모인 DNA(그리고 케언스스미스가 옳다면, 조부모인 점토를) 저 뒤편으로 밀쳐 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는 컴퓨터가 선두에 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마치 우리의 눈이 전자기파의 어떤 영역만을 볼 수 있게 진화한 것처럼 우리의 뇌는 자연선택을 통해 어떤 범위에 해당하는 위험과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게 진화하였다. 즉 인간의 생활에 유용한 범위에 들어가는 확률만을 마음 속에서 계산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은 훨씬 더 큰 폭으로 빗나갈지 모른다. 우리의 뇌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들에 관해 사고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사건,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건들에 관해서만 사고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대중매체가 발달한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생명의 기원에 관한 어떤 이론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여서, 가능성에 관한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라면, 그것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우주에 지구 말고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바라는 이론은 우리의 제한된, 지구에 한정된, 몇 십 년에 한정된 상상력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종류의 이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케언스스미스의 이론이나 원시 수프 이론은 모두 너무 가능성이 커서 틀리는 쪽에 속하는 것 같다! 말하는 김에 고백한다면, 계산을 할 때 너무나 많은 곳에서 불확실한 숫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만약 어떤 화학자가 생명의 자연 발생 실험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7  건설적인 진화

 

 

 

자연선택은 무언가를 제거하기만 할지도 모르지만 돌연변이는 무언가를 부가할 수 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결합하는 방법 중에는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삭제보다 부가를 많이 함으로써 복잡성의 구축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서로 적응한 유전자형이고 다른 하나는 군비 확장 경쟁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진화(계통적으로 관계없는 여러 생물이 서로 연관되며 진화하는 것) 서로에게 환경이 되는 유전자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우선 서로 적응한 유전자형...유전자가 특정한 효과를 가지는 것은 거기에 이미 유전자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을 이다...유전자가 가지는 특정한 효과는 그 유전자의 본질적인 성질은 아니다. 그것은 배아 발생 중 특정한 장소 및 시간에 일어나는 발생 과정의 성질이며 그 발생 과정 자체의 상세한 내용은 유전자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각각의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각 유전자가 만나는 다른 모든 유전자이다...대부분의 유전자는 그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는 개체의 세포들 속에서 만난다. 각각의 유전자는 몸 속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의 집단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협동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선택된다...개별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관점에서 한 유전자의 특정한 복제품은 개체를 구성하는 특정한 시점에 1개의 세포 속에 위치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유전자의 복제품에 불과한 그 원자들의 집합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겨우 수개월의 단위로 측정될 수 있는 평균 수명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분산되어 존재한다. 공간적으로 여러 개체에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있다...성공한 유전자는 다른 몸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유전자가 제공한 환경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일 것이다...특정 동물에서 중요한 사실은 양쪽 경로(동일한 결과를 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화학 반응)를 동시에 이용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다. 중복이 이루어질 경우 화학 반응에 혼란이 야기되어 효율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어떤 유전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란 그 집단 가운데 이미 다수를 점하는 유전자, 즉 몸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다...유전자 집단이 일체가 되어 어떤 문제를 협동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유전자 자신이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오직 유전자 풀 속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할 뿐이다. 진화하는 것은 유전자의 이다. 소수파보다 다수파가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파 팀이 절대 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절대 바뀌지 않는다면 진화는 브레이크가 걸려 정지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 일종의 내재된 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진화적 시간을 거쳐 그 유전자들(그들 자신도 선조의 복제이다)은 서로 자연선택을 하는 환경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특정한 계통이 일단 풀보다 고기를 잘 처리하는 유전자 팀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강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생물의 초기 진화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사건의 하나는 그러한 협동사업에 참여하는 유전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종의 DNA 운영 체계가 몹시 오래된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디스크 파일을 갖춘 컴퓨터와 흡사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 증거는 인트론(유전자 중 엑손 사이에 위치하여 그 유전자의 최종 산물로 발현되지 않는 염기 서열) 엑손(진핵 생물의 mRNA 정보 배열을 가리킴)이라는 흥미로운 유전자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연속적으로 얽히는 DNA 문자열의 한 소절인 1의 유전자는 한 곳에 모두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염색체를 따라 발견되는 암호 문자를 읽는다면( 운영 체제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을 한다면) 엑손이라 불리는 의미 있는 단편이 인트론이라 불리는 무의미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적인 의미에서의 유전자는 실제로 의미 없는 인트론을 통해 나뉘어 있는 일련의 단편(엑손)들로 분할되어 있다. 단백질로 번역하는 공식 운영 체계를 통해 판독되기 시작할 때에만 실제로 액손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1개의 완전한 유전자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염색체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상당한 의미를 가진 낡은 유전자 문자열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어떤 동물의 경우 실제로는 전체 유전자의 상당 부분이 한번도 읽힌 적이 없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나 낡은 화석 유전자이다.

 

 

때로 문자열의 화석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최소한 화석의 일부, 또는 오래된 인트론의 일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종의 유전적 용량은 유전자 중복을 통해 증가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낡은 화석 복제의 재이용은 유전적 용량을 증가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즉 파일이 같은 디스크의 다른 위치나 혹은 다른 디스크로 복제되는 것과 같이 유전자가 염색체상의 넓게 분산된 위치에 복제되는 것이다.(286~287p의 글로빈 유전자에 대한 설명)

 

 

종 내에서 유전자 중복이 진화에서 협동하는 유전자의 숫자가 증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희귀하고 중요한 사건은 다른 종, 특히 극단적으로 유연관계가 먼 다른 종류들의 유전자들이 우연히 혼합되는 경우이다.

 

 

사람들을 구성하고 있는 10조 개의 세포는 수십 세대에 걸친 분열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 세포들은 약 210가지의 서로 다른 종류로 분류된다.(분류하는 방법이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유전자 집합으로 만들어지지만 세포의 종류에 따라 유전자 집합의 다른 부분에서 스위치가 켜진다. 간세포와 뇌 세포가 다르고, 뼈 세포와 근육 세포가 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군비 확장 경재은 개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진행된다. 내가 군비 화장 경쟁에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진화에 진보성을 끼워 넣어 온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군비 확장 경쟁이기 때문이다...작은 (그래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진화 단계를 통해서는 설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뜻이다...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동물들을 기후 조건에 훌륭하게 적응하게 만들 뿐 아니라 먹이가 되는 초식 동물들을 포식자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만든다. 따라서 진화가 장기적인 기후 변동을 뒤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이가 되는 생물의 진화적 변화는 포식자의 습성이나 무기의 장기적 변화를 뒤따르게 된다.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한쪽이 조금 개선되면 다른 한편도 조금 개선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이 조금 더 개선되면 한편도 조금 더 개선된다. 이 과정은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 척도에서 악의에 찬 나선을 그려 간다.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될 수 있는 시간 척도는 어떤 경우든 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비교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그 개선은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그것은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개선의 방향처럼 항상 분명한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역행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군비 확장 경쟁의 이미지로 묘사될 수 있는 진보적 개선은 비록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계속 이루어진다. 다른 영향이 가감된 알짜 진보 속도가 너무 느려서 어떤 사람의 일생이나 유사 이래의 모든 시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개선은 계속된다.

 

 

두 번째 내가 천적이라 부르는 관계가 치타와 가젤의 이야기에서 설정한 둘로 이뤄진 단순한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천적 관계에서도 군비 확장 경쟁은 이루어진다.) 군비 확장 경쟁 개념의 핵심은, 군비 확장 경쟁에 관계하는 양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개선을 하고 동시에 상대편이 군비 확장 경쟁에서 벌이는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다...나무들은 정확히 같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수관부의 높이에서 서로 경쟁을 벌이겠지만, 이전에 비해 훨씬 낮은 성장 비용만을 지불하고도 수관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삼림 전체의 경제도 이익을 높을 수 있고, 나무들 하나하나도 모두 이익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연선택은 전체의 경제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에는 카르텔이나 협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숲의 수목이 세대가 바뀌면서 점차 커지는 것은 군비 확장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군비 확장 경쟁의 어느 단계에서도 키가 커지는 현상 자체에는 아무런 내적 이익도 없다. 어느 단계에서나 나무의 키가 커지는 유일한 목적은 인접하는 나무보다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IQ100이 인간 전체의 IQ의 평균값을 의미하듯이, EQ1은 예를 들면 그 크기의 포유류의 EQ값의 평균값을 뜻한다...측정된 EQ는 필경, 어느 동물이 크건 작건 간에, 그 몸을 일상적으로 움직이는데 꼭 필요하며 그 이상으로는 줄일 수 없는 최소한의 능력 이상으로,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그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원숭이는 평균보다 훨씬 높고, 유인원(특히 우리 인간)은 현저하게 높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차이가 생활 방식과 약간의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복잡하며, 대사 속도와 같은 다른 변수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고 있다. 

 

 

유전자의 진화는 두 가지 귀결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4  진화의 갈림길

 

  

밝기, 포식자와의 거리, 망막 중심부로부터 영상이 맺힌 지점까지의 거리, 그 밖의 유사한 변수들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모두 연속 변수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극단에서부터 완전히 보이는 극단까지 변화한다. 그러나 연속 변수가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진화를 추동한다. 

 

 

바늘 구멍 사진기는 뚜렷한 영상을 만든다. 구멍이 작을수록 영상은 더 선명해진다.(그렇지만 어두워진다.) 구멍이 크면 영상은 밝아진다.(그러나 흐려진다.)

 

 

폭탄먼지벌레가 적에게 화상을 입힐 정도로 뜨거운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의 혼합물을 뿜어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은 촉매가 첨가되지 않는 한 반응하지 않는다. 폭탄먼지벌레가 하는 일은 혼합물에 촉매를 첨가하는 일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진화하는 초기 단계에서 과산화수소와 다양한 종류의 퀴논들은 모두 생체화학 반응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폭탄먼지벌레의 조상은 이미 존재하는 화합물을 방어 무기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진화는 가끔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팬터의 엄지에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는 완벽한 형태를 갖춘 기관보다는 불완전한 기관이 더 강력하다고 말했다.

 

 

진화는 결코 깨끗한 제도지 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진화는 이미 무언가 있는 데서 출발한다.

 

 

일단 어떤 설계가 진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라면 똑 같은 설계 원칙은 동물계의 다른 영역에서, 다른 출발점에서 다른 진화 경로를 거쳐 재차 진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뛰어난 설계를 보여 주는 실제의 예를 기술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것은 바로 반향위치 결정법이다...최근 몇 억년 사이에 최소한 두 종류의 박쥐와 두 종류의 새, 이빨고래 그리고 보잘것없지만 다른 여러 종류의 포유류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반향위치 결정기술이라는 귀결점에 도달했다. 지금은 멸종된 다른 어떤 동물(혹시 익수룡이 아닐까?)도 이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매미는 13년 변종과 17년 변종이 있다. 14. 15. 16년 변종은 없다. 13 17은 소수라는 공통점밖에 없다. 가령 14년 주기를 가졌다면 7년 주기의 기생충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다. 13년과 17년이 무엇이 특별한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들에는 틀림없이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매미들이 각기 독자적으로 그 주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머니늑대를 골치거리로 여겼다. 그러나 주머니늑대에게 사람들이 훨씬 더 큰 골치거리였다. 이제 주머니늑대는 멸종되고 없다. 대신 그만큼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정보 저장기술 발달에 기본적인 요건은 많은 수의 기억 장소를 가진 저장 매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각각의 장소는 어떤 불연속적인 수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인공적인 세계에 만연된 디지털 정보 저장기술의 핵심이다...레이저 디스크는 일련의 작은 점에 정보를 저장하며, 그 점들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다. 중간 상태의 점이란 없다. 이것이 디지털 방식의 특징이다. 기본 요소가 어떤 한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상태에 있다. 중간 또는 타협이란 없다. 유전자의 기본 저장기술은 디지털 방식이다.

 

 

자손은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 유전자를 받을 때, 그것들을 구분된 입자의 형태로 받는다. 각각의 입자에 관해 말하자면 자손은 그것을 물려받든가 물려받지 못하든가 둘 중 하나다...물론 유전 단위들이 한 몸 안에 있을 때 마치 잉크가 물에 섞이는 것과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일이 종종 있다. 키가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과 결혼했을 경우, 또는 흑인이 백인과 결혼했을 경우 그들의 자손은 중간형을 띤다. 그러나 잉크가 물에 섞이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단지 겉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는 각각 작은 효과를 나타내는 많은 수의 유전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입자들 각각은 분리된 채로 남아 있으며 다음 세대로 그대로 이어진다...물감을 섞는 것과 같은 유전을 전제로 하면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다양성은 감소하고 획일성이 증가할 것이다. 결국 자연선택이 작용할 만한 다양성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다양성은 보존된다. 선택이 작용할 수 있는 다양성의 풀(pool)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전자기술에 널리 사용되는 불연속적인 디지털 방식의 정보 저장기술에서 각각의 저장장소는 단지 두 가지 상태만을 나타낼 수 있다. 편의상 그것들을 0 1로 표현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것은 높고 낮음, 위와 아래, 켜짐과 꺼짐 등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두 상태가 엄격히 구분된다는 것이고, 그것들이 배열되어 있는 형태가 어떤 내용을 담은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세포들 속에 들어 있는 주요 저장매체는 전기적인 재료가 아니라 화학적인 재료이다.

 

 

여기에는 어떤 분자들은 무한한 길이의 긴 사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  중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용된다. 중합체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중합체 사슬을 구성하는 단위분자에 이질성이 생기면 그 중합체는 이론적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슬을 구성하는 단위 분자가 두 종류라면 그것들을 각각 0 1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술이 충분히 길다는 요건만 갖추면, 곧바로 중합체는 어떤 종류의, 얼만한 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세포가 사용하는 특별한 중합체를 폴리뉴클레오티드라 부른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각각 DNA RNA라고 부른다.

 

 

두 종류는 모두 네 종류의 뉴클레어티드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사슬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DNA RNA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세포는 1 0의 두 가지 상태만 가지고 정보를 저장하는 대신에 A,T,C,G로 표현할 수 있는 네 가지 상태를 사용한다. 원론적으로 인간의 전자기술에서 사용하는 2진법의 정보 저장기술과 살아 있는 세포가 사용하는 4진법의 정보 저장기술에는 큰 차이점이 없다.

 

 

놀라운 것은 그 엄청난 유전 정보 중 극히 적은 분량만이 실제로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인간의 세포는 그 중 1퍼센트만을 실제로 사용한다. 어림잡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DNA의 알파벳을 사람들이 읽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꿈 같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글자는 너무 작아서 신약 성경 1,000만 권이 핀의 머리에서 한꺼번에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이다.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염색체의 정확한 물리적 위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염색체는 액체 속에 떠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위치가 변한다...모든 인간은 같은 형태의 DNA 주소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소가 같다고 해서 내용까지도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생긴 것이다.

 

 

구성원 전체의 DNA가 같은 주소 체계로 되어 있는 집단을 종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세포에서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만들어질 때, 정자는 같은 주소를 가진 2개의 장소 중 어느 하나만을 갖게 된다. 정자가 그 중 어느 것을 가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난자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정자와 난자의 주소 체계는 같은 종이면 모두 같지만 저장된 내용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무시해도 좋을 극소수의 예외가 있기 하지만 말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되면 다시 46개의 염색체 모두가 갖추어진다. 그리고 이 46개의 염색체는 발생 중에 있는 배의 모든 세포 속에서 복제된다.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선택적으로 살아남고 번식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발전된 생존 지침이 그 종의 유전자 집합에 씌어진다. 진화는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DNA의 각 저장 장소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내용들 중 어떤 것이 득세하는가 하는, 유전자의 빈도 변화에서 비롯된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내용들은 어느 때건 개체의 몸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집단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대립 유전자들의 빈도 변화이다. DNA의 주소 체계는 그대로 보존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저장 장소에 들어 있는 내용들의 통계적인 수치가 변화하는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면 주소 체계 자체도 변화한다...전체 코드가 가끔 완전히 다른 염색체로 복사될 수도 있다. 염색체의 어떤 부분의 DNA 내용이 멀리 떨어진 다른 부분의 내용과 완전히 똑같은 경우가 발견되었다.        

 

 

DNA 글자 4개가 배열된 상태가 어떤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가령 눈의 색깔을 나타낸다든가 아니면 특정한 행동을 유발한다든가 하는 효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DNA의 자료 유형 자체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배가 발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것은 다시 DNA의 다른 부분에 들어 있는 자료 유형에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슬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그리고 그것의 정확한 모양은 아미노산의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이 실타래 같은 모양은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가 정해지면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는 (중간에 RNA를 통해 번역된) DNA의 암호 배열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실타래 같은 단백질의 3차원적인 구조가 DNA 암호 문자의 1차원적인 배열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은 타당성이 있다.

 

 

모든 체세포가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세포들의 형태와 기능이 천차만별인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체세포들이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과 행동을 보이는 것은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들이 읽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유전자들만 읽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린다. 가령 간세포는 자기의 DNA ROM에서 신장 세포를 만드는 데 해당하는 유전자는 읽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포가 어떤 모양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세포 속의 유전자 중 어떤 것이 읽히고 번역되어 단백질 분자로 만들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다시 세포 안에 이미 존재하는 화합물의 영향을 받는다. 세포 안에 이미 존재하는 화합물이 어떤 것인가는 전에 얽힌 유전자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과, 인접한 세포가 어떤 종류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단지 DNA의 변종들 중 생존에 성공한 것의 후손들을 볼 뿐이다. 개체를 죽음으로 이끈 DNA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돌연변이 속도보다 빠를 수 없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새로운 변종을 수용하고 다른 것을 도태시키는 일이다. 돌연변이 속도는 진화가 일어나는 속도가 가질 수 있는 최대 한계선이다. 자연선택은 대개 진화에 관련된 변화를 막는 것과 상관이 있지 그것을 추동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물론) 자연선택은 건설적인 작용도 한다.

 

 

자연선택이 없는 상태에서 DNA가 얼마나 정확히 복제되는가 하면, 그것은 500만 세대가 복제되는 동안 그 내용의 1퍼센트가 잘못 복제되는 정도이다.

 

 

DNA 복제과정에도 실수 과정이 있다. 정확도는 그렇게 올라간다. DNA 복제과정에는 여러 가지 실수 수정 공정이 개입되어 있다. DNA의 암호가 안정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은 더욱 필요하다. 오히려 거기에 관련된 분자들이 너무 작기 때문에 그것들은 끊임없이 열운동을 하는 다른 분자들과 부대끼고 있다. 메시지의 글자를 뒤바꿀 수 있는 끊임없는 유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세포 속에서는 하루에 5,000개의 DNA 문자가 사라지지만 수리 메커니즘을 통해 즉시 복구된다. 수리 메커니즘이 존재하여 끊임없이 작용하지 않으면 메시지는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새로 복제된 DNA의 내용을 검토하여 틀린 곳을 수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수리 과정에 속하는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DNA의 뛰어난 복제능력과 정보 저장능력은 주로 이 수리 메커니즘 덕분이다.

 

 

살아 있는 생물은 다름 아니 바로 DNA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개체는 단지 DNA가 그들의 천문학적인 수명 중 얼마간의 시간 동안만 짧게 거처하는 일시적인 용기에 불과한 것이다...어떤 사물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금방 생겨났든지 아니면 과거에 생겨났지만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내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세상에는 두 종류의 존재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쉽게 생겨날 수 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 이슬과 같은 존재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쉽게 생겨날 수 없지만 일단 한번 생겨나면 오래 가는 바위와 같은 존재 방식이다. 바위는 오래 견디는 성질을 갖고 있지만 이슬은 쉽게 만들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DNA는 두 가지 존재 방식 모두에 있어서 탁월하다. DNA 분자 자체는 물리적 성질이 이슬과 같다. 조건만 갖춰지면 매우 빠른 속도로 생겨난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대부분이 몇 개월 안에 망가질 것이다. 바위와 같은 내구성이 없다. 하지만 DNA가 갖고 있는 분자들의 배열 형태(정보)는 가장 간단한 바위와 같은 내구성이 있다. 그 형태는 수백만 년을 버틸 수 있고, 바로 그것이 DNA가 오늘날 존재하는 이유다. DNA와 이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슬은 새것이 낡은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는 우주 안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과 같은 기계를 만드는 능력도 포함된다.

 

 

원시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복제자가 DNA가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세포 속에서만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다른 분자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는 DNA 분자가 저절로 생겨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초의 복제자는 아마 DNA보다 더 투박하고 단순했을 것이다.

 

 

첫 번째 요소인 스스로를 복제하는 능력에서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두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자기 복제 과정 중에 틀림없이 우연한 실수가 생겨날 것이다...그리고 최소한 복제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DNA는 실수를 줄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오늘날의 DNA가 갖고 있는 고도의 기술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며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받은 결과로 획득한 것이다.

 

 

복제 과정 중에 실수가 생기면 동일한 복제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 여러 종류의 복제자가 뒤섞인 집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잘못 복제된 것들 중 많은 수는 필경 조상이 가지고 있던 자기 복제 능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부모와는 다른 자기 복제 능력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는 실수로 만들어진 복제자가 차츰 자기의 복제품을 늘여 갈 것이다.

 

 

세 번째 요소는 위력이다. 덜 끈적거리는 복제품을 만드는 속도가 끈적거리는 복제품을 만드는 속도보다 수천 배는 빠를 것이다...따라서 점착성이 줄어드는 쪽으로 진행하는 진화 경향이 생긴다.

 

 

정상 세포에서는 RNA의 지시에 따라 단백질 분자가 만들어진다. RNA DNA 원본을 베껴 만든 현장용 설계도이다. 하지만 RNA로부터 RNA를 복제할 수 있는 RNA 복제 효소를 만들 수 있다. 다시 RNA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이 되풀이된다...복제 기구를 우연히 갖게 된 복제자는 그 인과관계의 사슬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간접적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모든 사슬은, 그것이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든 뇌 세포가 연결된 후에 생기는 효과든, 아니면 호수의 크기가 변하는 최종적인 효과든, DNA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유전자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가 그 자신의 복제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연선택의 게임에서 공정한 규칙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자동적이며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거의 불가피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복제, 실수 그리고 위력)가 태초에 저절로 생겨나게 되었다.  

 

 

 

 

 

1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일

 

 

 

유전적인 변이를 수반한 계획적인 번식은, 축적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연선택은 확실히 어떤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생물의 형태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며, 거기에는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자연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이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우리가 얻은 해답은 복잡한 물건은 사전에 규정된 어떤 성질, 즉 단순한 우연만으로는 매우 얻기 힘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물의 경우 사전에 규정된 그 성질이란 일종의 능숙함이다. 그것은 항공 기술자가 가진 감탄할 만한 비행 기술과 같은 고도의 능력뿐 아니라, 더 일반적인 능력, 즉 죽음을 모면하는 능력이나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보존하는 능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생물에 초자연적인 무엇이나, 물리학의 기본 법칙에 반하는 생명력 따위란 결코 없다. 단지 어떤 생물 전체의 행동을 이해할 때, 물리학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신체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복잡한 물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체의 행동을 이해하려 할 때, 물리학의 법칙은 전체가 아닌 각 구성 부분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전체로서의 신체의 행동은 각 구성 부분이 상호 작용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 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적으로,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 복잡한 물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단계 환원주의로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고, 양파 껍질 벗기기 식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진 설명만이 그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잇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물건이 단 한 번의 단계를 거쳐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 순으로 배열된, 일련의 작은 단계들로 설명해야 한다.

 

 

 

2  훌륭한 설계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절차를 계획하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맹인들의 안면시는 얼굴 앞면이나 어떤 접촉과도 전혀 상관이 없음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안면시라는 감각은 실제로는 귀로 느끼는 것임이 밝혀졌다. 맹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발소리나 다른 소리의 반향을 이용해 장애물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론상 소리의 주파수가 높을수록 더 정확한 소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주파수가 낮은 소리는 긴 파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가까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쥐의 일그러진 얼굴은 원하는 방향을 초음파를 발사하기 위한 절묘한 형태이다.

 

 

송신수신 장치는 파동이 방출되기 바로 직전에 수신 안테나의 회로를 차단한다. 그런 다음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를 맞춰 다시 안테나의 회로를 연결한다...박쥐의 귀에서는 고막의 진동이 마이크와 같은 청세포에 전달될 때 3개의 작은 뼈, 즉 그 모양에서 이름이 유래된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를 거치게 된다...어떤 박쥐들은 등자뼈와 망치뼈에 잘 발달된 근육을 갖고 있다. 이 근육이 수축하면 그 뼈들은 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마치 떨고 있는 진동판에 손가락을 대서 소리를 죽이는 것과 같다. 박쥐는 이 근육을 사용하여 귀가 잠깐씩 안 들리게 할 수 있다. 각각의 파동을 내보내기 바로 직전에 근육을 수축시켜 시끄러운 파동에 귀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수축되었던 근육은 다시 이완되어, 메아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본래 가진 고동의 민감성이 회복된다. 

 

 

짹짹거리는 레이더가 일정한 음조를 가진 파동이 아니라 음조가 각기 다른 파동을 낼 때의 장점은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방금 레이더에서 나간 소리가 뒤섞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다...실제로 수많은 종류의 박쥐들이 매번 울 때마다 한 옥타브가량을 오르내리는 울음소리를 낸다. 

 

 

판박쥐가 정지된 물체를 향해 빠르게 비행하면서 끊임없이 웅 하는 소리의 초음파를 내면 나무에서 반사된 메아리는 박쥐 쪽을 이동하고 있으며 박쥐도 여전히 나무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박쥐가 메아리를 들을 때에는 도플러 효과가 한 번 더 일어나게 된다. 박쥐의 움직임은 이중의 도플러 효과를 만들어 내고, 그 효과의 크기는 박쥐와 나무 사이의 상대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정밀한 지표가 된다. 따라서 자신의 울음과 메아리의 음조를 비교함으로써 이론상 박쥐(또는 그들의 뇌에 장치된 컴퓨터)는 자신이 나무를 향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박쥐와 나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만약 소리를 반사하는 물체가 나무와 같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곤충이라면 도플러 효과에 따른 계산 과정은 더 복잡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박쥐는 자신과 목표물의 상대적인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그들은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도플러 효과를 통해 다른 음조로 변형된 후, 그 변형된 음조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내보내는 소리의 음조를 조심스럽게 조정한다. 즉 움직이는 곤충을 향해 속도를 낼 때, 그 곤충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의 음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박쥐는 내보내는 울음소리의 음조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이 기발한 기술 때문에 박쥐는 가장 민감하게 들리는 음조로 메아리를 유지할 수 있다.(이하 67~71p)

 

 

보는 감각(시각)은 사람에게는 듣는 감각(청각)과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빛과 소리의 물리적인 차이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빛과 소리는 모두 그것에 상응하는 감각 기관에서 번역되어 최종적으로 신경 자극이라는 동일한 것이 된다. 신경 자극의 물리적인 양상만 보면 그것이 빛에 관한 정보를 운반하는지 아니면 소리나 냄새에 관한 정보를 운반하는지 분간할 수 없다. 시각이나 청각, 후각이 서로 다른 이유는, 뇌가 내부 모형을 사용할 때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 냄새나는 세계에 각각 다른 종류의 모형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의 물리적인 차이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아니다.

 

 

소리뿐만 아니라 박쥐는 우리가 빛을 사용하는 것과 똑같이 3차원 공간의 영상과 그 속에 있는 물체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점검한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하는 내부의 컴퓨터 모형은 3차원 공간에서 운동하는 물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다윈이 극도의 완벽함과 복잡성을 갖춘 기관이라고 부른 것들을 우리 모두가 불신하는 밑바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 우리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확률 이론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어떠한 주장이 들어맞을 통계적인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그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정당한 방법이다. 문제는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무작위성의 정반대편에 있다. 둘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라는 말도 진실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완벽함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단순하고 덜 발달되었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 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3  바이오모프의 나라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나왔으며, 이 과정에는 어떠한 마음도 개입하지 않았다.

 

 

헤모글로빈의 수는 1 뒤에 0 190개 붙인 것이다! 헤모글로빈이 운에 따라 만들어지길 바랄 때 필요한 행운이 바로 이 수만큼이다. 그리고 헤모글로빈은 생물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단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걸러내는 것이나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생물의 복잡성에 근접할 수 없다. 걸러냄은 생물이 가지고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단순한 걸러냄 작용들은 모두 1단계 선택에 속하는 예들이다. 반면 생물의 탄생은 누적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1단계 선택에서는 선택되거나 따로 분류되는 것은 그것이 자갈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한 번에 전체가 선택되거나 다로 분류된다. 반면 누적적인 선택에서는 그것들이 새끼를 친다. 어떤 방법을 통해 첫 번째 거름 작용의 결과가 두 번째로 넘어가고 그 결과는 그 다음으로, 또 그 결과는 그 다음으로 하는 식으로 계속 넘어간다. 선택되고 분류된 것들은 연속되는 여러 세대에 걸쳐 다시 선택되고 분류된다. 한 세대에서 선택된 최종 산물은 다음 세대 선택의 출발점이 되고 그러한 과정이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 컴퓨터는 원숭이보다 약간 빠르지만 그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적적인 선택에 따라 걸린 시간과, 같은 컴퓨터를 같은 속도로 작동시켜 1단계 선택이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원하는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차이다.

 

 

이렇듯 (비록 작기는 하지만 매 번의 개선이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는) 누적적인 선택과 (매번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1단계 선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1단계 선택에 의존해야 했다면 진화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눈먼 힘이 누적적인 선택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면 진화 과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러한 과정이 가장 최근에 낳은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결과물이다.

 

 

다윈의 조리법에서 확률은 별볼일 없는 양념이다.

 

 

생물은 그렇지 않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 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공,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실제 자연에서 개개의 동물들의 형태는 배 발생을 통해 만들어진다.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세대가 거듭되면서 배 발생 시에 약간씩 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이는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변화(돌연변이. 여기서 말하는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고 작은 변화이다.)에서 비롯된다.

 

 

동물의 유전자들은 몸 전체의 청사진, 즉 전체 계획이 결코 아니다. 유전자들은 청사진보다는 조리법에 가깝다. 게다가 발생 중인 배 전체가 아니라 각각의 세포, 또는 분열 중인 세포들의 국부적인 집합들이 이 조리법을 따른다. 배 그리고 나중의 성체가 전체적인 큰 형태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전체적인 큰 형태는 작고 국부적인 세포들이 미치는 효과들이 모여 이루어졌으며, 이 국부적인 효과들은 기본적으로 두 갈래 가지 뻗기, 즉 세포가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유전자들이 궁극적으로 성체의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이 국부적인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전자들은 단백질 합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발생 중인 배의 성장 규칙으로 번역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유전학자들은 대개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 발생에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동물의 완전한 유전 형식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유전자가 변한 것이라고 알려진 2개의 성체를 비교함으로써 그 유전자가 나타내는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들의 효과는 각각의 단순한 합보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다.

 

 

발생→번식→진화

 

 

신체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해지는 것은 유전자이다. 유전자들은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신체의 배 발생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다음 같은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전해지지 않기도 한다. 유전자의 성질은 그들이 자리 잡은 신체의 발생 과정에 참여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신체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다. 번식이 발생을 통해서 유전자의 값을 다음 세대로 전하며 또한 발생 과정 동안 성장 규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과정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발생은 절대로 유전자 값을 번식에 되돌려 주지 않는다.

 

 

번식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과 함께 유전자들을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발생은 번식을 통해 주어진 유전자들을 받아서 성장 규칙으로 번역한 다음 신체를 이루어간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자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도입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선택의 기준은 유전자들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발생을 통해 영향을 미친 신체의 형태다.

 

 

성공의 기준은 실제 자연선택에서 사용되는 생존이라는 직접적인 기준이 아니다. 실제 자연선택에서 어떤 신체가 살아남는 행운을 얻었다면 그 유전자는 자동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왜냐하면 신체 속에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는 특정한 유전자 형식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직접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들이 신체에 미친 효과, 학술적인 용어로 표현형에 미치는 효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암공작이 수공작을 선택할 때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연은 선택을 하기 위해 뭔가를 복잡하게 따져 보거나 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선택은 단도직입적이고 명확하며 단순하다. 자연선택은 사신(死神)이다. 물론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는 이유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자연선택이 동물과 식물들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죽음 자체는 매우 조잡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선택적인 죽음은 전적으로 표현형을, 그래서 거기 담긴 유전자들을 선택한다.

 

 

진화의 목표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부모가 된 동물은 적어도 다 자랄 때까지 살아남을 정도의 좋은 자질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부모가 낳은 돌연변이 자식은 부모보다 더 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일어난 돌연변이가 매우 커서 유전자 공간에서 부모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갔다면, 부모보다 더 좋게 될 가능성은 어떨까? 답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그대로이다. 만약 돌연변이가 매우 큰 것이라면 그 도약의 착지점이 될 수 있는 바이오모프의 수는 천문학적이다. 그리고 죽어 있는 방법의 수는 살아 있는 방법의 수보다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유전자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크게 도약한 결과가 죽음으로 끝날 확률은 매우 높다. 심지어 유전자적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작게 건너뛴 것이 죽음으로 끝날 확률도 꽤 높다. 그러나 도약하는 거리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 결과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은 줄어들고, 오히려 개선이 될 확률이 커진다.

 

입관

 

 

 

이 병풍만 치우면 당신이 누워 있음을

살아 있을 때처럼 두손 두발 가지런히 모아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더니

수백 송이 국화를 남겨두고서

떠나는구려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옆으로 팔 하나 뻗치기도 힘든

그 좁은 상자 속으로 당신이

한 생을 훌훌 털고 가는구려

피처럼 눈물이 흐른다오

평생을 나를 따라 이리저리 떠돌기만 하더니

한 평도 안 되는 곳으로 또 묵묵히

들어가고 있구려 이 병풍만 걷으면 거기에

모든 고통 사라진 당신이

두 손 두 발 가지런히 모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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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익숙함으로

 

 

 

누군가 풀어놓은 지난밤의 기원들이

아침 햇살에 움을 틔운다

그렇게 투명하게 사랑하리라

꽃을 피우고도 향기를 아껴

그대 오기까지 영혼마저 지켜가리라

 

멀리서 나를 부르는 그대의 소리

이 익숙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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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2)

 

 

 

몇 날을 주저하는 내게

시간을 묻는 당신 물음이 너무 담담해

얼마나 오랜 동안 당신이 홀로

이별을 준비했는지 그 말없던 시간들의

두려움 속에서 서른 하나란 또 얼마나 억울한 것인지

그랬구려 내가 나의 무능만을 탓할 때

당신의 침묵이란 빈 들녘에 버려진 고혼의

시간이었구려 이승에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저승 가장 외진 곳의 움막이라도 찾아 헤매던

죽음보다 아득한 외로움의 순례였구려

이겨낼 수 있다고 나를 달래던 당신이

시간을 물어 오고 무엇도 준비할 수 없는

내게 이제는 쉬고 싶다며 매양

당신이 떠나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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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1)

 

 

 

하루에 한 치씩만 마음을 닫아야 한다

 

어둠은 항상 당신 눈으로 내리고

그 뒤를 맹렬히 쫓아오는 죽음

뭉턱뭉턱 빠지는 당신의 머리카락엔

지난 번 항암치료가 극성을 부리고 있소

바람 한 점이면 낙엽처럼 뒹굴어 갈

희망이 힘겹게 당신 의식에 매달려 있소

이제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당신이 어떻겐들 웃으려 힘을 다할 때

그 고통이 내 것일 수 없어서 나는 울었소

혈관을 찾지 못한 간호사가

이곳 저곳 바늘을 찔러될 때 화내지 못하는

내 무력함을 용서할 수 없어서 나는 울었소

가만히 있어도 새어나는 신음소리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뒤척임을 멈춘

당신 숨소리가 잠시 고르게 잦아들었을 때

그래도 그래도 매달리고 싶어서

살이란 다 빠져나간 당신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나는 또 한참을 돌아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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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친구 아버님의 죽음-

 

1

하늘에서 버린 것이 내게는 있다

예수도 외면하여 떠돌아 가는

그래서 인간의 이름으로 묶어놓은 것

 

 

2

또 떠나고 있다

이 땅에 흐린 느낌만 남기고

노을보다 더 남루한 빛깔로

뚜벅뚜벅 삼일 밤낮의 혼돈과 피로

산 자들의 과잉포장 속으로

그저, 겨울 어느 날의 눈처럼 내려오다가

문득 깨달은 듯 홀연히 떠나고 있다

 

 

3

어머님이 자꾸 떠나려 한다

당신에겐 늘 업보인 내가

아직 세상 어디에도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내 걸음보다 더 절뚝이며 휘청거리며

어머님이 하나씩 짐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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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이유가 있어도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다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는 약속이 단 하루라 해도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다

매일 밤 당신의 곁에서

수없이 무릎 꿇는 모든 기원마다

피를 토하고

나는 생을 다하고

그래서 기적은 당연히 당신의 몫이어야 했다

떠남이 그대의 마지막 안식이라 해도

그대가 이제는 자신을 놓아달라고 해도

나는 한 순간도 너를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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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2)

 

 

취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거리의 죽음까지 마시고 싶다.

취해서 그날로 달아날 수 있다면

내 고집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최루탄 그날의 흔적들을 지워야만 한다.

이것이었을까 기꺼이 떠나갔던 사람들의

죽음, 순결과 살아서 초라한 내 젊음이

질주하는 탐욕과 나를 붙드는

국적불명의 아이들 속에서

꿈틀대는 성욕이나 억눌러야 하는가.

시대란 백만 년은 됨직한 열망

변종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 홀로 씻김굿을 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지금 신촌은 빙하기라고

 

                                      199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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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2)

 

 

잠이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본다

여전한 높이, 높아서

파란 현기증이 목 끝에서 울렁거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던 당신 에덴의 말씀

봄의 뜨락에 자리한 겨울이

햇볕마다 숨을 거두는 곳

질척이는 땅이나

더 하늘같은 마음으로만 사랑해야 하는데

눈을 맞출 수 없다

끝을 흐리는 네 웃음에는 색깔이 없고

내 말들엔 너무 공간이 많다

꽃들은 봄 맞으러 길을 나섰고

그 자리에 내가 서있다

보내는 가슴에 쌓이는 것이

허허

내 안의 신이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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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여기라 생각했습니다.

떠날 때부터 한 길만 걸어왔기에

분명 이곳이라 믿었습니다.

그대가 수천 개의 향기로 퍼져 있어도

유전자 깊숙이 그대가 스며있어선

어느 길 위에 그대가 서 있는지

떠날 때부터 만나리라는 믿음만 가득했습니다.

지금 내 앞엔 수천 갈래의 길

모든 향기가 다 그대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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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바람이 바람으로 비워놓은 자리에

천년을 내리던 별빛이

빛살마다 다시 하늘의 이름으로 되살아올 때

그 황금빛 기억 속을 휘돌던 그리움으로

이곳에 왔다.

바다는 어둠을 가로질러 온 내 가쁜 숨결마다

바람을 보내고 태양은 파도 위로

그날 같은 인사를 한다.

전생엔 은하수였던 물고기들이 은빛으로 부서지고

백사장엔 하염없이 밀려드는 반가움

참으로 오랜 동안을 생각조차 잊었는데

바다는 어미의 품처럼 한결 같다.

그래 저기 어디쯤 나의 전생이 흐르고 있을지도

발을 적시는 파도가 백사장 위로

내 발자욱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이미

자신의 몸속에 영혼 속에 내가 있다며

다시 천년을 그 자리에서

출렁이고 밀려오며 사랑하겠다고

 

                                            19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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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끝에서 

 

 

 

그리움의 끝에서 다시 열리는

동녘 하늘을 따라

그대가 온다 꿈에서도 빛났던 당신이

어둠을 가르며 새벽 이슬을 밟고

내게는 기다림이 깊어 스스로 붉어지는

세상 첫 날의 느낌처럼 그대가 온다

평범한 모든 것들이 비로소 의미가 되는

당신 눈빛이 머무는 곳, 그 뒤안에서

나는 그리움 숨기고 안으로만 익어가는데

한 때는 그대 볼 수가 없어

그렇게 꺼리던 눈부신 햇살 속으로

그대가 온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다시 또 제 한 몸 가리고

 

 

 

                              19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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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2)

 

 

이제부터는 마음의 공간을 비워놓으리다.

나는 내 사랑에만 집착하여서

가슴에는 슬픔만을 키워갔었소.

아침이면 추억을 불러내어서

저녁까지 눈물만 흐르게 했다오.

그곳에서 피는 한 송이 꽃은 내 그리움임을

당신이 바람이라도 되어 와서는

이 모진 그리움의 향기에 취하기만 소망했었소.

그렇게 변하지 않음으로 나는

내 영혼의 안식만을 찾아 헤맸다오.

짙은 눈보라 속에서 매일 밤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 온몸으로 울고 있음을

창문에 당신 영혼이 차갑게 숨을 거둘 때까지

푸르게 갈라진 마음의 상처는 보듬지도 못하고

나는 내 슬픔에만 집착했었소.

 

 

                                                  199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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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다 떠나간 사무실엔

듬성듬성 3년의 세월이 흩어져 흔들거린다

직원이 비워두고 간 패잔의 흔적들

가슴을 가르고 간 바람이 그 위에서

먼지로 비스듬히 일렁거린다

무심코 발에 걸리는 결제보고서 사장 란에는

휘어진 웃음이 비릿하다

문틈을 비집는 엘리베이터 소리

서둘러 문을 닫아야 하는데

슬그머니 훑고 가는 시선이 역린처럼 남아 있다

지금 뼈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

눈물도 되지 못한 통곡이 소리조차 삼켜버렸다

내 자리에선 아득히 전화벨이 울리고

 

                                     

                                               200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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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길

 

 

 

잊으라 한다면

창동길 십칠 년 그저 덤덤히

늘상 외로운 쪽은 이승 같았다

떠난 사람은 남은 자의 무엇엔들 머물러

못 다한 생을 그렇게 사는 지도

어딘가 바람꽃이 시들면 하늘 아래

우리 쉴 곳은, 푸른 소리들

당신 닮은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몇 마디 넋두리에 평생을 털던

당신의 오십 이 년이 떠나가고 있다

한사코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만 하더니

마침내 퇴색되면서 잊으라 한다면

창동길 십칠 년 그저 덤덤히

다 잊겠노라고 당신 무덤가 군데군데

피어나는 이름 모를 잡풀처럼

그날의 세상처럼

 

 

                                    1999.6.17.(199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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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연초에 제사를 지내는데

구석이 편하기가 이렇게도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조카들 부름마저 발밑의 사랑

절을 올리면서 비어 있던 당신의 자리가

지금 옆좌석엔 냉기로만 가득하구려

말하지 않음도 살기에는 방편인데

당신 떠나던 달

할부가 끝나버린 당신 명의의 차

앞유리엔 금이 가 있소

본레뜨 위에는 세월이 덕지하고

계절은 룸미러 안에서만 돌아가고 있소

문득 뒤에서 칭얼대는 클락션 소리

눈이 올 듯도 하고

앞차는 저만치를 달려가고 있는데

신호 놓치기가 이력날 듯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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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5)

 

 

어항 속 금붕어들이 자꾸 입을 맞춥니다.

갇혀 있지만 그 몸짓들이 자유로워 보입니다.

옆에선 열대어들이 유영을 해도

부딪히지 않는 넉넉함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내 안의 당신은 답답하지 않는지요.

홀로 다가가선 나 혼자 속삭이고

당신의 대답마저 내가 정하고픈

이 속 좁은 나의 사랑이

당신은 구속 같진 않는지요.

혼자 키워가는 사랑에도

나는 당신을 갖고만 싶어  

이렇게 오랜 날을 당신 주위만 맴돌아 갑니다.

 

 

                                                    199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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